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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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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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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망했어 (1)

DUMMY

자리를 뜨려던 남자의 손과 발이 느닷없이 나타난 검은 밧줄에 단단히 묶였다. 이어 발밑에 갑작스레 쌓인 장작더미에서 화르르 불꽃이 피어올랐다.


“뭐, 뭐야...!”


남자는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팔다리가 단단히 묶인 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돼. 부, 불이! 야! 이것 좀 꺼줘!!”


불길은 순식간에 남자의 하체를 뒤덮었다.


“어, 어?! 끄, 끄아아아악! 도와줘! 살려줘, 아, 씨발, 존나 뜨겁다고!!”


남자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주륵, 코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점점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역시 이 마안이라는 거, 이틀 연속으로 사용할 만한 것은 아닌가 보네.’


환마의 허용치가 어느 정도란 걸까. 두 번? 세 번?


툭, 투둑.

빗소리와 장단을 맞추듯 코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온몸을 적셨다.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피를 전부 쏟아서 이 자리에서 죽어버리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은 느낌.


후회되거나 죄스럽거나 미안한 감정 따위도 들지 않았다.

전부 저 새끼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이다. 그저 받은 걸 되돌려주는 것뿐이니까.


멀찍이 떨어져 버려진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사, 살려주세요! 내, 내가 뭘 했다고 그러는 거야, 씨발!”


불쾌한 냄새가 주변 가득 퍼져나갔다.

불길은 순식간에 남자의 상체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비명이 뒤섞였다.


“허억.”


그러다가 짧은 신음을 끝으로 남자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그 광경을 두 눈에 똑똑히 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의 몸이 걸레짝처럼 축 처져버린 것까지.


그것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시선을 위로 돌렸다. CCTV가 당장 보이는 것만 해도 네 대였다.


어차피 내가 저 남자한테 물리적으로 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누가 보아도 혼자 바보처럼 서서 부들부들 떨다가 몸부림치고, 그러다가 그냥 쓰러져버렸을 뿐이다.

경찰이든 누구든 쫓아온다 한들 어쩔 것인가.


“어?”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누구의 것인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누군가 창문을 열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잠옷을 입은 여자를 단박에 찾았다.


‘핸드폰으로 찍고 있어···’


멋대로 남을 쳐 찍고 있다니.

놀란 것보다는 오히려 화가 났다.

여자가 모습을 숨기기 전에 재빨리 눈을 마주쳤다.


“핸드폰이 바퀴벌레로 보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머, 어머!!!! 뭐야, 씨발!!”


여자는 자기 손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소름 끼치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며 두 손을 휘저었다.

핸드폰이 그대로 땅에 곤두박질쳤다.


다시 눈을 마주치고, 이번에는 여자의 시야에서 날 지웠다. 여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리며 날 찾았지만, 보일 리가 없었다.


“으윽···”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떨어진 핸드폰 쪽으로 걸어갔다. 먼저 전원부터 끄고, 혹시 모르니 주머니에 쑤셔 넣어 챙기고 자리를 빠져나갔다.


어플로 택시를 잡을 정신 따위 없었다.

그 정도로 머리가 쑤셔댔으니까.

다행히 저 멀리서 택시 한 대가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 예약이야···? 아니지? 제발.”


팔을 휘적거리자, 다행히 택시가 멈춰 섰다.


“안녕하세요··· 개산동 은천로30길로 가주세요···”

“네에~”

“으윽···”


기사님이 내 신음에 룸미러로 날 힐끗 쳐다보았다.


“근처 병원으로 좀 갈까요?”

“아니에요. 저, 집에 있는 약 따로 먹으면 돼서. 말씀드린 곳으로 부탁드릴게요.”

“아, 예, 예.”


다행히 더 이상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출발했다.

어금니를 꽉 깨물며 참았다.


‘여기서 기절하는 건 안 돼···’


집에 도착해서도 거의 허리를 굽히다시피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랐다.

주변에서 누가 쳐다보든 신경도 안 쓰였다.


“어, 거기! 302호!”


멀찍이 누가 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윗집 소음 아줌마였다.

무시하고 현관 번호를 눌렀다.


“야! 사람 무시해? 너 땜에 우리 동하가···!”


자동문에 걸리기 전에 먼저 올라갔다.

현관 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오는 걸 보니, 급하게 달려왔지만 문이 닫혀버린 모양이다.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두통약부터 꺼내 세 알을 한꺼번에 먹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로 직행했다.


“쓸 때마다 이렇게 머리 깨질 것 같으면 어쩌라는 건데··· 쓰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중얼거리며 무심코 거울을 봤다.


길가의 사람들이 날 왜 그렇게 쳐다봤나 했더니 아파 보이는 얼굴에서도 그랬겠지만, 또 그놈의 코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안 쳐다볼 수가 있나.


띵동.

쿵, 쿵!


“씨···”


노캔 이어폰을 서둘러 꼈다.

저딴 개념 없는 아줌마 때문에 내가 집에서도 이걸 껴야 한다니.

아픈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초인종 소리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이 정도면 테스트는 통과한 거겠지···”


머리는 아파왔지만 어쩐지 가슴 속은 시원했다.



***



쿵, 쿵!


“우으···”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을 더듬어 시간을 확인했다.


새벽 4시 44분.

가뜩이나 재수 없는 시간.

어김없이 저 망할 소리 때문에 또 이른 시간에 깨버렸다.


쿵! 쿠웅!


“하...”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면 보통은 쥐 죽은 듯이 잠잠해지는 게 정상 아닌가?

하긴, 정상인 사람이면 애초에 저러지 않았겠지.


무슨 무한동력이라도 되는 건지 열심히 소음을 내고 있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알긴 하는 건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끝을 맺고 말겠다.


하지만 또 마안을 쓰다가 아무 데서나 쓰러져버릴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향막대까지 챙겨서 계단을 올라 윗집 문 앞에 섰다.


쿵, 쿵, 쿵.


얼마나 시끄럽게 구는지, 문밖에서도 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초인종을 누르려던 순간,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추고 적막이 흘렀다.


이내 알 수 없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길래, 문에 귀를 천천히 가져다 대보았다.


쿵.. 쿵··· 쿵···.


왠지 점점 문 쪽으로 다가오는 듯한 낮고 무거운 소리가 들렸다.


퍼억!


순간, 손 하나가 튀어나와 왼쪽 뺨을 날카롭게 스쳤다.

문을 뚫고 구멍을 낸 것은 비쩍 마른 손과 뼈마디가 드러난 팔이었다.


몸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손이 내 얼굴을 잡으려는 것처럼 휘적거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도망가기 위해 급히 일어났는데, 중심을 잃고 발을 헛디뎌 엉덩방아를 찧어버리고 말았다.


“으···”


허리춤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일어나 고개를 드는데, 어느새 문이 열려있었다.


열린 문에 보이는 것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새하얀 피부의 장신.

갈비뼈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상당히 마른 몸이었다.


앙상한 두 팔에는 언뜻 보아도 날카로워 보이는 손톱이 징그럽게 붙어있었다. 키가 얼마나 큰 건지 등을 굽힌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목구비 중에 있는 것이라고는 상어처럼 이빨들이 주욱 자리한 입뿐이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놈은 분명 나를 보고 있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모습의 괴물이지만 어딘가 익숙한 느낌.

어릴 때 저런 비슷한 것을 망상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어···”


너무 놀라면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했던가,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버린 것 같았다.


문 사이로 신발장 옆에 쓰러져 입에서 피를 쏟고 있는 윗집 아저씨가 보였다.

저 집에서 유일하게 정상이었던 사람이었지.


“컥··· 커헉···살려···”


아저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께아아아악!”


흰색 괴물은 불쾌한 비명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아저씨의 몸을 가볍게 들어 머리를 겨누고, 미간 사이로 손톱을 집어넣었다.


길고 휘어진 검은 손톱이 이마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불쾌한 소리와 함께 피가 여러 갈래로 튀어 흘렀다.


놈이 미간 사이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빨갛고 작은 구슬이었다.


놈은 그걸 이빨이 죽 늘어선 징그러운 입으로 가져가더니 까드득 소리를 내며 사탕 씹듯이 부수며 먹었다.

그리고 오로지 그것만이 목적이었던 듯, 아저씨의 몸을 쓰레기 던지듯이 한쪽에 휙 던져버렸다.


‘좆됐다.’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그제야 떨리는 몸을 간신히 움직였다.


‘도망가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땅을 짚고 일어나 달려보려고 했는데,


콰악!


왼쪽 다리에 묵직함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놈이 어느새 내 다리를 세게 쥐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살면서 처음으로 죽을힘을 다해 소리 질렀다. 동시에 몸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졌고, 놓쳐버린 막대가 바닥에 투둑, 떨어졌다.


그때, 옆집 문이 스르르 열렸다.


“저, 저기요! 여기!”


그렇게 소리치며 있는 힘을 쥐어짜 괴물의 손을 떼어내려고 했다.


앙상한 이 팔에서 대체 어떻게 이런 힘이 나는 건지, 아무래도 쉽게 떨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고는 저 옆집 사람뿐.


그런데 문을 열고 나온 옆집 사람은···

아니, 옆집 사람이 아니었다.

왜 저기서 내 다리를 잡고 있는 이 흰색 놈이랑 똑같이 생긴 게 나오고 있는 건가.


순식간에 힘이 빠져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다.


생각하기를 포기해 버렸다.

이건 아무리 봐도 빠져나갈 수 없다.

이 흰색 놈들이 다음에 무엇을 할지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옆집에서 나온 것이 천천히 걸어와 내 오른쪽 다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옆으로 찢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아니, 죽는 것도 이렇게 고통스럽게 다리가 찢겨서 죽게 된다고···


그건 싫다.

죽일 거면 고통 없이 깔끔하게 죽이든가, 아파하다가 죽을 바에야 발악이라도 해봐야 한다.


“으, 으아아!”


겨우 터져 나온 목소리로 두 놈의 시선을 끌었다.

놈들의 나를 향해 얼굴을 천천히 돌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나를 붙잡고 있는 놈들의 두 팔이 없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마안!”


움직임이 멈추었다.

눈이 없어 보여서 통할지 불안했는데, 원래 눈이 있어야 할 위치를 보며 집중했더니 다행히 환술이 통하기는 했나 보다.


쿠웅!


몸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여전히 부들부들 떨리기는 했지만, 꾸물거릴 시간은 없었다.


또 어떤 집에서 다른 흰색 놈들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다리를 움직여 도망치기 위해 일어났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눈을 쓰면 몸이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향막대를 바닥에 주욱 그었다.


드으윽.


“화, 환...”


분명히 이렇게 말하면 된다고 했었지.


치이익 소리와 함께 막대의 심지 부분이 약하게 타올랐다. 은은한 향과 연기가 빠른 속도로 주변을 뒤덮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간신히 집중을 한 뒤 계단 방향으로 몸을 틀었는데, 놈들이 등을 굽히며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틈을 비집고 내려가면서 놈들과 몸이 닿긴 했지만 다행히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렇게 겨우 1층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가슴이 급하게 뛰며 호흡이 가빠 쉽사리 진정되지는 않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흰색 놈들이 떼를 지어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속도라면 순식간에 근처까지 와버릴 거야. 남은 힘을 끌어모아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버티며 겨우 큰길까지 뛰어왔다.


“헉, 허억···”


넓은 길로 나오면 도망치기 더 쉽겠지.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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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 이미 망했어 (1) 24.09.04 35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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