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16
추천수 :
5
글자수 :
86,340

작성
24.09.10 19:05
조회
14
추천
0
글자
12쪽

짧은 환상

DUMMY

“박소빈이 뽑혔거든요.”

“뽑혀? 뭘?”

“뽑기로 정했거든요. 그···”

“아.”


무리에서 누굴 먹을지 뽑기로 정했었나 보다.

재수 없게 걸렸었나보네.


이런 편의점이 있었다는 건 몰랐을까.

아니면 블랭커에 대한 공포가 상당해서 찾을 생각조차도 못 했던 것일까.


“그 뽑기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어?”

“저랑 박소빈뿐이었어요.”


어린애 둘의 의견이면 별로 영향력은 없었겠다.


“뭐, 별로 나쁘게 생각하진 않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럼 다행이구요. 그리고 쟤, 그 치유 능력이라고 해야 되나, 그것도 좀 별로인 부분이 있어요.”

“왜?”

“치료해 주는 대신 그만큼 지가 아파요.”

“뭐···?”


작은 손으로 초코우유를 들어 마시고 있는 소빈을 슬쩍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건 좀 별로네.”


붕대를 어설프게 감은 김찬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아까 나 때리려다가 부딪힌 손을 치료하지 못하게 했었구나.’


그리고 동시에, 내 배를 낫게 하고는 자기 배를 움켜잡고 몸을 웅크렸던 소빈의 모습이 생각났다.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냐, 괜히 찝찝하게.’


뭐, 됐다.

어차피 소음 아줌마한테 락스 물 마시고 죽을 뻔한 걸 구해준 대가라고 생각하자.


“그래서, 너넨 어쩌게?”

“저희요?”


내 말을 들은 김찬과 박소빈이 나를 빤히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이건 설마 같이 다니자는 눈빛인가.


“아, 싫어.”

“재오 형.”

“재오 오빠.”


괜히 튕기는 게 아니다.

미안하지만 짐이 될 뿐이니까.


“여기서 먹을 거랑 이것저것 다 많이 챙겼잖아. 가서 사람들 나눠주면 될 거 아냐?”


“어차피 이 정도 양이면 금방 거덜 날 거고, 그러면 또 서로··· 그렇게 될 텐데요 뭐. 이젠 질렸어요. 그 사람들한테 정떨어졌어요.”


김찬이 고개를 무겁게 떨구며 말했다.

자기가 호감 가는 여자애가 걸리니까 싫은 거면서.


“···너 아까 내가 콜라주니까 사람들 불러 모아서 뺏어 먹으려고 하지 않았었냐.”

“아니, 형, 그건.”

“찬아, 진짜야?”


김찬이 날 살짝 노려보았다.

맞잖아?


“아무튼 좀 매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혼자가 편할 거 같아서. 막대도 찾았고.”


향막대를 살짝 들어 보였다.


그리고 박소빈의 능력도 본인이 고통을 전가 받는다면 그닥 쓸모 있어 보이진 않아서, 라고 말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쵸.”

“그냥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어요.”


둘이서 쌍으로 고개를 떨구고 불쌍한 모습을 보였다.


“아니, 좀···하···”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뭐.

블랭커들을 전부 없애지는 못해도 그 정도는 괜찮겠지.


“일단 역으로 가자, 그럼.”

“네!”

“네!”

“별 기대는 하지 마. 그냥 임시방편 정도만 해주려는 거니까.”

“네네, 뭐든 괜찮아요!”


말은 저렇게 괜찮다고는 하지만, 음식들을 놓고 나서 내가 데려가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미안하지만 그런 건 아니고··· 작별 선물 정도는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 창고에 있던 커다란 가방에 이동하기 편할 만큼 물건들을 담았다.


‘나도 참, 원래 같았으면 그런 곳 다시 안 돌아갈 텐데. 무슨 쓸데없는 생각이냐.’


이미 발걸음은 지하철역을 향했다.



***



“엄마, 엄마아아!”


타다닷!


동하가 급한 목소리로 달렸다.


쿵!


“악!”


그러다가 넘어져 이마를 찧었다.


“으···으아아앙!”


유동하는 그대로 철퍼덕 엎드려서 울기 시작했다.


“야! 으휴, 증말!”


안정숙이 화장실에서 뛰쳐나왔다.


펑! 펑!

그리고는 아들 동하의 엉덩이를 세게 치기 시작했다.


“엄마가 뛰어다니라고 했어, 안 했어!”

“아아악! 자, 잘못했어요!”

"옷이 더러워졌잖아!"


안정숙은 그렇게 몇 차례 더 때리고 나서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후··· 그래, 동하야.”


안정숙은 차분한 말투로 이어갔다.


“왜 그랬어, 응?”


동하는 훌쩍거리며 답했다.


“아니이··· 그 아랫집 쓰레기 발견해가지구요···”

“뭐? 정말? 어디서!”

“거기, 거기, 저번에 엄마랑 동하랑 간 거기요!”

“그 낡은 아파트 쪽 말하는 거지.”


안정숙은 웅얼거리는 아들의 말을 단번에 알아들었다.


“우웅..녜에···”

“그래, 그래. 알겠어. 우리 애기.”


안정숙은 히죽 웃었다.


“옷 갈아입고 산책 가자, 동하야. 엄마한테 그 형아 어디 있는지 우리 동하가 알려줄까?”

“웅! 동하가 알려주께, 쓰레기 형아 찾으러 가자요!”



***



“오오오···! 뭐야!”

“멀쩡한 음식이잖아···”

“이게 얼마 만이야.”


사람들은 편의점 음식들을 보고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어떤 사람들은 오열까지 했다.


그 정돈가.


“다들 우리 춘이한테 고맙다고 혀! 저 허연 구신 놈들을 기낭 때려눕히고 느그들 먹으라고 이만치나 가져왔응께!”


할머니가 앞으로 나서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폈다.


“아니, 할머니. 이건···”


김찬이 난감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뭐,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잠깐만요! 이거 안전한 음식인 건 맞아요?”


무리에서 중년의 여자가 튀어나오더니 심통 맞게 말했다.


박소빈에게 음식을 받아 허겁지겁 입으로 넣으려던 사람들의 손이 일제히 멈췄다.


“그, 그럼요! 이거 보세요! 포장도 다 돼 있잖아요!”


김찬이 나섰다.

그리고는 널찍한 초콜릿 하나를 뚝 뜯어 보란 듯이 입에 넣었다.


“보세요, 저 먹었잖아요. 이제 믿겠어요?”

“괜찮나 보네, 왜 그래. 거참.”

“여보! 있어 봐요, 좀!”


여자가 남편의 손에 든 음식을 거칠게 빼앗았다. 그리고는 김찬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그 블랭커 놈들한테 홀려서 우리한테 이상한 거 먹이려고 그러는 건지 어떻게 알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쫄쫄 굶주려서 서로 뜯어 먹는 상황까지 왔으면서. 입맛이라도 변해버린 건가.


“그리고, 저 나뭇가지 든 정신 나가 보이는 놈은 누군데! 그쪽 놈들 아냐?!”


여자는 귀가 떨어지도록 악을 쓰며 말했다.


“저 아줌마 말야.”

“네?”


박소빈에게 조심스레 속삭였다.


“혹시 좋아하는 음식 뭔지 알아?”

“어··· 뭐였지, 아! 햄버거요!”

“뭐?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냐?”


“아니에요! 전에 직접 들었어요. 저 아주머니 아들들이 아주머니는 햄버거 안 좋아할 거라며 멋대로 생각하고는 여태 먹어보라구 물어본 적도 없었대요. 그래서 입에도 닿은 적 없었는데, 우연히 드셔봤다가 그대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되셨다고 하던데요.”


“길에 햄버거집이 그렇게 많은데?”

“글쎄요··· 아무래도 낯설지 않으셨을까요.”


그렇단 말이지.


드드득.


“환.”


향막대를 바닥에 긋고 집중했다.


“어머머! 웬 연기야!”

“저기요.”


슬쩍 다가가 봤다.


“뭐에요!”

“이거.”


보기 좋게 생긴 수제 햄버거 하나를 스윽 들이밀었다. 물론 이건 평범한 편의점 햄버거다.


“···아니.”


이 정도 토핑이면 침샘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겠지. 나름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맛있어 보이는 외관으로 보이게 했다.


아주머니는 얼마나 반가운 건지 손까지 부들부들 떨며 햄버거를 고이 받았다. 하긴, 그동안 입에도 맞지 않는 걸 먹었을 테니.


내친김에 다른 사람들도 평범한 편의점 음식을 입맛이 도는 음식 맛으로 느끼게 해줬다.


아줌마가 눈물겨운 햄버거를 베어먹는 모습에 다들 망설이는 듯싶다가도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렇게 김 찬과 박소빈을 향한 의심은 일단락되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찝찝하긴 했다.


난 어차피 이곳을 떠날 거니까, 마지막 배려인 셈 치고···


지이익.

다시 한번 막대를 그었다.


“점···”


빠악!


“아!”

“이 썩을 눔아, 바닥은 왜 자꾸 긁어대, 자국 남게!”


할머니가 별안간 역정을 내며 머리를 때렸다. 어디서 갑자기 나오신 거야.


“아씨, 아파라.”

“할머니!”


소빈이 놀라 할머니를 말렸다.

표정을 찡그리며 맞은 부위를 문질렀다.

이따가 이 할머니도 좀 어떻게 해야겠다.


“환.”


치이익.

심지가 약하게 탔다.


“아이고, 이 미친놈이 불낸다, 불내!”

“···이 할머니 좀 누가 붙잡고 있어 주실래요.”

“할매, 그만하고 이리 오이소.”


중년의 남자가 할머니를 타이르며 구석으로 데려갔다. 드디어 마음 편히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후···”


쿠웅! 쿵!

강한 진동이 땅을 울렸다.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으, 으아아악!”

“블랭커··· 잖아.”


어차피 가짜니까 이번엔 조금 그로테스크하게 꾸며봤다.


향막대에서 나온 연기가 순식간에 거대한 블랭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꿇어라, 열등한 종족아.


도망가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일제히 블랭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블랭커가 말을 하잖아···”


김찬이 입을 벌린 채 무의식적으로 무릎을 꿇었다. 사람들로부터 의심을 사서 귀찮아지지 않으려면 나도 꿇어야겠지.


환술로 만들어진 기괴한 얼굴의 블랭커가 김찬과 박소빈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두 아이는 내 휘하에 있는 존재들이니, 너희들 가운데 단 한 놈이라도 감히 이 두 아이에게 그 어떤 해를 가하거나 불이익을 준다면, 너희 전체와 너희가 숨어 사는 이 더러운 구멍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노라.


뭐, 대충 이렇게 하면 되겠지.


효과는 좋았다.

모두 블랭커의 말에 질겁한 표정이었으니까.


“네, 네! 그럼요, 그럼요!”

“예예!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않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남자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다른 이들도 잇따라 한마디씩 거들었다.


스으윽.

가짜 블랭커가 말 그대로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래도 그 위압적인 존재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는지 다들 조용해졌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정적을 깨고 김찬에게 물었다.


“어이, 찬아, 그, 그 음식들도 그 블랭커가 준 거니···?”

“어···”


내 눈치를 살피는 김찬.

나는 힘없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괜히 주목받으면 귀찮을 것 같으니까 그냥 그렇다고 해. 김찬이 나를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오오, 그런 일이···”

“이 어린아이들도 나가서 고생했는데 하물며 어른이란 우리들이 그런···”

“윽박질러서 미안했다.”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더니 하나둘 김찬과 박소빈에게 사과하며 미안함을 표시했다.


“후암···”


저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장이 풀려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향막대만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그놈의 링크가 아무래도 내 정신력을 먹긴 한가보다.


지루하고 긴 사과 행렬이 끝나고, 둘이 나에게 다가왔다.


“형,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비록 부탁한 것은 아니었어도, 상처를 치유해 준 박소빈 때문에 이렇게까지 한 것이긴 했다.


“어어, 그래. 가볼게.”


연이은 감사함에 민망해져 말을 대충 얼버무렸다.


“그리고 이거···”


박소빈이 무언가를 건넸다.

비닐봉투에 담겨있는 유리병 같은 것들.


“비닐은 시끄럽다니까.”

“일단 가져가 보세요. 위급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비닐봉투 안을 들여다보긴 했지만, 겉으로 봐서는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뭔데?”

“설명서 넣어놨어요, 꼭 읽어보세요!”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나중에 봐도 되는 거겠지. 향막대랑 마안이 있는데 위급할 일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일단 가방에 대충 챙겼다.


손 인사를 하며 떠나는 둘의 뒷모습이 멀어져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지옥 NEW 3시간 전 2 0 9쪽
16 어린 동료가 생겨버렸다 24.09.17 4 0 10쪽
15 낙하 24.09.16 7 0 11쪽
14 N과 혈석 24.09.15 8 0 11쪽
13 괴력의 아이 24.09.14 10 0 11쪽
12 그들을 조종하는 여자 24.09.13 10 0 11쪽
11 방독면을 쓴 사람들 24.09.12 11 0 11쪽
10 소음 제거 24.09.11 11 0 11쪽
» 짧은 환상 24.09.10 15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5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8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7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