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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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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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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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거울 주머니

DUMMY

5화 거울 주머니





가게 내부에는 다양한 옷들이 단정하게 걸려있었다.

하지만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걸어 놓은 것처럼 색이나 형태가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아 다소 어수선해 보였다.

에드워드는 그 이유를 금세 알아차렸다.


‘···옵션 별로 모아 둔 거야. 그럼 이게 전부···?’


비록 게임에서처럼 설명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무수히 많은 아이템을 접해 본 그는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범한 옷들이 아니라는 걸.


“어디 보자, 어떤 옷이 괜찮으려나···.”


비비안 여사가 옷을 고르는 동안 에드워드도 가까이 다가가 옷들을 살펴봤다.


‘보온, 청결, 경량화··· 저쪽은 편의성 위주··· 항온성, 경질화, 충격 흡수··· 이쪽은 방어 보조 위주로 모아 둔 거야. 대체 이 많은 옷을 어디서 구한 거지···?’


“이게 좋겠네. 어이, 떠버리 양반! 헛구경 그만하고 이리 좀 와 봐.”


에드워드가 비비안 여사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심드렁한 얼굴로 옷을 내밀었다.


“자, 자네한테 딱 맞는 옷이니 살 거면 사고 아님 말어.”


새 옷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관리를 잘 했는지 옷은 전체적으로 상태가 좋아 보였다.

옷의 효과도 나쁘지 않았다.

피로 회복을 도와주는 옵션이 달려 있으니, 작든 크든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다만,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디자인이, 정말 말도 못하게 촌스럽다는 점이었다.

이걸 입고 지나가면 누구든 고개를 돌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말이다.


‘옵션이 같은 옷들이 저렇게 많은데, 굳이 이걸···?’


아무래도 유물 감정사라는 점 때문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모양이다.


“여사님, 그런 옷은 좀···.”

“아, 왜? 사기 싫음 말어. 난 강요 같은 거 안 해.”


달리아가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비비안 여사가 팔짱을 끼며 어떡할 거냐는 듯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에드워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옵션 두 개짜리 옷은 레어급에 비할 만큼 드물고, 세 개짜리 옷은 유니크급에 비할 만큼 희귀하다.

하지만 하나짜리 옷은 굳이 이곳이 아니더라도 구할 수 있는 곳이 많았다.

당장 중앙 구역에만 가더라도 서너 군데는 찾아볼 수 있을 거다.


그래, 거기까지라면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이 바로 문을 박차고 나가면 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런 가게는··· 게임에서도 본 적이 없어.’


옵션이 하나 달린 옷은, 소위 말하는 매직 아이템이다.

평범한 옷들 사이에 어쩌다 한두 개씩 섞여있는 것이면 모를까, 이곳처럼 쌓아두고 파는 가게는, 단언컨대 도시 전체를 뒤져도 이곳 말고는 없을 거다.

달리 말해 옷에 한해서는 이곳이 최고의 가게라는 소리다.


이런 대단한 가게에 옵션 두 개, 세 개짜리 옷이 과연 없을까?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닐까? 주인장의 안목이 이리 뛰어난데?

분명 어딘가에 꽁꽁 숨겨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에드워드는 빠르게 결론지었다.

이 사람에겐 가능한 호의를 사야 한다고 말이다.


‘일단 오해부터 바로잡아 볼까.’


에드워드가 입가에 미소를 장착하고 입을 열었다.


“색이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좋은 옷이네요. 아마 쉽게 지치는 사람들에겐 이보다 좋은 옷도 없겠죠. 근데 보시다시피 전 체력이 넘칠 나이라, 제게 필요할 거 같진 않습니다. 혹시 다른 옷을 추천해 주실 수는 없으신가요?”


비비안 여사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호오, 그렇게 생각한다면 어디 직접 한 번 골라보지 그러냐.”


달리아가 다급한 표정으로 고개를 휙휙 내저었다.

에드워드가 그녀를 향해 빙긋 웃어 보이고는 비비안 여사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아, 그래도 될까요? 안 그래도 몇 가지 봐 둔 옷이 있습니다. 우선··· 이 옷이 마음에 드네요. 단정하고 ‘청결’한 옷차림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호감과 신뢰감을 주는 법이니까요. 아니면 이 옷도 괜찮을 거 같습니다. 튀지 않는 점잖은 디자인에 ‘무게’가 더해졌으니, 제 말에도 조금이나마 무게가 실리지 않을까요? 한편으로는 제 몸에 ‘딱 맞는’ 이런 옷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옷이 크거나 작으면 사람이 없어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역시 ‘하나’만으로는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다른 옷은 없으신가요?”


비비안 여사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이것 봐라? 라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 그저 그런 어중이떠중이가 아니구나. 어디서 왔느냐? 누구를 사사했지?”

“죄송하지만,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제가 아직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닐만한 수준이 아니라서요.”

“이 건방진 놈이! 떠버리라고 한 번 불렀다고 대갚음하는 게야?”

“사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농담입니다. 설마 그런 이유 때문이겠습니까? 그저 제 능력이 부족할 따름이죠.”


비비안 여사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달리아를 쳐다봤다.


“···달리아야, 어디서 이런 놈을 데려왔어?”

“하하··· 그게, 어제 우연히 만난 사람인데, 곤경에 처한 절 도와줬어요. 감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된 거고요.”

“한마디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말이구나.”


비비안 여사가 다시 에드워드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유물 감정사라고? 아까도 말했지만 난 유물 감정사라고 말하고 다니는 놈들을 믿지 않는다. 내가 본 놈들은 죄다 사기꾼 아니면 허풍쟁이였으니까. 한데 넌··· 적어도 그냥 사기꾼은 아니야. 입만 산 어중이가 이 옷들의 진가를 알아볼 리가 없지. 내가 볼 때 넌 둘 중 하나구나. 정말로 유물을 감정할 줄 아는 것이거나 아님 감히 배운 지식을 이용해 사기를 치고 다니는 놈이거나. 어느 쪽이냐? 대답해 보거라!”


비비안 여사가 서슬 퍼런 눈빛으로 쏘아보며 다그쳤다.

에드워드는 거리낄 게 없다는 듯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마주 보며 대답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쌓아온 지식을 근거로 감정을 하는 것뿐입니다. 그게 여사님 눈에는 어떻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요.”

“그 말은 제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이렸다? 그럼 내가 가볍게 시험을 해 봐도 되겠구나. 그렇지?”

“그렇게 노려보시면서 말씀하시니 무섭네요. 하지만 좋습니다. 저도 괜한 오해를 받고 싶진 않으니까요. 대신 조건을 하나만 걸어도 될까요?”

“건방진 놈. 말해 봐라. 들어보고 결정할 테니.”

“제 능력에 대한 검증이 끝나면, 그땐 감추고 계신 걸 보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걸 제게 팔아 주시면 더 좋고요.”

“내가 무얼 감추고 있는 줄 알고?”

“그야 물론 옷이죠. 여기 있는 옷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진귀한 옷이요. 안목이 이 정도로 뛰어나신 분인데, 안 가지고 계실 리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흥,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받거라!”


비비안 여사가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내밀었다.

투명한 입자가 섞인 순백의 돌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고급진 손거울이었다.

다만, 거울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위태위태해 보였다.


“여사님, 그건···!”

“씁, 넌 아무 말 말어. 자, 어디 한번 감정해 보거라. 그 거울의 비밀을 일부라도 알아낸다면 네가 사기꾼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 주마. 단, 조금이라도 망가트린다면 그 즉시 책임을 물을 것이야! 그러니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포기하거라. 어찌할 테냐?”


에드워드가 거울의 앞뒤를 쓱 살펴보고는 여유로운 태도로 대답했다.


“진귀한 옷을 볼 기회를 주신다는데 거절할 순 없죠. 해 보겠습니다.”


비비안 여사가 팔짱을 끼며 어디 한 번 해 보라는 듯이 턱짓해 보였다.

달리아가 초조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에드워드는 시선을 내려 거울을 찬찬히 살펴봤다.


거울의 테두리, 뒷면, 그리고 손잡이까지.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는 모습이 다소 낯설게 느껴졌지만, 역시나 그가 아는 물건이었다.


‘이걸 여기서 보네.’


만약 이걸 미궁에서 발견했다면, 대박! 이라며 소리를 질렀을 텐데.

그림의 떡이라 심히 아쉬웠다.


“이건 거울 주머니라고 불리는 물건입니다. 주머니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종의 아공간 마법이 걸려 있죠.”


게임에선 인벤토리 확장 아이템으로 쓰였다.


“이런 류의 유물은 보통 도시 문명을 이뤘던 곳이라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발견되는데, 지역마다 재질이나 형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발견 지역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거울 주머니는 투명한 입자가 섞인 순백의 돌을 깎아 만들어졌고, 이렇게 뒷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스핑크스를 상징으로 삼고 있죠. 이런 거울 주머니가 발견되는 지역은 한군데 뿐이 없어요. 백색 사막의 지하 유적지. 아마 그곳에서 발견한 유물일 겁니다. 안 그런가요?”


비비안 여사는 어느새 달라진 시선으로 에드워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제법 그럴 듯하구나. 상아탑의 땅굴쟁이들이 들으면 혹할지도 모르겠어. 하지만 아무리 그럴 듯한 말도 근거가 없으면 그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넌 네 말을 증명할 수 있느냐?”

“증명이라면··· 역시 직접 보여드리는 게 가장 확실하겠죠. 다만, 그러자면 제가 이 유물의 마법을 사용하는 걸 동의해 주셔야 합니다.”


비비안 여사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유물은 내게 의미가 깊은 물건이다. 비록 내 입으로 허락을 해 줬다 하더라도, 그게 부서진다면 화를 주체하지 못할 게야. 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런데도 해 보겠느냐?”


‘···이 할머님이 더위를 드셨나···? 내 목숨 걸고 그런 짓을 왜 해?’


에드워드는 무심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고는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비비안 여사의 눈엔 그가 큰 리스크를 안고 감정을 시도해야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기실 그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그냥 하긴 좀 그런데. 이미 오해도 풀린 거 같고.’


더구나 위험 부담이 전혀 없는 건 아닌 데다, 거울 주머니의 보안을 풀려면 다소의 수고가 필요했다.

역시 대가를 받아야겠어.


“그 대답을 드리기 전에 먼저 제가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걸 말씀드려야겠네요.”

“···? 자신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은 게냐?”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만, 일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제 능력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긴 그 물건을 온전히 감정해 낼 수 있다면, 그 말도 일리가 있지. 그래, 무엇을 원하느냐? 단순히 돈을 바라는 거 같지는 않은데, 아까 네가 말한 진귀한 옷이라도 줄까?”

“그보다는 제게 그 옷들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주세요.”


옵션이 달린 옷은 특정 부위가 손상될 경우, 수복 옵션이 달린 게 아닌 이상 온전히 복원하는 게 불가능하다.

장비류 유물과는 다르게 소모품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한 벌 받고 끝내는 것보단 차라리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게 더 이득이었다.


“···당돌한 녀석. 좋다. 그러도록 하마. 그럼 시간을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삼 일? 아니지, 넉넉하게 사 일 주면 되겠느냐?”


그러자 에드워드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여사님, 사실 감정은 이미 끝났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보여드리죠.”


그 말을 들은 비비안 여사의 눈이 더할 나위 없이 휘둥그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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