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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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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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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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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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별잡이 화살

DUMMY

9화 별잡이 화살





침묵을 보다 못한 보좌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기 싫다면 하지 않아도 되네. 강요하려는 것이 아니니 부담 갖지 말게나.”


그러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거절하면, 그때부턴 그의 감정 실력을 의심 받게 될 테니까.

장사 시작도 하기 전에 재부터 뿌리는 꼴이 되는 거다.


‘···이건 못 먹어도 고를 할 수밖에 없네.’


결론을 내린 에드워드가 나긋이 입을 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안 하려던 것이 아니라, 대가로 뭘 받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는 게 그만···.”

“대가···?”

“···? 그야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유가 어찌 됐든 제게 유물 감정을 맡기시는 거니까요. 아닌가요?”

“···일리가 없지는 않군. 이 유물을 제대로 감정해 낸다면 대가를 지불하는 게 옳겠지. 그래, 얼마를 원하지?”

“돈 보단 미궁에서 나는 재료들로 받았으면 합니다. 데저트웜의 소화액, 블랙 베고니아 꽃잎, 불타는 강의 회색 결정, 가고일의··· 아, 그리고 실험 기구도 좀 빌렸으면 하고요.”


거울 주머니의 정수를 추출하고, 유물 복원제를 시험 삼아 만들어 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다.


“···요구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많은 양을 바라는 게 아닙니다. 한 번 쓸 양이면 충분하죠. 그런 희귀한 유물을 감정하는 대가로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사실 조금 과하게 부른 게 맞았다.

값어치를 따지자면, 아마 달리아에게 받았던 보수보다 더 높을 테니까.


해럴드가 인상을 찌푸리며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한 번 쓸 양이라고는 해도 그 정도면 족히 만 블랑은 넘겠군. 거기에 실험 기구까지 빌리겠다 하지 않았나. 그러면 통상 감정비의 네 배가 넘을 가격인데, 그대는 이게 과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가?”

“가지고 계신 유물이 보통 유물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 능력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여사님께서 보증하셨다시피요.”


그러니 주기 싫으면 말어.

에드워드가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


무심한 얼굴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해럴드가 이내 조곤조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자신이 있다면 나보다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겠지. 알았다. 대가를 약속하지. 그럼 시간은 얼마나··· 아, 참. 그대는 유물을 앉은 자리에서 바로 감정해 낸다지? 내가 실수를 할 뻔했군. 여기 있다. 어서 해 봐라. 무슨 말을 할지 정말 기대가 되는군.”


해럴드가 사냥감을 노리는 맹금처럼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에드워드에게 유물을 건넸다.

조금이라도 헛소리를 했다간 눈빛으로 뚫어버리겠단 기세였다.


‘이걸 받아들이네···.’


하긴 수가 좀 얕긴 했지.

에드워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유물을 받아 들었다.

이렇게 된 이상 뭐라도 알아내는 수밖에.


“그럼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에드워드는 유물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유물은 언뜻 보기엔 찌르기 좋게 만들어진 단검처럼 생겼다.

그러나 무기로 사용하기엔 날 끝이 뭉툭했고, 크기가 손바닥으로 가려질 만큼 작았을 뿐더러, 손에 쥐기엔 손잡이의 길이가 너무 짧았다.


‘역시 모양새가 익숙하기는 한데··· 정작 이런 무기를 사용해 본 적은 없는 거 같단 말이지.’


기억이 날듯 말듯 머릿속을 간지럽혔다.

에드워드는 일단 유물에 새겨진 기호들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땅 위의 별을 쫓는 화살, 이 부분을 별잡이 화살이라 부르리라.]


‘별잡이 화살···? 이런 화살이 있었나?’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었다.


‘그나저나 단검이 아니고 화살이라니, 그럼 이건 화살촉인 건가.’


그렇다면 손잡이 부분이 짧은 것도 이해가 된다. 대에 고정할 수만 있으면 되는 거니까.

그러나 손잡이 부분을 암만 살펴봐도 대를 끼워 넣거나 연결할 수 있을 만한 부분은 따로 보이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겠네.’


에드워드는 일단 유물을 뒤집어 반대편에 새겨진 기호들도 살펴봤다.


[태양빛 아래 숨을 수 없고, 달빛 아래 가릴 수 없으리라.]


문구의 내용만 보면 표적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진 화살, 즉, 추적 화살 같았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본 에드워드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가 아는 추적 화살은 이렇게 거창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니, 애당초 추적 마법 같은 건 화살이 아닌 활에 걸려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사용해 보는 수밖엔 없겠는데.’


에드워드는 유물을 다시 뒤집어 발동어가 적혀 있을 다른 문구를 찾았다.

그러나 새겨진 문구는 그게 끝이었다.


‘왜 약속의 언어가 없지? 그게 없으면 마법을 발동할 수가 없잖아. 설마 만들다 만 유물인 건 아니겠지···?’


혹시 못 본 것이 있나 다시 살펴보던 찰나, 문득 한 단어가 그의 눈을 다시 잡아챘다.


[···살, ‘이 부분’을 별···]


이 부분. 즉, 달리 말하면 다른 부분이 있다는 의미. 이거 하나로만 구성된 유물이 아니라는 소리다.

그럼 다른 부분이 뭘까? 화살대? 아님 활?


‘아!’


그제서야 퍼뜩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그만하면 충분히 살펴본 거 같은데, 이제 그만 고견을 들려주지 않겠나?”

“그전에, 혹시 이것과 짝이 되는 물건이 있지 않습니까? 가령 원판이나 그릇 같이 생긴 거요.”


그 순간, 해럴드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그런 모양의 유물이 같이 발견되기는 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걸 연구해 보셨다니 아실 겁니다. 여기에 새겨진 주문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요.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들다 말았거나, 혹은 일부가 부서져 유실되었거나, 그것도 아님 짝이 되는 유물이 따로 있는 거라고. 하지만 이건 어느 부분을 봐도 흠 잡을 데 없이 마감이 깔끔해요. 만들다 말았거나 부서진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죠. 짝이 되는 유물이 있다는 거.”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 형태까지 짐작할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그 부분은 영업 비밀입니다.”


그 대답에 말문이 막힌 해럴드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아무튼 이걸 제대로 감정하려면 짝이 되는 유물이 필요한데, 혹시 지금 가지고 계신가요?”

“아니, 지금은 연구실에 있다.”

“그럼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건 여기까지겠군요.”

“···주문이 완전하지 않다는 걸 알아봤다는 건, 거기에 새겨진 미궁어를 해석했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할 수 있죠.

“그러면 묻지. 그 단검엔 무슨 내용이 새겨져 있지?”


해럴드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에드워드가 가볍게 대꾸했다.


“일단 이건 단검이 아닙니다. 물론, 알고 계시겠지만요.”

“······.”

“땅 위의 별을 쫓는 별잡이 화살. 태양빛 아래 숨을 수 없고, 달빛 아래 가릴 수 없으리라··· 어떤가요? 해럴드 님께서 해석하신 내용과 일치하나요?”

“···그래. 그대는 진정 미궁어에 능통한 거 같군. 해석하는 속도나 정확성이 믿기지 않을 정도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다. 그대는 그게 뭐 하는 물건이라 생각하지?”


에드워드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목표를 찾아 추적하는 화살··· 그 외 달리 해석할 여지는 없는 거 같네요.”

“역시 그런가···.”

“하지만 아마 표적을 꿰뚫는 화살은 아닐 겁니다.”

“···?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목표를 찾아 추적하기만 할 뿐, 공격하는 무기는 아닐 거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나침반의 지침처럼 말이죠.”


그가 선뜻 기억해 내지 못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무기 같은 장비류가 아니었으니까.

더구나 게임상에선 스토리 진행에 따라 몇 번 접하는 게 다인 퀘스트 아이템에 불과했던 터라 더 떠올리기가 어려웠었다.


다행히 떠올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저 눈빛에 꿰뚫릴 뻔했다.


“!”


그 말을 이해한 해럴드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벌떡 일어섰다.


“그래, 단지 추적만을 위한 거였어···! 관념에 얽매여 그런 간단한 생각도 못하다니···!”


그러더니 갑자기 보좌관을 돌아보며 정중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보좌관님, 사정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갑작스럽지만, 급히 확인해 봐야 할 일이 생겨 이만 돌아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허허, 많이 급한가 보군. 확인은 충분히 했는가?”

“예, 그는 여사님께서 보증하신 대로 뛰어난 감정사가 맞습니다. 정말로 앉은 자리에서 감정을 해 내는군요. 상아탑 소속인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인재를 잘 구하신 듯합니다.”

“하하,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지.”


해럴드가 에드워드에게 유물을 돌려받으며 말했다.


“이름이 뭐지?”

“에드워드입니다. 편하게 에디라고 불러 주세요.”

“해럴드 바클리다. 해럴드라고 부르면 된다. 우선 사과하지. 의심해서 미안하군. 허나 그대도 알 것이야. 보통 감정사는 그대처럼 할 수 없다는 걸. 아무튼 오늘 일에 대한 대가는 이번 주 안으로 준비해 두겠다. 필요할 때 상아탑으로 찾아오도록 해라.”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보좌관님,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원정대 2차 수색에 관련해서 드릴 말씀이···.”


해럴드는 가기 전에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며 보좌관과 함께 방을 나섰다.


“···고생했어요, 에디. 망아지 녀석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지···.”

“그래도 덕분에 검증을 확실하게 끝냈네요. 겸사겸사 보수도 챙겼고요.”


긍정적인 대답에 달리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보다 에디. 보좌관님은 에디가 하이랜더의 일원이 되는 걸 찬성하셨어요.”


벌써?

에드워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결정이 빠르시네요.”

“본래 이런 경우가 드문데, 오늘 에디가 보여 준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으셨나 봐요. 물론 여사님의 추천장도 한몫 했을 거고요.”

“나중에 감사 인사라도 드려야겠네요. 아무튼 그럼 제 결정만 남은 거군요?”

“맞아요. 그래서 결정했나요? 하이랜더에 들어올지 말지?”


에드워드는 결정을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해 본 뒤 대답했다.


“입단할게요. 다른 곳도 아니고 하이랜더인데, 감히 거절할 수가 없네요.”


달리아가 환히 웃으며 입단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정식으로 등록을 하기 위해 다시 로비로 향하자, 아까 마주했던 나디야가 그를 반겨주었다.


“이름이 에디라고요? 반가워요! 난 나디야예요! 하이랜더 길드의 행정을 맡고 있어요. 혹시 의뢰를 하거나 받고 싶을 때, 미궁으로 가기 전에 필요한 보급 문제나···, ···아까 버나드에게 들었는데, 뛰어난 유물 감정사라면서요?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정말 대단해요! 혹시 마법사예요? 아, 아직 마법사는 아니라고요? 그럼···.”


그녀는 하는 일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었다.

달리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디야, 나 배고파. 빨리 좀 해 줘.”

“어? 아직 점심 못 먹었어? 미안, 빨리 끝낼게!”


그래도 나쁜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녀가 에드워드의 이름을 하이랜더의 명단에 정식으로 올리는 사이, 주변을 구경하던 에드워드는 문득 이제 막 대문으로 들어와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발견했다.

여기서 사는 하이랜더의 아이인가? 싶던 그때.

아이가 헐떡이는 숨을 참으며 크게 소리쳤다.


“도와주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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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멸망한 세상의 검제 +1 24.09.12 82 5 11쪽
11 11화 검 속에 깃든 것 +1 24.09.11 87 5 11쪽
10 10화 전설의 검을 가진 아이 +1 24.09.10 92 4 12쪽
» 9화 별잡이 화살 +1 24.09.09 99 5 12쪽
8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10 4 12쪽
7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1 24.09.07 116 5 12쪽
6 6화 황금향의 저주 +1 24.09.06 118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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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유물 감정사=사기꾼(?) +1 24.09.04 124 4 14쪽
3 3화 잡았다, 요놈 24.09.03 130 3 13쪽
2 2화 특전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24.09.02 130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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