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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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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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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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검 속에 깃든 것

DUMMY

11화 검 속에 깃든 것





게임을 조금 해 본 사람은 안다.

게임 중에는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주기 위해 튜토리얼에서 고등급 무기를 맛보기로 쥐어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것을.

이 게임에서도 그랬다.

플레이어가 직업군을 선택하고 게임을 시작하면, 튜토리얼 동안에만 사용할 수 있는 전설급 장비를 손에 쥐어 준 뒤 몬스터를 상대로 기초적인 조작법과 전투 요령들을 알려주었다.

그때 본 검이 딱 이것과 비슷하게 생겼었다.

아니, 사실 완전히 똑같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게임에서 본 건 로랑의 검과는 달리 반토막으로 부러져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이 검을 그것과 같은 종류의 유물이라 확신하는 이유는, 등급에 걸맞지 않은 특유의 단조로운 외형과 겉면에 새겨진 기호의 형태 때문이었다.


‘이런 형태의 기호는 전설급 이상의 유물에서만 보이는 형태니까.’


그러니 이게 전설급 유물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에드워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바트레이 씨, 대리 결투를 제안합니다.”


라고.

달리아는 순간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바트레이가 물었다.


“···누구?”

“하이랜더의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감정사죠.”

“감정사···? 마녀야, 이게 무슨 소리냐? 요즘 하이랜더에선 감정사도 받아?”

“···그런 게 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에디,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대리 결투라니!”

“위버멘쉬의 전통에 따르면 결투 당사자가 전투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 당사자의 수준을 상회하지 않는 선에서 대리인을 내세울 수 있어요. 그렇지 않나요, 바트레이 씨?”

“어? 어··· 그렇긴 한데···.”

“내가 지금 그런 걸 묻는 거 같아요?”

“이대로 로랑이 결투에 나가면 열에 아홉은 크게 다칠 겁니다. 아시잖아요.”


달리아가 굳은 표정으로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에디, 위버멘쉬의 훈련생은 어지간한 왕국의 수습 기사보다 더 강해요. 절대로 에디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요!”

“달리아,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잊었어요? 믿는 구석이 있어서 나선 거니 걱정하지 말아요.”


에드워드가 눈동자로 손에 쥔 검을 슬쩍 가리키며 말하자 달리아가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에드워드가 바트레이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제 제안은 받아들여진 건가요?”

“그건 당사자에게 물어봐야지. 토비아스, 어쩔 거냐. 제안을 받아들일 거냐?”


토비아스는 재빨리 탐색의 눈길로 에드워드를 살펴봤다.

자신과 엇비슷해 보이는 나이, 햇빛을 쐬지 않은 것처럼 새하얀 피부, 단련한 티가 느껴지지 않는 호리호리한 몸매, 굳은 살이 박이지 않은 맨질맨질한 손바닥···.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나선 거지?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싶어 유심히 살펴봤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건 없었다.

굳이 꼽자면 로랑 녀석의 검?

하지만 그 검은 더럽게 단단하기만 할 뿐 날도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토비아스는 순식간에 결론을 내렸다.

이 자식 좆밥이라고.


“저, 전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는군. 그럼 시간 끌 거 없이 바로-.”

“잠깐만요! 전 동의한 적이 없습니다!”


로랑이었다.

그가 비틀거리는 몸으로 성급히 다가오려 하자, 에드워드가 먼저 다가가 그의 몸을 부축했다.

로랑이 그런 에드워드의 옷깃을 한 손으로 움켜쥐며 따져 물었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난 대리인 같은 거 내세울 생각 없어요. 내가 직접 증명할 거라고요!”


에드워드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 몸으로요?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 봐요.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니, 버틸 수는 있겠어요?”

“그런 건 해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고요? 그럼 만약 본인이 크게 다치면, 동생 마음이 어떨지는 생각해 봤어요?”


그 말에는 로랑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랑, 보면 알겠지만 저 아이는 이미 한계예요. 이 이상은 상처로 남을 겁니다. 그러니 더 이상 동생을 슬프게 하지 말아요.”


로랑은 천천히 시선을 옮겨 나디야의 품에 안겨 울음을 참고 있는 벨의 모습을 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로랑이 멱살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며 조용한 목소리로 에드워드에게 물었다.


“···결투에 나서면 위험한 건 당신도 마찬가지일 텐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원래 알던 사이도 아니잖아요.”


에드워드는 대답을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 검 때문이라고 해 두죠.”

“······?”

“귀한 물건이 보이면 써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겠어요?”


고개를 든 로랑이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렇게 쳐다봐도 달리 해 줄 말은 없는데. 사실인 걸.


“그리고 아까 말했잖아요. 이 검을 사용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지켜봐요. 실망하지 않을 테니까.”


로랑이 복잡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얌전히 벨의 곁으로 물러났다.


에드워드가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 토비아스 옆에 서자 바트레이가 결투 규칙을 설명했다.


“대결은 어느 한쪽이 항복하거나 무력화될 때까지, 결투의 시작은 이 검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다. 두 사람 다 이해했겠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바트레이가 두 사람을 각각 양쪽으로 물러서게 한 뒤 준비하라 일렀다.

그에 따라 토비아스가 검을 뽑아 자세를 취했고, 에드워드는 검을 뽑아 앞으로 세워 들었다.

그러고는 검면에 새겨진 문구를 살피며 게임에서 경험했던 검의 능력을 떠올렸다.


‘사용자에게 검술 패시브 스킬을 부여하는 효과가 있었지.’


튜토리얼용 전설 무기를 사용하면 각 무기에 해당되는 만렙 패시브가 일정 시간 동안 주어진다.

단지 그것뿐이지만, 캐릭터는 그것만으로 오크 무리를 학살하다시피 때려잡을 수 있게 된다.

게임에서야 별거 아닌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효과인 거다.

그처럼 단련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 단지 검을 손에 쥔 것만으로 오크 무리를 학살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그래서 궁금했다.

현실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또 한가지 기대되는 건 검을 사용하고 난 뒤다.

게임에서는 검이 사라져도 패시브 스킬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만렙이 아니라 1레벨이지만, 중요한 건 스킬이 남는다는 점이다.


‘달리 생각하면 검술을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니까.’


물론 그는 검술보단 마법을 주력으로 익힐 생각이었지만, 호신 수단이 늘어나는 걸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준비!”


그렇게 외친 바트레이가 두 사람의 준비가 끝났음을 확인하고는 그들 사이로 단검을 던졌다.

머리보다 높이 올라간 단검이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눈높이를 지나갈 즈음, 에드워드는 약속의 언어를 작게 속삭였다.


“[레메모라티오]”


묘한 울림을 안고 울려 퍼지는 소리.

그 순간, 에드워드는 자신의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 * *



다시 눈을 뜬 그곳은 더 이상 미궁 도시의 어느 한적한 공터가 아니었다.


쿵! 쿵! 쿵! 쿵···.

뿌우우-.

와아아아아-!!


지평선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인간들과 몬스터들이 서로 피 튀기며 싸우고 있는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이게 대체···?’


당황도 잠시, 에드워드는 재빨리 안전한 곳을 찾아 움직이려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목소리도 안 나와···!’


심지어 눈도 깜빡일 수 없었다.


몸의 자유를 빼앗겼다는 사실에 공포가 스멀스멀 차오르기 시작하던 그때.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전방을 향해 고함을 내질렀다.


[“물러서지 마라! 전진! 오직 전진만이 살길이다-!”]


그 목소리는 전장의 북소리를 한순간 묻어버릴 만큼 우렁찼고, 진중하면서도 걸걸했다.

제 목에서 그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정도다.


‘대체···?’


의문을 풀 새도 없이 몸이 제멋대로 전방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속도가 예사롭지 않았다.


‘흐억···!’


한 발을 뗀 순간 영상을 건너뛰듯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어느새 휘두른 검이 몬스터의 몸을 양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또 한 발을 떼면, 마찬가지로 풍경이 바뀌면서 다른 몬스터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야말로 신속.

에드워드는 그 모든 과정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다.

그러나 그 과정이 일어나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던 탓에 그가 인지할 수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게 정신 없이 전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몬스터들을 베어내던 몸이 멈춰선 것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내는,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몬스터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니포텐스!”]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제멋대로 튀어나갔다.

아니, 이쯤 되니 에드워드도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나저나 이니포텐스? 그건 불타는 대지의 보스 몬스터 이름인데···.’


피부 위로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긴 하지만, 그걸 제외한 모든 면이 그가 기억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그저 이름만 같은 몬스터인 걸까?


[“또 너인가? 정말 포기를 모르는 인간이로군. 참으로 미련하고 어리석도다.”]

[“닥쳐, 불쟁이. 이번에야 말로 그 몸을 갈라 장작으로 써 주마!]


남자는 보스 몬스터의 위용이 두렵지도 않은지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날아드는 주먹과 채찍 같은 꼬리를 피하고, 날아드는 불덩이를 쳐내면서 불꽃이 흐르는 몸을 타고 올라가 상처를 입혔다.

그 과정에서 꼬리에 맞아 날아가기도, 불덩이에 맞아 화상을 입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그 모든 고통을 가감 없이 느낄 수밖에 없었다.


‘···!!!”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보스 몬스터의 팔다리를 끊어낸 남자는 마침내 그 몸을 타고 올라가 보스 몬스터의 목을 베어냈다.

그리고 그 순간, 에드워드는 다시 한 번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 * *



푹.


바트레이가 던진 단검이 땅에 꽂히며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움직이고 있는 건 토비아스뿐.

에드워드는 검을 늘어뜨린 채, 심지어 눈을 감은 상태로 가만히 서 있었다.


바트레이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가가려던 순간.


싸악-.


뭔지 알 수 없는 이유로 온몸에 오한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발걸음이 멈춰 섰다.


“······!”


그건 본능이었다.

다가가면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바트레이는 그 사실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자기가 고작 감정사 나부랭이에게 겁을 집어먹었다고?


그러나 그의 본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바트레이는 에드워드가 눈을 뜬 순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작가의말

mstoryhub님 후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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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0화 전설의 검을 가진 아이 +1 24.09.10 92 4 12쪽
9 9화 별잡이 화살 +1 24.09.09 99 5 12쪽
8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10 4 12쪽
7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1 24.09.07 116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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