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궁 도시에서 감정사로 살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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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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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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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황금향의 저주

DUMMY

6화 황금향의 저주





에드워드가 거울면이 위로 올라오게끔 거울을 들며 나직한 목소리로 약속된 언어를 내뱉었다.


“[레세라티오]”


그의 목소리가 묘한 울림을 안고 울려 퍼지자 수면이 물결치듯 거울 표면에 파문이 일었다.

곧이어 은빛 액체가 무중력 상태에 놓인 물처럼 방울방울 위로 치솟아 오르더니, 저마다 어떤 형태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건 유물에서 익히 보아 오던 기호들이었다.

은빛 액체로 이루어진 수백 개의 기호들이 무질서하게 모여 둥근 구체를 이루고 있었다.


“어떻게 그걸 단번에···! 정말로 감정을 끝냈단 말이냐?!”


비비안 여사가 놀람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네, 보시는 것처럼요. 하지만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에요. 보안 마법이 남아있거든요.”

“그게 무슨 마법이죠?”

“유물의 주인이 아닌 사람이 함부로 열어보지 못하도록 하는 마법이에요. 일종의··· 자물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런 게 자물쇠···?”


물론 열쇠 같은 건 없다. 대신 이 구체 안에 세 가지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조형물처럼 올바른 방향에서 봐야만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에드워드는 지구본을 돌리듯 구체를 돌려 첫 번째 문제를 찾아냈다.


‘역시 이것도 읽히네.’


그러나 크게 도움이 되진 않았다. 문제의 내용이 지극히 사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물의 원주인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피앙새가 가장 좋아하는 보석의 이름이 뭔지 어떻게 알겠는가.


사실 내용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정석으로 풀 생각은 없었으니까.


에드워드는 정면으로 똑바르게 보이는 기호들을 찾아 위치를 기억해둔 뒤, 마찬가지로 두 번째, 세 번째 문제가 보이는 방향에서 정면으로 똑바른 기호들을 찾아 위치를 대조해 보고 겹치는 것들을 추려냈다.


그렇게 추려낸 것이, 수백 개의 기호들 중 단 열세 개.

그것들이 세 문제의 답을 구성하는 기호들이었다.

이제 이 기호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답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


물론 이것만 해도 경우의 수가 어마어마한 만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당연하게도 방법은 있었다.


에드워드는 기호들을 하나씩 붙잡고 서로 가까이 대 보며 유심히 반응을 지켜봤다.

기호들끼리 닿았을 때 격렬하게 멀어지려 하면 오답, 떨림이 잦아들면 정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것만 안다면 답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됐다···!’


마침내 세 문제의 정답을 찾아내자, 기호들로 이루어진 구체가 형체를 잃고 다시 거울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그리고 서서히 거울면이 투명해지면서 내부의 모습을 드러냈다.


‘어디 보자. 뭐가 들었나···.’


거울 주머니는 아공간 마법이 걸린 유물인 만큼 귀한 물건임이 틀림없지만, 그가 대박이라고 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양을 자랑하는 금은보화들, 거기에 모양새부터 남다름이 느껴지는 희귀한 유물들까지.

역시 보물 주머니다운 위용이었다.

비록 그에겐 그림의 떡에 불과했지만, 이 광경을 즐기지 않을 수 없는 노릇.

에드워드는 기꺼운 마음으로 내부를 구경했다.

아니, 그러려던 순간이었다.

그의 시야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


그 안에 있어선 안 되는 것이 들어있었다.

에드워드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어 비비안 여사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그녀와 무슨 연관이 있는 듯했기에.


“···여사님, 이걸 좀 보셔야 할 거 같아요.”


뭔가를 예감한 것일까.

긴장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비비안 여사가 천천히 다가와 망설이듯 고개를 기울여 거울 주머니 내부를 들여다봤다.

그러고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몸을 비틀거렸다.


“아만다···!”


화들짝 놀란 달리아가 성큼 다가와 비비안 여사를 부축했다.

그러면서 고개만 살짝 돌려 거울 주머니 내부를 들여다본 그녀는, 이내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숨을 들이켰다.


“세상에···!”


거울 주머니 안에 든 것은 곤히 잠든 것처럼 보이는 묘령의 여인이었다.

툭 건들면 바로 깨어날 것처럼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었지만, 살아 있는 것이 들어가지 못하는 아공간의 특성상 그녀가 살아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달리아는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비비안 여사를 한쪽에 비치된 의자로 데리고 가 앉혔다.


“아만다, 그 아이가 어찌 저곳에···.”


달리아는 그녀의 곁에 앉아 말없이 손을 붙잡고 위로했다.

반면 에드워드는 어설픈 위로를 전하기보단 가만히 있기를 선택했다.

무슨 사정인 줄 알고?

물론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아무튼 남은 이야기는 다음에 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쩌지. 시신을 꺼내긴 해야 할 텐데. 이대로 꺼내면 거울 주머니가 못 버틸 거 같단 말이지···.’


주머니의 입구보다 작은 물체는 넣었다 빼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크기가 큰 물체는 넣었다 빼는 것만으로도 내구도에 손상을 일으킨다.

아마 거울 주머니가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것도 시신을 억지로 집어넣은 결과일 거다.


‘이 문제도 일단 진정이 되면 얘길 해 봐야겠다.’


시신을 꺼낼 땐 꺼내더라도 유품은 건져야 할 테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거울 주머니를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잠깐만, 저거 혹시···.’


에드워드가 문득 얼굴을 거울 주머니에 가까이 대며 안쪽을 뚫어질 듯이 쳐다봤다.

그러길 잠시,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소리쳤다.


“여사님! 이 유물 언제 얻으신 겁니까? 어디서 가지고 온 건지 알고 계십니까?”


느닷없는 외침에 두 사람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에드워드가 재차 소리쳤다.


“빨리요!”

“···열흘 전에, 황금향(黃金鄕)에서 발견했다고 들었다만···.”


황금향(黃金鄕)은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해버린, 미궁의 한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황금향! 그럼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일반 경로로 황금향에서 미궁 도시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십팔 일 정도. 열흘 전에 받았다면 최소 이십팔 일, 어쩌면 그 이상 지났다고 봐야 한다.

역시 시간이 별로 없었다.


“여사님, 지금 바로 꺼내야겠습니다.”

“에디, 지금은···.”

“아니다. 아무래도 무슨 연유가 있는 듯해. 그래, 말해 봐라. 왜 그리 서두르는 것이냐?”

“제 짐작이 맞다면, 아직 안 늦었어요. 이 사람 살릴 수 있을 겁니다.”

“짐작이라니···? 이미 죽은 아이가 어떻게 살아난단 말이냐!”

“황금향에는 ‘닿은 것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는 저주’가 있습니다. 그 저주에 걸려 황금이 된 사람은 생물이 아닌 사물이기 때문에 아공간에도 집어넣을 수가 있어요.”

“하지만 아만다는 황금이 아니었는데···?”

“저주가 거의 다 풀려서 그렇게 보이는 겁니다. 황금향의 저주가 풀리는 건 황금향을 벗어나고서 약 삼십 일 뒤. 아까 열흘 전이라고 하셨죠. 황금향에서 도시까지 오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 곧 저주가 완전히 풀릴 겁니다. 황금향의 저주에 걸린 사람은 저주가 완전히 풀리기 전에 소생술을 써서 살릴 수 있어요. 다시 말해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서둘러야 해요!”


비비안 여사가 팔걸이를 부서질 듯이 움켜쥐며 부릅뜬 눈으로 쳐다봤다.


“···넌 지금까지 허언을 내뱉은 적이 없었지. 알겠다. 한 번 더 믿어보마. 어서 서두르거라!”


에드워드는 지체 없이 거울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여인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파삭, 파사삭!


여인의 몸이 입구와 가까워지자, 거울 주머니의 내구도가 가파르게 떨어지며 아공간이 불안하게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꺼내기 전에 부서지는 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었지만, 상황은 이미 기호지세, 멈출 수 없었다.

에드워드는 도리어 속도를 내어 여인의 몸을 거울 주머니 밖으로 끄집어냈다.

그 순간.


챙강-!


불길한 소리를 내며 거울 주머니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내렸다.

은빛 액체에 감싸여 아공간 밖으로 나오고 있던 여인의 몸은, 아공간이 뭉개지기 직전에야 간신히 빼낼 수 있었다.


털썩.


“아만다···!”


비비안 여사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운데, 에드워드는 서둘러 그녀의 피부부터 살펴봤다.

손톱보다 작은 크기로 점점이 사라져 가는 황금 얼룩들.

그의 짐작이 맞았다.

그녀는 아직 살아날 가망이 있었다.


“에디···?”

“제 짐작이 맞았어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어요. 여사님, 혹시 소생술을 할 줄 아십니까?”


비비안 여사가 황망한 얼굴로 도리질 쳤다.


“내가 할 줄 아는 분을 알아요.”

“어디죠?”

“중앙 구역 서쪽 광장 근처예요.”


뛰어가면 십 분도 안 걸릴 거리였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너무 멀었다.


‘무슨 방법이···.’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재빨리 가게 한쪽으로 뛰어가 옷을 한 벌 꺼내왔다.

서둘러 그 옷으로 여인의 몸을 감싸고 팔 부분을 묶어 고정했다.

저주나 독이 확산되는 속도를 늦춰 주는 동시에 해주나 해독 속도도 느리게 만드는 옵션이 달린 옷.

이거라면 시간을 벌어줄 거다.


“가죠. 이 황금 얼룩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소생술을 받아야 해요.”


달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저 없이 여인을 업고 전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에드워드도 그 뒤를 따라 전속력으로 쫓아갔지만, 금세 뒤쳐지고 말았다.


‘세상에, 저게 사람이 달리는 속도 맞아?’


오토바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비록 순식간에 시야에서 멀어지고 말았지만, 그녀가 요란스럽게 달린 덕에 그 흔적을 따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뒤늦게 서쪽 광장에 도착한 에드워드는 [룩수리아 진료소]라고 적힌 곳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그쪽으로 달려갔다.


“보두앵 선생님, 어떻게 됐어요?”

“후우, 다행히 늦진 않았어. 아마 빠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쯤에는 정신을 차릴 거야.”

“하아, 다행이다···.”

“근데 대체 어떻게 알고 이쪽으로 바로 온 거야? 황금향의 저주는 도시에선 보기 힘든 저주라 웬만한 치료사들도 잘 모르는 건데.”

“그게··· 아, 저 사람이 알려줬어요.”

“음?”


치료사 보두앵은 때마침 안으로 들어서는 에드워드와 눈이 마주쳤다.


“치료는··· 무사히 끝났나 보군요. 다행입니다.”


에드워드는 그제서야 몸을 수그리며 가쁜 숨을 골랐다.


“어··· 이쪽은?”

“유물 감정사인 에드워드예요.”

“유물 감정사···?”


보두앵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한 손을 내밀며 말했다.


“난 보두앵이라고 해요. 듣자 하니 황금향의 저주에 대해 말해 준 사람이 그쪽이라던데, 나이에 비해 식견이 보통이 아니군요?”

“우연히 아는 게 겹쳤을 뿐 생각하시는 것만큼 대단하진 않습니다. 그래도 칭찬은 감사히 받을게요.”


보두앵이 또 한 번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저나 머리 하얗게 센 괴팍한 할멈을 만나지 않았어요? 유물 감정사란 소리만 들어도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양반인데.”

“그건 날 보고 하는 소리냐?!”


비비안 여사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치료소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쿠, 언제 오셨대. 오늘도 정정해 뵈니 제 마음이 다 뿌듯하네요.”

“실없는 소리 말어. 못해도 네 머리털보단 오래 살 테니까.”

“아니, 왜 애꿎은 제 머리털을 가지고 그러세요! 풀 죽게!”

“베이글처럼 가운데만 텅 비어있는 꼴이 뵈기 싫어서 그런다! 차라리 싹 다 밀어 버리라니까.”

“아니, 어찌 그런 참담한 말씀을···! 머리는 남자의 자존심입니다!”

“숭숭한 자존심을 어따 쓰려고? 됐고. 내 새끼 어딨는가. 살아는··· 있는가···?”

“예에, 아주 건강하게 살아있으니 걱정 마십셔.”


비비안 여사는 그제서야 안도하며, 힘 빠진 걸음걸이로 의자에 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기도하듯 부여잡은 양손이 처연하게 부들거렸다.

달리아가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감싸안으며 그녀를 위로했고, 보두앵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차를 내오겠다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잠깐의 시간이 흘러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비비안 여사는 이내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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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1화 검 속에 깃든 것 +1 24.09.11 87 5 11쪽
10 10화 전설의 검을 가진 아이 +1 24.09.10 92 4 12쪽
9 9화 별잡이 화살 +1 24.09.09 98 5 12쪽
8 8화 신의에는 신의로 +1 24.09.08 110 4 12쪽
7 7화 신화급은 아니지만, 그에 비견되는 +1 24.09.07 116 5 12쪽
» 6화 황금향의 저주 +1 24.09.06 117 4 12쪽
5 5화 거울 주머니 +1 24.09.05 119 4 12쪽
4 4화 유물 감정사=사기꾼(?) +1 24.09.04 124 4 14쪽
3 3화 잡았다, 요놈 24.09.03 130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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