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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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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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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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2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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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특전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DUMMY

2화 특전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마법사처럼 로브를 입은 남자가 대답했다.


“그렇다니까? 그러니 여기서 함부로 써볼 생각은 말라고. 괜히 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 검에 그런 대단한 마법이···?”

“···좀 이상한데. 제대로 감정한 거 맞아?”

“아 못 믿겠으면 믿지 말든가. 하지만 주기로 했던 돈은 줘야 해! 감정해 줬으니까!”


로브를 입은 남자가 손을 내밀며 돈을 달라고 재차 요구하자, 마주 앉은 덩치 큰 남자가 난감해 하는 얼굴로 동료 여성을 쳐다봤다.


“어쩌지? 돈을 줘야 하나···?”

“아니, 기다려 봐. 뭔가 이상하잖아. 이봐, 내가 듣기로는 유물 하나 감정하는데 최소 삼사 일씩은 걸린다고 그러던데, 그쪽은 빨라도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하! 뭘 모르는 소리 좀 하지 마. 그게 다 감정비를 비싸게 받아먹으려는 상아탑 놈들의 농간이라고. 머리가 있으면 생각이란 걸 좀 해 봐. 그놈들이 지금까지 감정한 유물이 얼마나 될 거 같아? 못해도 수천 개는 될 걸? 그쯤 되면 노하우가 쌓여도 진작에 쌓였을 양이라고. 근데 봐. 감정하는 속도는 수십 년 내내 그대로잖아. 이게 무슨 뜻이겠어? 응? 무슨 뜻이겠냐고?”

“그럼 그쪽은 왜 그렇게 안 하는 건데?”

“아, 나도 마음 같아서는 그 치들처럼 시간 좀 끌고 비싸게 받아먹고 싶지! 하지만 우리 영주님이 나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시는데 어쩔 도리가 있나? 돈 좀 덜 벌더라도 빨리 끝내고 가야지. 안 그래?”

“···그쪽 생각은 잘 알겠어. 하지만 돈은 지금 못 줘. 이 검에 정말 그런 마법이 걸려 있는지 확인되면, 그때 줄 거야.”

“···좋아, 그럼.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나가서 확인해 보자고. 근데 이거 하난 알아 둬. 그 검에 걸린 마법은 강력한 만큼 두 번은 못 써.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아? 그 검, 일회용이라는 소리야.”

“뭐? 그런 말은 없었잖아!”

“그래서 지금 말해주고 있잖아!”


‘불의 비를 부르는 마법이라···.’


술을 홀짝이며 그들의 대화를 엿들은 김수호는 문득 흥미가 동했다.

불의 비를 부르는 마법은 게임 후반부에나 볼 수 있는 고위 마법.

그런데 그런 마법이 걸려 있는 검이라니?

등급을 매기자면 아무리 못해도 유니크급은 되지 않을까 싶다.


등급이 높은 아이템은 보통 겉모습도 기깔나게 멋들어지는 법인데.

실제 모습은 어떨지 궁금했다.


‘···보는 것 정돈 괜찮겠지?’


그래도 대놓고 보면 시비가 걸릴 지도 모르니 고개만 슬쩍 돌려 살펴보기로 했다.


“······?”


그러나 그 자리에 그가 기대하던 모습은 없었다.

보이는 건 기껏해야 고풍스러움이 돋보이는 투박한 검뿐.

한마디로 볼품없었다.


‘좀 실망스러운데···.’


하긴 게임에서나 유니크급이니 전설급이니 구분하는 거지, 현실에선 다 똑같은 유물일 뿐이다.

그러니 비록 저렇게 볼품없이 생겼더라도 성능만큼은 뛰어날 수도···.


‘···가 아니라, 잠깐만. 저거 생김새가 좀 익숙한데···?’


고개를 완전히 돌리고 유심히 살펴 보니 확실했다.

그가 아는 물건이었다.


“인도자의 검이잖아?”


무심코 튀어나온 말.

불쑥 끼어든 목소리에 옥신각신 떠들어대던 세 사람이 그를 돌아봤다.


“뭐라고요?”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혼잣말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검의 정체를 알아본 순간 대충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눈치챈 그는 모르는 척 발을 뺐다.

당장 생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지금, 괜히 골치 아픈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봐요, 뭔가 알고 있는 거죠?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해 줘요. 네?”

“지금 뭐 하는 거야? 나 같은 전문가를 앞에 두고서. 설마 저 부랑아 따위가 나보다 더 잘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누가 그렇대? 그냥 들어보기만 하자는 거잖아! 왜? 무슨 문제라도 있어?”

“당연히 있지! 내 감정을 믿지 않는 건 나를 모욕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조금 전엔 믿기 싫으면 믿지 마라며? 그새 말이 바뀌었네? 됐고. 만약 그쪽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게 밝혀지면, 그땐 사과하고 돈으로 보상하겠어. 그럼 불만 없겠지?”


으드득.


"마법사를 모욕한 대가는 결코 싸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할 거야.”


로브를 입은 남자가 이를 갈며 으르렁댔지만, 여자는 무슨 개가 짖냐는 듯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이봐요, 아까 뭐라고 그랬죠? 인도자의 검? 그게 이 검의 이름인가요? 뭐든 좋으니 아는 게 있으면 얘기 좀 해 줘요.”


얼핏 봐도 쉽게 포기할 얼굴이 아니었다.

반면 로브를 입은 남자는 입을 열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눈알을 부라리고 있었다.


‘···괜히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가 원한만 사게 생겼네.’


역시 말하지 않는 게 신상에 이로울 듯싶다.

선의를 베푸는데 목숨까지 걸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런 건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형편 좋은 얘기일 뿐이다.


그리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거절을 입에 담으려는 순간이었다.

여자가 엠블럼이 박힌 펜던트를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이거 보이죠? 우린 하이랜더 소속이에요. 만약 도움이 되는 정보를 알려주면 섭섭치 않게 사례하겠다고 약속할게요.”

“···좀 자세히 살펴봐도 될까요?”

“그럼요. 물론이죠.”


김수호는 팬던트를 받아 자세히 살펴봤다.


방패 모양 테두리 안에 양각으로 튀어나온 산 모양 바위, 그 위에 검이 꽂혀있는 형상.

조잡하게 그려 넣은 것이 아닌 금속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것이었다.

마치 현실에 있는 것을 그대로 본떠 박아 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이런 건 함부로 위조하지도 못한다. 다시 말해 진품이라는 소리다.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지.’


하이랜더는 미궁 도시에서 활동 중인 수많은 길드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길드다.

실력, 평판 어느 면에서든.

아마 저들에게 아는 걸 말해 주는 대신 보호를 요청한다면, 흔쾌히 받아들여 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거기에 한 가지 더.

기막힌 생존 계획이 떠올랐다.


“여기 있습니다. 진짜가 맞네요.”

“꼭 이걸 아는 것처럼 얘기하네요? 예전에 본 적이 있나요?”

“아뇨, 실물로는 처음 봅니다. 하지만 그게 진짜라는 건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알겠네요. 그런 물건을 만들 수 있는 장인은 전 대륙을 뒤져도 한 손에 꼽힐 테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나요?”

“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세요.”

“어떤 부탁이죠?”

“그건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만약 들으신 후에 무리한 요구라고 생각되시면 거절하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녀가 그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좋아요. 대신 지금 말하려는 것이 헛소리가 아니어야 할 거예요. 안 그러면 내가 정말 화가 날 거 같으니까.”


잔잔한 목소리, 거기에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뿐인데도 온몸을 내리누르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장난 아니네.’


이게 소위 말하는 강자의 기세, 뭐 그런 건가?

여기가 판타지 세상이라는 사실이 새삼 실감되었다.


“···걱정 마세요. 분명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일단 그 검을 좀 자세히 볼 수 있을까요?”


덩치 큰 남자가 여자를 한 번 돌아보고는 그에게 검을 내밀었다.

그 검을 받아든 김수호는 칼집부터 폼멜까지, 그리고 검을 뽑아 다시 가드부터 칼 끝까지 쭉 살펴봤다.

역시 그가 아는 인도자의 검이 맞았다.


김수호는 마지막으로 칼집과 검면에 새겨진 기호들을 하나하나 손끝으로 훑으며 유심히 살펴봤다.

마치 진짜 감정을 하는 것처럼.


사실 반쯤은 그렇게 보이길 바라서였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가 기억하는 마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물론 그가 마도구에 새겨진 기호들을 해석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건 이 세계의 마법사들도 아직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다만, 그 의미를 몰라도 비슷한 걸 계속해서 보다 보면 간단한 규칙 정도는 발견하게 되는 법이다.

가령 마법의 속성이 불인지 얼음인지, 사용 횟수에 제한이 있는지 없는지, 마법의 위계가 낮은지 높은지 등과 같은 점들을 어림잡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기호들을 살펴본 건데···.


‘···이게 왜 읽히지···?’


놀랍게도 한국어를 읽듯 수월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가 있었다.


[병사를 이끄는 자들을 위한 검, 그리하여 인도자의 검이라 불리리라.]

[불빛이 그대의 지휘를 따름에, 어둠은 그대의 앞을 가로막지 못하리라.]

[불빛은 하루에 세 번 그대의 지휘를 따를 것이나, 모든 힘이 다한 뒤에는 침묵하리라.]

[불빛을 부르는 약속된 언어, ‘루멘’을 부르라.]


···아무래도 이 세계의 공용어만 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 모양이다.

그럼 설마 다른 언어도?


“아직인가요? 이제 슬슬 아는 걸 말해줬으면 좋겠는데요.”

“흥, 부랑아 따위가 알긴 뭘 안다고. 아, 딱 보면 몰라? 어떻게 사기 칠까, 머리 굴리고 있는 거잖아! 하여간 멍청한 것들은 꼭 당해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그러게, 너 같은 놈들은 꼭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더라.

김수호는 한차례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우선 이 검의 이름은 인도자의 검이 맞아요. 주로 상급 병사들이 들고 다녔던 검이죠.”

“하하, 거 보라고! 이놈은 그냥 사기꾼이라니까?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이죽거리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아마 이 검을 아라네아의 요람, 그중에서도 북동부 지역에 있는 수정 동굴에서 발견하셨을 거예요. 물론 미궁 밖에서 얻으신 게 아니라면요. 안 그런가요?”


그러자 덩치 큰 남자와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를 돌아봤다.

그걸 어떻게?


“···맞아요. 하지만 그걸 어떻게···?”

“이유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 검은 오직 그곳에서만 발견되는 유물이거든요.”


그곳에서만 발견된다고? 저 말이 사실일까?

그녀가 생각하기에 유물이 발견된 위치를 짐작만으로 맞히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니 사실이 아닐까? 만약 사실이라면 그 사실을 어떻게 아는 거지? 이 사람은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생각했다.

적어도 헛소리 같지는 않다고, 그러니 더 들어볼 가치는 있는 거 같다고.


“···그 검에 대해 잘 아는가 보군요. 그럼 혹시 무슨 마법이 걸려 있는지도 알고 있나요?”


김수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이죠. 근데 제 입으로 설명하기 보단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 동의하신다면 지금 바로 보여드릴게요. 사람들이 조금 놀랄 순 있겠지만 위험한 마법은 아니니 괜찮-.”

“헛소리!! 다 개소리다아!!”


로브를 입은 남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의자를 넘어뜨리며 벌떡 일어나 김수호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소리쳤다.


“감히 부랑아 따위가 뭘 안다고 떠벌거리는 거냐! 그 방정맞은 혓바닥을 지져 놔야 정신을 차릴 테냐?!”


김수호가 로브를 입은 남자의 소지품들을 물끄러미 살펴보다 입을 열었다.


“마법사 님은 지팡이 취향이 참 독특하시네요. 마법사가 좋아할 만한 물건이 절대 아닌데··· 안 그래요?”


움찔.


“이, 이놈이 자꾸 무슨 헛소릴 지껄이는 거야? 당장 그 입 닥치지 못해?!”

“그건 좀 힘들겠네요. 제 입이 좀 자유분방한 편이라.”

“이 버러지 같은 놈이 감히 내 앞에서 건방을 떨어? 당장 그 혓바닥을 뽑아 분수를 알게 해 주마!”


로브를 입은 남자가 김수호의 목을 움켜쥐려는 것처럼 손을 뻗으며 성큼 다가가자, 여자가 재빨리 그 앞을 가로막으며, 어느새 뽑아 든 단검으로 그의 목을 겨눴다.


“물러나. 허튼짓 하지 말고.”

“···이게 지금 뭐 하자는 거지? 설마 나보다 저 부랑아의 말을 믿는 건 아니겠지?”

“글쎄··· 솔직히 아니라곤 못하겠는데?”

“뭐?! 날 저딴 버러지와 비교하다니, 미친 거냐? 일개 모험가 나부랭이 주제에 감히-.”

“일개···? 나부랭이? 언제부터 하이랜더 앞에 그런 말을 붙일 수 있게 됐지? 이봐, 마법사. 우리가 우습게 보여?”


그녀가 눈을 사납게 치켜뜨며 기운을 끌어올리자, 조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살벌한 기운이 그녀를 중심으로 풍겨져 나와 순식간에 사위를 뒤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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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09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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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황금향의 저주 +1 24.09.06 11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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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유물 감정사=사기꾼(?) +1 24.09.04 123 4 14쪽
3 3화 잡았다, 요놈 24.09.03 129 3 13쪽
» 2화 특전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24.09.02 129 5 13쪽
1 1화 인정이 눈곱만큼 있는 도시 +1 24.09.02 145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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