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계 유일한 환술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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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커피
작품등록일 :
2024.09.0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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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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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3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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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DUMMY

다행히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건물이 무너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력으로 달려 아파트 정문을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헉, 허억···”


여전히 울리는 진동과 거칠고 마른 숨소리만 들렸다.

땀에 젖은 셔츠가 등에 달라붙었다.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어머, 동하 엄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요? 땀이 그냥, 세상에...”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평소에 윗집 아줌마랑 나를 같이 씹던 다른 아줌마.


그런데 저 사람, 표정이 어리둥절 그 자체였다.


‘저 아줌마는 지진이 났는데도 왜 저렇게 멀쩡하지···’


그 생각이 스치는 순간, 거짓말처럼 진동이 뚝 멈췄다.


“허억, 어, 나래 엄마! 나래 엄마도 도망쳐, 빨리! 지진이!”

“지진···? 무슨 지진?”


윗집 아줌마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나래 아줌마의 반응을 보고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너···”


아줌마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네?”

“네가··· 한 거야?”

“뭘요?”

“302호, 네가 한 거냐고!”


원래도 뻔뻔하기 그지없는 아줌마라고는 생각했었지만, 설마 지진 난 것까지 내 탓을 하려는 건가.


“어, 그래, 그거네! 너, 우리 애가 좀 뛰었다고, 어? 우리 위층에다가 사람 시켜서 바닥을 그렇게 그냥 꽝꽝 찍어대라고 한 거야? 어!”

“그게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저 아줌마 친구뿐만 아니라, 아들인 동하라는 저 꼬맹이도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동하야, 네가 이모한테 말해줘 봐! 아까 막 꽝꽝 대면서 무섭게 울렸었지?”

“어···우응···”


대답을 강요받은 동하는 흥분한 엄마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는지 말끝을 흐렸다.


“세상에 난 진짜 지진이라도 난 줄 알았네! 그게 이놈이 사람 써서 위층에서 그런 건 줄도 모르고!”


아줌마는 귀가 따갑도록 악을 질러댔다.

그런 짓 할 정도로 돈이 썩어나는 줄 아는 건가.


“안 되겠다, 너. 이거, 절대 그냥 못 넘어가! 우리 아들 귀먹게 하려고 그딴 미친 짓을 해!”


아줌마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경찰을 부르려는 건지, 화면을 짧게 다다닥 누르고는 곧바로 귀에 가져다 댔다.


“동하야, 왜 그래? 응? 무슨 일 있었어? 아줌마한테 말해볼래?”


나래 아줌마가 동하의 어깨를 살짝 잡고 물었다.


“이모···아니이···.”


동하의 표정을 보니 한 가지는 확실해 보였다. 아까의 지진은 나와 윗집 아줌마만 느꼈다는 것이다.


“네, 네! 여기 은천로 30길인데 빨리 와줘요. 여기 아주 미친놈이 있으니까!”


진짜 경찰이 오는 건가.

살면서 한 번도 경찰과 직접 대면한 적은 없어서 마주치고 싶지 않다.


아줌마가 아무리 악을 쓰며 억지 부려봤자 난 잘못한 게 없기도 하고.

나도 도망치느라 등이 흠뻑 젖었단 말이다.


보란 듯이 표정을 한번 구기고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몸을 움직였다.


“어딜 그냥 가!”


아줌마가 내 흰 와이셔츠를 거칠게 붙잡았다.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며 아줌마 쪽으로 살짝 끌려갔다.


화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안 그래도 매일 소음을 일으키는 악마 같은 사람인데.


아줌마의 추악한 눈을 마주치며 생각했다.


‘저 더러운 손이 확 데어버렸으면.’


일단 말로는 놓으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마안···”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 끄, 끄아아아!”


그러자 아줌마가 비명을 지르며 불에 데인 듯이 손을 황급히 거두었다. 정작 내 옷은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오른손을 붙잡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아줌마를 뒤로한 채, 집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들어서자마자 속이 아리도록 차가운 물을 연신 들이켰지만, 쉽사리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그러니까 그 지진이랑 뜨거워진 티셔츠, 전부 환술이라는 건가.


거울 속 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코피가 주르륵 흐르고 있는 몰골.


띵동!


잠깐이지만 고요했던 집안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고, 이어 여러 번의 노크 소리가 잇따랐다.


“경찰입니다.”


문의 외시경을 들여다보니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그 아줌마 진짜 불렀었나 보네.


“네.”


답하지 말 걸 그랬나.

그래도 바로 문을 열어주지는 않았다.


“잠깐 나오시겠습니까.”


나가겠냐, 안 열어줄 거다.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영장 없이는 못 들어온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 신고가 들어왔거든요. 잠깐 나와서 얘기 좀 하시죠.”

“무슨 얘기요.”

“선생님이 고의로 보복 소음을 내고 손을 뭐, 라이터로 지졌다고 하시던데, 일단 나와보시죠.”


라이터? 담배도 안 피는 사람한테 무슨.

속으로만 생각하고 대답은 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경찰은 몇 번 더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지만, 노캔 이어폰을 끼고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용해졌다. 경찰이 돌아간 모양이다.


‘그 아줌마 손이 진짜 불에 그을렸었다면 그냥 가지는 않았겠지.’


역시 다친 흔적같은 건 없었나 보다.


문을 열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렸다.

그대로 침대에 풀썩 몸을 던졌다.


“눈을 쓰면 무리가 갈 거라더니···”


순식간에 몰려온 피로와 함께 중얼거렸다.



***



하루만에 많은 일이 있었으니 잠들기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개운하게 잤다.

비도 투둑투둑 가볍게 내려 기분이 썩 나쁘지 않고.


어제의 일을 천천히 곱씹어보았다.

눈을 마주치고 강렬하게 생각한 것밖에는 없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강도의 진동을 일으켰었다.


그러면 만약 내가 그 자리에서 아줌마의 고막이 터져 피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나를 건든 그 손이 불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었다면?


“으···”


상상만 해도 괜히 내 손이 다 저릿했다.


자연스럽게 한쪽에 짐짝처럼 치워둔 얇고 기다란 나무 막대에 시선이 갔다.

설명서에는 눈으로 사용한 환술은 몸에 무리가 가니, 가능하면 저걸 쓰라고 했었지.


내 키만 한 막대를 들고 다니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무엇보다 쪽팔리니까.

조금만 더 짧았어도 악기인 것처럼 가방에 넣어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어제 일을 돌이켜 보면, 어차피 함부로 사용할 수 없기도 했다.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었고, 상대에게 허상을 보여주는 것뿐이면 자칫 잘못 사용하다가 귀찮은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크니까.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 되었다.

환술 같은 게 생겼어도 출근 시간을 막을 수는 없겠지.

정신없이 출근 준비를 마치고 버스를 기다리며 집 앞 버스정류장에 줄을 섰다.


툭.

누군가가 지나가며 내 팔을 세게 쳤다.


“어.”


타닥.

핸드폰이 떨어졌다.

바로 집어 액정부터 살폈다.

다행히 금이 가진 않았다.


“아이씨···”


나를 치고 지나간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길을 걸어갔다.


‘어디서 본 거 같은데··· 누구더라.’


후드티를 뒤집어쓴 남자는 비틀거리며 골목으로 들어갔다.


따라가서 따져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버스가 이미 도착해버렸다. 이걸 놓치면 무조건 지각이다.


‘짜증 나긴 한데··· 그냥 똥 밟은 거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잊으려고 했었다.

그런데 불현듯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가슴이 마구 뛰며 몸이 먼저 반응했다.

손끝이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은 분명 내 유일한 트라우마.

나라는 사람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던 묻지마 폭행범이 틀림 없었다.


그 어렸던 나에게 다가와 갑자기 차비를 달라며 돈을 요구했던 사람.

어린 나는 당시에도 마른 체격에 어울리지 않는 근거 없는 배짱 하나는 있었다.

그걸 배짱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쓸데없는 깡으로 대답 없이 남자를 노려보기만 했었는데, 그게 그 사람의 이유없는 화에 불을 지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 눈빛 때문이었는지, 그 사람의 정신병 때문이었는지 지금도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주먹을 들어올렸다.


주변에 가게들도 있었고 지나가는 사람도 몇 있었지만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하긴 지금의 나 같아도 그런 일에 말리고 싶진 않겠지만.


평탄하고 무난했던 내 인생에 트라우마라는 것을 처음으로 각인시킨 사건이었다.

자연스럽게 사람은 믿을 것이 못 되고, 남은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인식 또한 단단하게 자리잡게된 계기였다.


남자를 찾으려고 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었다.


가족이 보복을 두려워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없던 부분이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연도 끊겼지만.


뭐, 그게 아니더라도 갚아줄 힘도 없기는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어도 힘을 갖게 되었으니까.


물론 힘을 얻자마자 보란 듯이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난 게 어딘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은 들었다.

환마라는 악마가 나에게 이제 막 능력을 갖게 됐으니 어디 테스트라도 한번 해보라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을 때, 난 이미 버스 줄에서 빠져나와 남자의 뒤를 쫓고 있었다.

저 멀리 나만큼이나 마른 체구의 뒷모습이 보였다.


떨리는 두 다리를 간신히 움직였다.

심장이 귓가에서 쿵쾅거렸다.


환술을 사용해 본 것은 단 한 번.

그렇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과 분노가 내 발을 이끌었다.


설령 또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때처럼 절대 무사히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저 남자를 없애면 모든 것이 잘될 것만 같다. 내가 끊어내 버린 사람들과 시간들이 돌아와 줄 것만 같았다.


추레한 옷차림의 남자는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들어갔다.

숨을 고르며 그를 따라갔다.

남자를 쫓아가 어깨를 툭 쳤다.


남자는 천천히 뒤를 돌아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나도 이렇게 보일까.


“누구세요.”


역시 기억나지 않는 모양이다.


“...누구냐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이런 놈들의 특징이다.

절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남자의 얼굴은 마치 약이라도 하는 사람 같았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에, 움푹 패인 볼, 빼빼 마른 몸.


“누구냐고. 말을 해, 병신아.”


남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미친놈인가. 갑자기 튀어나와서는.”


직접 거울을 본 것은 아니었지만, 눈이 스멀스멀 붉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의 눈을 더 똑바로 쳐다봤다.

그때처럼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분명히 어디선가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에 관한 영상을 봤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자는 말 없이 멀뚱히 서 있었던 나를 몇 초간 빤히 쳐다보더니, 정신 나간 사람을 본 것처럼 무시하고 뒤를 돌았다.


그 뒷모습을 보자니 단번에 떠올랐다.

내가 떠올리려고 했던 영상은 누군가가 화형에 처하는 것.


“마안.”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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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지하에 사는 소녀 24.09.09 16 0 11쪽
7 소음마 (2) 24.09.08 19 0 13쪽
6 소음마 (1) 24.09.07 21 0 12쪽
5 지하에 사는 소년 24.09.06 24 0 12쪽
4 이미 망했어 (2) 24.09.05 28 0 12쪽
3 이미 망했어 (1) 24.09.04 35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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