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든 자들은 다 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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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디마
작품등록일 :
2024.08.27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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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1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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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달 (5)

DUMMY

***


‘어떻게······?’


아미파 속가 장소운은 멍하니 자문했다.

방금 서천이 펼친 신기(神技)가 정신이 혼미해질 만큼 충격적이어서.


강호의 세대는 흔히 셋으로 구분한다.

이립(而立, 30세)까지를 후기지수.

장향(杖鄕, 60세) 어림까지를 당대.

이후로 생존이 불분명한 자들까지도 포함해서 전대.


그중 백도십절은 당대 정파에서 특히 유명하고 뛰어난 고수 열 명이니, 스무 살부터 연배를 초월하여 자리한 서천에겐 강호제일기재라는 칭송이 마땅했다.

심지어 오늘 월광무는 여태 들어온 찬탄과 경외조차 부족할 수준이었고.


‘그래도 이상하잖아.’


어검(御劍).

가히 지고의 검경이며 서천이 직전까지 보인 드높은 무위를 한참이나 넘어섰다.


당대 정파에서 십절 따위가 아니다.

강호의 전 세대를 통틀어, 은거기인을 고려해도 열 명엔 못 미칠 테니까.

확인된 바로는 이 시대에 여섯뿐이다.


천산마교와 대명 금의위.

남만과 북해빙궁.

사도련과 무황성.


천하 칼든 자들을 지배하는 거대 세력의 절대자만이 들어선 영역이건만.

아무리 재능을 연마한들 고작 스물셋 나이 후기지수에게 가능한 일인가.


못내 의구심이 드나 엄연히 맞닥뜨린 현실이라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순간 새로이 나타난 절대고수의 명령에.


“살고자 하는 자, 칼을 버려라.”


채앵!

점창과 청성 무인들의 병장기가 땅에서 쇳소리를 냈다.

적수공권 위주인 아미와 암기술에 능한 당가 무인들도 손을 내린다.


무황성 일백 후기지수가 오로지 한 사람을 당해내지 못하고 투항한 기사(奇事).

장소운은 불안하게 떠올려봤다.


‘이걸로 충분할까?’


칼은 무림인의 은유니 너희가 직접 무공을 폐하란 뜻일지도 모른다.

비무자는 물론이거니와 싸우지 않은 이들까지 전부.

장내에 긴장감이 맴돌던 그때였다.


썩둑!

제 왼팔을 어깻죽지부터 자른 비구니가 무릎 꿇고 말했다.


“아미파 보선은 이제 위전에서 물러나 십 년 폐관에 들겠나이다. 서천께 자비를 구하노니 저 아이들만은 살펴주소서.”

“사자(師姉)······.”


절절한 간청에 사매들이 눈시울을 붉힌다.

장소운은 안타깝고 다행인 심정이었다.


‘번뇌를 끊으신 거야.’


그녀가 아는 보선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조금 쌀쌀맞고 엄하게 혼을 내서 다가가기 어렵지만 근본은 사문을 위함이셨다.

본래라면 여길 찾아오지도 않았을 성정인데······.


이제야 엉킨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다.

내내 굳어있던 보선의 표정이 되려 후련해하듯 맑아짐에 서천이 일렀다.


“제법 대가 있도다. 아미의 총의(總意)로 받아들이마.”

“은혜에 감읍하며 뉘우치리다.”


이십여 명의 아미파 무인들이 일제히 머리 숙이자 점창파와 당가에서도 따랐다.


“점창이 패배를 승복하오.”

“당가는······ 위전 종료까지 관여치 않겠네.”


내상을 입은 이들과 보선만 제외하면 무탈한 아미파와 달리 두 문파는 손해가 막심했다.

헌원평과 당하옥이 죽은 데다가 후기지수 다섯씩 팔이 잘리거나 단전이 부서졌고, 어검으로 벤 당가 무인들도 셋.


물론 헌원평의 사인은 당하옥이 던진 염라혼이지만 책임 소재를 묻기는 애매하다.

겉으론 굽히면서도 미련 어린 태도에 서천이 비웃는다.


“꼴사납구나. 주제를 알고 썩 꺼지거라.”


각파에서 염탐했을 테니 저들을 죽여봐야 실익은 없다.

날이 밝자마자 서천이 입신경이라는 정보가 성 전체를 휩쓸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장소운은 먹먹한 마음으로 되뇌었다.


‘동생을 지키려고······.’


천인위전이 어찌 흘러갈지 모르니 되도록 오래 감추고자 했겠지.

당가의 비겁하고 치졸한 술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꺼냈다.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지만 어린 동생에게 해가 미칠까 봐.


냉정히 논하여서, 서천은 지금 싸움으로 한 번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단지 세인들이 몰랐던 여벌의 목숨 하나를 지녔을 뿐.


‘온전한 입신경은 아니야.’


어검이 자유롭다면 당장 성을 나서도 된다.

혹은 사제들을 모조리 죽여 위전을 사실상 끝내버리는 일도 가능했다.


어느 쪽도 택하지 않았으니 불완전할까.

이곳에 온 무인 대부분이 짐작한 정황을 장소운이 헤아리던 즈음 검을 수납한 서천이 여상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사제는 무얼 하는가.”


무미건조한 눈길이 청성파 명진자를 지목했다.

침묵하던 그가 보선을 흘끗 쳐다보곤 떨떠름한 원망과 분을 삼키듯이 답한다.


“위전을 단념하고 좌수를 잘라 향후 삼 년은 본산에서 폐관하리다. 만족하시오?”

“알아서 정하게. 다만 언제든, 다신 내 눈에 띄지 말도록 주의해야 이로울걸세.”

“명심하지요.”


서걱!

명진자의 왼손이 팔에서 떨어졌다.

어깨를 떨며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가누더니 곧장 뒤돌아 떠나려 한다.

한데 서천이 제지했다.


“아직 할 일이 있거늘 어딜 가시나.”

“무슨 말씀이오.”

“내 이르지 않았는가. 무엄하게 아월을 거론한 혀를 자르겠다고.”

“······!”


명진자를 비롯해 좌중이 경악했다.

서천이 아무렇지도 않게 재차 명한다.


“자르고 가시게. 못하겠다면 대신 해줄 터이니.”

“서천, 빈도는 충분히 인내하고 양보하였소이다. 이리도 모욕을 줄 작정이라면-”

“모욕이 아닐세. 나는 아월의 일에 빈말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네. 그만한 망발이니 응당 혀를 잘라야지.”

“······차라리 싸워서 죽으리다.”

“그리하시게나.”


청성파 무인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본다.

대결이 시작된다면 도와야겠으나 상대는 어검의 고수.

설령 미흡한 입신경인들 결과는 정해졌음이다.

모두 죽을 것이다.


“후우.”


심호흡한 명진자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내 힘차게 도약하려던 순간.


“어······?”


문득 인기척에 고개를 돌린 장소운이 당황해 소리를 냈다.

어두웠던 밤이 비켜나고 동이 틀 검푸른 하늘 아래.

숲 저편에서 아이가 걸어온다.


이토록 중대한 상황이건만 무심코 감탄하고 말았다.

무척이나 예쁜 용모였다.


손엔 아주 날카로워 보이는 단검이 들려 있다.

목적지가 명확한지 피와 시체가 널브러진 길을 똑바로 나아간다.

그리곤 아이 자신을 응시하는 서천에게 다가서 조용히 눈을 마주했다.


“왜 왔어······. 가지고만 있으라고 했잖니.”


장소운은 다시금 놀랐다.

천상 신장(神將)처럼 기품 있고 당당하던 검월 은서천의 목소리가 너무나 애틋한 빛을 담았기에.


“날이 환해서요.”


아이가 답했다.

무엇도 두렵지 않아 평온하게, 온 세상에 서천 혼자만 들어주는 말인 듯이.


***


촤아악-!

검격으로 땅을 깊숙이 갈라내고 일렀다.


“배웅해줄 계제는 아니니 자네들도 살펴 가시게나.”


그어놓은 선이 죽음을 의미한다는 경고.

나는 화월과 함께 돌아서서 장원을 향해 걸었다.

저들의 발소리가 멀어져 간다.


짹- 짹짹!

밝아오는 햇살에 새소리가 지저귀었다.

푸른 숲을 빠져나와 대문이 보였다.

결계 주위로는 어떠한 이목도 없고, 여전히 단검을 쥔 화월에게 물어봤다.


“걱정돼서 왔니?”

“날이 환해서요.”


아까와 같은 대답이라 기쁘게 웃으며 되받았다.


“걱정돼서 온 거네.”

“몸은 괜찮으세요?”

“응, 우리 동생이 와준 덕분에 멀쩡한걸?”


나는 입신지경이 아니다.

절정고수의 극한엔 이르렀으나 마저 내디딜 한 걸음이 답보 상태다.

백회를 열어 천지와 소통할 수가 없고 당연하게도 어검술은 미답의 경지.

그저 입성하기 전 배운 공부를 바탕으로 상단전에다 기운을 모아둔 편법이었다.


따라서 사용 횟수가 제한된 어검이다.

감당하는 반동도 크다.


화월이 적절한 때에 중단할 명분을 주지 않았더라면.

청성파 무인들과 싸웠다면.

천인위전 기간 동안은 회복하지 못할 내상을 입었을 거다.


“보고 있었어요.”

“응.”


“팔만 잘라서 보내도 되셨잖아요.”

“널 두고 겁박하니 화가 나서 고집을 부렸어.”


“삭(朔, 초하루)을 쓰셨죠?”

“응.”


“몇 번이나 남았어요?”

“······두 번.”


화월이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본다.

단검을 쥔 오른손에 정말 희미하게만, 힘이 들어갔다.


“당가였죠?”

“응.”


“괜히 낭비하셨어요.”

“그랬으려나?”


미리 알아채고 피신했겠지.

하지만 나는 이 아이가 다칠 희박한 가능성이라도 용납하기 싫었다.


“겨우 나흘이고 다섯 문파예요. 쓰시면 안 됐어요.”

“응.”


“이대로는 중추절까지 못 버티세요.”

“응.”


화월이 단검을 들어 올렸다.

제 목으로 가져가면서 권한다.


“저를 버리시면 해결돼요.”


나는 위전 첫날의 대화를 기억했다.

지금처럼 목에 단검을 겨눈 모습이었다.


<왜 그러고 있어?>

<얼마나 날카롭나 궁금해서요.>


검날에 관한 문답이 아니었다.

내 각오를 베어낼 수 있는지의 이야기였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저어했다면.

지켜줘야 하는 존재를 버겁게 여겼다면.

화월은 망설이지 않고 스스로 목을 그었으리라.


그런 아이다.

나에게 살아가는 이유인, 무엇보다 소중한 동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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