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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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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9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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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사는 소녀

DUMMY

“헉···헉, 허억···”


하루 중에 운동하는 때라고는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잠깐 걷는 것뿐이었다.


엉망진창인 체력으로 갑자기 뛰니까 숨이 넘어가다시피 헐떡거렸다.


“후우···후···”

“으아악!”


그 여자애다.

어느새 다가와 숨을 고르고 있다.


“언제 왔어, 넌, 또!”


여자애는 내 옆에 다가오더니 주저앉았다.


“아니, 왜 쫓아와.”

“같이··· 허억, 가자니까요.”

“같이 가기 싫으니까 혼자 갔겠지. 그런 생각은 안 들었어?”

“답을 안 하시길래 저는 그냥 따라오라는 줄 알구···”


속이 턱 막혔다.


“아무튼 그놈들이랑 좀 멀어진 거 같으니까, 됐지? 난 가볼게.”


안 그래도 아직 배가 욱신거리는데 짐까지 달고 다닐 순 없다.


“저기···같이···”

“미안한데 나도 아직 여기 적응이 안 되거든. 아무 말도 안 하고 일단 좀 쉬고 싶어.”

“옆에서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을게요!”

“으윽.”


짜증이 몰려와서 그런지 맞았던 부위가 더 쑤시는 것 같다.


뒤로 돌아 옷을 살짝 올려보니 시퍼런 멍이 넓게 퍼져있었다. 몰랐다가 상처를 보면 더 아프다고, 제대로 확인하니까 더 아파진 것 같다.


배를 부여잡고 여자애 옆을 지나쳐 걸었다.


“아까 맞으신 곳, 아프지 않으세요?”

“···”


퍽 소리가 크게 들릴 정도로 맞는 걸 옆에서 봤으면서 뭘 물어보는 건데.


스윽.


“어? 야, 어딜 만져!”


여자애가 갑자기 내 배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을 탁 쳐버렸다.


“진짜 이상한 애네··· 어?”


욱신거리던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고통이 점점 줄어드는 이런 기묘한 느낌은 처음이었다.


“너 뭐야? 혹시 너도 환술?”

“환술이요?”


뒤로 물러섰다.


“뭐 하는 애야, 너. 방금 한 건 또 뭐고.”

“어···”


분명히 방금까지 눈이 하얗게 빛났었다.


“방금 눈 뭐야, 어?”

“아니, 저···으윽.”

“뭐야? 왜 그래, 갑자기.”


여자애가 갑자기 배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야, 이 새꺄! 떨어져!!”


어디선가 귀를 찌르는 불쾌한 소음이 들렸다.

소리가 난 쪽을 돌아봤다.


김 찬?


구토를 꽤 한 모양인지 어쩐지 처음 볼 때보다 더 핼쑥해 보였다.

씩씩거리며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드으윽.


향막대를 땅에 그었다.


“환.”


향과 연기가 퍼졌고,


“소빈이한테 떨어져, 개새꺄!”


쪼그만 놈이 주먹을 날아왔다.


퍼억!


“어, 아아아아악—!”

“으, 시끄러···”

“개새꺄! 아프잖아!!”


본인이 환술에 걸려서 애꿎은 벽을 세게 쳐놓고 왜 욕질이지.


“찬아··· 봐봐.”


소빈이라고 불린 여자애가 김찬에게 다가가더니 손을 살폈다.


“많이 아프겠다, 있어 봐.”

“으으윽···됐어.”


김찬은 소빈을 슥 밀어냈다.

아까의 그 능력으로 김찬의 손을 치료해 주겠다는 거지?


“됐다니까! 그거 쓰지 말라고 했잖아. 저 새끼부터 죽여야 돼.”


소빈이 김찬을 말렸지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근데 저게 아까부터 진짜.’


드드득.


“환.”


막대를 땅에 긋고, 작게 중얼거렸다.

심지 끝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연기가 이내,


“저, 저거···브, 블랭커!”


4미터가 넘는 초장신의 블랭커로 변하더니 김찬에게 손을 뻗었다.


“으···어···”


김찬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공포에 가득 질린 표정으로.


“찬아, 왜? 왜 그래!”

“넌 나 치료해 줬으니까 안 보이게 했어.”

“네···?”


기다란 막대로 김찬을 쿡쿡 찔렀다.


“사과하면 없애줄게.”

“어··· 으···”

“안 해? 그러든가, 갈게.”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안 깝칠게요!”

”저 새끼가 뭐야, 저 새끼가. 말 좀 가려라.”

“아, 알겠어요, 알았어요! 이것 좀!”


스윽.


막대를 살짝 움직였다.


연기로 만들어낸 블랭커는 바람에 흩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그러니까 형이 그 비명 소리 듣고 안 갔었으면 박소빈 쟤 어떻게 됐었을지 몰랐던 거네요.”


김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눈빛을 보니 서로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과민반응 했던 건가.


김찬을 따라 어느덧 플랫폼에 다시 도착했는데,


타다닥!


누군가 뛰어왔다.


“아이구, 김 춘, 이눔 자식아!!”


‘아, 그 할머니잖아···’


“어디 갔다 온 겨, 이 애미 내버려두고!!!”

“할머니, 저 왔어요...”


박소빈이 말을 건넸다.


“응? 으응, 우리 새아가! 우리 춘이랑 어디 놀러 갔다 온 거여?”

“할머니, 왜 자꾸 얘보고 그렇게 부르는 거야···”


김찬이 쑥스러워하며 박소빈의 눈치를 살폈다.


할머니가 저렇게 온화하게 웃는 건 처음 봤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홱 돌리더니 나를 쏘아보았다.


“썩을 놈은 또 왜 왔어.”


‘···왜 저러시는 거야.’


“할머니, 그러지 말고 사람들한테 가자. 맛있는 거 많이 가져왔어!”


“으응, 그려.”


긴장을 놓칠 수가 없는 할머니였다.


김찬을 따라간 곳은 출구로 이어지는 길 곳곳에 벽을 뚫어 공간을 내어 생활하고 있는 그들만의 터전이었다.


“여기서 지냈구나.”

“아, 네, 좀 그렇기 하죠.”

“아, 아니. 나쁜 뜻은 아니야.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인데, 뭐.”


말 그대로였다.

이들도 몇 년 동안 블랭커를 피해 다니며 지낼 수 있는 곳이 여기라 판단했겠지.


더군다나 이 지하철역이라는 곳도 원래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점들이 많았다. 비슷하지만 다른, 얼기설기 붙인 공간 같다는 표현이 그나마 근접할 것이다.


출구는 단단한 철문으로 굳게 막혀있었고, 그 주변으로 황량한 생활의 흔적들이 스며있었다.


간신히 모습만 유지하고 있는 신문지와 굴러다니는 통조림 캔들, 냄새와 얼룩이 배어 노랗게 물들고 낡은 이불 등이 그들의 단편을 보여주고 있었다.


역 안은 블랭커들로부터 피신한 사람들 무리가 있었다. 조명이라고는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힘없게 빛나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촛불 몇 개와 전부였고, 그 은은한 불빛 아래 사람들의 얼굴이 그야말로 블랭커랑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정도.


‘냄새가 상당한데···’


역 안은 상당히 넓었는데도 공기는 혼탁했고 곰팡내가 진동했다.


소빈이 구석 자리에 할머니를 앉혀 진정시키는 것까지 확인하고, 주변을 슥 둘러봤다.


힘이 조금 없더라도 향막대를 찾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보니 유령 같은 모습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겠다.


“그냥 나 혼자 가봐야겠네.”

“저도 갈게요!”


혼잣말을 한 것뿐인데 소빈이 말했다.


“겁이 없냐? 아까 그 꼴을 당하고도.”

“그래도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는 없어서요···”


“또 나 몰래 혼자 가게?”


김찬이 소빈을 팍 째려봤다.


“근처에 편의점 있잖아. 거기까지 거리가 좀 되나?”

“아, 아뇨! 5번 출구로 나가면 금방이에요!”

“굳이 같이 가겠다면 말리진 않을게. 대신 내가 무조건 지켜줄 거란 생각 같은 건 하지 말고.”

“괜찮아요, 이미 한번 구해주신 걸로도 충분해요.”



***



솔직히 박소빈이 가지고 있는 치유 능력이 그곳에 힘없이 누워있는 사람들보다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넌 왜 따라오는 건데.”

“얌전히 따라갈게요.”


그래, 네가 순순히 기다리고 있진 않겠지.


좋게 타일러도 봤지만 아무래도 고집을 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까처럼 짜증 내면서 말했다면 데려오지 않았겠지만 환술로 가짜 블랭커를 한번 보여준 탓인지 어느 정도는 고분고분해졌다.


“아까 그 블랭커 하나만 봐도 벌벌 떨었으면서.”

“전 형을 믿어요!”

“믿지 마. 못 지켜준다고 했다.”

“그, 그럼 알아서 도망칠게요, 달리기는 빨라요, 저.”


뭐, 더 이상 귀찮게 말을 이어가고 싶진 않다.


소빈의 말대로 얼마 걷지 않아 편의점으로 무사히 도착할 수 있기는 했다.


“근데 아주머니랑 아는 사이에요···?”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던 소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하긴 아줌마가 날 보자마자 아는 체를 했었으니 궁금할 법도 했겠네.


“아는 사이긴 해. 안 좋은 쪽이지만. 갚아줄 게 있었어.”

“갚아줘요···?”

“귀트임이라고 알아?”

“아뇨···”

“뭐 그런 게 있어. 그 아줌마 때문에 생긴 짜증 나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화나는 부분이다.

그 아줌마 때문에 귀가 상당히 예민해져 버린 것이다.


‘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이런 세상에서는 마냥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갚을 건 갚아줘야 한다.

날 두들겨 팬 그 망할 꼬맹이도 있고.

애초에 인간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 근력이었다.


“어, 이건 멀쩡하다.”


블랭커들이 헤집고 간 편의점에서 캔콜라 하나를 주워들었다.


분명히 전기가 들어오던 곳이었는데 놈들이 뭘 건드린 건지 이 편의점도 전기가 끊긴 채로 다른 곳처럼 폐허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름 건질 건 꽤 있어 보였다.


아직 차가워 보이는 캔콜라를 본 김찬의 눈이 빛났다.


“줄까.”

“···”

“싫음 말고.”


치익!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캔을 땄다.

그대로 마시려고 입 쪽으로 가져다 댔는데,


“마실게요!”


김찬에게 콜라를 건넸다.


콜라를 받아 들고는 언제 찾아온 건지 작은 종이컵 묶음을 부욱 뜯었다. 그리고는 콜라를 나누어 담았다.


“자.”


제일 먼저 소빈에게 건넸다.


“아, 고마워. 근데 여기 이분 먼저 드려야지, 찬아···”


소빈이 난처한 눈으로 내 표정을 살폈다.


“괜찮아.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써서.”


“아, 그러고 보니 호칭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름을 몰라서···”

“···”


소빈을 빤히 쳐다봤다.


“왜, 왜요? 그··· 환술 쓰시는 거예요?”


아, 너무 대놓고 쳐다 봤나.


“아니, 알려줘도 될까 싶어서.”

“불편하시면···”

“이재오야. 이재오 씨든 뭐든 그냥 대충 불러.”


어차피 금방 헤어질 텐데, 뭐.


“아, 네! 전 박소빈이에요.”

“그래, 알아."


쓱.


김찬의 손이 불쑥 나왔다.


“드세요.”

“어, 고마워.”


저 뾰루퉁한 표정은 설마, 쓸데없이 질투 같은 거라도 하는 건가. 정신머리 나간 게 아닌 이상 그딴 생각은 하고 있지도 않았다.


대화하는 와중에도 그 모자는 대체 뭐였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 환술은 어떻게 갈고 닦을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미안하지만 이름도 금방 잊어버릴 것 같다.


“가방 같은 건 없으려나.”

“가방은 왜요?”

“왜긴 음식 같은 거 담아서 다녀야 하니까.”


“여기 비닐봉투도 많은데요?”


김찬이 어느새 카운터 쪽으로 가서 봉투를 들어 보였다.


“비닐 시끄럽잖아. 불편하기도 하고.”

“저기에도 있는 거 같아요.”


소빈이 창고 쪽을 가리켰다.


“그러네. 저기에 숨었었는데 왜 못 봤었지.”

“숨어요? 오빠가? 엄청 강한 분인 줄 알았는데···”


소빈이 다소 놀란 듯이 말했다.


“무슨 소리야,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나도 그놈들 무섭거든?”


커피 하나를 집었다.

상태가 멀쩡해 보였다.

빨대를 꽂아 쭉 들이켰다.


“근데 네가 가서 그 지하철역에 있던 사람들 치료해 주면 되는 거 아냐? 아픈 사람들도 꽤 있다며.”


박소빈과 김찬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그게···”


무언가 망설이는 듯 보였다.


“이 형, 대충 알아.”

“아, 그래···?”


소빈이 고개를 숙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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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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