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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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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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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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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DUMMY

찌르르 우는 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풀 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작은 울음소리까지.


언제 어디서 블랭커들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만 빼면 여기도 꽤 좋은 곳이다.


예전에도 우연히 폐건물들이 가득한 동네를 거닐었던 적이 있었는데, 스산한 분위기가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묘한 느낌도 들었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그렇다.


이끼와 넝쿨들로 뒤덮인 빌딩들과 녹슨 철조물들.


원래라면 밤에도 불이 들어와 있고 이따금씩 배달을 하러 가는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곤 했겠지.


공사가 덜 된 것 같은 작은 집에 앉아 괜히 혼자 추억에 잠기기는 했지만, 이제 더 이상 그곳은 없다.


이런 상황이면 누군가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그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럴 이유는 없지.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향막대나 악마의 눈도 살아남으라고 준 거 아니겠어.


“우으···”


상념에 빠져있었는데 동하가 잠을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귀여운 그 나이대 애같긴 한데, 윗집에 살았을 때는 왜 그리 밉기만 했는지.


“깼어?”

“나, 쉬.”

“···그냥 아무 데서나 해. 저기 가서.”

“우응.”


동하는 눈을 비비며 앞으로 몇 걸음 걸었다.


어두운 만큼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지켜보기는 해야겠다. 힘이 아무리 세도 불시에 습격하는 걸 막지는 못할 테니까.


지이익.


“환.”


앉은 자리에서 향막대를 바닥에 주욱 그었다.


깊은 향과 함께 연기가 옅게 퍼졌다.

이걸 들이마시면 동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볼일을 마친 동하가 바지를 추켜올리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데,


“죠!”

“왜.”


어딘가 다급한 표정이었다.


“쩌기 누가 오고 있어!”

“뭐?”


미리 챙겨두었던 라이터로 켰던 작은 모닥불을 서둘러 밟아 껐다.


동하를 일단 집에 들이고 문을 단단히 잠갔다.

품에 동하를 안고 숨을 죽인 채 얼굴만 살짝 내밀어 밖을 살폈다.


주변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들뿐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들의 흰 옷자락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은 또렷이 보였다.


“그 새끼들, 같은 지하인이라고 아주 안간힘을 쓰면서 말 안 하더라. 꼴에.”

“그러게. 어디 숨겼는지 말만 하면 된다니까 그걸 말을 안 하냐.”


남자 둘이 우리가 있는 건물을 스쳐 지나며 킥킥거렸다.


“세인 님을 건드렸으니 뒤져도 싸지.”

“아니, 그놈들 중에 어린 여자애 있었잖아.”

“엉.”

“걔가 뭐 자기가 아픈 것도 치료해 주는 능력이 있다면서 물약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헛소릴 지껄이더라.”

“뭐? 병신같은 애네. 그딴 능력은 우리 사원에 널렸는데, 뭐 별거라고.”

“그니까. 근데 그 진통 물약은 어디서 났대? 지하인 주제에.’

“모르지. 쥐새끼처럼 어디서 훔쳐 왔을지.”

“걔가 하는 말이, 지가 우릴 따라가서 도와줄 테니까 지네 지하인놈들을 살려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양식용으로 살려두고 있던 건 줄도 모르고 말야. 참, 불쌍해. 그치?”

“진심이야?”

“아니? 진심이겠냐? 킥킥!”


시끄럽게 떠들며 대화를 하는 남자들.

그들이 말하는 여자애는 분명 소빈을 가리키는 듯했다.


세인을 건드린 날 찾으러 역까지 갔단 말인가.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무슨 짓이라도 한 모양이다.


문득 길거리에서 아무 전조도, 이유도 없이 당했던 폭행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사건이 지금의 내 병신같은 쫄보 성격을 만드는 데에 제대로 일조했다.

불의를 보고도 참고 모든 일에 무감각하게 대했었다.


게이트를 넘어오기 전의 나라면 역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해서 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기도 했다.


이런 세상에서는 저런 것들을 확실히 정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누군가는 또 화를 입게 될 게 뻔하다.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마안.”

“웅?”


머릿속 깊은 곳부터 이마 표면까지 무언가 꿈틀거렸다.

동시에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기이한 감각이 몰려왔다.


“넌 여기 잠깐만 있어.”

“동하도 같이 가!”

“아니, 있어.”


끼익.

향막대를 쥔 채 문을 나섰다.


흰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 둘이 서 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내가 서 있는 것을 먼저 알아챘다.


“어, 뭐야, 넌!”


오른쪽에는 대머리의 남자가 있었고, 단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복장을 보아하니 지하인 놈 같은데.”

“아니, 저게 그 자식이야!”

“뭐···? 설마 세인 님을 그렇게 만든 게 저놈이라고?”

“그래. 제 발로 기어 와주는구나, 네가.”

“잘됐네. 목을 깔끔하게 따서 일렌 님한테 가져다드리자고.”


먼저 수염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두 명 다 머리숱이 없네.”

“얘가 뭐라는 거야, 갑자기?”


수염 남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 자네···머리가···수염도···”


대머리 남자가 수염 남자를 향해 말했다.


“엉? 뭐야, 그 표정은? 설마···”


수염 남자가 자신의 머리에 손을 살포시 올렸다.

그의 손에 느껴지는 감각은 매끄러움 그 자체였다.


“어, 어디 갔어, 내 머리···어디 갔어!!!”


대머리 남자도 놀라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수염까지 없어진 것처럼 보이게 한 건 너무 했나.

숱도 엄청 많으시던데.


수염 남자는 패닉 상태로 보였다.


“역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한 거지.”


향막대를 꽉 쥐었다.


“저 새끼··· 너도 그놈들한테 한 것처럼 머리 가죽을 다 뜯어버려 줄게.”


수염 남자가 이를 갈며 말했다.


“무슨 괴상한 짓을 하는 모양인데, 너도 그 지하인들처럼 끔찍한 고통을 맛보게 해줄 테니까.”


남자가 칼을 스윽 닦으며 말했다.


“설마 전부 다··· 죽인 거야?”

“너같이 더러운 지하인이 세인 님을 그런 꼴로 만들었으니 다른 놈들도 같이 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어? 응?”


잠시나마 광신도들의 사고를 이해해 보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수염 남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럼 난 너에게 지옥을 보는 벌을 받게 해줄게.”

”뭐? 뭔 헛소···”


남자와 나의 눈에 주위에서 맹렬하게 불타고 있는 화염과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귀신들이 나타났다.


“뭐, 뭐, 뭐, 뭐야. 이게 뭐야, 여기 어디야. 뭐 한 거야!”


자신이 있는 곳이 어딘지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앙상한 손을 뻗으며 다가오는 귀신들에게서 도망치기 바빴을 테니까.


수염 남자는 지금 말 그대로 지옥을 보고 있다.

정확히는 내가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이지만.


수염 남자는 원을 크게 그리며 빙빙 돌기 시작했다.

눈은 공포로 가득 찼고 식은땀은 비 오듯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팔을 우스꽝스럽게 벌리고 휘두르며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연기를 하라고 해도 이렇게는 못 할 정도로.


“어, 어이··· 뭐해···”


대머리 남자는 혼자 탈주극을 찍고 있는 수염 남자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정신 차려, 새꺄!!!”


수염 남자는 온몸을 이리저리 부딪치며, 팔과 무릎이 까지고 쓸리면서도 열심히 도망 다니고 있다.


“정신 차리라고!”


대머리 남자가 겨우 수염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잡지 말지. 자기가 귀신한테 잡힌 줄 알 텐데.”

“뭐?!”

“끄아아아아, 살려줘!!”


그 순간, 수염 남자가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대머리 남자는 잡았던 멱살을 놓고 나한테 거칠게 달려오더니 이번엔 내 멱살을 잡았다.


“뭔 짓 한 거냐, 이 개새꺄?!”


순식간에 숨이 거칠어지고 가슴이 뛰었다.

그 무자비한 폭행범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역시 이런 부류는 주먹부터 나가고 보는구나.


뚝, 뚜욱.

무언가 신발에 떨어졌다.


인중에 이물감이 들어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대보았다.

피가 묻어 나왔다.


눈을 그만 쓰라는 경고인가.


“이 새끼···!”


휘익.

퍼억!


“읍!”


대머리 남자가 틈을 타 내지른 주먹에 맞았다.


“으윽···너, 너는 왜···목밖에 없어···?”

“뭐, 이 새꺄?”


대머리 남자는 아마 내 말을 듣고 순간 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결코 겪어보지 못했을 휑한 감각.


“으아아아아아아!”


대머리 남자가 내려다봤을 때 보인 것은, 차가운 나무 바닥뿐이었다.


“으아아아!”


연이은 비명에 귀가 울렸다.


코에서 주루룩 흐른 피 맛이 그대로 느껴졌다.


“욱, 비려···”


점점 어지러워졌다.

입에서 침이 한 바가지는 나온 대머리 남자의 모습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옆에 바위를 짚고 버텼다가, 쿵 소리를 내며 꼴사납게 쓰러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시야도 흐려졌다.


“죠···”


바닥에 볼을 맞댄 내 얼굴 앞으로 동하가 어느새 다가왔다.


“내가 저 아저씨들 혼내줄 수 있었는데···”

“아니, 나 때문이거든··· 그 사람들이 그렇게 된 게. 그러니까···”


“트레버! 다니엘!”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들의 비명을 듣고 달려온 동료 신도들이겠지.


“야, 얼른 도망쳐···”

“싫어. 죠가 엄마 만나게 해준다고 했잖아.”

“가라니까···”

“내가 혼내줄 거야.”


누군가가 눈꺼풀을 억지로 닫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어둠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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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재회 NEW 14시간 전 2 0 11쪽
» 지옥 24.09.18 5 0 9쪽
16 어린 동료가 생겨버렸다 24.09.17 7 0 10쪽
15 낙하 24.09.16 9 0 11쪽
14 N과 혈석 24.09.15 10 0 11쪽
13 괴력의 아이 24.09.14 11 0 11쪽
12 그들을 조종하는 여자 24.09.13 12 0 11쪽
11 방독면을 쓴 사람들 24.09.12 12 0 11쪽
10 소음 제거 24.09.11 13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6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7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20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3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7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35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41 1 12쪽
2 쓰레기 24.09.03 46 2 11쪽
1 망상 24.09.03 7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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