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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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최근연재일 :
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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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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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사는 소년

DUMMY

찰싹.

찰싹.


“뭐야···”


누군가가 볼을 따갑게 때리고 있었다.


철썩!


“아!!”


눈을 확 뜨며 벌떡 일어났다.

볼을 쓸어내리며 고통스런 얼굴을 찡그렸다.


“어? 일어났다!”

“누구···”


눈을 뜨자 지저분한 얼굴을 한 어린 남자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


“왜 때려.”


어려 보여서가 아니라, 내 뺨을 때린 사람에게 존대가 나갈 리가 없었다.


“앗, 죄송해요. 숨은 쉬는 거 같은데 계속 안 일어나길래요.”


남자아이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차가운 바닥이 등에 닿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깨어난 곳은 개찰구가 보이는 낡은 지하철 플랫폼.


‘아니, 그것보다 나, 또 살았다고···?’


분명히 그 흰색 괴물한테 잡혔던 것 같았는데.


“아, 맞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급히 손으로 바닥을 훑으며 이리저리 더듬어댔다.


“뭐 찾는 거 있어요?”

“그, 왜 나무 막대 같은 거 없었어?”

“글쎄요? 못 본 거 같은데.”

“네가 나 구해준 거 아니야?”

“아, 아뇨. 여기 누워계시길래 위험해 보여서 깨우고 있었어요.”


하긴, 언뜻 보아도 작은 체구의 아인데, 얘가 그 흰색 괴물 놈한테서 나를 구했겠어.


그러면 누구지?

쪽지를 보냈던 사람이 또 날 구해준 건가.


다행히 심각하게 다친 곳은 없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 어디 가세요?”

“찾으러 가야 돼.”

“아까 말한 나무막대요? 밖에 블랭커들이 깔려있는데 그런 걸 찾으러 나간다고요?”

“그래서 찾으러 간다는 거야. 별다른 무기 같은 것도 없으니까. 왜, 도와주게?”

“도와줄 수는 있죠. 근데, 그게 뭐길래요?”


남자애가 날 빤히 쳐다봤다.

잠시 고민해봤다.


“그냥 중요한 물건이야.”


누군지도 모르는데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다시 물었다.


“근데, 아까 뭐라고? 블랭커?”

“네.”

“그걸 그렇게 부르나 보네.”

“네···? 혹시 어디서 온 거에요? 블랭커라는 것도 처음 들으시는 것 같고, 어쩐지 상태도 좋아보이시는데···”


실수했다.

대충 아는 척했어야 되는 건데, 향막대에 대해 얼버무리려다 보니.


“저눔이여!”

“응?”

“저눔때문에 다 이렇게 된 거여!”


어디서 나온 건지 갑자기 웬 할머니가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머리는 이리저리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고 차림도 허름했다.


“···저 아세요?”

“그려! 네 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거 아녀! 이 썩을 눔아!”


뭐가 나 때문이라는 건데.


당황스러워 남자애를 쓱 쳐다봤다.


“할머니, 진정하세요.”

“아는 분인가 봐.”

“아, 네. 그러니까···”


할머니는 남자애의 손을 확 뿌리쳤다.


“아이고, 이것 놔! “


그러고는 격앙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눔이, 응? 이눔 때문에 저 허연 구신 놈들이 쳐들어온 거 아녀!”

“할머니, 그게 무슨··· 진짜예요, 형?”

“아니, 내가 뭘 불러냈다는···”

“네놈이 마귀랑 응? 합세해갖구 그런 거 아녀! 아이고, 난 모른다, 난 몰라!”


설마 환마와 계약한 걸 말하는 건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약 자체도 어디까지나 강제였다.


그게 뭘 했든 난 모르는 일이다.


“뭔가 좀 오해하신 거 같은데, 전···”

“아니, 근데 이눔이!”


할머니가 내 팔을 철썩 때렸다.


“아, 할머니 좀 가만히 있어 봐요!”


남자애가 말려는 봤지만, 할머니는 흥분이 쉽사리 가시질 않는 모양이었다.



***



자신의 이름을 ‘김 찬’이라고 소개한 남자애가 지하철역 구석으로 날 데려갔다.


“그게, 할머니가 조금 아프셔서요. 기분 나쁘셨어도 이해해 주세요.”

“그래?”

“블랭커한테 당했거든요. 할머니 아들.”

“아...”

“형, 그래서 아까 말하다 만 거요. 그 막대가 뭔데요?”


할머니의 난입 때문에 잊어버린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너부터 말해줘. 블랭커는 뭐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뭐야?”

“음, 저도 솔직히 이름만 아는 정도라서.”


김 찬의 말에 따르면, 본인도 그 블랭커라는 것에 대해 그다지 알고 있는 게 많지는 않다고 했다.


내 상황과 비슷하게 다수의 사람들과 함께 게이트를 이곳에 오게 되었고, 그게 몇 년 전이라는 것.


낯선 곳에 와버린 사람들이 무심코 역을 벗어났다가 흰색 인간들에게 이마를 파먹히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블랭커들 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다른 인간들도 있었고, 그들이 역에 있던 사람들을 ‘지하인’이라고 부르며 배척했다고 한다.

블랭커라는 이름은 그들에게서 들었다고.


원래는 인원이 훨씬 많았지만, 아무래도 식량 부족과 질병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았나 보다.


그야말로 그저 힘없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비참한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러면 그동안은 어떻게 버틴 거야? 여기 오고 나서 몇 년이나 흘렀다면서.”

“어, 그건··· 음. 말하기가 좀 그런 부분이라.”


김찬의 표정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내가 생각한 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형은 그 막대가 대체 뭔데 찾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크게 유용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뭐라도 들었으니 나도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일을 대강 설명해 주었다.


“오··· 그러니까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는 거죠, 그게?”


그게 없어도 악마와 계약한 이 두 눈만 있어도 가능하다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어딘가 영 찝찝했다.


“뭐, 대충 그렇지.”


얼버무리는 내 말투가 의심스러운 눈치였다.

그렇다면 맛보기라도 보여줘야 할까.


“너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야.”

“네? 갑자기 그건 왜요?”

“뭐냐니까.”

“그거야 뭐, 지금은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이죠.”

“그런 거 말고, 뭐 먹고 싶은 게 있다든가. 뜨거운 물로 씻고 싶다든가, 그런 거.”


내색은 안 했지만 김찬에게서 꼬질한 냄새가 났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겠지만.


“글쎄요. 일부러 생각 안 하고 지냈는데. 뭐가 있지, 음, 콜라같은 거? 쓰읍.”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모양이다.


“내가 줄게.”

“아, 장난치지 마세요...”

“진짠데.”

“쓰러져 있던 사람이 무슨 콜라예요. 있지도 않은 거 같구만.”


김찬이 내가 어디 가방 같은 것이라도 매고 있는지 스캔하고는 말했다.


당연히 장난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환술을 쓰면 콜라든 햄버거든 그런 건 백 개고, 천 개고 먹게 해줄 수도 있을 테니까.

진짜로 주는 건 아니어도 말이다.


어차피 그렇게 느껴질 텐데 무슨 상관인가. 일단은 내 말을 믿게 해서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이다.


잠시 고민해 봤다.

또 마안을 쓰다가 기절해 버리는 건 아닐까.


사용법에 분명히 '마안을 남용하실 경우', 라고 적혀있었다. 그러니까 익숙지도 않은 기술을 무분별하게 써서 자꾸 쓰러졌을 수도 있다.


가뜩이나 제일 처음 무심코 쓴 환술이 지진 비슷한 것을 일으켰었던 것이기도 하고.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정도로는 무리가 가지 않을 것이다.


“마안.”


김찬의 눈을 바라보며 마안을 불렀다.


“네? 마··· 뭐요?”

“자, 마셔.”

“네? 뭘···”


김찬의 눈이 세 배는 커졌다.


“아, 아니, 이거 어디서 난···”


그 눈을 내 손에 들린 콜라 캔에서 떼지 못했다.


“안 마시면 내가 마신다? 나도 목말라서, 지금.”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김찬은 내 손에서 콜라를 낚아채고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캔을 따 꿀꺽꿀꺽 마셨다.


탄산 때문에 목이 따가워질 법도 한데 잘도 마시더니, 이내 캔 하나를 깔끔하게 비워버렸다.


“푸하··· 맛있어요··· 시원해요··· 흐흑···”

“아니, 왜 우는 거야?’


내가 못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달래기다.

눈물을 쏟아내는 김찬을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김찬이 너덜한 옷소매로 눈을 비볐다.


“근데, 형.”

“어?”

“나무막대도 없는데 그거 어떻게 하신 거예요?”

“···아.”


들켰다.


타다닷!


“야!!”


김찬이 갑자기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너, 사람들 데려오면 다 죽여버릴 수도 있어!”


내가 그렇게 소리 지르자 김찬이 곧바로 멈춰 섰다.


“뭐라고요···?”


김찬이 천천히 뒤돌았다.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너 지금 다른 사람들 데려와서 되도 않는 짓 하려고 한 거잖아.”

“···”


쪼그만 게 나를 쏘아본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나에게 강제로 음식을 갈취하려고 했겠지.


어차피 여러 명 먹일 음식 따위 있지도 않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이곳 사람들을 굳이 마주치고 싶지는 않다.


“니네가 블랭커라고 부르는 것들도 전부 여기로 데려올 수도 있어.”


당연히 지금은 못 한다.

향막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


김찬은 나를 째려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본인 눈으로 직접 내 환술을 확인했으니 섣불리 행동하지는 않겠지.


“기껏 마실 거 줬더니.”

“···죄송해요.”


진심으로 사과하는 눈빛은 아니다.


“근데 형 그런 능력이 있으면 제가 안 도와줘도 되지 않아요?”


마안을 막 썼다가 또 픽 쓰러져서 머리 파먹힐 일 있나.


“난 네 도움 필요하다고 한 거 아닌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 사람들 전부 말한 거야.”

“···형.”


김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여기 사람들 그동안 다 힘들게 지냈다니까요. 형 물건 찾으러 블랭커들 있는 데로 전부 가서 도와달라는 거예요, 지금?”


그럼 내가 어린 너 한 명 데리고 찾으러 가자는 줄 알았어, 라고 말하려다가 꾹 참았다.


“먹을 거 준다고 했잖아.”

“됐어요. 저 혼자 도와주는 거면 몰라도.”

“계속 식인하면서 살게?”

“네?! 갑자기 뭔, 뭐라는 거예요!”


김찬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맞잖아.”

“뭐야, 어떻게 안 거야··· 너 혹시 블랭커 쪽이었냐? 아니야, 옷 입은 거 보면 분명히 아닌데...”


단순히 짐작일 뿐이긴 했지만, 이 지하철 주변에 있는 것이라고는 말 그대로 사람들뿐이었다.


얘기들은 걸 생각해 보며, 처음에는 이곳에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럼에도 여태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면 먹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싶었다.


노골적으로 식인이라는 단어를 꺼내니 꽤 예민하게 반응하는 모습이다.


“···뭐, 그럼 너 혼자라도 좀 도와줄래? 그냥 여기서 나가는 출구만 알려줘도 되는데.”

“네가 누군 줄 알고 도와줘! 그리고 어차피 나가면 무조건 죽어.”

“그래도 그 막대는 찾아야 돼.”

“그럼 가서 혼자 처 뒤지시든가.”


내 환술로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었다면 좀 더 호의적으로 다가와도 되었을 텐데 감정부터 앞서는 모습이었다.


그냥 무시할까 싶어 김찬을 뒤로 하고 몸을 돌렸다가, 문득 생각이 들어 중얼거렸다.


“마안, 한 번만 더.”


그 정도가 좋겠다.


“너 근데 아까 먹은 그 콜라 있잖아.”

“그게 뭐.”


김찬의 눈을 한번 마주치고, 발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그 블랭커 놈들 피 모은 거긴 해.”

“뭐, 뭐?!”


김찬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랗게 질렸다.


발밑에 있던 콜라 캔은 어느새 불그죽죽한 주머니 같은 흉물스러운 것으로 변해있었다. 그것을 보자 누린내가 확 올라와 김찬의 속을 뒤집었다.


“우웁, 우욱!! 우웨에에엑!”


토악질을 해대는 김찬을 뒤로한 채, 지하철 계단을 올랐다.


“그걸 믿네.”


하긴, 몸의 모든 감각이 바뀌었으니 믿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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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음마 (2) 24.09.08 18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0 0 12쪽
»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7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4 1 12쪽
2 쓰레기 24.09.03 39 2 11쪽
1 망상 24.09.03 62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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