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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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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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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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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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력의 아이

DUMMY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붙잡은 손을 꽉 죄어 내 몸을 터뜨린다는가 그런 것은 없었지만 놈은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이리 데려오세요.”


세인이 지팡이를 슥 휘두르며 말했다.


“음?”


“그으으으···”


놈이 몸을 떨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손을 놓지도 않고.


예상컨대 마안의 힘과 세인의 조종, 그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분명 자신의 눈에는 두 팔이 없는 것으로 보일 텐데, 동시에 세인이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기도 해야 한다고 뇌에서 명령을 내리고 있는 셈이니까.


그러고 보니 마안의 힘뿐만이 아니라 환술의 힘을 담은 향연기도 흡입했을 텐데. 저 여자, 악마랑 견줄 정도의 힘이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저 여자도 악마랑 계약이라도 했다는 건가.


“역시 일렌 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삿 힘은 아니군요.”

“으윽···”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은 침착한 말투였다.


마취가 풀리는 것처럼 점점 고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벌써 그 흰 물약을 먹은 지 1시간이나 지났다고.


“이대로 몸을 터뜨려버릴 수도 있긴 하지만 그러기에는 조금 아까운 생각도 들어서요.”


대상과 눈을 마주쳐야만 마안이 통한다는 것도 알아챈 모양인지 어느새 주위의 다른 블랭커들을 내 시야에서 벗어나게 했다.


“어차피 죽일 거면 대답이나 해줘. 네가 서울을 그렇게 파괴한 거냐?”

“서울···? 그런 이름이 있었던가. 워낙 돌아다닌 곳이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세인 님. 여기 이 행성에 있는 작은 도시를 말하는 거에요. 엄청 오래전에 있던···”


여전히 넝쿨에 몸이 속박되어 있는 라티가 끼어들었다.


잠깐만, 이 행성에 있는 도시라고···?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른 지하인들처럼 시간선을 거슬러 오신 분이란 거군요.”


마치 외계인이 말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아니, 잠깐만. 그럼 여기가 지구라고···?”


물론 여태 지나오면서 지하철이나 편의점 같은 것들이 너무 익숙하고, 언어도 한국어로 되어있어 이상하긴 했지만.


그 게이트가 공간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시간까지 역행되는 것이었다고?


“대체 왜? 공격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이유야 있지만,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 같군요.”


스윽.

세인이 또 한 번 지팡이를 가볍게 움직였다.


터억!

그러자, 내 뒤통수 너머에 있던 블랭커들이 하나둘 손을 모아 내 몸을 붙잡았다.


“으윽!”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으시다면 사원으로 데려가 드리죠. 그게 아니라면 저희는 여기서 마무리 지어야 할 것 같네요.”

“죽여버려요, 세인 님!”


라티가 신난 것처럼 말했다.


언제는 자기도 날 포교했었으면서!


“운 좋게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지하인에게 여기 힐리오스는 지옥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세인은 그런 라티를 흘끗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힐리오스는 또 뭐야.”

“이 행성의 이름이죠.”


그새 이름이 그렇게 바뀌어 버린 거냐.


“당신의 그 능력으로 저희와 함께 오르디 님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 쓰는 것이 더 값지지 않을까요.”

“평생 무교로 살 거거든.”

“그게 대답인가요.”


스윽.


“으으윽!”


세인이 또 블랭커를 조종해서 내 몸을 옥죄게 시켰다.


온몸이 짓눌리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무래도 약효가 다 한 것 같은데.


“힐리오스에 오기까지 고난이 있으셨군요.”

“뭐? 윽!”


별안간 날 붙잡고 있던 블랭커들의 손이 움직이더니 세인의 코앞까지 이동했다.


방독면을 쓴 여자가 내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저것만 없었으면 벌써 당장 어떻게 해버렸을 텐데!


“저는 마음을 읽는 능력까지는 없지만, 그 눈빛을 보니 알 수 있겠어요.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군요. 마음속 깊이 뿌리 박혀서 쉽게 빠지지 않는 기억들이··· 그 눈에 악마가 보이지만, 너무나도 힘이 없어요. 잠재력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보여요.”


“···갑자기 뭔 쓸데없는 소리야.”


“힐리오스에 오기 전, 지구라는 곳에 있던 당신은 왜 그렇게 불행했을까요. 왜 당신에게만 그런 우울한 일들이 일어났을까요. 왜 당신만 세상 구석에 박혀서 외롭게 지냈을까요.”


“뭔 소리냐고, 갑자기.”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다른 자들은 우리 블랭커들의 양분이 되었지만 당신은 살아남아 이곳 힐리오스까지 왔죠. 거기엔 무슨 이유가 있을까요?”


“내가 알아? 그냥 게이트가 눈앞에 열린걸.”


너무 대놓고 도망치라는 듯이 떡하니 열려서 좀 찝찝하긴 했었지만 그땐 선택지가 없었잖아.


“그래요. 왜 당신의 눈앞에 게이트가 열렸을까요? 그건 저희가 열어준 글리치라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당신은 위대하신 오르디 님의 선택을 받은 자라는 겁니다.”


또 그새 포교질을 하는 건가.

그래봤자 길에서 붙잡는 사람들도 가볍게 무시하면서 다녔었던 난데 그딴 허무맹랑한 얘기에 누가 넘어간다고.


“보아하니 주어진 능력의 절반도 못 쓰시는 것 같은데, 저희와 함께 가시면 숨어있는 잠재력을 폭발시켜 더 강한 힘으로 탈바꿈시켜 드릴 수도 있을 거에요.”


그건 솔깃하긴 한데, 거절하면 분명히 죽인댔지.

이건 그냥 강제잖아.


“저희 신도인 라티도···”


세인은 혼자 우뚝 서 있는 라티를 흘끗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의 도움을 받아 오르디 님의 가르침으로 하여금 스스로 행복을 발견한 아이죠.”


꾸벅.

라티는 세인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자, 더 이상 권유드리진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실 대답은?”


“어?”


잠깐만, 근데 이 여자 너머로 보이는 저 조그만 건···


“왜 그러시죠?


“너···”


저 꼬맹이가 왜 여기에.


“찾았다, 쓰레기!!!”


귀여운 멜빵을 입은 유동하.

소음 아줌마의 아들놈이 조그맣게 보였다.


“아니, 너 어떻게 온 거야?!”


“헤헤, 쓰레기 형아. 찾았다, 찾았다!”


환마, 이 자식 일 제대로 안 하나.

왜 환술이 풀려버린 거냐고.


분명히 저 꼬맹이한테 내 모습이 안 보이게 걸었었는데!

자력으로 풀었을 리는 없고.

누군가 도와주기라도 한 걸까.


대체 악마라는 자식이 눈만 빌려주고 마는 게 어딨어.

계약을 했으면 한 번쯤은 모습을 드러낼 법도 하잖아.


“저 아이는 누구죠.”


세인이 내 시선을 따라가더니 동하를 발견했다.


잠깐, 어찌 보면 이건 기회일 수도.

저 애까지 이 여자와 한패라면 낭패겠지만 지금은 도박을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쓰레기 형아, 이상한 사람들한테 잡혀있어!”


동하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어디서 온 아이지. 아는 아인가요?”


세인이 물었고,


“마안···”


혹시라도 들릴까 싶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유동하한테 자기 엄마로 보이게···!’


“으에?”


동하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엄마아···”


방금 자기 눈앞에 있던 내가 사라지고 엄마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건 별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나 보다.


“엄마가 블랭커한테 붙잡혀 있잖아!!!!!”


으, 귀 아파라.

소리는 왜 지르는 거야.


타다닥!

동하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더니,


퍼어엉!


“우왓!”


날 붙잡고 있던 블랭커 여럿의 손을 그대로 터뜨려 버렸다.

그것도 조약돌 같은 주먹 단 하나로.


지금이 기회다.


“도, 동하야! 이 사람들이 엄마 괴롭혀!”


“···?”


동하가 날 빤히 쳐다본다.


이게 아닌가?

앗, 그러고 보니 그 아줌마는 좀 더 고압적으로 애를 대했었지.

깜빡 잊고 있었다.


그래도 세인인 척하고 라티를 속였던 아까보다는 낫겠지만.


“빨리 이놈들 좀 어떻게 하라고! 엄마 말 안 들려?!”


“으앗, 아, 알았어요!”


동하는 그제서야 주변에 있던 블랭커들을 하나둘씩 처리하기 시작했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양쪽 귀를 잡고 가볍게 돌려버리는가 하면, 블랭커들의 이가 다 부서지도록 정면에서 주먹질을 하기도 했다.


“아하···”


가만히 지켜보던 세인이 반응했다.


“꽤 어린 나이에 각성한 아이네요. 저 아이도 같이 데려가겠어요.”


세인이 지팡이를 가볍게 슥 휘둘러 블랭커들을 동원했다.

주변에 있던 블랭커들의 손이 일제히 나를 향해 스윽 다가왔다.


마안도 결국 눈을 마주친 대상에게 사용이 가능할 뿐, 이렇게 많은 수는···


“환.”


드으윽.

막대를 그어 연기를 피웠다.

연기는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웠다.


“그 연기는 소용없습니다.”


세인이 말했다.


알고 있다.

마치 준비라도 한 듯 눈과 호흡기를 전부 막은 그 흰색 방독면.


내 목적은 그게 아니야.

어차피 지금 내 환술로는 저 여자를 이기지 못한다.


아니, 환술은 걸릴 수도 있겠지.

일단 무력이 너무 부족했다.

조금만 더 민첩한 몸이었다면.


그게 아니더라도 당장 달려 나가 방독면을 벗겨낼 결단력이라도 있었으면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동하야, 아이고 엄마 죽는다!”


이 꼬맹이가 대신 해줘야겠다.


“안 돼, 엄마아아!”


동하가 울부짖다시피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야, 나는 학대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애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해친 괴력의 아이라고.


“동하야, 저기, 저 여자가 쓰고 있는 거 있지? 보여? 뭔지 알겠어?”


“어··· 웅, 보여! 이상한 거 쓰구 있어!”


자욱해진 향연기가 여자와 블랭커들의 시선을 흩뜨릴 수 있게 됐다.


“가서 부숴버려.”


“웅!”


쿵, 쿵, 쿵!


조그만 다리에서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동하가 엄청난 힘을 담아서 세인에게 뛰어갔다.


나와 링크된 향막대에게 명령한 것은, ‘모든 것이 새까맣게 보이게 해달라’ 였지만 저 여자의 능력으로 블랭커들이 뛰고 있는 동하의 몸 근처를 휘적거리는 정도에서 그쳤다.


“이야아—!”


“막아.”


세인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블랭커들에게 명령했지만,


펑!

퍼엉!


동하의 작은 주먹이 겹겹이 쌓인 블랭커들의 주먹을 스티로폼처럼 가볍게 뚫고는,


퍼어억!

세인의 방독면을 강타했다.


방독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더니, 이내 부서져 조각들이 사방에 흩어졌다.


부서진 방독면 조각들이 세인의 얼굴을 가르며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세인의 뺨에서 뜨거운 피가 한줄기 흘러내렸다.


"으윽···"


세인이 휘청거렸다.


“잘했어!”


진심에서 나온 칭찬이었다.


“잘했찌!”


저렇게 기뻐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걸 보면 여느 어린애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멸망 전에는 매일 같이 귀를 울리는 층간 소음 코끼리였는데 여기서 이렇게 도움이 될지 누가 알았겠어.


하긴 이런 세상에서 지내려면 어린 애고 성인이고 전력만 된다면 뭐든 상관없다.


“마안.”


눈이나 빌려줘, 이 날로 먹는 악마 자식아.


거울로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눈 주위가 검붉어진 것을 대충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볼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세인을 바라보며,


스으으.


“음···”


주변을 둘러봤다.


블랭커 무리는 여전히 떼로 서 있고, 세인은 피가 흐르고 있는 볼을 부여잡고 있고.


덩굴에 묶여있던 라티는 보이지 않고, 동하도 보이지 않는다.


“서둘러 눈을 감았는데··· 걸려버린 거군요.”


세인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연기가 있으니까. 숨을 안 쉴 수는 없잖아?”


사실 거의 실험에 가까웠다.

어떤 환술까지 가능한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가상의 공간을 만든 셈이다.

온전히 둘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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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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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지옥 NEW 3시간 전 2 0 9쪽
16 어린 동료가 생겨버렸다 24.09.17 4 0 10쪽
15 낙하 24.09.16 7 0 11쪽
14 N과 혈석 24.09.15 8 0 11쪽
» 괴력의 아이 24.09.14 10 0 11쪽
12 그들을 조종하는 여자 24.09.13 10 0 11쪽
11 방독면을 쓴 사람들 24.09.12 11 0 11쪽
10 소음 제거 24.09.11 11 0 11쪽
9 짧은 환상 24.09.10 14 0 12쪽
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5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8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3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7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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