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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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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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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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2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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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을 쓴 사람들

DUMMY

발걸음을 돌렸다.

굳이 갈 필요는 없었다.


당장 필요한 건 가방 안에 전부 있었고, 더 채웠다가는 이동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무엇보다도 저곳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보였다.


‘어디서 또 그 아줌마 같은 괴인이 튀어나올지도 몰라.’


대신 가능하면 저쪽에 보이는 마트 근처에서 잘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슬슬 다리가 아파서 잠시 쉬어야 될까 생각이 들 때, 멀리서 은은하게 노란빛을 내는 건물이 보였다. 전기가 들어오는 또 다른 곳임이 틀림없다.


“좀 눕고 싶어···”


원래도 걷는 것을 좋아하긴 했었지만, 동시에 하루 종일 누워있는 것도 좋아했었다.


짧은 시간에 이 정도의 많은 일들이 일어났으니 원래 세계에서라면 며칠은 누워있기만 해야 했다.


몸이 피곤해서도 그랬지만, 이 마안의 허용량이 수면을 취할 때마다 초기화되는 것으로 제한된 것 같다고 짐작했었다. 그러니 지금은 휴식이 필수였다.


노란빛에 가까이 다가가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허름한 모텔이었다.


“3층 밖에 없는 건가?”


수풀을 헤치고 건물 뒤쪽으로 조심스레 이동해 뒷문이 있는지 살폈다.


‘오, 있다.’


문손잡이를 돌려봤다. 잠겨있겠지 싶었는데 다행히 가볍게 열렸다.


“혹시 모르니 먼저···”


지이익.

향막대를 땅에 긋고 작게 외쳤다.


“환.”


문을 살짝 열고 그 틈으로 심지를 살짝 넣었다. 눈을 감고 집중했다.


‘내 모습이 보이지 않게...’


어느 정도 향과 연기가 퍼졌으리라 생각하고 문을 열고 안을 살폈다.


화장실이 보여, 제일 먼저 기다란 대걸레로 문을 걸었다. 그리고 문을 잠그고 카운터로 걸어가 주위를 살폈다.


수북이 쌓인 먼지.

이것만 보고 이 건물에 사람이 없을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방을 전부 봐야겠다.


2층부터 둘러보는데, 다른 곳은 다행히 문이 열려있었다. 방에 하나하나 들어가 화장실까지 살폈다.


아직 향 연기가 사라지지 않았으니 누군가 불시에 튀어나오더라도 괜찮겠지.


그런데 혹시라도 환술이 통하지 않거나 환술인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 2층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무사히 확인했다.


그러면 남은 건 3층뿐인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문을 열고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제일 끝방인 309호 역시 아무도 없었다.


“후···”


일단 문부터 꼭 잠그고, 막대로 한 번 더 걸었다. 웬만한 충격으로는 부서지지도 않는 물건이니까 괜찮겠지. 먼지가 살포시 가라앉아있는 창문도 굳게 닫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장실로 가보았다.

세면대 수도꼭지를 슥 들어보았다.


“나온다...!”


물이 나오더라도 녹물 정도는 나오겠거니 생각만 했는데, 맑고 투명한 물이 세차게 나왔다.


지하철역에 있던 사람들이 와서 지내면 먹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해도 물 정도는 시원하게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들 몇 번이나 나와서 탐색해 보려고 했지만 블랭커들한테 당해버렸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블랭커 외에 다른 위협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물을 잠그고 고민에 빠졌다.


아무리 환술이라는 걸 쓸 수는 있더라도 언제 나 또한 블랭커들에게 당할지 모른다. 그놈들이 아니더라도 위험인물들이 있을 수도 있고.


남은 건 음식 조금과 이상한 약물이 들어있는 흡사 포션과 같은 유리병들이 담긴 비닐봉투, 그리고 이 향막대 향막대뿐.


잠깐 고민해 보다가 막대를 앞으로 훅 내질렀다. 대각선으로 힘을 주어 베는 듯한 동작을 취해보기도 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봉술 연습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지금까지 보았을 때, 이 막대는 흠집이 나거나 부러지지도 않는 내구성과 견고함을 지녔으니, 이걸 환술에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이걸 이용해 휘두르고 찌르는 공격을 연습할 가치는 충분했다.


“후우···”


한참을 그렇게 여러 번을 찌르고, 베고, 돌려댔다.

아직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아 오래 하기에는 무리였다.


의자에 앉아 가방 속에서 커피 하나를 꺼내 쭈욱 들이켰다. 당장은 몸이 피곤해서 금방 잠들 수는 있어도 깊게 잠에 빠지진 못할 것 같았다.


가방 안에서 비닐 소리와 함께 유리병들이 가볍게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니 문득 생각났다. 박소빈이 위급할 때 써보라고 했었지.


나름 설명서라고 귀여운 글씨체로 적어놓은 것이 병과 함께 들어있었다. 뭐가 들어있는 거지.


- 병들에 담겨 있는 액체들은 고통을 잊게 해주는 약들이에요.

- 원래는 제가 가끔 쓰는 건데, 찬이가 능력 좀 자제해서 쓰라고 해서 쓸 일이 많이 없어졌어요. 저보다는 오빠가 더 유용하게 쓰실 것 같아서 드릴게요.

- 마시면 1시간 정도는 효과가 있을 거예요.


그러니까 진통제라는 거지.


거기 사람들한테 써줘도 되는 것 아닌가 생각도 해봤지만, 서로 잡아먹는 그런 상황에서 박소빈이 위험한 약과 비슷한 이것을 여러 병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곱게 놔두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근데 이렇게 받으면 또 괜히 찝찝해지잖아. 언제 한번 또 가야겠네.’


슬슬 잠이 몰려왔다.


깔린 이불 상태도 나쁘진 않아 그대로 드러누웠다. 긴장이 풀어져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다.



***



터벅, 터벅.


눈이 퍼뜩 떠졌다.

다수의 발걸음 소리.


핸드폰을 꺼내 시간부터 보았다.

쓰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배터리는 20%.


시간을 보니 15분 정도 잤네.

커피냅의 효과를 받아서인지 잠깐 잠든 것이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몸을 숙인 채로 창문 밖을 슬쩍 쳐다봤다.


“여기서 잠깐 쉬다 가시죠.”


흰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대여섯 명 정도 보였다.


폐건물이 즐비한 이런 풍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누가 보아도 수상한 복장을 하고 있다.


‘잠깐 쉴 곳을 좀 찾았나 했더니만···’


저들은 전기가 들어와 있는 이 모텔이 전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아 보였다.


서둘러 문에 걸어둔 향막대를 집어 바닥에 그었다.


“환.”


심지에 붙은 불이 연기를 만들고, 모텔 전체를 빠르게 뒤덮었다.


그리고 2층과 1층을 전부 메웠을 때,


“전부 방독면 착용하세요!”

“네!”

“옙!”


아래층에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독면을 가지고 다닐 정도면 분명히 무기도 있겠지. 뭘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블랭커 한 마리 투입.’


쿵, 쿠웅!


둔탁한 소리를 내며 블랭커 하나를 보냈다. 그런데 그 발소리가 얼마 가지 않아 멎었다.


‘뭐지?’


계단으로 다가가 몸을 숨기고 아래층을 보았더니, 흰색 로브를 입은 사람들 중 한 명이 검은색 지팡이를 블랭커에게 내밀고 있었다. 전부 흰색 방독면을 단단히 착용하고 있었다.


내가 보낸 가짜 블랭커는 이내 사람들 앞에서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음? 이렇게 사라지는 종도 있었나요.”

“세인 님, 이거 진짜 블랭커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가짜입니다. 환각이에요!”


휙!


세인이라고 불린 단발머리 여자가 고개를 홱 돌려 내가 있는 쪽을 정확히 바라봤다.


들켰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까의 끝방으로 도망쳤다.


그래도 블랭커들한테서 몇 번 도망쳐 봤다고, 이제 몸이 얼어붙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게 되진 않았다.


저놈의 하얀 방독면 때문에 연기랑 향이 모두 막혀버려 환술이 안 통하는 모양이다.


두두두두!


빠르게 달려오는 발걸음이 들렸다.


닫아두었던 창문을 거칠게 열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3층 높이···

떨어지면 엄청 아프겠지.


박소빈이 준 진통제를 마신다고 해도, 떨어지고 난 이후에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되면 몸이 마비된 채로 꼼짝없이 잡혀갈 거고.


그때 창문 밖으로 누군가가 보였다.

저들과 같은 흰색의 로브를 입고 있는 작은 체구의 사람이 모텔 입구 쪽으로 서서히 걸어오고 있었다.


“저거다.”


방독면도 안 쓴 맨얼굴.


가방에서 진통 물약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다.


“1시간 동안은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


찰싹!

실험 삼아 뺨을 세게 때려보았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효과는 있는 거 같네.”


더 실험을 해보면 좋았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 애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 힘을 보기도 했으니까.


드으윽!


향막대를 긋고,


“환, 공포를 잊게···”


코끝으로 심지에서 퍼져나온 향을 맡자마자 정수리 끝에서 찌릿한 감각이 돌았다. 동시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살면서 처음으로 3층 높이에서 추락했다. 그것도 순수하게 내 의지로.


퍼억!


고통도 없었고, 공포심도 없었지만 역시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출혈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점점 의식이 사라져가는 느낌이었다.


‘씹, 역시 자살 행위였어.’


“뭐야···”


모텔 밖에 있던 사람이 소리를 듣고 가까이 다가왔다.


“으윽··· 마안, 아까 그 여자로!”


말 그대로 죽을힘을 다해 그 사람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말했다.


“도와줘! 모텔 안에 블랭커 놈들이 있었어!”

“세인 님···?”


놀란 목소리의 갈색 머리 여자가 다가왔다.


방금까지 긴 나뭇가지를 손에 꽉 쥔 채로 피를 흘리고 있는 남자가 분명히 있었는데, 자신과 같은 복장을 한 동료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을 테니.


아까 나를 바라본 사람 이름이 세인이었나보다.


“아니, 분명히 이상한 사람이 누워있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여자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겨우 환술을 걸기는 했는데 역시 마주쳤을 때 찰나의 기억을 메꿀 순 없었다.


하지만 쓰러져 있는 사람이 영락없는 자기 동료라면 절대 모른 척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인 님···맞죠?”

“그럼 누구겠어, 나 좀 얼른 도와줘.”


이대로 의식을 잃어버리면 환술이 풀릴지도 모를 일이다.


“아, 알겠어요! 잠시만요, 응급 키트가 있을 거예요!”


여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옆에 놓인 커다란 흰색 자루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아, 찾았다! 다행이다.”


여자가 꺼내 보인 것은 푸른색 액체가 찰랑이는 유리병.


‘어째 박소빈이 준 거랑 비슷하게 생겼네···’


여자는 내 목에 팔을 받치고는 나머지 손으로 유리병을 내 입에 조심스레 흘려 넣었다.


시원한 푸른색과는 다르게 열기가 훅 오르고, 가슴이 두근거리며 전율이 찌르르 흘렀다.


호흡은 가빠졌지만, 흩어졌던 초점이 점차 돌아왔다. 방금까지만 해도 뿌옇던 시야가 환해지며 모든 것이 생생해졌다.


의식이 완벽하게 돌아왔고 전신에 활력이 돋은 것만 같은 기분. 자연스럽게 바닥을 짚고 완전하게 일어날 수 있었다. 출혈도 멈춘 것 같고.


“이거 되게 좋은데?”

“네? 그게 무슨···”


맞다, 이 사람에게 그 세인이라는 여자로 보이도록 환술을 걸었던 걸 깜빡했다.


이 사람의 동료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물약이겠지.


“아, 아니야. 그것보다, 빨리 여기 떠야 돼.”

“세인 님, 다른 사람들은요? 어떻게 된 거예요? 설마···”

“전부 당해버렸어. 나만 겨우 뛰어내렸던 거고.”

“네? 세인 님은 블랭커 조종하실 수 있잖아요?”

“어? 아, 그니까...”


그 여자가 그런 능력이 있었군.


“그게 안 통하는 종이었어.”


일단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 게···”


“저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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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독면을 쓴 사람들 24.09.12 11 0 11쪽
10 소음 제거 24.09.11 11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4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5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8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3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7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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