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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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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아카데미

DUMMY

나일라토텝이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나일라토텝이 말했다.

"한번 도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8. 남산 아카데미


내가 방 밖으로 나온 지 나흘이 지났다.

그동안 우리 가족의 일상은 한층 밝아졌다.


뭔가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부모님의 얼굴에 때때로 미소가 그려졌다.

이서도 아직은 쌀쌀맞은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오빠, 엄마가 밥 먹으래."

"그래."


이렇게 자연스럽게 내 방문을 두드리곤 한다.

이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

대답하는 나조차 깜짝 놀라곤 한다.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 또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처음의 어색함은 점차 희석되었다.

가끔은 이렇게 농담을 던질 정도.


씨익.


금세 이서가 짓궂은 표정을 지어 보인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고자질하는 녀석.

그런데 왠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느낌. 


"엄마 요즘 오빠 여자 생겼다?"

"푸훕!"

"어머, 그게 무슨 소리야? 이신아 진짜니?"

"아, 아뇨. 그게 무슨···?"

"와, 대박. 시치미 때는 것 봐. 나 봤거든? 요즘 운동하는 척하면서 갈색 생머리 여자랑 개 데리고 산책하는 거."

"어머 어머, 정말? 정말로?"

"이서야. 이신 이도 남자다 여자 만날 때도 됐지."

"아, 아뇨 그건 진짜 그냥 길 가다 마주친 것뿐인데요."

"그게 어디니! 네가 언제 여자랑 같이 산책했던 적이라도 있었고?"

"거기다 여자 쪽이 엄청 이쁘던데? 대체 어떻게 그런 여자를 꼬셨대?"

"아니라니까···."


요즘 백희 씨와 자주 마주치게 된 것은 맞다.

어쩌다 보니 같이 운동하게 된 것도 맞다.


백희 씨는 대체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내 말을 차분하게 들어준 다음 조리 있게 정리하고, 그것으로 새로운 주제를 이어가는 재주도 있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이 조금 기대되는 것 또한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백희 씨와 연애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녀는 1세대 각성자 중에서도 몇 없는 서포터.

심지어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인 도전자다.


또한 생기 넘치는 외모.

그녀는 아이돌이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그녀가 출연한 광고를 흔히 볼 수 있다.

백희 씨 옆에 나를 가져다 대는 것은 그녀에 대한 모독.


아무래도 오랜만에 오빠로서의 위엄을 보여줘야겠다.

이서에게 따끔한 일침을 날려 주려던 순간.


"와, 저 봐 아주 얼굴에 꽃이 피었네 꽃이 피었어."

"우리 이신이 데이트 신청이라도 받는 거 아니니?"

"큿흠, 아빠는 우리 아들이 알아서 잘하리라 믿는다."

"아, 아니라고요···."


엄마의 말에 오늘 백희씨와 있었던 일이 머리를 스쳤다.


데이트 신청은 아니었지만 조금 색다른 제안을 받았었지.

그것은 아카데미 입학 권유였다.


"이신 씨, 혹시 아카데미에 들어오실 생각 있으신가요?"

"아카데미요?"

"네 이번에 추천입학제도라는 게 생겼거든요. 저한테도 한자리 들어왔는데. 만약 이신 씨가 원하신다면 추천해드리고 싶어서요."

"하지만 저는 이미 나이가···."

"후후, 이신 씨 저랑 동갑 아니었나요? 스물셋이면 아직 한창인걸요? 지금 아카데미에 이신 씨랑 동갑 나이의 신입생들이 엄청 많아요."

"그, 그런가요?"

"그럼요!"


남산 도전자 아카데미.


남산타워 사태 발발 이후 정부 주도로 발 빠르게 세워진 아카데미.

졸업생들은 탑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남산 아카데미는 미국의 스페이스 니들과 함께 세계적인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이신 씨가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다 보면, 좀 더 높은 층도 노려볼 수 있을 거예요. 보수도 좋아질 거고요."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어쩌면, 저와 함께 탑을 공략할 수 있을지도요?"

"에이, 제가 어떻게 백희씨랑 같이···."


매혹적으로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

와, 정말. 순간 혹하고 마음이 동했다.

그녀가 반짝이는 눈동자로 바라본다.


역시 예쁘고 볼 일인가.


하지만 내가 다른 누군가와 탑을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

잠깐 서글픈 마음이 들었지만 그건 로고그에 대한 실례.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백희씨가 나에게 눈을 찡긋해 보였다.


"절대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 법이랍니다?"

"말씀은 감사하지만. 좀 더 생각해 봐야겠어요."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죠? 그럼 좀 더 생각해 보시고 알려주세요. 아직 등록 기간까지는 시간이 남았거든요."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럼 우리마저 산책할까요?"

"네. 그러죠."


산책은 즐거웠다.


* * *


호텔.


나일라토텝이 와인잔을 닦고 있다.

나는 백희씨와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일라토텝은 상담사로서의 기질이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백희씨보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그는 그저 헝겊으로 와인잔을 닦고 있을 뿐인데.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이신님께서 마음이 동하신다면, 한번 도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말, 그래도 됄까요?"


내 소심한 물음에 나일라토텝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이신님께서 탑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계시는 것이 등반에 도움이 될 것이니까요."

"그러면 혹시 제 스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내 스킬은 지금 나일라토텝에 의해 마개조된 상태.

아카데미에서는 스킬의 등급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장비들이 있다고 들었다.


"음, 그렇다면, 이렇게 하죠. 우선 손을 이쪽에 올려주시겠습니까?"

"아, 네. 여기."


나일라토텝이 내 손등을 가볍게 쓸어 보였다.

순간 따끔 하는 느낌이 지나갔다.


"한번 상태창을 살펴보시겠습니까?"

"네."


· 이름 : 김이신

· 입장 위치 : 남산타워(대한민국)

· 베스트 레코드 : 4층(EX+)

· 획득 스킬 : 평정심(F), 계약 소환(F)

· 평균 위력 : 1

· 입장 가능 횟수 : 1/1

· 칭호 : 올드 원의 계약자

· 소환수 : 로고그, 형태 없는자


"뭔가, 조금 바뀌었네요."

"아카데미에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시스템을 조금 조정해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로고그님을 소환했다가는 대참사가 벌어질 테니. 대신 제 수하들을 부릴 수 있는 권능을 넣어드렸지요."


그러고 보니 새로운 소환수가 추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은 건가요?"

"후후, 물론입니다. 이신님의 능력에 따라 점차 다룰 수 있는 숫자도 늘어날 것입니다."


나일라토텝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나는 아직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나는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를 꺼내 들었다.


"제가 이 돌을 가지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이 있을까요?"

"다른 사람에게 직접 넘겨주지만 않는다면 괜찮겠습니다만. 만약을 위해 그냥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두시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일전에 빛나는 부등변다면체를 가로채 간 덩치의 일이 떠올랐다.

아공간 주머니에 고이 넣어두도록 하자.


"이, 형태 없는자라는 건 어떻게 소환할 수 있죠?"

"제가 주문을 알려드릴 테니, 한번 그들을 불러보시겠습니까?"


나는 나일라토텝이 알려주는 대로 주문을 외웠다.


-인포르미스 페르소나(informis persona, 형태 없는자)


스아아.

바닥에서 검은 안개가 솟아올랐다.

형태 없는 자라는 말이 어울리듯이.

그것들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자리했다.


뭐랄까.

표현하자면.

냉장고에서 반쯤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꺼내든 기분.

연기를 뿜어대며 서늘한 느낌이 드는 것까지 비슷하다.

대신 그 색이 칠흑과도 같은 검은색이라는 점이 달랐다.


"성공한 건가요?"

"그렇습니다. 이제 명령을 내려보시겠습니까?"

"앉아."

"하아아아."

"일어서."

"흐어어어."

"후후, 어떻습니까?"

"훌륭하네요···."


내 명령에 녀석들은 어기적거리며 동작을 반복했다.

이렇게 보니 제법 귀여운 것 같기도.

그런데 로고그의 상태가 조금 이상한데.


"그오오."

"로고그 설마 삐진 거 아니지···?"

"고오오."


로고그의 돌발행동.

질 수 없다는 듯이 뿌리를 들어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한다.

너는 안 해도 되는데···.

나일라토텝은 그것이 매우 우습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려 보인다.

아무튼, 나는 녀석들을 조금 더 괴롭히다 돌려보냈다.

내 평가는 만족.

이제 남은 의문점들만 해결하면 되겠다.

나일라토텝에게 물었다.


"이 형태 없는 자들은 일반 사람들 앞에서 꺼내도 되는 건가요?"

"흠, 영향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 적어도 로고그님과 같은 현상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저, 잠시 악몽을 꾼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되겠죠."


혹시라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는데.

나일라토텝의 말을 들어보니 조금 안심이 됐다.


정말 안심해도 되는지는 직접 사용해 봐야 하겠지만.

일단 녀석들과 함께라면 아카데미에 들어가서도 뒤처질 일은 없어 보였다.


"그냥 악몽을 꾸는 정도··· 맞죠?"

"후후, 그렇습니다. 그저 하룻밤에 불과한 악몽."


나일라토텝이 서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왠지 조금 불안해지는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사용하는 것을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자.

볼일은 끝났다.

그런데 왠지.

항상 내 볼일만 보고 휙 가버리는 것아 미안한데.

뭐, 그가 필요하면 알아서 부탁해오겠지.


"그러면 저는 이만."

"또 방문해주시길."

"아, 저. 혹시. 나일라토텝님도 저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나요?"

"흠, 부탁이라."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나일라토텝이 고개를 까딱했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나일라토텝.

빙긋 웃으며 나에게 부탁한다.


"그러면 혹시 메로나라는 것을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메로나요···?"

"멜론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이라 들었습니다."

"그, 그렇죠. 정말 그걸로 괜찮겠어요?"

"네, 그걸로 좋습니다."


조금 당황스럽다.

메로나라니!

하지만 나일라토텝은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진짜 메로나···?

그걸로 끝?

뭐, 그럼 나야 좋지.


"알겠습니다. 기억해둘게요."

"이신님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는 제가 더 감사하죠."

"아무쪼록 언제든지 들려주시길."

"네."


나일라토텝의 예상치 못한 부탁이 있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내 아카데미 행이 결정됐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내 결심을 들은 부모님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게 정말이니?"

"네, 한 번 해보려고요. 사실, 이런 기회 흔치 않잖아요."

"그래, 탑을 오를거면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도전하는 편이 안전하겠지. 네 엄마가 알게 모르게 네 걱정을 많이 했단다."


아빠가 대견하다는 듯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엄마는 그동안 홀로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눈가에 이슬이 맺혀있었다.

이서조차 입을 헤 벌리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비벼 보이는 중.


"와, 오빠가 그 유명한 남산 아카데미를 간다니. 정말 믿기지도 않는 이야기네."

"그래, 사실 나도 잘 안 믿긴다."

"아니, 그 오빠 여자친구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레 추천 입학 지명권 같은 걸 가지고 있는 거야?"

"윤백희 그리고 여친 아니라니까."

"뭐, 뭐어!? 윤백희!? 정말?"


내 말에 이서가 다시 한번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 보였다.

엄마 아빠도 백희씨의 이름을 듣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사람 톱스타잖아!"


이서가 소리쳤다.

그래.

나도 안 믿긴다. 이 자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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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아카데미 +1 24.09.08 74 3 12쪽
7 국가 정상 회담 +2 24.09.07 83 4 13쪽
6 마석 판매 +2 24.09.06 85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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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호텔 +2 24.09.01 18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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