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새글

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연재수 :
17 회
조회수 :
324
추천수 :
5
글자수 :
86,340

작성
24.09.13 10:05
조회
10
추천
0
글자
11쪽

그들을 조종하는 여자

DUMMY

모텔 입구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빨리 여자를 바라보며 다음 환술을 거는 것에 집중했다.


콰앙!


모텔 입구를 거칠게 열고 로브를 입은 사람 대여섯 명이 뛰쳐나왔다. 내가 떨어지는 소릴 들었나.


“라티! 그놈을 잡아!”


아까 계단에서 나와 눈을 마주쳤던 세인이라는 여자가 소리쳤다. 이 사람 이름이 라티란 말이지.


“블랭커들이···”


라티가 중얼거렸다.


다행히 늦지 않게 환술을 걸 수 있었다.

자신의 동료들이 전부 블랭커로 보일 것이다.


저 사람들이 방독면으로 환술에 원천 차단되었다면, 이 사람에게 걸면 될 일이다.


“뭐해! 그놈 잡으라니까!”


아무리 짖어봤자 라티에게는 그르륵 짐승 소리를 내며 울고 있는 블랭커로만 보일 뿐이다.


“라티, 도망치자. 수가 너무 많아.”

“앗, 네, 세인 님!”


라티의 손을 붙잡았다.


“아무래도 저놈이 라티에게 환각을 보여주고 있나 봅니다.”

“···그들을 불러야겠군요.”


저 여자 분명히 계단에서 내가 환각으로 만들었던 블랭커에게 지팡이 같은 것을 들이밀었었지. 그게 블랭커들을 제압하는 물건인가 보다. 말하는 걸 보니 놈들을 끌어모으려는 것 같은데.


“뛰어!”


폐건물들과 울창하게 자란 식물들 사이를 뚫고 달렸다.


박소빈이 줬던 흰 물약과 라티가 준 푸른 물약 덕분에 뛰는 데 문제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흥분되었고 또 동시에 안정되는 기묘한 느낌.


그 사람들이 나에게 딱히 무언가를 한 건 없지만, 그 수상한 차림과 공격적인 언행들을 보면 도망치지 않는 게 멍청한 짓이다.


“후우···”


라티가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골랐다.


“괜찮아?”


딱히 걱정되진 않았지만 일단은 세인인 척해야 하니까.


“네에··· 죄송해요, 갑자기 뛰다 보니.”

“아냐, 잘 뛰던데.”


나도 그 물약들이 없었으면 저렇게 힘들어했겠지.


“저, 근데 세인 님. 아까 세인 님 능력이 안 통하는 종이었다는 게 무슨 말씀이에요?”


역시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함을 눈치챈 건가.


“글쎄, 기억이 잘 안 나네. 아까 떨어질 때 머리를 좀 다친 건지.”


머리를 문지르며 괜히 얼굴을 구겼다.


푸욱!


“큭!”


라티가 별안간 단검을 자신의 이마에 꽂았다.


“뭐야, 갑자기. 뭐 하는 거야!”


그녀의 이마에서 피 한 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휘익!

라티가 빠르게 자세를 잡고는 날 제압해 목에 단검을 들이밀었다.


서늘한 날이 목 끝에 닿았다.

저런 건 어디다 숨기고 있던 거야.


“뭔데!”

“누구야! 형상변환자냐?”


분명히 세인으로 보일 텐데 용케 알아차린 모양이다.


“누구냐고 물었잖아! 지하인이냐?”


갑작스레 돌변한 표정이다.

설마 방금 이마에 칼을 꽂은 게 환술을 풀려고?


쿠욱.

라티가 칼끝을 목에 살짝 찔러넣었다.


“피 흘리는 걸 보고 당황해서 도망쳤었는데, 세인 님이 그딴 말투를 쓰실 리가 없잖아.”


당연히 그 여자가 어떻게 말하는 것까지는 몰랐다.


나름 위협을 가해본다고 칼을 들이민 것 같은데, 새삼 진통 물약을 준 박소빈이 고마웠다.


약효 덕분에 고통을 느끼지 못해 흔들림 없는 내 표정을 본 라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 누구냐고!”


어떻게 보면 잘 됐다.

환술이 라티와 세인의 기억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보니 언제까지고 아는 척 연기를 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


타악!


향막대를 휘둘러 단검을 가격했고, 그대로 라티의 손에서 떨어졌다.


지익!


“환.”


빠르게 퍼져나온 연기에 당황할 법도 한데 라티는 아무렇지 않게 빠른 속도로 단검을 주웠다.


콰악!


“컥···!”


연기가 자욱해서 내 모습이 가려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목을 붙잡혀 조여왔다.


“누군지 물었어. 정체를 말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일 거야.”

“켁..크윽···”


말을 못 하게 해놓고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목을 짓누르는 무지막지한 힘에 호흡하기가 힘들었다. 물론 호흡하기가 힘들 뿐 진통 물약 덕분에 고통은 없었지만.


라티의 눈을 노려보았다.


“컥···컥, 마안!”


쿠르르!

주변에 있던 덩굴들이 라티의 팔다리를 휘감았다.

순식간에 라티의 몸을 속박하고는 바위로 가져가 단단하게 고정했다.


“으윽!”

“후··· 다행히 향만 안 먹히는 거였네.”

“이거 안 놔?”

“환술을 어떻게 푼 거야, 분명히 그 세인이란 여자로 보였을 텐데.”


라티의 이마에서는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야만스러운 지하인 놈···”

“뭐라는 거야.”


지하?

혹시 역에 살던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이제 더 이상 저항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미안한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거든.”

“···너 지하인 아니야?”

“역에 살고 있는 그 사람들을 말하는 거야?”

“그럴 줄 알았어! 역시!”

“아니라니까.”


그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부른단 말이지.


“그러고 보니 여긴 완전히 다른 세계 같은데, 내가 너희 말을 어떻게 알아듣는 거야?”

“몰라서 물어? 니네들이 우리 글리치 타고 와서 송과체에 영향을 받은 거지!”

“글리...뭐?”

“아무것도 모르는 지하인인가? 멍청하긴.”


근데 아까부터 말투가 영 거슬렸다.


스르륵.

덩굴 한 줄기가 헤엄치듯이 움직여 라티의 목을 졸랐다.


“크···헉!”

“아까 목 졸랐었지, 그대로 갚아주는 거야.”

“커헉!”

“물어보는 거에 제대로 답해줄 거지?”


라티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목을 죄고 있던 덩굴을 조금 풀었다.


“허억···헉···”


라티의 눈빛이 힘없이 풀렸다.

나를 공격한 사람일 뿐이라 너무 했다는 생각 따윈 들지 않았다.


“뭐라고 한 거야, 송과체?”

“미간 위에 있는 빨간 눈···그걸 말하는 거야.”

“빨간 눈?”


그런 것 따윈 없다.

내가 환술을 쓸 때 눈이 붉어지는 것 정도는 있었지만.


문득 블랭커 놈들이 사람들의 미간에서 붉고 투명한 구슬을 파먹었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걸 말하는 거였나.


“우리 글리치를 너희 지하인들이 타고 오면서 소통이 가능한 거야.”

“지하인 아니라니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글리치라는 건 블랭커 놈들이 침공했을 때 눈앞에 나타났던 게이트 같은 것인가 보다.

그걸 이 종교인들이 열어준 거라니.


“아까 네가 저 단검으로 이마를 찌른 것도 그거 때문인 거네, 그럼?”


“그래··· 이건 고결하신 오르디 님께서 인간들에게 친히 하사해 주신 아름다운 선물. 너희 지하인들은 그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지, 열등하기는.”


그러니까 이 여자는 이마 깊숙한 곳에 있는 걸 직접 단검으로 찔러 넣어서 자극시켰단 거야?

생각보다 정신력이 강한 사람이었다.


“오르디, 또 그 이름이네. 누군데 대체.”


“내가 자세히 알려줄 테니까 우리 교단에 들어오는 건 어때? 너 정도 능력이면···”


라티의 표정이 갑자기 싹 바뀌었다.


자기 몸이 덩굴로 칭칭 감겨 있는 상황인데도 포교를 할 생각인지 순식간에 온화해졌다.


어쩐지, 흰색 로브를 입은 복장에서도 충분히 수상한 분위기가 풍기긴 했었는데, 이 사람들 일종의 어떤 종교의 신도들이었구나.


“그런 건 됐고. 난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돼. 아까 그 세인이라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나? 너희가 열었다며, 그 게이트.”


“지금 거절하는 거야? 너 그럼 세인 님이 가만두지 않으실 걸.”


“내가 들어가기 싫으면 안 들어가는 거지, 뭘 가만 안 둬? 뭣 같은 방식이네.”


“그 야만인들처럼 지하에서 서로 살점이나 뜯어먹고 살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든가!”


아무래도 지하철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놈들의 통제하에 있었나 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놈들을 몰살해서 그 사람들을 구해준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세인이라는 사람, 블랭커 조종하는 거 말고 또 뭐가 있어? 있으면 알려줘 봐.”

“그것까지 알고 있었나···”


자꾸 말을 늘어뜨리는 게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마안.”


라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윽.

콰아악!

뾰족한 덩굴 두 줄기가 라티의 양어깨를 찔렀다.


“끄으윽!”


“있냐니까.”


“없어, 없어!”


쿵, 쿵, 쿠웅.

발소리가 땅을 울렸다.


진동이라면 지긋지긋한데, 아무래도 놈들이 가까이 다가온 것 같다.


그런데 하필 이럴 때, 머리가 쑤실 듯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자기 눈을 적당히 쓰라는 환마의 목소리인가.

타이밍 한번 거지 같네.


“환.”


드드득 소리를 내며 향막대가 땅과 마찰했고, 순식간에 연기와 향이 일대에 빠르게 퍼졌다.


세인이라는 여자는 어차피 방독면을 쓰고 있어서 향연기로는 환술을 걸기 힘들겠지만, 블랭커를 조종한다고 했으니 그들은 억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원래도 소음 아줌마 때문에 예민했던 청력이 라티가 준 물약 덕분에 더 예민해졌다.


이 발소리는···

대여섯 정도가 아니었다.

상당히 많은 숫자.


쿵, 쿠웅.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습이 드러났다.


땅을 울리는 진동의 정체는 역시 거대한 블랭커들의 발소리였다.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나 많이···

블랭커를 조종하는 여자라더니, 어디서 저렇게 많은 수를 끌어모은 건지 물량에서부터 압도되었다.


거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놈들은 없었지만, 그래도 여태 본 것들보다는 어느 정도 신장이 컸다.


저벅저벅.


“세인 님!”


풀을 밟으며 가볍게 걸어오는 세인.


아니, 걸어오고 있는 건 세인이 아니었다.

말처럼 생긴 블랭커를 타고 있다.


모양이 말일 뿐이지, 얼굴과 팔다리는 다른 블랭커들처럼 생긴 게 여간 징그러웠다.


그녀는 여전히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저 안의 눈만 마주칠 수 있으면 어떻게든 될 텐데···’


내 생각에 저 방독면은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것 같다. 악마의 눈조차 막을 수 있는 무언가로 이루어진.


쿵, 쿵, 쿠웅.


수많은 블랭커들이 발걸음을 멈춘 것은, 그들이 둥그렇게 나와 라티를 둘러싸고 있을 때였다.


향막대를 꽉 쥐었다.


모텔에서 몇 번 휘두르면서 연습한 게 전부라서 이걸로 어떻게 싸워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금 가진 게 이것뿐이잖아.


“왜 이분을 따라갔죠.”


세인이 라티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 그게··· 세인 님. 이 자식이 저한테 이상한 걸 걸었어요! 세인 님처럼 보이게 속여서 저를 유린하려고!”


마지막 단어가 어째 좀 거슬린다.


“역시 환영술 쪽인가요. 당신을 찾으려고 블랭커들을 보냈었는데 어쩐지 소식이 없어서 이상하다 싶긴 했어요.”


“날 왜 찾아?”


“이 자식을요···?”


라티도 날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길게 말씀드리는 것보다는···”


스윽.

세인이 쥐고 있던 지팡이를 올려 들었다.

저걸로 블랭커들을 조종하는 건가.


“잠깐!”


휘익.


“···저자를 붙잡으세요.”


아니, 보통 이러면 잠깐 멈칫하고 뭐 때문인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냐?

세인은 날 무시하고 블랭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넌 방독면을 써서 안 통할지 몰라도, 향연기로 블랭커는 막을 수 있어···’


터억!


그래야 하는데, 키가 큰 블랭커 한 놈의 손에 붙잡혔다.


설마.


“마, 마안!”


눈 주위의 핏줄이 꿈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자식 팔이 없는 것처럼 보이게···!”


그런데 환마의 눈인 마안만큼은 먹혀야 할 평범한 블랭커가 손에서 날 놓지 않는다.

물약 덕분에 아프지는 않았지만.


“아니, 왜···”


지금까지 마안을 쓴 환술에 걸리지 않은 건 없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지옥 NEW 3시간 전 2 0 9쪽
16 어린 동료가 생겨버렸다 24.09.17 4 0 10쪽
15 낙하 24.09.16 7 0 11쪽
14 N과 혈석 24.09.15 8 0 11쪽
13 괴력의 아이 24.09.14 10 0 11쪽
» 그들을 조종하는 여자 24.09.13 11 0 11쪽
11 방독면을 쓴 사람들 24.09.12 11 0 11쪽
10 소음 제거 24.09.11 12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5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1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5 1 12쪽
2 쓰레기 24.09.03 40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