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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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최근연재일 :
2024.09.1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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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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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12)

DUMMY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상황이나 당혹할 겨를도 없다.

손가락으로 아이 입속의 토혈부터 끄집곤 비스듬히 눕혀 기도를 열어줬다.

이내 감각을 가다듬어 살핀 병세가 심상찮다.


두근- 두근- 쿵, 쿵쿵!

느리다가도 빠르게 뛰는 맥박이 불안정하다.

발그름한 이마는 더운물에 오래 덴 마냥 뜨거워 식은땀까지 흐른다.

그리고 몇 가지 특징적인 증상 더.


믿기 어렵지만 나로선 잘 아는 사유를 떠올려본다.

화월이 무인이라면 확신했으리라.


“천지열(天地熱).”


극히 뛰어난 자질과 성장기의 어린 육신이 자연지기를 과도하리만치 얻은 반동이다.

천지열로 아파한다고 훗날 반드시 입신경은 아니야.

그러나 입신 절대자는, 고금에 드문 몇 사람만 예외였을 뿐 모두 천지열을 겪었다.


해서 걱정스럽다.

이 아이는 내가기공 축적 자체가 불가할진대······ 어째서?


“읏.”


화월이 괴로워하며 달뜬 숨을 내쉰다.

언제나처럼 한 줌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한데 나머지 정황들은 천지열을 가리킨 바, 나 또한 칼날에 베이듯이 안타까우나 방도를 몰라 애달프다.


알려진 치료법 전무.

아이 스스로 이겨내야 한다.


“괜, 찮아요······.”

“언제부터야?”


어렴풋이 눈 뜨곤 안심시키려는 동생에게 물었다.

하루가 지날수록 전조 현상이 심해졌을 텐데.

숨쉬기조차 버거운 통증이었을 텐데.

대체 언제부터?


“삭일(朔日, 음력 초하룻날).”

“······!”


여태껏 단 한 번도 나를 거짓말로 속인 적 없는 아이의 답이 청천벽력 같았다.

삭일이라면 벌써 열사흘째.

이소청의 열하루보다, 내 열이틀보다 길다.


무재의 크기, 천지열의 기간, 고통의 정도가 다 함께거늘.

위전 첫날부터······ 얼마나 아팠어.


“미안해.”


사과밖에 할 수 없다.

어째서 말해주질 않았느냐며 혼낼 수 없다.

한발 먼저 시작된 천인위전, 기다림이 네 최선이었으니까.


화월이 얘기하고 내가 의식했다면.

때 이른 출성(出城), 세 번 어검은 이미 써버렸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데도.

네가 아무리 감췄더라도.


“미안하단다······.”


보았어야 한다.

마땅히 헤아렸어야 옳다.

꾹 참고 숨기며 버텨내는 결심은 너의 최선이었지, 널 지키려는 나의 최선은 아니었다.


“무얼요? 제가 괜찮대서, 흐읏- 믿으신 거잖아요.”


신열(神熱)로 기진맥진하되 또렷이 서린 의문.

맞아, 그랬지.

너는 줄곧 나한테 괜찮다고만 답했어.


왜냐면 아프냐곤 안 물었으니까.

그저 괜찮냐고만, 다친 데 없냐고만 물었으니까.


온 천하에서 날아든 칼일지라도 네게 닿지는 못하도록 쳐낸 줄 알았다.

애써 지어준 웃음마다 겨운 비명인 줄 몰랐다.

그러니 미안스러워.


“과하세요.”


당연한 무감일까.

서로 입장이 반대였다면 넌 자책거나 사과치 않을 테니.


응, 몰라도 괜찮아.

언젠가 알아준다면 기쁘겠지만, 계속 모른대도 괜찮아.

다만 잊지 말아주렴.

아월, 내 동생.


“널 사랑하기 때문이야.”

“······네.”


이해와는 거리 먼, 순종이 담긴 목소리다.

실망하지도 서운하지도 않아.

우리 마주한 간극을 네가 들어주는걸.


<서천의 목을 가져온 아이가 다음 대 무황성주다.>

<버리거라.>


삭일부터 찾아온 천지열에 율법을 바꾼 천인위전.

알고서 베푼 자비인들 대수랴.

단 하나만 내게 소중해.


땀을 닦아주고 수분을 보충해주며 아이를 간호했다.

조금이나마 열이 내려서 호흡도 안정세로 든다.

그 정도가 한계다.

단환과 진기요상 모두 역효과겠지.


“날 밝고 약방을 들르자꾸나.”


어젯밤까지 부지런히 걸어 일정은 그런대로 여유가 있다.

남은 사흘에 목적지인 북경이 사백오십여 리.

도착할 즈음 보름밤일까.


“황도에선 별일 없을 거란다.”


정사마를 막론하여 무림의 세가 잦아드는 땅이다.

백만 정규군, 일만 정예고수, 옥하백절(玉下百絶)과 군신황검(軍神皇劍).

나 하나 밉다고 관무불가침을 깨겠나.


이소청이 직접 행차해 명과 전쟁도 불사한다면 이야기는 또 별개지만······ 때가 늦었어.

제 손까지 핏물을 묻힐 작정이라면 위전은 무용했다.

무극현계로 내 목만 베어내면 됐거늘.


단연코 못 와.

자미보다, 천살보다, 곧 오를 신화와 등선이 중요하므로 살생을 거리끼니.


“금방 일어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속삭임의 행간이 쓰라리다.

황도로 들인 순간부터 척살 실패가 확정이기에, 여정 끝 가까운 만큼 포위망도 삼엄해짐을 안다고.

나는 여상스레 딴청을 피웠다.


“와아- 달빛 예쁘네.”


명월기시유(明月幾時有).

파주문청천(把酒問靑天).


네 눈은 아름다움을 비추길 바라.

이제까지도, 지금도, 앞으로도.

마지막 한 번의 어검으로 널 살려서.


“저는 뭘까요?”


너는 궁금하다.

천지열이건만 아무 내력도 느껴지지 않는 몸.

명경지수로 희로애락이 고요한 정신.

그래서 나는 답해준다.


“내 동생.”


네가 무엇이든.

어떻게 타고났든.


***


천인위전 열사흘 차 낮.

제법 큰 객잔에서 식사를 드는 중이었다.


“서천검월이 근방을 지났다지.”

“허어······ 빠르군. 북경까지 사백 리잖나.”


저만치서 무인들이 수군거리지만 틀렸다.

탕약을 짓느라 오전부터 두 시진, 계속 이 마을에 머무르고 있다.


내일과 모레 서두른다면 충분해.

추격대도 교란할 겸 오늘 잠시나마 걸음을 늦춰야겠다.

화월의 몸 상태가 제일 중요하니.


“입맛이 없어?”


걱정스러워 물으며 바라봤다.

내 맞은편, 쇠고기와 채소를 잘게 간 죽이 절반은 남았다.


“배가 차서요. 음······ 오라버닌 적게 드셔도 괜찮으세요?”


역용해 본래 나이보다는 조금 앳된 소녀의 외견으로 아이가 반문한다.

나야 소면 한 그릇이면 충분해.

정말이시냐고 눈을 가늘게 뜬 표정이 어여쁜지라 주위를 경계하는 한편 나는 웃었다.


“그럼 만두를 사갈까? 이따 출출할 때 먹자꾸나.”

“네!”


기뻐하듯 화월도 웃는다.

하지만 객잔을 나선 이후가 문제였다.


“여기 받으시게나. 탈수증을 막고, 해열과 식사량 증진에도 효과가 탁월하다네. 헌데 탕제만 써서 되겠는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아보라는 약방 주인의 말이 뼈아프다.

상공 한가운데 해가 기울어가자 화월은 몸을 가누기 힘들어했다.

당장이라도 누여주고 싶으나 이것뿐이야.


“괜찮으니 내려주세요. ······오라버니?”

“안 돼.”


난처해하는 동생을 업은 채 나는 일렀다.

사람 많은 곳에선 오랜만이라며 즐겁기엔 무거운 마음.

그러다 문득 마주쳤다.


옅은 복숭앗빛 머리칼이 인상적인 소녀다.

우리를 인지하자마자 호박색 눈을 깜빡인다.


단언컨대 무인은 아니야.

내공의 자취가 전무하고, 다만 틀림없이 이쪽을 주목했다.

제 관심도 숨기지를 않아 뒤에서 따라온다.


“······.”


이대로 모른 척하며 걸어야겠지.

설령 추격대인들 소동을 일으키는 위험 부담이 더 크다.


“왜 그러세요?”

“으응, 착각이었나 봐.”


갈림목에 드니 소녀의 인기척이 멎는다.

누구였을까.

풀지 못할 의문은 미뤄두고 길을 넘었다.


그리고 해시(오후 9시~오후 11시) 말.

북경까진 삼백오십여 리.

소녀와는 무관하겠으나 맞닥뜨렸다.


“너희 둘!”


산길에서 돌연 외치며 다가오는 자들.

정도 십오문의 추격대였다.


살인멸구는 악수야.

연락망이 끊김으로써 본대가 추적해올 터.

화월을 보호하듯 일어난 내가 두려움을 꾸며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보아하니 어린 아이들인데 왜 산중에서 노숙을 하나.”


나는 설명했다.

저들이 수긍할 만한 자초지종에 가짜 호패까지 보여 의심을 지웠다.


“······그래?”


책임자가 고개를 주억인다.

잘 속여넘겼나.

그러나 안심하긴 일렀다.


“잠깐.”


멀리서 들린 말에 추격자들이 멈춘다.

이 일대를 맡은 책임자일까.

마흔 살 전후로 기도가 범상찮은 여인이었다.


여상스러운 걸음인데 금세 당도해선 우리를 본다.

싸늘히 꿰뚫으려는 눈빛.

내가 시선을 내리자 지껄인다.


“우리는 두 사람을 찾고 있다. 서천검월이라는 역도가 지금 동생과 도주해서 말이야.”

“그렇군요.”

“다만 워낙에 신출귀몰한 자다. 역용술도 뛰어나니 그냥 보아선 도저히 알지 못하겠어. 그래서······ 남기기로 했지.”


이해했다.

버러지들이 나름대로 머리를 굴렸어.

철컥- 패용한 검을 쥔 여인이 계속해서 말한다.


“서천검월을 찾지 않는다. 서천검월이 아닌 자, 서천검월이 없을 위치만 덜어낸다.”


어떠한 모습으로 누굴 만나든.

전원 의심하여 최후엔 서천검월일 테니.


그리고 방금 소식이 들어왔단다.

간단명료한 보고였다.

반경 십 리 이내, 확실히 있노라고.


“한데 공교롭게도······ 너희는 둘이구나.”


그녀가 손짓하자 다른 자들이 산개했다.

지원군을 불러올 작정이겠지.

여인 혼자서 날 상대하려는 공명심도 아니다.


타앙!

순식간에 무인 다섯이 새로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절정고수.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셋이다.


첫째, 기존의 수하들부터 제거하고 여섯 고수와 싸우는 것.

다 죽이진 못해.

어검을 쓰지 않는다면 적어도 한 놈은 놓친다.


둘째, 끝까지 숨기고 협조하는 것.

무의미하다.

길게 끌어봐야 천라지망을 갖춰 포위할 터.


셋째, 화월을 데리고 도주하는 것.

그나마 낫다.

생각보다 이른 시기가 애틋하지만 이백오십 리를 달려서.


“······.”


화월이 나를 바라본다.

천지열의 아픔보다 강한 신뢰다.

내 마음을 알기에 저는 꼭 살아남겠다고.


찰나의 판단과 결론.

그리고 월광무로 길을 열려던 순간.



관관저구(關關雎鳩)

꾸욱 꾹 물수리는


재하지주(在河之洲)

황하 강섬에서 노니고


요조숙녀(窈窕淑女)

아리따운 아가씨


군자호구(君子好逑)

군자의 고운 배필이라네



낭랑한 노랫소리가 들렸다.

절정고수들까지 추격대 전원이 그리 주목한다.


복숭앗빛을 닮은 머리칼과 호박색 눈.

낮에 마주친 소녀가 나를 지나가듯 살피고, 이내 화월을 쳐다보며 반가워했다.


“어라- 또 만났네요! 날 기억해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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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 (序) 24.08.28 557 5 10쪽
1 정천리격문 (訂天理檄文) 24.08.28 652 7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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