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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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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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6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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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

DUMMY

"일반 존재들이 송과체를 쉽게 각성시키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작용이 따르거든요. N이라는 자는 그걸 편하게 말하기 위해 악마와 계약해서 고통을 대가로 받는다, 그런 식으로 설명한다고 들었어요.”


대체 N이라는 자는 누굴까.


"그 아이도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송과체를 각성시켜 힘을 사용하는 것 같은데, 자칫 그대로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오직 저희만이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어요. 그 아이가 그렇게 되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이젠 애들 가지고 협박질인가.


"크윽..."


그나저나 이젠 한계인 듯 싶다.

당장 환술을 거두지 않으면 무방비로 쓰러져버릴 지도 모른다.


가상의 세계에 오기 직전 동하에게 나머지를 처리해달라고 부탁했었으니까 안전하겠지.


"아쉽군요."

"뭐?"


스으윽.


"어...?"


분명히 동하의 모습을 보이지 않게 했었는데!

눈앞에 꽁꽁 묶여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으아아앙! 쓰레기 형아, 우리 엄마 어디갔어!!!"

"아니..."


콰악!

무슨 일인지 깨달을 틈도 없이 누군가에게 몸이 묶여졌다.

내려다보니 단단한 실 같은 것으로 싸매여졌다.


짜악!


"으윽!"


분명히 세인과 둘만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라티와 동하는 보이지 않게 했었는데, 눈앞에 당당히 서서는 내 뺨을 때리는 라티가 보였다.


"후우..."


라티는 파란 물약 하나를 쭉 들이키고는 병을 한쪽에 거칠게 던져버렸다.


어깨가 실제로 다치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환술로 인해 상처가 남은 것처럼 각인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아파 뒤지는 줄 알았잖아, 미친 새끼야."


나를 노려다보며 말했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려면."


그 뒤로 낮은 목소리의 남자가 슬며시 나왔다.


"가급적 대화는 길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남자는 흰색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모텔에서 빠져나온 걸 이놈들의 신도 동료가 찾아낸 모양이다.


하긴, 이 자식들이 점령해버린 세상인데 도망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더 말이 안되긴 했다.


어차피 몸을 묶은 채로 폭력을 써대는 것에서부터 이들에게 평화적인 걸 기대할 수는 없다.


멸망 전의 세상이었다면 그때처럼 맞고 가만히만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힘이 생겼고, 이미 전부 끝나버린 마당에 계속 움츠러져 있을 필요도 없다.


쓰레기는 태워야 하고 이런 미친놈들에게 당한 것은 무조건 갚아줘야 한다.


송과체에서 나오는 힘이든, 진짜 악마가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지금은 내가 가진 힘이라는 거고, 내 의지대로 쓸 수 있다는 거니까.


확실하게 위협을 가할 걸 알았으니 당장 여기서 쓰러지더라도 힘을 써야한다.


"마안.”


눈 주위의 핏줄이 바짝 곤두섰다.


“이런···”


환술에 걸린 세인의 시야에 끝없이 펼쳐진 황량하고 건조한 땅이 들어왔다.


동료 신도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고, 자신을 호위하던 블랭커들마저 기괴한 얼굴을 한 채로 까맣게 변해버렸다.


주륵.

코피가 흘러내렸고,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말씀드렸지만 지금 그 상태에서는 환술을 사용하지 않으시는 게 좋으실 거예요. 그런 식으로 감정에 휩싸여서 조절에 실패하는 것이 반복되다 보면, 그 끝에는 당신이 만들어 낸 가짜 세계에 갇혀버리게 될 뿐입니다.”


세인이 조그맣게 읊조리는 소리가 흐트러졌다.


아래에서부터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답답한 기침이 쿨럭 나오면서 입 안에 피가 잔뜩 고였다.


“어차피 죽일 거잖아. 딱 봐도 곱게 보내진 않을 거 같은데.”

“그런 짓은 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의 전력이 되는 쪽으로 다른 방법을 써보겠죠.”

“그런 방식으로 얼마나 사람들을 죽인 거지?”

“그런 방식으로 일깨워드린 것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네요.”


더이상 말이 통할 것 같지는 않다.


“세인···님?”


까맣게 변한 블랭커에게 두 손을 뒤로 묶인 라티가 앞으로 천천히 떠밀려나왔다.


세인의 눈치를 살폈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아 보였다.


“뭐하시는 거죠.”

“네 부하한테 나랑 동하를 풀어달라고 해.”

“그럴 순 없다는 거 아시죠?”

“그럼···”


“아아악!”


블랭커가 라티의 손목을 약하게 비틀었다.


“세, 세인 님···”


살면서 남을 협박해 본 적은 없다.

그래서도 안 되기는 하지만, 이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저 애 역시 내 목에 칼을 들이민 똑같은 한패고 이건 어디까지나 환각에 불과하니까.


그래도 괜히 쫄리기는 했는데, 오히려 고통을 호소하는 라티의 모습을 보는 세인의 표정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풀어줘. 그럼 나도 저 애 풀어줄테니까.”


협박을 하는 거면 좀더 강한 어조로 말했어야 했나 싶었다.


“뭘 어떻게 하시려는 거죠.”

“뭐긴 뭐야. 나도 니네가 한 것처럼 하겠다는 거지. 얘가 어떻게 되든 상관 없어?”


세인은 시선을 천천히 돌려 라티를 바라보았다.


여긴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환각 공간이니 다른 능력을 쓰지는 못 할 텐데, 뭘 하려는 거지.


“라티.”

“네···?”

“두려운가요?”

“그, 그게···”

“두렵지 않죠? 전부 오르디 님의 뜻이니까.”

“네, 네에···”


라티가 고개를 떨구고, 세인이 나와 눈을 마주쳤다.


“라티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배워왔어요. 당신이 어떻게 하든 두려워 하지 않을 겁니다. 사실 죽는 걸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요.”

“그게 너희가 가르치는 교리란 거야? 고작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괴상한 소리가.”

“고통이 두려운 것이지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닐테니까요.”

“그럼 가르침이 좀 잘 안 됐나본데? 저 애는 좀 무서워하는 거 같아서 말야.”


손가락을 까딱였다.

블랭커가 라티의 팔을 조금 더 비틀었다.


“아아아악! 세, 세인 님!”


“저렇게 울부짖는데도?”


담담한 척을 한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말뿐인게 아니라 정말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이 여자한테 협박이란 건 의미 없는 짓일지도.

괜히 나만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다.


“넌 뭐, 무서운 게 있긴 해?”

“그다지 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세인의 눈을 마주치며 집중했다.


꿈틀.


"?"


분명 낯선 감각을 느꼈을 것이다.


세인의 눈에서 조그맣고 징그러운 벌레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스스스!

보는 내가 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눈코입에서 벌레들이 쏟아져 나왔다.


"커헉.."


끊임없이 나오는 벌레들 때문에 숨을 쉬기가 힘들어 보였다.


"끄으윽!"

"얌전히 풀어줄거면 고개를 끄덕여. 환술을 멈춰줄 테니까."

"으윽!"


털썩.

세인은 급기야 목을 부여잡은 채로 무릎까지 꿇었다.

엄청 고통스러워 하는 거 같긴 한데 끝까지 고개 한번을 끄덕이지는 않았다.


단순한 고집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이 죽고 나서도 환술 밖에선 내 몸을 묶고 있을 동료 신도들을 믿는 것인가.


일단 벌레 구토는 멈추게 했다.


"으윽..."

"어때, 생각이 좀 바뀐 게 있어?"

"당신은 모르시겠지만."


세인이 호흡을 고르며 대답했다.


"이 정도의 고문은 저에겐 한두번 겪은 일이 아닙니다."

"뭐?"

"게다가 그것이 당신의 환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제가 그걸 자각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셈이죠."


세인의 말을 듣는데 시야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그런 식으로 힘을 남용하는 건 제 살 깎아먹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말 지하인들을 구제하고 싶다면 저희와 함께 해야해요."

"아니, 그럴 일은 없어."


방금 전보다 시야가 더 뿌옇게 흐려졌다.

적어도 대학살을 벌인 이 여자만큼은 데려가야 해.


세인의 눈을 바라보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런 거에도 공포를 느끼지 않을 지 보자고."


쩌적.

높은 하늘에 마치 유리에 생긴 것 같은 균열이 빠르게 퍼졌다.


콰앙!

시끄러운 파열음과 함께 허공의 균열이 깨지며 거대한 기차가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인의 표정을 살폈지만, 역시 미동 하나 없었다.


"죽음이 닥쳐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게 될 겁니다."


당장 머리에 초대형 기차가 떨어지게 생겼는데 표정 변화 하나 없었다.


대체 어떤 정신력을 갖고 있는 거야, 이 여자!


"하지만 살생을 저지른 것에 대한 업보는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을 괴롭혔던 자들이 당신의 손에 죽어나갔던 것처럼요."

"뭐...?"


세인의 그말을 끝으로,


콰아앙!


"세인 님!!!”


떨어진 기차에 몸이 깔렸다.


"으아아악! 이 악마 새꺄!"


라티가 울부짖었다.


"실제로 깔린 것도 아냐."


그녀들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너희가 한 짓을 생각해. 너희 때문에 지하에 숨어살면서 서로 잡아먹는 사람들도."

"닥쳐!"

"으윽..."


내 짧은 신음을 끝으로 환술을 종료했다.

아니, 강제 종료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도저히 쏟아지는 두통 때문에 더 집중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


"세인 님, 세인 님! 정신 차려 보세요!"


흰 방독면을 쓴 남자가 우뚝 서 있는 세인의 몸을 잡고 흔들었다.

하지만 세인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굳어버린 채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세인 님!"


남자가 다급하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며 방독면을 벗었다.

그래도 소용없을 것이다.

이미 세인의 뇌에서는 이미 죽음이 고해졌으니까.


"이 새끼가...! 그 짧은 새에 뭔 짓을 한 거야!"


스윽!

남자가 허리춤에서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러더니 빠르게 나를 향해 달려와서는,


푸우욱!


"윽!"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엄청난 속도로 맞게 된 것이라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내 폭풍같은 고통이 한번에 휘몰아쳤다.


물론 내 추측이다.

아마 라티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싶은 단순한 추측.


"컥...커헉...트, 트레버 님..."

"어, 어?"


트레버라고 불린 남자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히 나를 향해 칼을 깊숙이 찔러넣었는데 여자의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왔으니까.


라티가 가슴에 꽂힌 칼을 두손으로 붙잡았고, 그 손에서 피가 얇게 흘러내렸다.


털썩.

그녀가 주저 앉았고 동시에 나도 쓰러졌다.


"이, 이것도 저 자식이?"


그러게 방독면을 벗지 말았어야지.


지속된 두통이 머릿속을 완전히 잠식해버렸다.

호흡도 멎어가는 느낌.


"쓰레기 형아!"


아, 그래. 저 애가 아직 있었지.

다행히 방금의 소동으로 몸을 묶었던 실이 풀린 모양이다.


"너... 나 지하철역에 좀 데려다 주라...여기서 제일 가까운 데 있지."

"웅, 알아! 근데, 엄마가 없어져버렸어."

"데려다 주면 만나게 해줄게..."

"진짜?! 알겠어!"

"그럼, 조심히 좀 부탁할게."


말을 마치자마자 동하가 작은 손으로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거... 마법사 지팡이니까 꼭 챙겨줘."

"이거? 알았어!"


동하가 내 손에 들린 향막대를 받아들고는 손에 꼭 쥐었다.


그래도 조심히 부탁했으니까 죽이지는 않겠지.

설마 팔이 떨어지도록 끌고 가지는 않을 테니까.

이 애가 괴력을 잘 조절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싶긴 했지만, 감기는 눈을 막지 못하는 나로썬 어쩔 수 없다.


눈은 감겼지만 몸이 질질 끌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걸 끝으로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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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소음 제거 24.09.11 12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6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2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6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34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40 1 12쪽
2 쓰레기 24.09.03 45 2 11쪽
1 망상 24.09.03 6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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