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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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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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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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황금 열쇠(1)

DUMMY

14화 황금 열쇠(1)





다시 봐도 그대로였다.

검이 반토막 나 있었다.


“아니, 이게 왜···?”


어지간한 일엔 흠집도 안 나는 전설급 유물이 대체 어쩌다···!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문제다.


에드워드는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걸 느꼈다.

정황상 그가 유물을 사용해서 일어난 일이 맞는 거 같은데, 대체 어떻게, 얼마나 변상을 해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던 것이다.


에드워드가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눈치만 살피던 그때, 문득 로랑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물의 힘은 정말 굉장하더군요. 단지 이걸 사용하는 것만으로 5성급 선배님 두 분을 상대할 수 있게 되다니···. 돌아가실 때까지 이 검에 집착하시던 조부님의 마음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될 거 같습니다.”

“!”


단지 전설급 유물이기만 한 게 아니었다.

조부의 유품이었다···!


‘지금이라도 석고대죄해야 하나? 그런 건가?’


그의 머릿속이 핑그르르 돌며 그래야 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기울어 갈 즈음.

로랑이 정신을 못 차리는 에드워드의 모습을 보고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감정사님께 사과나 보상을 요구하러 온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러 온 겁니다.”

“??”


이게 무슨 소리일까?

진중한 표정을 보면 그냥 하는 말은 아닌 거 같은데.


에드워드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제 조부님은 모험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셨죠. 지금으로 치면 간신히 3성급에 걸칠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그런 조부님께서 한 번은 미궁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미발견 지역에 발을 들이셨다고 합니다.

백골과 검은 진창으로 뒤덮인 평야와 반쯤 무너진 성이 있는···.”


로랑은 그의 조부가 검을 어떻게 얻게 됐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에드워드는 어쩐지 그 목소리에서 뚜렷한 반감과 불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조부님은 이 검에 어떤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확신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진 돈 전부를 감정하는데 쓰셨죠. 빚까지 져 가면서요. 가족들이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으셨어요. 이 검을 사용할 수만 있으면, 다 괜찮아질 거라면서...!”


로랑은 그때를 떠올리는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래서 전 이 검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조부님 유언만 아니었어도 진작에 내다 팔았을 거예요. 그랬는데···.”


로랑이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부님 말씀이 사실이었네요. 그런 대단한 힘이 숨겨져 있었을 줄이야.”

“···조부님 유품이나 다름없을 텐데, 그렇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에드워드의 사과에 로랑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버지께선 이 검을 보실 때마다 조부님의 싫은 면이 떠오르신다며 힘들어 하셨거든요. 이젠 비밀도 밝혀진 데다 부러지기까지 했으니, 오히려 치워버릴 수 있겠다며 후련해 하실 겁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에드워드는 로랑의 표정에서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 이 검의 비밀을 풀어 주신 데 대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네? 아니, 굳이 그럴 것까지는···.”


변상을 해 주진 못할 망정 대가를 받다니.

에드워드가 주는 걸 마다하지 않는 편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거 같았다.


“사실 제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리 대단한 걸 드리진 못합니다. 그래서···.”

“그럼 안-.”

“이 검이라도 드리고 싶습니다.”

“?!”

“예전에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망가진 유물이라도 주문이 적힌 부분만 멀쩡하면 돈이 된다고요. 비록 몇 푼 안 되겠지만, 이거라도 받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 순간 에드워드의 내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유물이 전설급쯤 되면, 아무리 망가졌어도 나름의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치열한 전투는 양심을 마모 시키는 방향으로 결론 지어졌다.


‘그래, 폐기 처분될 바엔 내가 가지는 게 낫지.’


물론 그냥 받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입을 싹 닦기엔 가치가 너무 큰 물건이었으니까.


“···알알았요. 잘 받을게요. 대신 나중에 쓸만한 검을 하나 구해 줄게요. 어쨌든 내가 검을 부러뜨린 건 사실이니까.”


에드워드가 거절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듯 단호하게 말하자, 로랑이 살포시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로랑은 그 뒤로 그의 상태를 물어본 뒤 쉬라고 하고는 방을 떠났다.


그럼 이제 추궁의 시간이다.


[“영감님, 제게 뭐 할 말 없으세요?”]


에드워드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크흠. 그게 말이야···.”]


검제는 이곳에서 처음 눈을 뜬 순간부터 그가 한 일에 대해 사실대로 털어놨다.


[“제 몸으로 그런 무지막지한 힘을 쓰셨다니··· 제 몸이 안 터진 게 다행이네요.”]

[“그러게 평소에 단련을 좀 하지 그랬나.”]

[“지금 제 탓하시는 겁니까?”]

[“크흠. 골격이 좋아 보여 아쉬워서 하는 말이네.”]


에드워드는 그를 흘깃 노려보고는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라도 해야죠. 지금까지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그야 이 세상에 온 지 이제 삼 일째인 걸.


[“오, 그럼 내게 훈련을 받아 보는 건 어떻겠는가? 내가 이래 봬도 훌륭한 기사들을 여럿 키워 낸 사람이네.”]


아무렴 검제라 불리신 분인데 그렇겠지.


[“저야 검제님께 훈련을 받으면 영광이죠. 하지만 그냥 하시는 말씀은 아닐 거 같은데··· 바라시는 게 뭐죠?”]

[“···그곳에 한 번 가 봤으면 하네.”]


그와 그의 기사들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곳.

그가 그곳에 가고 싶어할 거라는 건 에드워드도 이미 짐작하고 있던 바였다.


[“···솔직히 그곳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 확답을 드릴 수가 없어요.”]


미궁의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는 대개 평범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아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거미 몬스터가 판을 치는 동굴 지역, 아라네아의 요람에서 백색 사막으로 가는 방법 중 하나는 요람 중앙부에 있는 싱크홀로 떨어지는 것이며, 불타는 대지에서 혹한의 대지로 가는 방법 중 하나는 용암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에드워드는 미궁에 산재해 있는 대부분의 통로를 알고 있었다.

몸을 보호할 능력만 있다면, 어느 지역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검제와 그의 기사들이 숨을 거둔 곳이 어딘지는 그도 알지 못한다.

그곳은 게임에서도 보지 못한 곳이었으니까.


미궁에서 새로운 통로를 찾는다?

게임에서야 죽어 가면서 찾으면 그만인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벌써 포기할 수는 없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만 해 주게. 그럼 나도 최선을 다할 테니.”]


솔직히 미궁 따윈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야 위험하니까.

그리고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더라도 유물 감정하는 일만 잘하면 먹고 사는 덴 아무 지장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가야 한다.

그가 검제의 기억 속에서 본 것, 그가 게임을 하면서 본 것.

만약 그와 같은 일들이 이곳에서도 벌어진다면 머지않아 이 도시가, 혹은 이 세계가 위험해질 테니까.


이 도시나 세계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다.

그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능동적으로 힘을 키우겠다는 거지.

그러자면 검제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그를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키워 줄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볼게요.”]

[“허허, 대답이 시원해서 좋군. 그럼 계약 성립일세.”]


그렇게 대화를 마친 순간, 보두앵이 쟁반을 들고 안으로 들어섰다.


“···? 방금 누구랑 대화하고 있지 않았어요? 말소리를 들은 거 같은데.”

“···? 아뇨. 여기 저 밖에 없는데 누구랑 대화를 했겠어요.”

“···이상하네. 분명 들은 거 같은데···.”


보두앵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드워드를 일으켜 앉혔다.


“자, 우선 이거 씹어 삼켜요. 그 다음엔 이거 마시고-.”


에드워드는 검푸른색 환약을 받아 입 안에 넣고 씹어 삼켰다. 뭐라 형용할 수 없이 오묘하고 쓴 맛이었다.

그 맛을 조금이라도 헹궈내고 싶은 마음에 옆에 있던 물약을 집어 마셨다.

잘못된 선택이었다.


“!!”


입 안에 남아있던 맛이 증폭되어 그를 더 괴롭게 했다.


“저런, 그렇게 먹으면 많이 쓸 텐데. 보기보다 남자다운 면이 있었네요.”


···왠지 즐기는 거 같은 건 그의 착각일까?

아닌데, 저 입꼬린 착각 아닌 거 같은데?


“이제 졸릴 거예요.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몸이 제법 나아질 테니 푹 쉬어요.”


그의 말대로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는 굳이 저항하지 않고 잠에 빠졌다.

보두앵의 민머리를 찰싹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에드워드는 벨이 보두앵의 천사링을 붙잡고 손바닥으로 그의 머리를 내려치는 꿈을 꿨다.



* * *



그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정오가 훌쩍 지났을 무렵이었다.

달리아 등은 각자 할 일을 위해 돌아간 상태.

몸 상태가 움직일 만큼 나아진 에드워드는 검을 챙겨 병실을 나섰다.


“음?”


병실을 죽 지나 보두앵에게 가던 길.

문득 에드워드는 아는 얼굴를 마주했다.

비비안 여사였다.


“쯧쯧, 명색이 유물 감정사라는 놈이 유물에 홀리고나 다니고··· 몸은?”

“하하··· 약이 효과가 좋네요. 많이 나아졌어요. 손녀분은 깨어났나요?”

“그래, 덕분에 정신을 차렸다. 한 번 보고 갈 테냐? 안 그래도 생명의 은인을 보고 싶다고 하던데.”


은근히 그러길 바라는 눈빛에 에드워드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이쪽이다.”


그녀를 따라 다시 안쪽으로 들어가자 다소 어수선해 보이는 병실이 나왔다.

병실 이곳저곳을 대중없이 꾸미고 있는 부적, 토템, 동상 같은 물건들.

병실을 꾸민 사람의 인테리어 감각을 의심하게 만들 모습이었지만, 사실 저래 봬도 환자의 몸을 회복시키기 위한 마법 도구들이었다.

쉽게 말해 중환자를 위한 병실이라는 소리다.


안으로 들어서자 병실에 있는 유일한 침상에 누워있던 묘령의 여인이 그들을 돌아봤다.


“할머님, 이분은··· 아, 혹시?”

“그래, 이놈이다.”

“아! 이렇게 뵙네요. 전 아만다라고 해요.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마터면 할머님 얼굴도 못 보고 죽을 뻔했어요.”

“에드워드라고 합니다. 에디라고 불러 주세요. 그리고 사실 전 꺼내는 일밖에 안 했습니다. 저보단 달리아랑 보두앵 선생님이 고생하셨죠.”

“후후, 들은 대로 겸손하시네요. 아, 참. 저, 보답을 하고 싶어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 못 들으셨나요? 이미 여사님께서 보답해 주셨는데.”

“···? 그건 할머님이 주신 거죠. 제가 드린 게 아니잖아요?”


‘···내가 이상한 건가?’


“···이미 과분하게 받아서요. 특별히 주지 않으셔도···.”

“거봐라, 참 희한한 놈이지?”

“후후, 그러게요.”

“어차피 못 고를 테니, 적당히 아무거나 쥐어 주거라.”

“네, 할머님. 그럼··· 음, 이게 좋겠다. 아무래도 유물 같은 걸 드리면 부담스러워 하실 거 같으니 이걸 드릴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 길이 정도 되어 보이는 조금 큰 황금 열쇠를 내밀었다.

정교한 문양과 겉면에 박힌 화려한 보석들.

한 눈에 봐도 보통 물건은 아니었다.


‘···이거 그거잖아.’


“할머님이 미궁어가 안 보인다고 유물은 아닌 거 같다고 하셨는데, 혹시 유물인 건 아니죠?”

“네, 그런 유물은··· 아니죠.”


그보다 더한 겁니다.

맙소사 이게 왜 여기 있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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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5화 황금 열쇠(2) 24.09.15 58 6 12쪽
» 14화 황금 열쇠(1) +1 24.09.14 64 6 12쪽
13 13화 최종 보스(?) +1 24.09.13 72 6 12쪽
12 12화 멸망한 세상의 검제 +1 24.09.12 82 5 11쪽
11 11화 검 속에 깃든 것 +1 24.09.11 87 5 11쪽
10 10화 전설의 검을 가진 아이 +1 24.09.10 92 4 12쪽
9 9화 별잡이 화살 +1 24.09.09 99 5 12쪽
8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10 4 12쪽
7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1 24.09.07 116 5 12쪽
6 6화 황금향의 저주 +1 24.09.06 118 4 12쪽
5 5화 거울 주머니 +1 24.09.05 119 4 12쪽
4 4화 유물 감정사=사기꾼(?) +1 24.09.04 124 4 14쪽
3 3화 잡았다, 요놈 24.09.03 130 3 13쪽
2 2화 특전의 성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 24.09.02 130 5 13쪽
1 1화 인정이 눈곱만큼 있는 도시 +1 24.09.02 146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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