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툴루의 주인이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새글

나루엔
그림/삽화
11:05 연재
작품등록일 :
2024.09.01 11:36
최근연재일 :
2024.09.18 11:05
연재수 :
18 회
조회수 :
1,322
추천수 :
45
글자수 :
94,873

작성
24.09.01 11:49
조회
187
추천
3
글자
12쪽

호텔

DUMMY

내 비루하고 참담한 생에 끝을 맞이하기 위해 찾아간 것은 어느 호텔이었다.


1. 호텔


어느 날 등장한 탑의 존재.

세상을 뒤흔든 마석의 발견.

상태창의 선택을 받은 각성자들.


나는 최초의 각성자 중 하나가 되었다.

아직도 그날의 희열을 잊지 못한다.

나는 찬란한 부귀영화를 꿈꿨다.


F급 각성자 김이신.

각성 스킬은 평정심(平靜心).


매스컴의 기자회견 요청이 쏟아져 들어왔다.

기업들은 앞다퉈 계약서를 들고 찾아왔다.

나는 한순간에 일약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알려지는 데까지.

단 하루면 충분했다.


"키에엑? 크륵, 크륵!"

"허억, 허억."


탑 1층.

고블린 처치 임무.


대체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고블린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은.

고블린 다섯 마리는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내 스킬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평정심(平靜心).


그야말로 평정을 유지하게 해주는 스킬.

전투는 물론이고 지원 스킬조차 아니다.

탑에서 나는 일반인과 다를 바 없었다.


쎄에엑!


고블린의 손에서 매서운 일격이 날아들었다.


피슛!


그 일격으로 내 오른쪽 눈이 파열했다.


나는 물러서 돌멩이를 집어 던져 보았으나.

놈들은 웃으며 그것을 가볍게 피해 보였다.

그야말로 죽음이 코앞에 닥친 순간.


나는 간신히 창을 열어 귀환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무모했던 나의 첫 도전은 끔찍한 패배로 마무리.

그 모습은 바디캠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나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와 함께 계속해서 새롭게 등장하는 각성자들.

그렇게 나는 한순간에 대중들에게 잊혀졌다.

아니.

잊히기만 했다면 다행이었겠지.


날아든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 적힌 위약금 고지서.

한국 각성자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날아드는 비난.

마지막으로 채권을 넘겨받은 사채업자들.

몰려드는 악의에 끝은 없었다.


이제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까지 밀려오는 여파.

부모님은 괜찮다며 다독여 주셨지만.

그분들의 얼굴에 깊은 수심이 드리워 있었다.

어느 날 여동생이 한탄하듯 소리쳤다.


"오빠는···! 왜 각성자인 걸 밝혀서 우리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야!"

"미안하다."

"하, 됐어. 꺼져!"

"이서야 그러면 못쓴다."

"아빠! 아빠가 그렇게 오냐오냐해주니까 오빠가 저러는 거 아냐!"

"이신아 그러지 말구. 응? 다시 취업이라도 해보는 게 어떠니?"

"···알겠어요."


사실 이미 여러 차례 도전해봤다.

다만 흉측하게 파열된 내 오른쪽 눈으로 인한 편견.

그리고 회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사채업자들.

나는 계속해서 취업에 고배를 마셔야 했다.


놈들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

내가 평생 월급쟁이로 일해봐야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사실을.


나 또한 알고 있었다.

놈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각성한 내 신체라는걸.


놈들은 내 신체 포기각서를 받아낼 생각이다.

그리고 대기업 연구소에 몰래 팔아넘기겠지.

흐흐흐.

시발새끼들.


이대로면 내 가족조차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밖으로 나섰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만 할 때.


부디 이것으로 우리 가족이 무사하기를.

나는 녹이 슨 간판을 단 호텔에 들어섰다.


* * *


호텔은 겉에서 보았을 때 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그리고 1층 전체가 식당으로 구성돼 있었다.

내부에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대신 웨이터 복장의 신사 한명.


"안녕하십니까?"

"아, 네."

"우선, 식사하시겠습니까?"

"그러죠."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튀어나온 목소리.

어째서?

지금 호텔에 머무를 비용조차 빠듯한데.

조금 몽롱한 느낌.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니.

웨이터가 차례에 맞춰 음식을 가져왔다.

이건 양송이수프인가?

제법 맛이 괜찮다.


그런데.

아까부터 시선이 느껴지는데.

서빙을 마친 웨이터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내가 의식하자 그가 싱긋 웃어 보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제법 괜찮은 와인이 들어왔습니다. 한번 맛보시겠습니까?"

"저기···."

"아, 가격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제 재량으로 드리는 선물이니."

"그럼, 뭐."

"그럼. 자리를 옮기시겠습니까?"

"아, 네."


내가 동의하자.

그는 우아한 몸동작으로 돌아섰다.

그리고는 나를 와인바로 안내했다.


잠시 기다리자.

딱 봐도 비싸게 생긴 와인 한 병을 들고 왔다.


"1945년 산 도멘 드 라 로마네 꽁띠입니다."

"그렇군요."

"인간들이 만든 것 치고는 제법 훌륭한 풍미를 지니고 있으니. 부디 마음껏 즐겨주시길."

"···?"


퐁.

쪼르륵.


그가 병 입구를 부드럽게 쓸어 보였다.

코르크 마개가 저항 없이 뽑혀 나왔다.


무슨 마술 같은 건가?


내 와인잔을 따라 붉은빛 액체가 찰랑였다.

그 모습이 마치 성배에 담긴 포도주 같았다.


알 수 없는 위압감에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그저 웃어 보이며 한발 물러설 뿐.


와인을 마셔보는 건 거의 처음인데.

아니.

술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

이 순간.

그의 권유를 거절하지 않았던 걸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와인.

나는 담백하게 평가했다.


"쓰고 셔요."

"푸흡. 흐하하. 그렇습니까."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 박장대소.

그는 한참을 그렇게 웃어 재꼈다.


조금 부끄럽다.


손님에게 망신을 주다니.

이 집 서비스가 형편없군.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내는 웨이터.

그가 나에게 제안했다.


"이런, 손님께 결례를 범했군요. 그럼 손님께 맞는 다른 와인들을 추천해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제가 내는 것으로."

"그래요. 뭐."


내 각성 스킬은 평정심.

술을 아무리 마셔봤자 절대로 취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술의 기운이 필요한 날.

그렇다면 분위기에 한 번 취해볼까?


훌륭한 바텐더의 조건은 뭘까?


만약, 그것이.

손님의 마음을 끌어내는 것이라면.

그는 최고의 바텐더라 할 수 있겠다.

뭐랄까.

나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있었다.


그는 내 한탄에 공감한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한 손으로는 와인잔을 닦아내는 중.


"흐음, 그래서 좋지 않은 생각까지 하고 계셨던 거군요."

"흐흐흐, 전부 제가 한심한 놈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손님의 재능을 알아보지 못한 이들이 우매한 것이죠."

"그래봤자 쓸데없는 재능일 뿐인데···."

"음,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말한 그의 눈이 순간 빛나는 듯했다.

깨끗이 닦은 와인잔을 내려놓은 웨이터.

그가 다음 와인을 따르기 시작했다.


쪼르르.


그가 와인잔을 내밀며 나에게 말했다.


"손님의 상황이 매우 딱해 보이는 군요. 그렇다면 혹시 저와 작은 사업을 하나 해 보실 생각 있으십니까?"

"사업··· 말씀이십니까?"


이제 와서 사업 제안이라니.

하,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다.

그래도 그냥 들어만 볼까?


"그렇습니다. 제가 위대한 옛 존재들과의 계약을 중계해 드릴 테니. 이신 님께서는 그들을 이용해 탑을 오르시는 겁니다."

"저기, 혹시··· 지금까지 제 이야기를 들으신 게 맞나요?"

"후후. 아직 믿지 않으시는군요."

"저는··· 실패했어요."

"그건 저와 만나기 이전의 이야기지요."


그의 눈이 불길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


저 깊은 곳에서 내 영혼이 요동쳤다.

내 모든 영혼이 그를 받아들이라 외치고 있다.


"만약, 당신이 저와 함께한다면. 당신은 탑의 끝을 보게 되실 겁니다."

"탑의··· 끝···?"

"당신께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드리겠습니다."

"특별한··· 경험···."

"저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


그 울림은 너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도저히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나도 모르게 끄덕여 보인 고갯짓.

잠시 짙은 미소를 지어 보인 그.

한발 물러서더니.


"당신과 함께 일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제 소개를 해 드리지요. 저는 기어오는 혼돈 은가이 숲의 주인 혹은 나일라토텝이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일라토텝···이요?"

"그렇습니다. 당신은 지금부터 제 대리인이 되어 위대한 옛 존재들을 지휘하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옛 존재들···?"

"후후, 한번 살펴 보시겠습니까?"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내 승낙에 그가 환히 미소 짓고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우리의 계약이 이곳에서 체결되었으니. 위대한 옛 존재들을 살피기 전에 제가 작은 선물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선물이요?"

"잠시 눈을 감아주시겠습니까?"

"···그러죠."


내가 눈을 감아 보이자.

그는 파열된 내 오른쪽 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뭘 하는 거지?

조금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제, 눈을 뜨셔도 좋습니다."

"···어."


보인다.

보였다.

고블린 놈들에게 빼앗긴 내 절반의 시야!

어안이 벙벙하다.

그저 멍하니 나일라토텝을 바라보았다.

나일라토텝은 그저 웃어 보이더니.


딱!


손가락을 튕겨보인 그의 손에 손거울이 들려있었다. 

그가 건내준 손거울을 살펴본 내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매분 매초.

놈들을 떠올리게 했던 치욕의 상처.

그것이 말끔히 사라진 상태.

거울 속의 나는 그야말로 완전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은 느낌.


"그럼, 가보시겠습니까?"

"아, 네, 네!"


다음으로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은 극장이었다.

호텔 내부에 이런 곳이 있었나?


아무도 없는 관객석 중앙에 그와 내가 자리했다.

곧 마술처럼 장막이 걷히며 등장한 것은 하늘이었다.


"와."

"마음에 드십니까?"

"멋지네요."


하늘에는 빛나는 별자리들이 한가득 모여있었다.

스크린에 비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살피다 옆을 바라보았다.

그는 별자리를 살피며 무언가 고심하고 있었다.

곧 마음을 정한 듯 싱긋 웃어 보였다.


"음, 우선 이걸로 해 볼까."

"대체 무엇을···?"

"직접 보시죠."


딱!


그가 손가락을 튕김과 함께.

천체가 빙그르르 회전하더니.

화면이 빛에 휩싸였다.

읏.

눈부셔.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오오···."

"반갑습니다. 로고그."

"분재 나무···?"

"후후. 정말 그렇게 보이십니까?"


그가 매우 우습다는 듯이 물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그건.

진짜.

그냥 분재 나무였다.

중간에 눈이 하나 달린 것만 빼고···.


"음, 네···."

"하하하. 예상대로군요! 당신은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니. 이제 제가 그와 계약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나일라토텝이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잠시 무언가 중얼거리는 나일라토텝.


"관리자 시스템을 해킹하는 것쯤은 눈감고도 할 수 있지요."

"관리자··· 시스템이요?"

"상태창을 확인해보시겠습니까?"

"아, 네."


· 이름 : 김이신

· 입장 위치 : 남산타워(대한민국)

· 베스트 레코드 : 없음

· 획득 스킬 : 평정심(F), 계약 소환(?)

· 평균 위력 : 1

· 입장 가능 횟수 : 1/1

· 칭호 : 없음

· 소환수 : 없음


그날.

고블린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상태창을 열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상태창.

획득 스킬에 계약 소환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소환수 탭도.


"뭔가 조금 바뀌었군요."

"그렇습니다. 이제 계약을 진행해 볼까요?"

"계약은··· 어떻게 하면 되죠?"

"자. 따라 해보세요."


나는 나일라 토텝이 말하는 대로 주문을 외웠다.


Ph'nglui Mglw'nafh Cthulhu R'lyeh Wgah'nagl Fhtagn.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크툴루의 주인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등급제 개편! NEW 5시간 전 8 0 -
공지 제목 변경 공지[외신의 주인] 24.09.10 35 0 -
공지 연재 시간 11시 05분 입니다. 24.09.08 50 0 -
18 목격자 NEW 11시간 전 32 1 12쪽
17 새로운 국면 24.09.17 40 1 11쪽
16 10층 24.09.16 40 2 12쪽
15 대표 연설 24.09.15 41 0 11쪽
14 박제우는 웃고 있다. +3 24.09.14 47 2 12쪽
13 글라키 +1 24.09.13 47 3 12쪽
12 스노우볼 +1 24.09.12 53 1 11쪽
11 마석구 폭발 사건 24.09.11 56 3 12쪽
10 한여름 24.09.10 58 2 11쪽
9 형태 없는 자 24.09.09 64 3 11쪽
8 남산 아카데미 +1 24.09.08 74 3 12쪽
7 국가 정상 회담 +2 24.09.07 84 4 13쪽
6 마석 판매 +2 24.09.06 85 3 12쪽
5 스포트라이트 +1 24.09.05 96 3 11쪽
4 1층 +1 24.09.04 102 4 12쪽
3 입장 +1 24.09.03 105 4 12쪽
2 로고그 +1 24.09.02 109 3 11쪽
» 호텔 +2 24.09.01 188 3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