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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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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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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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

DUMMY

지금보다 한창 어렸을 때에는 이것저것 망상하는 게 취미였다.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길가에 로봇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뛰어가는 강아지의 등에 날개를 달아보기도 했다.


어디까지나 현실성 하나 없는 환상에 불과하긴 했어도 그것 자체로 즐거웠었다.

그야말로 내 마음대로 그려지는 만화같은 세계였으니까.


그 망상들이 어그러진 건 13살 정도 되었을 무렵, 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이었다.

웬 괴한에게 난데없이 길거리 묻지마 폭행을 당했었다.


눈이 전부 녹을 쯤에는 욱신거렸던 고통 역시 사라졌지만, 코피를 쏟으며 비틀거리고 있던 나를 무심히 지나치는 사람들의 NPC같은 얼굴들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들을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난 그때 깨달았다.

망상은 망상이고 세상은 세상이라는 것을.


매일같이 환각같은 그림을 그리던 내 망상의 붓은 그 괴한에 의해 뚝 부러져 버렸다.

대신 까만 페인트 같은 무력감만 가득 채워졌다.


성인이 되고나서는 어찌어찌 작은 회사에 들어가 일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만, 공허함을 채우기에는 돈이란 것도 그리 많지 않았고.


퇴근 후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하는 일이라곤 그저 느린 노래를 틀어놓고 쿠션을 끌어안은 채로 퍼져있는 것뿐.


TV속 사람들이 불멍이니 물멍이니 떠들고 있다.

그닥 부럽진 않다. 나에게는 천장멍이 있잖아.

탁한 천장만을 바라보며 무념에 빠지곤 했다.


연락할 사람도 없고, 집에 찾아올 사람도 없다. 그렇다고 그게 우울한 적은 없었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이 필요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용히 살 팔자는 또 아니었던 건지.


쿵!


별안간 진동이 울렸다.


이건 소음 덩어리인 윗집은 아니었고, 문 쪽에서 난 것 같았다.

택배가 왔을 때나 들리던 익숙한 소리였다.


“시킨 거 없을 텐데···”


한참 때리던 멍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어플에서 주문 목록을 확인했다.

역시나 주문한 것은 없었다.


조심스레 현관문으로 걸어가 외시경에 눈을 가져갔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문을 살짝 열어봤다.


얼마 열지도 않아 문에 턱 걸린 것은 비닐에 꽁꽁 싸인, 길이가 꽤 되어 보이는 물건.


집앞에 있던 물건인데도 괜히 눈치를 살피다가 주워 들고는 안으로 들어왔다.


혹시 잘못 배송된 건가 싶어 물건을 들어 올려 비닐에 붙은 필름지를 보았는데, 수취인란에는 분명히 ‘이재오’라고 적혀있다.


조금 꺼림칙하긴 했지만, 내 이름 석 자가 틀림없이 적혀 있으니 열어보지 않을 수가 있나.


“나한테 원한 가질만한 사람도 없고. 뭐, 폭탄이라도 들어있겠어.”


겉 포장을 부욱 뜯었다.


안에 들어있던 것은 견고하게 만들어진 듯 보이는, 얇지만 상당히 긴 길이의 나무 막대. 얼추 내 키 정도의 길이였다.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던 와중에 낡은 종이쪽지 하나가 발치에 툭 걸렸다.

적힌 글들을 쓱 훑어보니 무슨 설명서같은 건가.


「아티팩트 : 환마의 환술용 향막대」

「링크 대상자 : 이재오」


「사용법 : 막대의 심지 부분을 바닥에 긁으며 ‘환’ 이라고 외치면 점화됩니다. 이때 원하는 환각을 강력히 집중하면, 심지에서 발생하는 연기와 향을 이용해 환술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환술로 대상에게 환영 및 환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한, 환마와 계약되어 ‘마안’이 해방되었습니다. 」


"계약? 이게 무슨... 누구 맘대로?"


잘못한 게 없어도 괜히 긴장되는 단어, 계약.

일단 마저 읽어내려갔다.


「‘마안(魔眼)’이라고 외치시면, 환마의 눈을 빌려 환술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마안을 남용하실 경우, 신체에 강한 통증이 수반될 수 있으니 가능한 향막대를 사용하시길 권해드립니다. 」


“...”


일단 카메라 어플을 켜서 쪽지를 찍어두었다.

누구 알려줄 사람은 없어도, 어쨌든 평소와 다른 일이니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고는 쪽지와 긴 나무 막대를 한쪽으로 휙 던져버렸다.

안 그래도 오늘 날씨도 꿀꿀해서 평소보다 기분이 영 별로였었단 말이지.


‘누군진 모르겠지만 장난도 참 쓸데없이 정성 들여 했네.’


쪽지를 읽었을 때는 잠깐 흥미가 가긴 했었지만, 터무니없는 내용에 조악하기 그지없는 소품까지 보니 금세 팍 식어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응···? 뭔 냄새야.”


출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어어!”


아무렇게나 던졌던 쪽지가 화르르 타고 있었다.


촤아악!

재빨리 물부터 부었는데 다행히 작은 불이라 넓게 번지는 일은 없었다.


집에서 담배를 핀다든지, 아니면 다른 불이 붙을 만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면 저 쪽지가 혼자서 타버렸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쪽지의 내용이 마냥 장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쪽지는 재도 없이 불타 사라졌지만 갤러리에 찍힌 사진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혹시라도 이 사진마저 사라질까 핸드폰 메모장에 다급하게 쪽지의 내용을 옮겨적었다.


“만약 이게 장난이 아니라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걸 어떻게 실험해봐야 할까, 머릿속이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 찼다.



쿵!

쿠웅!



그것도 잠시였다.


“하···씨, 진짜. 어쩐지 오늘은 조용하다 싶었어.”


짜증 섞인 한숨이 절로 나왔다.


위층에서 코끼리 두 마리의 뜀박질이 들렸다.

코끼리 모자의 둔탁한 발소리.


“이렇게 늦은 시간에··· 뭐 하는 거야, 대체.”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실리콘 귀마개를 찾아 꼈다. 귀마개와 노캔 이어폰은 내 몸의 일부가 된 지 오래였다.


저 진동에서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서는 귓구멍을 틀어막아야 했으니까.


오늘로 8개월째인가.

저 악마 같은 가족이 이사 와서는 내 평온한 일상을 망가뜨렸다.


한두 번 찾아가 조심스레 부탁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나아지는 것 하나 없이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다른 게 아니라 저런 게 악마지.”



***



눈이 퍼뜩 떠졌을 때는,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나도 모르게 잠든 모양이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2시.


‘4시간? 4시간 밖에 못 잤다고...’


두통이 머리에 꽂혔다.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하던 순간,


쿵!


천장에서 몸이 흠칫 반응할 정도로 엄청난 진동이 울렸다.


“와, 씨··· 미쳤나, 진짜···”


안 그래도 퇴근하고 와서 피곤해 죽겠는데 어김없이 신경 거슬리게 한다.

잠든 사람을 깨울 정도라니.


“그냥 누워서 좀 푹 쉬고 싶단 말이야, 좀···”


꽝!


또 한 번의 거대한 진동이 울렸을 때는,

나도 모르게 문을 열고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성큼성큼 올라갔다.


악마 가족의 집, 402호.

대체 이 시간에 뭘 해대는 건지 문밖으로도 남자아이의 비명과 꽝꽝대는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 언제 한번 제대로 말하긴 했어야 됐어. 집 계약 기간도 많이 남았는데 언제까지 천장 무너지는 소리 듣고 마음 졸이면서 살 거야.’


새벽에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잠깐 그렇게도 생각이 들긴 했었다.


그래도 그동안 당한 소음과 앞으로도 있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잡히기는 했다.


"후우..."


띵동, 초인종이 울리자 제일 먼저 들려온 것은,


“누구셔요!”


잠결에 일어난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카랑카랑한 듣기 싫은 목소리.


“저, 302호에요.”


철컥.


쇳소리에 이어 가벼운 도어락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희끗한 단발머리 아주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어, 아랫집 총각. 뭐야, 이 시간에?”

“그, 늦은 시간인데 좀 많이 시끄러워서요. 죄송한데 조금만 주의 좀···”

“아니, 또 그 소리야?”

“···네?”


아줌마가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앞으로 나와 순간 당황했다.


“아무리 말해도 안 듣는다고 내가 몇 번을 말했어, 응? 저 쪼끄만 게 머리 컸다고 저렇게 돌아다니는 거를, 난들 어쩌겠어? 아니, 그렇게 시끄러워서 못 살겠으믄 총각이 들어와서 좀 혼내보든가!”

“···그걸 제가 왜.”

“그거를 그렇게 못 견디겠으믄 말이야, 어디 단독 주택이나 한번 알아봐! 어휴, 증말 지긋지긋해서.”


진짜 개념이라고는.


“한 번만 더 와서 벨 눌러봐, 이번엔 진짜 경찰 부를 줄 알아!”


꽈앙!


문이 부서질 것처럼 층 전체가 울렸다.


“하···”


그래도 한마디 말이라도 했으니까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마음 같아서는 또 초인종을 누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정말 경찰이라도 부르면 어쩌겠냐는 마음에 하는 수 없이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내 멍청하고 안일한 생각이었다.


쿵!

쿠웅!


또다시 윗집에서 들려오는 거센 진동.

곧 천장이 무너진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분명히 아까 언질을 줬건만 아직도 신나게 땅을 꽝꽝 찍어대는 소리가 귀를 찔렀다.


어이없어하는 윗집 아줌마의 표정이 떠올랐다.

아무 잘못 없는 자신에게 왜 뭐라 하느냐는 듯한 뻔뻔한 얼굴.


“으으으···!”


머리를 감싼 채로 고개를 흔들어댔다.


그때, 문득 쪽지에 적혀있던 내용이 떠올랐다.


구석에 두었던 긴 향막대를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리곤 핸드폰 메모장에 적어둔 사용법을 다시 읽었다.


“그러니까 바닥을 긁으면서···”


드으윽.


“환.”


그러자 심지 끝이 타오르며 순식간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은은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갑작스럽게 난 연기에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여기면 확실히 윗집에 전달은 되겠지.”


여전히 향과 연기가 옅게 나오고 있는 심지를 환풍구에 갖다 댔다.


올라 가서 담판을 지으면 될 걸 찌질하게 뭐하는 건지 생각도 잠시 들긴 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자칫 스토킹으로 신고를 당할 수도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 밖에 없지 않나.


“내가 원하는 환각은···”


집중하려는데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


지금 왜 갑자기 생각나는지는 몰라도, 어렸을 때 망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쿠웅! 쿵!

꽈아앙!


갑자기 묵직하고 거대한 진동이 연달아 일어났다.


“어어?! 어머, 뭐야, 지, 지진이야!”


천장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공사 소리 같은 것을 뛰어넘어 마치 이 건물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은 진동.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는데, 벽을 짚어 간신히 버틸 수는 있었다.


“동하야! 얼른 식탁 밑에 숨어, 얼른!”


윗집 아줌마가 괴성을 지르며 말하는 것이 고스란히 들렸다.


진동은 줄어들 기미 따윈 전혀 보이지 않고 갈수록 커져갔다.


이 정도의 지진은 다른 나라 뉴스로 보기만 했지, 이렇게 가깝게 느껴본 건 생전 처음이다.


그것보다 나도 어딘가 밑에 숨어야 하는데!


두려운 탓에 다리가 후들거리기도 했고, 진동도 심해 제대로 일어나 걸을 수가 없었지만 일단 살아야 하니까 겨우 문밖을 나왔다.


파악!


문을 열자마자 날 반긴 건 거칠게 날 밀치며 계단에서 내려오는 윗집 아줌마였다.

오른손에는 그의 어린 아들 동하의 손이 꼭 붙잡혀 있다.


“으아아아앙!”


아줌마는 울고 있는 자기 아들을 안고 뛰어 내려갔다.

아무래도 지진이 멈출 것 같지 않아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모양이다.


그게 더 위험할 수도 있지 않나.

역시 저 더러운 성격 어디 안 가네.


이럴 때가 아니지.

간신히 몸을 일으켜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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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짧은 환상 24.09.10 15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1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5 1 12쪽
2 쓰레기 24.09.03 40 2 11쪽
» 망상 24.09.03 6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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