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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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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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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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망했어 (2)

DUMMY

“끄아아아!”

“꺄아아악!”


사람들의 비명이 도시의 밤공기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창백한 피부의 괴물들이 거리를 뛰어다니며 도망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있었다.


도로는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부딪혀 망가진 차들, 어디선가 들려오는 폭발음, 괴물들에게 붙잡혀 몸이 파헤쳐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명.

그리고 공포에 얼어붙어 멍하니 서 있는 사람들.


우리 동네를 배경으로 한 한편의 지옥도 그 자체였다.


“키아악!”


순간 한 놈이 눈치챌 틈도 없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앙상한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번뜩였다.


“엇!”


터억!

나도 모르게 쥐고 있던 막대로 놈의 공격을 막았다.


이것도 무슨 악마의 힘 그런 건가?

원래의 내 약해빠진 근력과 반응속도라면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


막대의 심지에서는 아직 향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머리가 뚫린 것처럼...!’


그렇게 집중하며 막대를 이마에 콱 찔렀다. 당연히 내 힘으로 깊숙이 박아 넣기에는 역부족이었지만, 그래도 놈의 입을 향 연기로 가득 채우는 데에는 성공했다.


놈에게는 이 막대가 머리를 뚫어 뒤통수로 나온 것처럼 보일 것이다.

환술이 제대로 먹혔다면 아마 고통도 온전히 느낄 테고.


“께에에에···”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놈이 푹 쓰러졌다.


그 너머로 엄청난 수의 흰색 괴물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번엔 지체하지 않고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뛰었다.


거리를 뛰는 내내 미처 도망가지 못한 사람들이 놈들에게 잡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보였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이리저리 베이고 이마가 파여지는 끔찍한 광경.


“허억···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평소에 운동 좀 해둘걸.

도저히 숨이 차 더 이상 뛰지 못하겠다.


놈들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데.

포기하면 편하려나, 그냥 다 놔버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파지직!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둥그렇고 빛나는 공간이 별안간 나타났다.


안쪽으로 보이는 것은, 이끼가 끼고 넝쿨이 빌딩을 뒤덮은 황량한 도시.

비슷하면서도 다른 세계가 저곳에 들어가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혼란과 공포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이곳과는 다르게 고요해 보였다.


마치 대놓고 들어오라고 말하는 듯, 지직거리며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뻔한 함정처럼 말이다.


뒤를 돌아봤다.

내가 살고 있던 도시는 이미 하얀 괴물들의 사냥터가 되어버렸다.

놈들이 온갖 건물들과 차체 위로 날뛰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군대가 온다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것도 지금 당장 안전한 곳으로 피해 살아남았을 때의 이야기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죽게 된다면 자연사를 택하고 싶었다.

머리가 파먹히면서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눈앞의 저 타원형 스파크만이 지금 당장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놈들이 마른 손을 뻗으며 점점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고민하다가는 저것마저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선택지는 없었다.

저곳으로 뛰어들 수밖에.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이상한 게이트 같은 것이 있었던 자리에는 무엇 하나 없었다.


엄청난 키의 흰색 괴물들과 아비규환으로 가득했던 거리와 사람들 역시, 원래 없었던 것처럼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여긴 어딘데...”


서늘한 바람에 몸이 떨려왔다.


내가 넘어온 이곳은 버려진 도시의 일부처럼 빌딩들과 건물들이 식물 같은 것들로 뒤덮여있다.


마치 세계의 종말 후에 자연이 되살아난 듯한 모습. 예전에 언뜻 본 다큐에서나 본 것 같은 풍경.


도심 건물의 창문들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군데군데 거미줄과 먼지가 뒤엉켜있었다. 그것들이 바람에 힘없이 하늘하늘 날렸다.


길가에는 녹슬고 버려진 차량들이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 위로도 식물들이 자리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니, 정처 없이 걸었다.


멍하니 앞만 보며 걷다 보니 문득 눈물이 왈칵 고였다. 내가 살던 곳 일대가 놈들에게 점령당한 것 같은데, 그러면 가족들도 무사하지는 못하겠지.


연을 끊었다고는 해도 생각이 날 수밖에 없나보다.


나에게 이 마안과 향막대를 준 누군가는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건가.



'그러면 그 괴물들이 들이닥쳐서 멸망해 버린다고 말이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니냐고.'


꼴에 아픈 건 싫어서, 살고는 싶어서 다 버리고 무작정 이곳으로 뛰어 들어와 버렸다.


가끔 이 세상엔 나 혼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정말 현실이 되어버렸다.


괜한 설움에 눈물이 한줄기 주륵 흘러내렸다. 보고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바로 스윽 닦아냈다.


“그래서 지금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막대를 꽉 잡으며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 게이트를 넘어 이곳으로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터벅터벅 걸으며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일단 이 주변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풍경 자체가 다 쓰러져가는 건물들과 그것을 덮고 있는 식물들, 그리고 쌀쌀한 바람들 뿐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일까, 착각인 줄 알았다.

멀리서 보인 저 하얀 빛이 처음에는 편의점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가까이 다가가 그게 맞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루 24시간 중 어느 때라도 마음 편하게 갈 수 있는 편의점이란 게 이렇게 반가운 것인 줄 몰랐다. 홀린 듯이 자동문 앞까지 걸어갔다.


“문을 깨뜨려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스윽.


자동문 앞에 서자 문이 자연스럽게 열렸다.


“뭐야···”


경계하며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내부에 별다른 인기척은 없어 보였다.

평범한 편의점처럼 보이긴 했지만, 신기한 점은 진열장에 물건들이 꽉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걸 누가 다··· 전기도 들어오고···’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이 앞서 생수 하나를 꺼내 거칠게 뚜껑을 열고는 목구멍에 들이부었다.


“후아··· 좀 살겠다.”


특별한 점을 찾지 못해, 매대에서 커피를 하나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편의점 밖에는 테이블과 의자도 있었다.


몸에 힘이 쭉 빠져 그대로 털썩 앉았다.

차가운 바람만 평화롭게 스쳐 지나갔다.

이런 곳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지 생각도 못 했었는데.


“참···조용하네...”


낯선 곳이지만 조용하다는 점이 왜 또 좋다고 생각된 건지.


그렇게 커피로 당 충전을 하며 어느 정도 쉬었다고 생각될 때쯤, 자리에 일어나 무언가 더 보이는 게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뭐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20분쯤 걸었나,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이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결론짓고 더 어두워지기 전에 잘 준비를 하기로 했다. 지리도 모르고 마땅히 갈 곳도 없었다.


괜히 전기가 들어오는 편의점에서 벗어났다가 봉변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다.


편의점 밖의 날씨는 서늘했지만, 내부는 적당한 온도로 아늑한 느낌마저 들었다.

거기에 샌드위치로 대충 때우긴 했어도 어느 정도 포만감이 들어 노곤함이 밀려왔다.


창고 의자에 앉자마자 눈이 서서히 감겼다.



***



눈을 뜨자마자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등줄기에 기분 나쁘게 달라붙은 옷이었다.

급히 밖으로 뛰어나와 편의점 주변을 살폈다.


이미 한참 어두워진 새벽.

시계를 찾긴 했지만, 초침이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니 고장 난 모양이다.


“후우···“


천천히 심호흡해 보긴 했지만 불안함이 쉬이 가시진 않았다.


새벽 공기는 잠들기 전보다 훨씬 더 차가워졌고, 여전히 인기척 하나 들리지 않았다.


“진짜 여기서 살아야 되는 거냐고···”


그렇게 좌절하고 있는데,


쩌적.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있는 거라곤 편의점 하나만 덩그러니 놓인 이 휑한 거리 한가운데에서 별안간 희고 푸른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 균열을 깨고 좁은 틈으로 마른 손가락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아씨, 제발···”


이제 겨우 한숨 돌렸나 싶었는데.

저놈들을 피해서 생판 모르는 곳에 무작정 와버린 건데.


일단 몸을 숙였다.


드드득.


“환...”


바닥을 그으며 중얼거렸다.


이 순간에 사용법이 기억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닥이 이런 재질인데도 심지에 불꽃이 약하게 일어났고, 연기가 빠르게 편의점을 가득 채웠다.


‘내 모습이 안 보이게···’


나름의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편의점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어.”


유리창 바로 맞은편에 한 놈이 얼굴을 밀착하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


몸이 굳어버렸다.

몇 번 봤다고 적응될 수 있는 외모가 아니다, 이것들은.


그런데 놈을 자세히 보니 미간에 무언가 불룩한 것이 이리저리 움직여댔다.


‘눈···?’


그러니까 겉으로 드러나진 않았어도 존재하긴 했으니 내 마안에 마주칠 수 있었던 건가.


콰앙!


놈들이 거칠게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자동문으로 친절하게 들어올 리는 없긴 하지.


서둘러 창고 안쪽으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그런데 연기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흐읍, 흐으읍.”


어디선가 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무언가를 열심히 빨아들이는 듯한 소리.


문을 살짝 열고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저 미친놈이···!’


자세히 보니, 다른 놈들보다 입이 심하게 작은 흰색 인간 놈 하나가 보였다.


놈이 그 작은 입을 옹졸하게 모으며 연기를 흡입하고 있었다.


“후웁! 흐우웁!”


대체 저게 무슨 흡입력인지, 편의점 안의 연기를 혼자서 죄다 빨아먹고 있었다.


외관만 비슷하고 능력이 다른 놈들도 있다는 건가?


뭐가 됐든 저 흡입 속도면 몇분도 채 되지 않아 다른 놈들이 환술에서 풀려나 버릴 것이다.


‘빨리 다시 그어야 돼···!’


향막대를 꽉 잡고 바닥에 그으려는데,


“화···”


콰앙!


창고 문이 열리고, 순식간에 놈의 손에 몸이 붙잡혀버렸다.


망연자실한 눈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려다보았다.


놈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로 나를 내려다봤다.


이빨만 수십 개는 달린 것 같은 입을 죽 찢으며 벌리고 있었다.


퍼억!


“우욱!”


괴물이 주먹을 내질러 배를 꽂았다.

극심한 통증에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커억···”


숨을 제대로 쉴 새도 없이 목이 잡혀 들어올려졌다.


나도 꼼짝없이 그 윗집 아저씨처럼 머릿속을 헤집어지는 건가.

아프게 죽는 건 싫다고!


“후우···”


겨우 숨을 토해냈다.


놈에겐 분명히 눈이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놈의 미간 불룩한 곳을 바라보며,


“마···마안!”


동시에 두 눈에 강하게 힘을 주고 최대한 집중했다.


“파, 팔이 없어진 것처럼···!”


스르르.


쿠웅!


놈의 손아귀에서 힘이 확 빠지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흰색 괴물은 혼란스러운 듯 가만히 선 채로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순간 폭풍처럼 강한 두통이 휘몰아쳤다.

머릿속에 번개가 치는 듯한 고통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아아악...!”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역시 그렇게 무리해 놓고 마안을 또 쓴다는 건 안 된다는 거겠지.

쪽지에 주의하라고 했던 것이 아른거렸다.


향막대가 눈앞에 보이긴 했지만, 도저히 집어서 땅에 그을 수 있을 만한 힘은 없었다.


“으으윽···!”


누군가가 머리를 사방에서 바늘로 찔러대는 듯이 아팠다.

바닥에 누워 허리를 굽힌 채 머리만 붙잡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타닥.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번엔 진짜 죽는 건가···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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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5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8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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