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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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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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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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신의에는 신의로

DUMMY

8화 신의에는 신의로





“주문 공백··· 그래, 안 그래도 손상된 형태가 하나같이 일률적이라 의문은 품고 있었다. 혹시 내가 모르는 무언가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야. 그런데 설마 주문을 새겨 넣기 전이었을 줄이야. 그 가능성을 왜 생각해 보지 못했을까···! 하아, 늙은 게지. 늙어서 머리가 굳은 게야.”


비비안 여사가 안경을 벗고 엄지와 검지로 미간을 눌렀다.


“그나저나 그냥 가져갔으면 몰랐을 것을. 그런 걸 구태여 먼저 말하다니 너도 참 미련한 놈이구나. 설마 아직 모험가도 아닌 녀석이 모험가의 격언을 따르는 게냐?”

“······?”


‘모험가의 격언···?’


에드워드는 곧 그게 뭔지 떠올려낼 수 있었다.


[신의에는 신의로, 불의에는 검으로 보답할지어다]


그건 미궁 도시를 처음으로 발굴해낸 모험가가 남긴 말로, 모험가 길드를 표방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걸려있는 문구였다.


비비안 여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건방진 녀석. 가져가거라. 애초에 막을 생각도 없었다. 그게 아무리 귀한 물건인들 내 약속보다 귀하겠느냐?”


그녀는 그거 그냥 너 해, 같은 가벼운 태도로 흔쾌히 옷을 내주었다.


“······!”


사실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알게 모르게 예상을 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 조건도 없이 이렇게 쉽게 넘겨줄 줄은···.

좀처럼 믿기지 않아 에드워드가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자 그녀가 짐짓 소리쳤다.


“그렇게 쳐다볼 것 없다. 어차피 네가 아니었다면 알아보지도 못했을 물건, 나보단 네게 걸맞은 물건인 게지.”

“···감사합니다.”

“감사는. 나야말로 고맙구나. 덕분에 새로운 것을 알게 됐으니. 그나저나 여기에 주문은 어떻게 새겨 넣는 것이냐?”

“아, 그건···.”


에드워드는 그가 아는 대로 성심껏 알려주었다. 그러다 궁금한 점이 보이면 물어보았고, 비비안 여사는 그처럼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그렇게 서로 지식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길 한 시간여.

에드워드는 문득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달리아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봐야 할 거 같습니다.”

“옷은? 아직 한 벌 더 골라야 하지 않느냐.”

“당장 제게 필요한 옷은 없는 거 같아서요.”

“그럼 남은 한 벌은 나중에 와서 가져가거라. 물론 저 옷들이 그대로 있을 거라 기대하진 말고.”

“혹시 옷 대신 다른 걸 받아 가도 될까요?”

“다른 거라니, 뭘 말이냐?”

“거울 주머니의 파편을 좀 가져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파편을···? 아, 주문 재료로 삼으려는 모양이지?”

“네.”

“그런 거라면 그냥 가져가거라. 그 아이도 제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 가져갔다고 하면 이해해 줄 테지. 대신 주문을 새기고 나면 한 번쯤 보여 주러 와야 한다.”

“그거야 어렵지 않죠.”


세 사람은 다시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에드워드는 청결 옵션이 달린 옷을 위아래로 몇 벌 구매해 깔끔하게 갈아입고는, 입고 있던 옷으로 거울 주머니 파편을 주섬주섬 챙겼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비비안 여사가 가방을 하나 휙 던져주며 가져가라 말했다.

에드워드는 가방에 거울 주머니 파편을 모두 챙긴 뒤 그녀에게 다시 찾아오겠다 말하고는 달리아와 함께 가게를 나섰다.


가게에서 멀어지자, 문득 달리아가 입을 열었다.


“여사님이 그렇게 누굴 마음에 들어하시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 그랬던가요···?”

“그럼요. 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셨는 걸요. 그래서 이렇게 추천장도 써 주셨잖아요.“


비비안 여사는 신의에 대한 보답이라며 추천장을 써주었다.

하지만 여사님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했다고?

그런 거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썩 와 닿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아무튼 잘된 일이었다.


“여사님이 추천장을 써 주시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보좌관님이 이걸 보시면 진짜냐고 의심부터 하시겠네요.”


보좌관이면 길드의 이인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렇게 반응할 정도라니.

비비안 여사의 위상이 생각보다 대단한 모양이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고 볼일이군.’


에드워드가 내심 뿌듯해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사이,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랐다.


“다 왔어요. 저기가 하이랜더 길드 본부예요.”


그곳엔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절벽이 있었다.

아니, 그렇게 착각할 만큼 커다란 저택이었다.

이름하여 흰바위 저택.

이름 그대로 흰바위의 속을 파내어 만든 건물이었다.

그러나 투박스러운 느낌은 없었고, 화려하진 않지만 고유의 고아한 멋이 살아 있었다.


“좀 거창하죠? 규모로만 따지면 이 도시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건물이에요.”

“···실제로 보니 정말 장엄하네요.”


화면으로 보던 것과는 느낌의 차원이 달랐다.

이게 진정 인간이 만든 것이 맞을까? 신이 손수 조각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그 자체로 경이롭다 할 수 있었다.


“이 도시에 처음 온 날, 난 이걸 보고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어요. 많이 놀랐었거든요. ‘세상에 이런 건물이 있을 수 있다니, 혹시 여긴 신의 도시가 아닐까? 신님이 나를 보고 화를 내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귀여운 생각이었네요. 어릴 때 이곳으로 왔었나 보죠?”

“맞아요. 어릴 때였죠. 하지만 세상 물정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리진 않았어요. 단지 세상을 잘 몰랐을 뿐이죠. 그때의 난 스승님과 단둘이 숲속에서만 살았었거든요.”


그녀는 그때를 떠올리는지 잠시 먼 곳을 멍하니 쳐다봤다.


“크흠, 이만 들어갈까요? 저렇게 거창해 보여도 사실 내부는 별거 없어요. 따라와요. 안내해 줄게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저택의 내부 또한 쉬이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저마다 독특한 모양새로 조각된 커다란 기둥들과 높다란 천장, 그리고 광활한 로비.

누구라도 이 안에 들어서면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광경이었다.


에드워드가 주변을 감상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때였다.


“달리아!”


문득 사무원 한 명이 달리아를 크게 부르며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디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이야?”

“아침부터 널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

“날? 따로 약속을 잡은 적은 없는데··· 누군데?”

“타일러 교수의 조교!”

“해럴드?”

“응!”


달리아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그 망아지 자식이 왜?”

“몰라, 갑자기 찾아와선 억지를 부리는데, 오 분마다 날 불러내서는 버터 바른 목소리로 ‘아직인가?’,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 줘야 하지?’, ‘내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알고 있나?’ 이러는데, 아주 피곤해 죽겠어! 귀족이라 콱 내쫓아버릴 수도 없고···!”


그녀의 실감 나는 표정 연기 덕분에 에드워드는 해럴드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뭐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노먼을 잡은 경위가 분명치 않다면서 자기가 직접 확인해 봐야겠다잖아! 지들이 못 잡은 걸 잡아다 줬으면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면서 얌전히 돈이나 갖다 바칠 것이지, 확인이 웬 말이람! 아무튼 네가 좀 가 줘. 안 그럼 내가 돌아버릴 거 같아···!”

“알았어, 알았어. 지금 가볼 테니까, 진정해.”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

“이따가 말해 줄게. 그래서 그 사람 지금 어딨다고?”

“세 번째 응접실로 가 봐. 버나드랑 같이 있을 거야.”


고개를 끄덕인 달리아가 에드워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거 같아요. 잠깐만 저기서 기다려 줘요.”

“그냥 같이 가요. 저하고도 상관있는 일인 거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달리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장서 갔다.


벌컥.


응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책을 읽고 있는 금발의 남성과 그 앞에서 불편하게 앉아있는 버나드의 모습이 보였다.

금발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을 흘긋 쳐다보더니 책을 탁 접으며 말했다.


“이제야 왔군. 네가 내 시간을 얼마나 낭비하게 만들었는지 아나?”

“내 알 바야? 됐고, 어서 본론이나 말해.”

“그 천박한 말투는 여전하군. 네 스승님의 기품을 본받을 생각은 없는 거냐? 그분의 기품을 반의 반만 따라가도-.”


달리아가 소파 테이블을 탕! 내려치며 말했다.


“본.론.”

“···우선 노먼을 잡아다 준 것에 감사를 표하지. 안 그래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덕분에 수고를 줄였다. 한데 그 과정이 좀 석연치 않더군. 이 자가 말하길, 마침 우연히 만난 감정사가 너희를 도와줬다고 하던데. 맞나?”

“맞아.”

“그럼 그자가 노먼의 지팡이를 사용해 노먼의 정체를 밝혀냈다는 것도?”

“그래, 그것도.”

“그렇군. 그자는 지금 어디 있지?”


뭔가 낌새가 이상했지만, 코앞에서 모른 척하기도 뭐했던 에드워드는 조용히 손을 들어 올렸다.


“접니다만··· 절 왜 찾으시는지···?”


그러자 해럴드가 뜻밖이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며 그를 돌아보더니, 갑자기 지팡이를 꺼내 그를 겨눴다.

깜짝 놀란 달리아가 재빨리 그 사이로 끼어들었다.


“갑자기 무슨 짓이야!”

“비켜라, 달리아. 저자는 지금 너흴 속이고 있는 거다.”

“개뼈다귀 같은 소리 하지 말고 똑바로 얘기해!”

“···노먼의 지팡이를 보자마자 사용했다지? 유물이란 건 그처럼 조금 살펴본다고 알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저자는 처음부터 노먼의 지팡이가 뭔지 알고 있었던 거야. 아마 꼬리를 자르기 위해 너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걸 거다.”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나 본데, 이 사람은 진짜 감정사야!”

“왜 그렇게 확신하는지 모르겠지만, 정신 차려라, 달리아. 넌 지금 교묘하게 속고 있는 거다.”

“너야말로 정신 차려. 이거 보여? 여사님께서 손수 작성해 주신 거야!”


달리아가 비비안 여사의 추천장을 내밀었다.

그걸 본 해럴드의 눈동자가 아까보다 조금 더 커졌다.


“···믿을 수가 없군. 정말 여사님의 추천장이라고?”

“그래!”

“여사님까지 속이다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한 자로다···!”

“악! 이 고집불통 자식아!”


계속 평행선을 달리던 그들의 실랑이는, 상황을 몰래 살펴보러 왔던 나디야가 다급히 하이랜더의 보좌관을 데려오면서 끝이 났다.


“자네 말은 분명 일리가 있네. 하지만 이렇게 여사님의 추천장이 있지 않나. 이런 말을 해 미안하지만, 솔직히 난 자네보단 상아탑의 원로이신 여사님의 판단을 더 신뢰하네.”

“···죄송합니다. 제가 경솔했군요. 감히 여사님의 판단을 무시하려던 건 아니었습니다.”

“아네. 책잡으려고 한 말이 아니니 마음에 담아두진 말게나. 아무튼 우리의 입장은 분명하네. 이 친구가 이곳에 머무르는 한, 우린 이 친구를 보호할 것이야.”

“하이랜더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상아탑을 대표해서 온 것이니, 부디 제 입장도 조금만 헤아려 주시지요.”

“어떻게 말인가?”


해럴드가 품속에서 통짜 금속으로 만들어진 단검을 꺼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요즘 연구하고 있는 유물입니다. 이걸로 확인을 좀 해 봤으면 합니다.”

“감정을 맡겨보겠다는 말이군. 어떻게 하겠나? 선택은 자네 몫이라네.”


두 사람이 에드워드를 지그시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선뜻 입을 열 수 없었다.


‘···저런 아이템도 있었나···?’


해럴드가 들고 있는 단검이 뭔지 선뜻 떠오르질 않았던 것이다.

발견 지역은 물론 이름이 무엇이었는지조차도.


그의 침묵이 길어지자, 두 사람의 눈빛에 점차 의혹이 깃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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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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