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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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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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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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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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제거

DUMMY

“아.”


맞다, 그 할머니가 있었지.


아까 어떤 아저씨가 할머니를 구석으로 잠시 데려갔던 것이 기억났다.


다행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구석에서 약과를 오독오독 씹어먹고 있었다.


“또 머리 맞을지도 모르니까···”


거리를 살짝 두고 막대를 그었다.


“환.”


연기가 피어오르고, 향이 빠르게 퍼졌다.


어떻게 해야 할머니의 간헐적인 분노를 줄여줄 수 있을까.


잠시 고민해 보다가, 김찬이 처음 할머니에 대해 말했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블랭커한테 당했거든요. 할머니 아들.'


그렇게 말했었지.


환술에 집중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할머니에게 누군가가 다가갔다.


“어머니.”


할머니는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 먹고 있던 약과를 힘없이 툭 떨어뜨렸다.


“아이고, 어이고, 세상에···”


할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춘배야, 우리 춘배 맞지···?”

“저 왔어요.”

“아니, 너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할머니가 나를 꼬옥 안아주셨다.


이분에게 지금 제일 필요한 건 아무래도 아들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훅 다가온 따뜻함에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런 것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잠깐 인사드리러 왔어요. 다시 일하러 가봐야 돼요.”


“어딜 또 간다그려, 이눔아! 이 애미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꼭 붙어서 같이 살어야지!”


“내가 우리 어머니 약과 한 박스 사 오려고 그러지~”


“그런 거 필요 읎어, 가지 마, 으응? 가지 말어···”


“엄마, 울지 말고 또 올 테니까 밥 챙겨 먹고 건강히 있어야 돼. 다른 사람들 막 때리고 그러지 말구!”


“흐윽... 이 못난 것아,대신에 빨리 와야 혀... 알겠지?”


할머니가 소매로 눈물을 쓱 훔쳤다.

그 손에 약과를 살포시 쥐여 드렸다.


딱하긴 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 밖에 없었다.


지금의 내 환술로는 아들을 영원히 보이게 해줄 수 없기도 하고. 아픈 기억을 안고 남은 생을 살게 되실 것 보다는 낫겠지.


그래도 살며시 웃고 계시는 것을 보니 가슴 속 깊이 묵은 것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신 것 같다.


짧은 환상이었지만 오래도록 남을 위로가 되었길.



***



쓸데없이 많은 계단을 겨우 올라와 지하철 플랫폼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고 에스컬레이터고 되는 게 없으니까 진짜 불편해 죽겠네···”


새삼 그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괴상한 식물들이 뒤덮인 빌딩 숲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아암··· 이제 어디서 지내지.”


입이 찢어져라 하품하며 혼잣말했다.


“어디서 지내긴, 우리 집에서 지내야지, 응?”


익숙하지만 순식간에 기분이 더러워지는 목소리가 뒤통수에서 들렸다.


윗집 소음 아줌마가 또 어디서 튀어나왔다.

저 면상 보는 것도 이젠 지겹다.


“얼굴에 묻었던 건 좀 잘 닦으셨어요? 아직 좀 냄새나시는 거 같은데.”

“저, 저 싸가지 없는··· 동하야, 가서 저거 얼른 데려와!”


본인이 하면 될 것을 또 어린 아들을 시킨다.


“웅? 형아가 어딨어?”

“어딨긴! 저 바로 앞에 있는데 안 보여? 저기 있잖어!”

“없눈데...”


아줌마는 고개를 홱 돌리더니 표독스럽게 날 쳐다보았다.


“너 또 우리 애한테 뭔 짓거릴 쳐 해놨어!”

“···”


말없이 쳐다봤다.

동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걔가 나 볼 때마다 걷어차고 소리 지르고 문에 낙서해 놨던 건 알아?”

“주둥이 다물고 대답이나 혀, 뭔 짓 했냐고!”

“뭐 별다른 거 안 했는데.”


아줌마는 동하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응, 그래··· 안 보이게 한 거구나.”

“아줌마는 대체 어떻게 살아남은 거예요? 윗집 아저씨가 죽은 건 확실히 봤었는데, 되게 끈질기시네.”

“나는, 나는 우리 오르디 님께 선택 받은 거라고!”


갑자기 감격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제정신이 아닌 건 알고 있었다.


드으윽.


“환.”


연기가 피어났다.


저 아줌마도 귀찮으니 여기서 끝을 내야겠다.


“또 뭔 허튼짓을 하려고!”


아줌마가 주춤하더니 과도를 쥐고 자세를 취했다.


“발밑 좀 보세요.”

“뭐?”


아줌마가 내 말을 듣고 발밑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 이게 뭐여···”


얇디얇은 얼음이 아슬아슬하게 얼어붙어 있는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아줌마가 놀라 뒷걸음질 치자 그 자리에 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어났다.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면 호수에 빠질 것만 같았다.


“엄마마마!”

“조심하세요. 깨져서 빠지시면 어떡하려고.”

“또 이상한 짓 했네, 이 개놈이!”


벌게진 얼굴로 달려들려고 한다.


“다시 자세히 보세요. 뭐 더 있잖아요.”


내 말에 아줌마는 잠시 주춤거리더니 다시 시선을 발밑으로 내렸다.


“우아아악!”


얼음 지면 아래로 등짝이 넓은 상어 한 마리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놀란 아줌마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을 더 옮겼다가 균열이 나뭇가지처럼 퍼졌다.


“안돼, 안돼!”


아줌마는 겁에 질려 주체할 수 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중심을 겨우 잡았다.


“엄마아! 왜 그래?”


자신의 옆에서 몸이 굳어버린 채 질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의 표정을 본 동하 역시 겁에 질려버렸다.


“가만히 있어! 움직이지 마!”


저 애 눈에는 이 광경을 보이지 않게 했지만 그걸 아줌마에게 굳이 알려주진 않았다.


“이, 이건 가짜여, 가짜! 내가 헛것을 보고 있는 거여!”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환술에서 빠져나오진 못할 것이다.


내 추측이지만 아무래도 이 환술이라는 거, 뇌를 직접 자극해서 없는 것을 실제처럼 경험시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보통 정신력으로 환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긴 여간 쉽지 않겠지.


가만히 앉아 있다가 어느 정도 쉬었다고 생각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아보는데,


“어딜 가려고! 도와줘야 될 거 아냐!”


아줌마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앞으로 조심히 좀 걸어 다니세요.”

“뭐시여!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빨리 어떻게든 도와줘 봐!”

“맨날 하시던 것처럼 쿵쿵대면서 다니시면 그대로 상어 밥이 될 거에요.”

“야!”


어떻게 살아남게 된 건지 궁금하긴 했지만, 저렇게 흥분한 상태에서 제대로 말해줄 리 없었다. 갚아줄 건 갚아줘야지.


옆에서 동하가 떨고 있었다. 하긴 자기 엄마가 잔뜩 화가 난 채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침을 튀겨대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슬슬 발걸음을 돌리려는데,


“총각, 총각! 알겠어, 알겠으니까, 동하라도 데려가 줘, 그럼!”

“어디로 데려가라는 거에요?”

“여, 여기 근처에 우리 집 있으니까, 우리 아들만이라도 좀 거기 데려다줘, 제발!”

“어차피 걔한테는 얼음 바닥으로 안 보일 거에요.”

“그게··· 정말이여?”


이것도 내 나름의 마지막 배려였다.


“그럼···”


몸을 돌렸다.


“동하야.”


뒤통수 너머로 아줌마가 속삭이는 것이 들렸다.


“흑..흐윽..웅?”

“앞으로 뛰어.”

“으웅?”

“저 방향으로 뛰라고. 엄마한테 되묻지 마. 앞으로 쭉 뛰다가 걸리는 게 있으면 그대로 죽여.”


저게 대체 무슨 대환가 싶어 뒤를 돌아봤는데,


두두두두!


꼬맹이가 눈을 부릅뜬 채로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분명히 보이지도 않을 텐데 정확히 내 쪽을 향하고 있다.


“뭔데···!”

“크아아아!”


동하가 온몸에 핏줄이 솟은 채로 달려들었다. 징그러운 치아들이 입안으로 적나라하게 보였다.


“잡히는 대로 그냥 막 뜯어버려!”


아줌마가 소리쳤다.


지이익!


“화, 환!”


연기가 솟아올랐다.


퍼억!


동하가 거칠게 내 미간에 손톱을 넣은 채로 파헤치더니, 이내 붉은 구슬을 꺼냈다.


“구슬이다, 구슬!”


신나서 방방 뛰기까지 했다.


‘더 심한 환각을 보여줄 수도 있었지만···뭐, 귀찮으니까. 이 정도로 해둬야지.’


어린아이긴 한가보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이 환각에 불과하다는 것도 모를 것이고.


“야, 이 멍청아! 저기 도망가잖아, 저기!”


아줌마가 유유히 걸어가는 나를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웅? 엄마, 동하가 여기 이케 구슬 찾았는데?”

“저 띨빡이 진짜···”


아줌마는 여전히 자신 발밑의 균열을 바라보며 혹시라도 깨지진 않을지 조마조마한 모습이었다. 저 상태로는 더 이상 움직이진 못할 거고...


“야, 302호! 어딜 그냥 가!”


쩌저적.


“허···”


콰앙!


얼음으로 뒤덮인 지면이 깨져버리고, 아줌마가 그대로 풍덩 빠져버렸다.


“어풉, 어푸, 사, 살려줘!”


누군가가 저 모습을 보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맨땅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곧 물이 폐에 차오르고, 상어에게 잡아먹히는 경험을 하게 되겠지.


누군가 저들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물어본다면 글쎄, 그렇지는 않다. 저들은 순전히 유희를 위해 지하에 사는 사람들을 가지고 놀았기도 했으니까. 자업자득일 뿐이다.


“헤헤, 빨강 구슬!”


악을 쓰는 윗집 아줌마와, 존재하지도 않는 구슬을 들고 기뻐하는 아들놈 동하.

둘을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후···”


아무리 향막대만을 이용해 환술을 썼다지만 내 정신력과 링크되어 있는 모양인지 피로가 몰려왔다.


꽤 걸었는데도 아줌마의 비명이 조그맣게 들렸다. 환청이라도 생겨버린 건지. 저 둘이 이제 어떻게 될 지 따위는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잠깐 자고 나면 다 잊어버리게 되겠지.

이런 건 버릴 기억이다.


내 나름 받은 대로 돌려줬다.

저들에게 죽은 사람들 것까지.

내가 느꼈던 무력감이나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모자, 얼굴이나 옷차림의 위생 상태가 썩 나빠 보이진 않았었다. 아무래도 그 편의점처럼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또 있는 모양이다. 그건 랜덤이거나, 정해진 곳만 그런 건가?

여긴 도대체 어떤 세계인 거야.



***



길을 걸으며 도처에 깔린 블랭커들을 마주했다.


크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생식기가 없었고, 나체로 다니며 이목구비 중 입만 있다는 점은 대부분 같았다. 앙상한 팔다리와 날카로운 손톱도 그랬다.


간간이 길가에서 부패해 가고 있는 시신들이 많이 훼손되어 있기도 했었지만, 지금까지 놈들이 했던 행동들로 보아 이 블랭커란 놈들의 진짜 목적은 사람들의 미간 위쪽에 있는 작고 붉은 구슬을 먹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뇌 같은 것도 아니고 빨간 구슬이라니.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


나도 있겠지.

괜스레 이마를 쓱 문질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김찬네처럼 블랭커들을 피해 지하로 숨어버렸을까, 아니면 전기가 들어오는 장소들을 찾아 정착했었을 수도 있겠다.


향막대를 계속 땅에 끌며 다녔다.

향과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


덕분에 블랭커 놈들 다리 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지나칠 수 있었다.


윗집 아줌마나 묻지마 폭행범을 마주쳤을 때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지만, 이제 마안은 꼭 필요한 곳에 써야 했다.

또 조절에 실패해서 길 한복판에 무방비로 쓰러져있을 수는 없으니까.


지금 이 도시는 블랭커들이 점령한 것 같기는 해도, 일정한 곳에 모여있는 것 같았고 그 지점만 벗어나면 수가 줄어있는 것이 보였다.


눈앞에 보인 다 쓰러져가는 대형마트 주변이 그랬다.

블랭커 몇몇만 팔을 늘어뜨린 채 걸어 다닐 뿐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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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N과 혈석 24.09.15 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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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음 제거 24.09.11 11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5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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