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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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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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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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DUMMY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이름이 뭐냐?”

“에드워드입니다. 편하게 에디라고 불러 주세요.”

“어떻게 부를 진 내 알아서 하마.”


정말 자기 주장이 뚜렷한 사람이다.


“어쨌건 고맙구나. 덕분에 내 손녀를 살릴 수 있었어. 만약 네가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모른 채 손녀를 죽게 내버려 뒀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일이 잘 풀려서 다행입니다.”

“···원하는 게 있겠지? 말해 보거라. 어지간한 건 다 들어줄 테니.”

“아까 말씀 드린 바와 같아요. 여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옷들을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건 네 능력을 증명해 보였으니 당연히 해 줄 것이고, 지금 내가 묻는 건 내 손녀의 목숨값을 말하는 거다.”

“···살았으니 된 거죠. 뭘 목숨값씩이나···.”

“쯧쯧. 아까는 승냥이처럼 악착같이 받아 내려 하더니, 이제 와서 내숭이라도 부리는 게냐?”

“······.”


딱히 내숭을 부리려던 건 아니다. 단지 사람 목숨값이라고 하니 대가를 요구하기가 거북했을 뿐.

그야 현대 한국 사회에선 위급한 사람이 보이면 대가를 떠올리기 전에 일단 구하고 보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정 떠오르는 게 없다면 내가 정해 주마. 너, 아까 보니 주문이 걸린 옷을 알아보는 거 같던데, 혹시 복합 주문도 볼 줄 아느냐?”


옵션이 여러 개 달린 옷을 말하는 거겠지.


“조금은 볼 줄 압니다.”

“허! 혹시나 했는데, 참말이냐? 어지간한 공부로는 할 수 없는 일이거늘··· 네 스승이 누군지 정말 궁금해지는구나.”


집요한 눈길. 에드워드는 난색을 표하며 말했다.


“···죄송해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없는 걸 어떻게 말하겠어.’


그녀가 대답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눈을 흘기며 말을 이었다.


“여하튼 옷을 볼 줄 안다면 이렇게 하자. 내가 가진 것들을 보여 줄 테니, 거기서 세 가지를 고르거라. 단, 네가 감정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해. 난 자격도 없는 놈한테 귀물을 쥐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어떠냐, 이 정도 제안이면 만족하겠느냐?”


그가 알아보지 못하는 옵션은 거의 없을 테니, 사실상 제한 없는 자유 교환권 3개라고 할 수 있었다.

현대 사회로 치면 명품 교환권 3개인 셈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거 아닐까.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흥, 대답 시원한 거 하난 마음에 드는구나.”


차를 가지고 나오던 보두앵이 그 모습을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거 희한한 일이네. 혹시 어디 아프신 거 아니죠?”

“갑자기 무슨 신소리야?”

“그야 여사님 입에서 마음에 든다는 소리가 나오니 하는 말이죠. 여사님이 어디 보통 인색한 사람이에요? 아마 칭찬에 인색하기로는 상아탑 제일-.”

“이놈이!”


비비안 여사가 폴짝 뛰어올라 손바닥으로 보두앵의 머리를 내리쳤다.


짝!


“악! 왜 하필 거길 때리세요!”

”머리털 나라고 해 주는 지압이다, 이놈아.”

“···듣고 보니 그럴 듯한 거 같기도 하고···?”


비비안 여사가 한심한 놈을 본다는 듯이 혀를 차며 눈을 흘기고는 손녀를 봐야겠다며 안쪽으로 휘적휘적 들어갔다.


“하여간 기운이 넘치신다니까. 자, 여기 차 좀 들어요. 그나저나 여사님이 저렇게 말씀하실 정도면 능력이 정말 뛰어난가 봐요?”

“과찬이십니다. 아는 걸 조금 말씀 드렸는데, 그걸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에이, 여사님 눈에 찰 정돈데 조금일 리가. 아무튼 유물 감정사라고 그랬죠? 나도 감정이 필요한 유물이 몇 갠가 있는데, 나중에 한 번 찾아갈게요. 그래도 되죠?”

“그런 거라면 언제든 환영이죠.”


가볍게 웃으며 그리 대답한 에드워드는 얼른 시선을 내려 애꿎은 찻물만 쳐다봤다.

자꾸만 위로 향하려는 시선을 붙잡아두기 위함이었다.

민머리 정중앙에 찍힌 붉은 손바닥 자국을 보면 웃음을 참을 수 없을 테니까.


‘음, 찻물이 참 맑네. 향도 좋고.’


본의 아니게 웃참 챌린지를 하며 간간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손녀를 보고 나온 비비안 여사가 보두앵에게 물었다.


“언제쯤 깨어날 거 같으냐?”

“아무리 빨라도 오늘 저녁쯤에나 깨어날 겁니다.”

“그럼 잠깐 나갔다 올 테니 그동안 부탁 좀 하마.”

“웬일입니까? 꼭 붙어 계실 줄 알았더니. 어디 가시는데요?”

“은인에게 보답은 해야지 않겠냐.”


비비안 여사가 에드워드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가자. 가서 네 솜씨 좀 보자.”


그러고는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에드워드와 달리아는 허겁지겁 보두앵에게 인사를 한 뒤 서둘러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섰다.


웅성웅성.

복작복작.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향해 가고 있었다.

이때가 활동이 가장 활발한 때인지 한산했던 광장은 어느새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임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네.’


어제는 일자리를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 미처 즐기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저마다 직업적 특색이 뚜렷한 복색, 커다란 무기를 태연하게 메고 다니는 사람들, 수레 대신 끌려다니는 희한한 동물들까지.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적응이 안 되는 건, 인간도 동물도 아닌 종족들이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섞여 물건을 거래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모습이었다.


‘엘프는 그래도 인간이랑 닮아서 금방 적응했는데. 리자드맨이나 드워프는 꼭 동물이랑 대화하는 거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더란 말이지···.’


참고로 이 세상의 드워프들은 수염 달린 늙다리 난쟁이가 아니라 걸어 다니는 햄스터처럼 생겼다.


‘햄스터가 망치질··· 흠, 나중에 꼭 보러 가야지.’


“뭘 그렇게 넋 놓고 보는 게야?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 따라와! 길 잃으면 그냥 두고 가버릴 거니까.”


저도 모르게 주변 전경에 정신이 팔려있던 에드워드는 그녀의 일침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후다닥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까 그들이 떠나왔던 비비안 아틀리에.

비비안 여사는 문 안으로 두 사람을 들이더니, 문을 잠그고 닫음 표시를 걸어둔 뒤 커튼을 쳐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했다.


“이쪽으로 따라오거라.”


그녀가 비밀스럽게 안내한 곳은 가게 모서리에 위치한 옷장 앞이었다.

그녀는 옷장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옷들을 가장자리로 치우더니 품속에서 메달을 꺼내 벽 쪽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옷장의 벽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내 개인 연구실로 가는 길이다. 그리 대단한 비밀은 아니지만, 귀찮아지고 싫진 않으니 함부로 떠들고 다니지 말어.”


대답을 바라는 눈초리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비비안 여사는 계단을 걸어 내려가며 길이 익숙치 않은 두 사람을 위해 마법으로 주먹만한 빛의 구를 띄워 주었다.

그렇게 얌전히 나선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길 잠시.

비비안 여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 저편에서부터 벽을 따라 불꽃이 피어오르며 지하 공간이 환히 모습을 드러냈다.


“와···!”


손가락을 딱-! 하니 불빛이 촥!

역시 마법엔 낭만이 있다.


‘돈이 모이면 마법부터 배운다···!’


무조건이었다.


“거기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봐라.”


어느새 저 앞으로 가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자, 그곳엔 가지런하게 놓인 옷들과 옷의 문양을 모사한 그림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연구한 흔적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게 내가 가진 전부다. 한번 살펴보겠느냐?”

“그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에드워드는 조심스런 손길로 옷을 하나씩 넘기며 살펴봤다.


‘···믿기지가 않네. 이게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있을 만한 물건들이 아닌데.’


게임으로 비유하면, 드랍률이 0.1%도 안되는 희귀한 아이템들이 뭉텅이로 모여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고통 경감 주문이랑 중량화 주문이 걸린 옷이군요. 그리고 이건···.”


에드워드는 비비안 여사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아는 척을 했다.

이래야 나중에 새 옷이 들어왔을 때 그를 찾을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테니까.


‘그나저나 딱 이거다 싶은 게 없네. 좀 아쉬운데···.’


문득 그의 시선이 방 한구석으로 향했다.

옷들을 마구잡이로 구겨 넣은 것처럼 옷감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는 상자들.

뭔가 의미심장해 보인다.

게임이었다면 뒤져보지 않고는 못 배길 스팟처럼.


“저기 있는 상자들은 뭐죠?”

“주문이 손상된 옷들을 따로 모아둔 거다. 의류 상인들이 뭣도 모르고 팔고 있길래 거둬온 것들이지. 함부로 입었다가 저주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저런 걸 파는지 원, 쯧쯧쯧.”

“보통 사람들은 잘 알아보지 못하니까요. 혹시 제가 한 번 살펴봐도 될까요?”

“저걸···? 뭐 마음대로 하거라.”


비비안 여사의 허락을 받은 에드워드는 상자를 가져와 옷들을 살펴봤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대부분의 옷들이 주문을 새긴 부분에 손상을 입어 망가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중에 건질 게 없는 건 아니었다.


‘오, 이거 괜찮은데? 옵션 하나가 날아간 건 좀 아쉽지만···.’


비록 옵션 하나가 날아갔지만, 숙련도 성장 보정 옵션과 피로 회복 옵션이 남아있었다.

앞으로는 생존을 위해 마법이든 검술이든 익혀야 할 텐데, 그때 분명 큰 도움이 될 거다.


“···정말 그걸로 가져가려는 게냐?”

“네. 소매 부분이 조금 찢어지긴 했지만, 스타일도 무난하고 무엇보다 아직 남아있는 주문이 지금 제게 가장 필요한 주문인 거 같아서요.”

“네게 선택권을 주었으니 뭘 가져가든 네 마음이다만, 그런 애매한 물건을 주자니 기분이 썩 내키진 않는구나.”

“전 이 옷도 충분히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정 그렇게 마음이 불편하시다면, 이 옷도 제게 주시겠어요?”


에드워드가 상자 속에서 찾은 밤하늘색 코트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건 주문이 다 망가진 옷 아니냐! 이놈이, 쓰레기만 가져갈 셈이야?!”

“하하, 아니요. 그럴 리가요. 여사님, 이 옷은···.”


에드워드는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주문이 망가진 게 아니에요. 비어있는 겁니다.”

“비어있다니···?”

“주문을 새길 자리만 만들어두고 아직 새겨 넣지 않은 거예요. 달리 말하면, 원하는 주문을 골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소리죠.”


요컨대 옵션 소켓이 비어있는 아이템이라는 소리다.


“그런···!”


비비안 여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맞아! 왜 그런 생각을 못한 거지? 라는 얼굴로 손뼉을 부딪쳤다.


사실 이처럼 소켓이 비어있는 옷은 옵션이 달려있는 옷보다 몇 배는 더 희귀했다.

그런 걸 설마 여기서, 그것도 폐기함 속에서 발견할 줄이야.

확인 안 해 봤으면 정말 크게 후회할 뻔했다.

더구나 놀라운 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잠깐, 네 말대로라면 그 옷은 주문을 ‘네 가지’나 새겨 넣을 수 있다는 말이구나!”


그랬다. 무려 네 개짜리 옷이었다.

게임에서조차 몇 번 본 적이 없는 옵션 네 개.

심지어 네 개가 다 비어있는 걸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단순히 드랍률만 따진다면, 신화급 아이템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몹시 희귀한 물건이었다.


‘게임에서도 못 얻어본 걸 현실에서 보게 되다니 참···. 아무튼 이번에야 말로 그 조합을 시도해 볼 수 있겠네.’


옵션들은 보통 개별적으로 효과를 내지만, 특정 조합을 이루면 추가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경량화, 중량화, 근력 보조 옵션은 각각 무게를 가볍게, 무게를 무겁게, 근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지만, 이 세 가지 옵션을 조합하면 도약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의 머릿속엔 이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옷을 구하지 못해 시도해 볼 수 없었던 조합이 하나 있었다.

완성하기만 한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생존률을 극단적으로 높일 수 있는 조합이.


문제는, 그 누구보다 이 옷의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그녀가 순순히 이 옷을 내어 줄지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눈 딱 감고 입을 다물었다면, 혹은 거짓말을 했다면 손쉽게 가져갈 수 있었겠지만, 에드워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호의를 베푼 상대를 속여서까지 이득을 취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옷에서 눈을 돌린 비비안 여사가 그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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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1 24.09.07 11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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