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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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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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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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멸망한 세상의 검제

DUMMY

12화 멸망한 세상의 검제





오랜 잠에서 깨어난 노인은 가장 먼저 숨을 들이쉬었다.


후우.


평소와 달랐다.

탁하고 피비린내 가득한 공기가 아닌 맑고도 신선한, 그래서 달큰하기까지 한 공기가 느껴졌다.


그래, 숨을 쉰다는 건 본래 이런 것이었지.

이게 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구나.


잠시 그 상쾌함을 만끽하던 노인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감히 그의 휴식을 방해하는 기척이 느껴진 탓이다.


“하압!”


다짜고짜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소년.

실로 건방지고 무엄한 녀석이었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어느 변방 귀족의 자식인 듯한데, 대체 무슨 용기로 자신에게 덤벼든 것일까.


흠, 패다 보면 답이 나오겠지.


노인은 검을 들어 다가오는 검을 감아 부드럽게 옆으로 쳐냈다.


캉!


그러자 소년이 이럴 줄 몰랐다는 듯 대단히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허허, 그럼 그걸 그대로 맞아 줄줄 알았단 말인가?

용기가 있는 놈이 아니라 그냥 멍청한 놈이었구나.


노인은 곧바로 검을 휘둘러 검의 옆면으로 건방진 놈의 뺨따귀를 후려쳤다.


팡!

“크웍-!”


소년, 토비아스가 부러진 이빨을 분수처럼 뱉어내며 휘청거렸다.

노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검을 휘둘러 그의 몸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퍽! 푹! 캉! 퍽! 푹···.


토비아스는 그 와중에 몇 번인가 검을 들어 막아냈지만, 그리 의미 있는 몸부림은 아니었다.


[“실력이 형편 없구나. 의념(意念)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걸 보니 스콰이어(Squire)조차 아닌 듯한데, 대체 무슨 연유로 날 공격한 것이냐?”]

“···자꾸 뭐라는 거야···!”

[“그건··· 설마 욕이더냐? 이런 무엄한 놈이 있나!”]


노인이 노기가 찬 얼굴로 검을 더 빠르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어서 말하거라. 대체 무슨 연유로 날 공격한 것이냐!”]


그러나 토비아스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해 발악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무언가 오해한 노인은 곰곰이 고민을 하다 황당한 결론에 다다르고 말았다.


[“너 이놈, 설마 내 손에 죽으려 했던 것이냐···?”]


사실 노인의 입장에선 황당한 결론이 아니었다.

세상이 멸망을 향해 치닫기 시작한 이후로 비관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을 매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인은 명실상부 세계 제일의 검호.

비루하게 살다 죽을 바엔 차라리 그와 검을 겨루다 죽겠다는 기사들이 당장 군영에만 가도 수두룩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노인이 내린 결론은 결코 비약적인 것이 아니었다.


노인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어린 소년마저 삶을 비관하고 자살하려 하는 것이 꼭 세상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노인은 소년에게 벌을 주는 건 이쯤에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감히 나를 공격한 건 이 정도로 용서해 주마. 정양하며 반성하거라.”]

“···발, 계속 뭐라고 씨불이는···.”


토비아스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의식을 잃었다.


훈계를 마친 노인은 문득 몸이 심히 찌뿌둥한 것을 느꼈다.


‘허허,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몸이 이렇게···.’


노인은 문득 자신의 손을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음표를 띄웠다.

이 허약하고 허여멀건한 손은 대체 누구의 손인고?


노인이 자신이 타인의 몸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맑디맑은 하늘과 무너지지 않은 도시, 아스라이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쳐다보고 있는 젊은이들.


‘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고.

역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문득 바트레이가 긴장한 얼굴로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감정사. 이름이 에드워드라고 그랬나? 맞지?”

[“흠, 저 아이가 내뱉은 말이 욕이 아니었었나 보군. 미안하지만 나는 그 언어를 모른다네. 혹시 대륙 공용어는 할 줄 모르는가?”]

“···빌어먹을. 이봐, 마녀. 활 가지고 왔어?”

“···갑자기 활은 왜 찾아?”

“싸울 준비해. 너네 감정사, 지금 망령에게 잡아먹힌 거 같으니까. 엉뚱한 데로 튀기 전에 여기서 토벌해야 해.”

“무슨 소리야? 갑자기 망령이 왜 튀어나와? 지금 해 떠 있는 거 안 보여?”

“예전에 대장한테 들은 적이 있지. 강한 망령은 대낮에도 돌아다닐 수 있다고. 그리고 방금 말하는 거 들었을 텐데? 너, 그 말 알아들을 수 있었어?”

“···아니.”

“그럼 답은 하나지. 안 그래?”


달리아는 그 추론이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혹시 유물을 사용해서 저 상태가 된 게 아닌가 하고.


“···바트레이, 망령이 아닐지도 몰라. 일단 토벌하지 말고-.”


바트레이가 달리아의 말을 끊으며 으르렁거리는 목소리로 다그쳤다.


“마녀, 정신 차려. 망령에게 잡아먹힌 건 더 이상 사람이 아니야. 네 동료가 아니라고!”


달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만에 하나 정말로 망령에게 잡아먹힌 거라면?

바트레이의 말대로 여기서 토벌해야만 한다.

자칫 이곳에서 놓쳤다간 막대한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말 테니까.

이 도시의 모험가로서, 그리고 하이랜더로서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묵과할 수는 없었다.


“바트레이, 난 여전히 망령이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해. 그러니 제압이 먼저야, 알았어?”

“붉은 마녀답지 않네. 독기가 다 빠졌어.”

“알았냐고!”

“좋아, 일단 제압하는 걸로 하지. 하지만 해가 지기 전까지만이야. 만약 해가 진 뒤에도 그대로면-.”

“···그땐 토벌해야지. 나도 알아.”

“좋아, 그럼··· 해 보자고.”


바트레이가 손에 건틀렛 유물을 장착하며 노인의 앞으로, 달리아가 활을 꺼내 들며 노인의 뒤로 향했다.


[“흠, 꼭 이래야 되겠는가? ···이것 참, 말이 안 통하니 답답하구만.”]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검을 고쳐 들었다.


[“두 사람은 실력이 출중해 뵈니 봐주지 않을 걸세. 각오하고 들어오게나.”]


노인이 검을 들지 않은 손을 들어 들어오라 손짓했다.

바트레이가 두 주먹을 쾅 부딪치며 달리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더니, 순식간에 바닥을 박차며 달려나갔다.

그 순간.


쾅-!


노인의 검과 바트레이의 주먹이 충돌하며 굉음을 일으켰다.



* * *



지금이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대체 이건 언제 끝나는 거지? 이 몸의 주인이 죽어야 끝나는 걸까?

그렇다면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장소가 바뀔 때마다 점점 줄어들어 가던 인간의 군세는 이제 한 줌에 불과했고, 점점 나이를 먹어가던 그의 목소리는 이제 완연한 노인의 것이 되어 있었으니까.


성벽 위에 선 그가 지평선을 가득 메운 몬스터 무리를 찬찬히 살펴보며 나직이 물었다.


[“찾았는가?”]

[“안 보이네요. 후방에 있는 거 같은데요?”]

[“이젠 얼굴도 안 내미는군. 쫄보 새끼.”]

[“폐하께서 목을 작작 베셨어야 말이죠. 아무리 목숨이 여러 개라지만, 그렇게 많이 죽으면 저라도 무서워서 안 나타날 겁니다.”]

[“그래서 내 탓이라는 건가?”]

[“그럴 리가요. 제 탓이죠. 폐하를 말리지 못한 제 탓.”]


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탑은?”]

[“조금 전에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아마 지금쯤···.”]


그 순간 몬스터 무리 저편에서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버섯 구름이 피어 올랐다.

여기서 보이는 어느 산맥보다도 높이 피어오른 버섯 구름.

대폭발의 증거였다.

마탑의 마법사들이 적의 군세와 함께 산화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역시 우리 마탑주님. 마지막 가시는 순간까지 화끈하시네요. 아, 옵니다.”]


대폭발에 밀린 공기가 광풍이 되어 그들을 훑고 지나갔다.


후와앙-!


저 멀리서 온 바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센 바람.

다행히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던 그들은 별 피해 없이 후폭풍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몬스터들은 아니었다.

대열이 온통 뒤엉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였다.


[“가자. 마지막 전투를 하러.”]

[“전군! 출정-!!”]


그와 그의 기사들이 성을 나와 적군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 * *



쾅!


충격에 떠밀린 바트레이가 뒤로 날아갔다.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켜 충격을 해소한 그는 다시 땅을 박차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역시 젊음이 좋긴 좋군. 회복력이 좋아.”]


노인이 미소 지으며 달려드는 바트레이를 투우하듯 흘려보내더니, 검을 뒤로 세 차례 휘둘러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냈다.


챙! 챙! 챙-!


달리아는 이를 미리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그 틈을 노려 노인의 품속을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명백히 제압을 목적으로 뒀기에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실로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허허, 이리 가벼운 움직임이라니. 아가씨는 엘프의 후손이라고 해도 믿겠어.”]


노인은 기껍게 웃으며 달리아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고 쳐내더니, 곧바로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달리아는 공격이 실패했음을 깨닫자마자 뒤로 물러나 그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 순간 교대하듯 바트레이가 노인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쾅-!


바트레이는 그 거대한 몸집이 무색하게도 노인이 한 손으로 휘두른 검에 막히고 말았다.

노인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남은 한 손으로 바트레이를 붙잡더니, 바트레이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날려버렸다.


휘리릭.


바트레이는 날아가던 몸을 공중에서 회전시켜 안정적으로 바닥에 착지했다.


“······.”


바트레이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 여전히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노인을 한 번 쳐다보더니, 이내 달리아를 향해 말했다.


“마녀. 더 이상은 무리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우리가 위험해져.”

“잠깐, 아직 시간이···!”

“아니, 부족해. 솔직히 시간이 더 있어도 제압할 자신이 없다. 전력을 다해도 이기리란 확신이 들지 않아. 그러니 말리지 마라.”


바트레이는 두 주먹을 쿵 부딪쳐 의식을 집중, 주먹에 파쇄의 의념을 담고, 또 담아 세 차례 의념을 중첩했다.

삼중첩. 이 정도면 성벽도 단숨에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이 나온다.

힘이 과도하게 모인 건틀릿 유물이 비명을 질러댔다.

그는 이번엔 다리에 의식을 집중, 신속의 의념을 담았다.

과도한 의념의 사용으로 코피가 흘러내렸다.

바트레이는 코피를 쓱 훔치며 이 일격에 모든 걸 건다는 일념으로 땅을 박찼다.


한편, 그 순간 노인은 자신의 영혼이 몸에서 서서히 빠져나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허허, 여기까진가 보군. 몸뚱이가 이리 허약하지만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을··· 그래도 제법 즐거웠다네. 만약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또 보세나.”]


노인은 매섭게 짓쳐들어오는 바트레이에게 알아듣지 못할 언어로 가볍게 작별 인사를 던지고는 올 때처럼 소리 없이 떠나버렸다.

그러나 바트레이가 이를 알 수 있을 리 만무.

순식간에 에드워드의 앞에 다가선 바트레이가 지체 없이 그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에드워드가 번쩍 눈을 떴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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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멸망한 세상의 검제 +1 24.09.12 82 5 11쪽
11 11화 검 속에 깃든 것 +1 24.09.11 87 5 11쪽
10 10화 전설의 검을 가진 아이 +1 24.09.10 91 4 12쪽
9 9화 별잡이 화살 +1 24.09.09 98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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