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라칸 레이드1
- 벌목 퀘스트가 생성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목책은 무너지지 않았다. 대략 10만의 늑대를 잃고 침략자들은 조용히 물러났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 늑대들이 다시 올 것이기에 구룩 부족은 휴식할 겨를이 없었다.
목책 내구도 보강, 화살 보충, 단창 보충, 부러진 무기의 수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목재가 필요한 구룩 일족은 네크로 일행에게 퀘스트를 내렸다.
- 벌목 퀘스트는 힘과 체력 스탯의 성장에 보너스가 붙습니다.
레전드는 마법사가 힘을 키운다고 해서 친화력이 안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다만, 힘 키울 시간에 친화력이나 키우는 게 나을 뿐. 특별히 스탯 성장에 도움이 되는 퀘스트를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현피마저 커다란 벌목 도끼를 들고 벌목장으로 향했다.
"시청자 여러분, 저희 채널 페이지 보시면 소소한 이벤트 하나 있습니다. 여섯 중에서 누가 벌목 퀘스트 최대 공적치를 찍을 건지 투표해주세요. 명심해야 할 것은, 현재 레전드 게임은 체력 개념이 없습니다. 마법사 캐릭이 체력이 약해 불리할 거라는 선입견을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맞춘 분 중에서 두 분을 골라 전설 피시방 VIP 카드를 발급합니다. 60시간 게임을 할 수 있는 요금이 이미 충전되어 있습니다. 이미 피시방 회원이신 분은 VIP 옵션을 체크하시기 바랍니다. 당첨하면 80시간 공짜로 충전해 드립니다."
유니콘이 곧 전국 범위에서 레전드 게임방을 운영한다. 원래보다 앞당겨진 건, 중국 정부에서 갑자기 폭력성과 선정성 운운하면서 태클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과 일본에서 20개월 할부로 판매정책을 바꿨지만, 설과 맞물리며 판매 실적이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유니콘 사는 원래보다 30%가량 규모를 더 키우고 한 달 앞당겨 게임방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현피와 네크로 모두 정식 회원을 늘이려고 온갖 아이디어를 짜냈다. 그나마 부모님 가게에서 일손을 많이 도운 진돗개가 아이디어를 냈고, 장님이 냇물 건너듯 손으로 더듬으면서 다양하게 시도했다.
운반은 구룩 부족이 알아서 하기에 다섯은 그저 벌목에만 신경 쓰면 된다. 도끼를 크게 휘둘러 나무를 힘껏 찍은 현피는, 자루로부터 전해오는 반탄력에 도끼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건 동해나 철벽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이젠 누굴 찍어야 할지 답이 나왔죠?"
진돗개가 신나게 도끼를 휘두르며 자신을 어필했다. 나무를 패는 건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원심력과 리듬, 이 둘의 완벽한 결합만 있으면 힘도 안 들고 반탄력도 없이 종일 팰 수 있다.
"넘어간다."
그런 진돗개의 기분을 잡치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크로가 어느새 나무 한 그루 쓰러뜨렸다.
"형, 나무가 좀 어려 보이는데?"
진돗개는 바로 견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네크로 역시 녹록지 않았다.
"나이든 나무는 너무 단단해서 가공하기 어려우니 적당히 어린 놈이필요하다고 그러더라."
어디서 나타났는지 구룩 몇 마리가 나타나서 나무를 밧줄로 동여매고 끌고 갔다.
"형, 좀 가르쳐줘."
"자루를 느슨하게 쥐고, 이렇게 위로 올린 후 허리를 비틀면서 도끼를 휘두르는 거야. 이때 힘을 줘선 안 되고, 도끼날이 흔들리지 않도록 손아귀랑 손목에만 힘을 줘. 어깨에 힘주면 몸이 굳어서 힘 전달이 안 되니까 적당히 하고."
그렇게 일행은 게임 시간으로 하루 내내 벌목했고, 수십만 명이나 되는 시청자가 그 장면을 지켜봤다. 보는 사람들이 지루할까 봐 중간에 눈사람도 만들고 했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건 재밌는 장면이 아니라 그저 평소 보기 힘든 풍경을 즐기는 거라는 걸 깨닫고 퀘스트에만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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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받았습니다."
[이번 방어전 퀘스트 양보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감사 받을 일까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저도 입에 발린 소리 하려니 힘들군요. 바로 용건 말씀드릴게요. 투라칸을 잡을 예정이라면서요?]
"네, 하지만 확실히 잡을 수 있는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투라칸의 드랍 아이템 목록 중에 '서리의 울음'이라는 신발이 있습니다. 그거 얻으시면 저한테 파세요. 1억 드립니다.]
"아직 잡힌 적 없는 몬스터의 드랍 아이템은 어떤 방법으로 알아냅니까?"
[하하.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혹시 드랍하면 꼭 저에게 파십시오. 세트 아이템이라서 저 말고는 다른 사람은 제값을 쳐주지 않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훌륭한 거래를 마다할 필욘 없겠죠."
'서리의 울음'은 '얼음 왕관'과 '고드름 망토'를 비롯해 '눈의 꽃' 세트를 이루는 조각이다.
투라칸을 잡는 데 실패하면 파열의 계곡을 무작정 헤집으려고 작정했다. 좀 품은 팔겠지만, 퀘스트를 받은 네크로 일행은 '밤의 결정'을 찾아내면 신이 '희망의 등대'로 소환한다. 늑대의 직감보다 오히려 더 확실한 방법이다. 물론, 늑대의 직감을 얻으면 확인해야 할 대상이 확실히 줄어서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못 잡는다고 퀘스트가 망하는 게 아니어서 열정이 조금 부족했다. 그 부족한 열정에 반형운이 기름을 쏟았다.
"1억짜리 의뢰다. 현금 거래라서 세금 낼 필요도 없어. 현금 받고 게임에서 아이템 건네주면 끝이야. 내 몫에서 5% 떼서 연이한테 줄 거다. 남은 사람들은 계약서대로 하고. 다들 의의 없지? 게임 접속하면 퀘스트 하는 시간 제외하고 투라칸의 정보를 모아."
그때 김연이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성필 제외하면 여자 눈물에 면역이 전혀 없었다. 그나마 연애 경험이 많은 편인 성필도 여자들이 진지하게 만나준 게 아니어서 눈물에 익숙지 않았다.
"연이야, 왜 그래? 뭐 문제 있어?"
"아냐. 나 옛날에 공장에서 밤 10시까지 일하면서도 한 달에 2백 받아본 적이 없거든. 근데 겨우 게임 아이템 하나로 1억 벌 수 있다고 하니 갑자기 내가 너무 비참해서."
운 좋게 이벤트 인간형 몹을 잡아 얻은 유니크 반지가 2천만 원에 팔렸을 때, 광해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반년 월급을 웃도는 돈을 겨우 운으로 얻은 아이템 하나를 통해 얻었을 때 느낀 상실감이 어마어마했다. 이러려고 공부했고 이러려고 대학 갔나 싶어 며칠 무기력하게 지냈었다.
"그 힘들었던 나날도 네 인생의 소중하고 빛나는 한 부분이 될 거야. 오늘보다 더 행복할 내일들만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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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뭉. 투라칸에게 어떤 약점이 있습니까?"
검은 수정구로 대화의 진실 여부를 가리던 점성술사 이름은 가뭉. 퀘스트도 안 줘서 친밀도 올리기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가뭉도 흑마술 계열이어서 네크로 말엔 잘 대답해줬다.
"보통 얼음이니 불로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멍청이들이 있어. 하지만 레오칸 정도 실력의 불이 아니라면 투라칸에게 아무 피해도 줄 수 없어."
"그럼 약점이 없는 건가요?"
"약점은 있지. 자네가 내 부탁을 들어주면 그 약점을 알려주지."
- 어둠의 점성술사 가뭉의 부탁.
- 가뭉의 검은 수정구는 마력이 다했습니다. 마나가 필수인 대부분 마법사와 달리, 가뭉은 검은 수정구의 마력을 이용해 마법을 사역합니다. 가뭉에게 최상급 검은 수정을 찾아주십시오.
- 최상급 검은 수정은 파열의 협곡에 거주하는 비 선공 몬스터 '게겔'이 드랍합니다. 이들은 검은 수정을 주식으로 삼으며, 이들이 소화 못 하는 건 최상급 품질을 자랑하는 '황혼의 결정'밖에 없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한 네크로는 바로 일행을 소집했다.
"형, 큰일이야. 보름 뒤에 투라칸이 온다고 했는데, 그 보름이 모레야. 게임 시간으로 보름이었어."
"자, 침착하자. 우선 진돗개는 정확한 시간을 알아내서 채널에 올려. 그리고 너희들은 '게겔'이라는 몬스터 정보를 수집해. 게겔을 잡아서 최상급 검은 수정을 얻어 가뭉에게 주면 투라칸의 약점을 알려줘. 최상급 검은 수정의 이름은 황혼의 결정이야. 현실 시간으로 30분 뒤에 모여서 정보 교환하자."
30분은 아주 빠르게 흘렀고, 각자 얻어낸 정보를 중구난방으로 쏟아냈다.
"음차원에 기거하는 비물질 몬스터? 이거 시발 골 때리네?"
진돗개가 참지 못하고 욕을 퍼부었다. 일단 네크로와 진돗개는 탈락, 그리고 동해도 탈락이나 다름없었다. 쿨타임 24시간인 영광일섬 제외하면 다른 스킬로 비물질 몬스터에게 타격을 못 준다.
"철벽의 성화 스킬, 현피의 마법이 타격할 수 있어. 두 사람은 바로 파열의 협곡에 가서 게겔을 잡아. 황혼의 결정 드랍하면 바로 나한테 가져와. 우린 일단 구룩을 도와 늑대의 침공을 막아내자."
늑대가 다시 찾아오는 일주일도 게임 시간 일주일이었다.
"형, 예전 VR 때는 현실 하루가 게임 하루였던 거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거야?"
"그땐 어차피 밤이어도 해만 안 떴다뿐이지 날은 환했잖아. 그래서 나도 별로 신경 안 썼어."
레전드 세상의 경제 규모를 키울 목적으로 시간을 3배가량 빠르게 흐르도록 했다. 희망의 등대에서 보름에 한 번씩 수확할 수 있는 것도 경제 규모를 키우려는 조치였다. 현실로부터 유입되는 돈에 레전드 경제가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유니콘의 노력이었고, 웬만해선 유저들의 행동에 레전드 경제가 영향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네크로나 진돗개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니 왜 갑자기 하루가 사흘 됐는지 이해 못 했다.
"야, 저기 뚫렸다."
공성 병기도 없는 늑대들이었지만, 계속 공격하면서 목책 내구도를 깎았다. 그리고 내구도가 깎인 부분이 무너지며 도약력 좋은 늑대들이 목책 안으로 진입했다.
"파멸의 돌풍."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진돗개가 파멸의 돌풍으로 늑대들을 끌어당겼다.
"폐쇄진."
120마리 정도 남은 강화 좀비가 목책을 틀어막았다. 60마리 정도 남은 해골 마법사가 안으로 뛰어오는 늑대들에게 마법 세례를 퍼부었다. 듀라한의 머리와 리치의 마법들도 날아갔다.
"다른 데 또 뚫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차라리 포위망을 크게 구성하고 늑대들이 조금씩 건너오게 만들자."
"제길, 생방송 하는 건데. 지난번이랑 똑같은 그림 나올까 봐 안 했더니, 이번엔 구멍이 뚫리네?"
"그간 방송 충분히 많이 했어. 투라칸 잡을 때를 대비해서 잠시 쉬는 것도 나쁘진 않아. 내일 잠깐 방송해서 홍보 좀 하고, 본격적인 건 모레 보여주자고."
편제 스킬과 진법을 이용해 포위망을 조금씩 뒤로 물렸다. 돌쇠와 진돗개 그리고 동해가 적절하게 늑대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목책이 무너지고 늑대가 난입하는 건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네크로 일행 덕분에 오히려 늑대를 더 빨리 죽일 수 있는 수단으로 변했다.
늑대가 10만 마리 정도 죽자 이들이 알아서 물러섰다. 10만 마리 정도 더 갈아 넣으면 목책이 대부분 무너지고 마을도 무너질 게 뻔한데, 늑대들은 게임 설정대로 곱게 물러갔다.
"형, 진짜 욕 나오더라."
말과는 달리 현피의 얼굴은 싱글벙글했다.
"드랍률 형편없어?"
"드랍률은 33%야."
"겨우 3마리 찾아냈어?"
현피가 주는 수정을 받아든 네크로는 바로 가뭉에게 향했다.
- 퀘스트를 완성했습니다.
- 퀘스트 보상으로 '배불뚝이 어항'을 얻었습니다.
"투라칸의 약점은 물이다. 얼음보다 뜨거운 물이 냉기를 앗아가거든. 문제는 여기 파열의 협곡엔 호수가 없어. 유일한 방법은 '배불뚝이 어항'에 물을 가득 담아서 투라칸에게 부어버리는 거야. 물은 서남쪽으로 30리 정도 가면 커다란 강이 있어. 거기서 반나절 담으면 '배불뚝이 어항'을 꽉 채울 수 있다."
"자, 어항에 물 담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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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기요? 투라칸 어디 있어요?
- 오늘 전설의 늑대왕 트라칸 레이드 방송하는 날 아닌가요?
- 내 눈엔 그냥 강에서 고기잡이하는 것 같은데?
"현피, 네가 그리핀 타고 마을로 먼저 가. 이대로는 신용 다 까먹고 시청자 떠나겠다."
"안녕하세요. 아직 전투 시작까지 30분 남았고요. 아주 특별한 아이템이 있어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자 이런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진돗개는 동해와 네크로가 잡은 '배불뚝이 어항'을 가리켰다.
"지금 저 아이템에 물을 담고 있는데, 무려 게임 시간으로 8시간 담고 있는데도 아직 꽉 채우지 못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어항에서 계속 거품이 올라오지 않습니까."
담은 물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일부러 구덩이를 찾아 부어봤다. 그리고 이 장면도 시청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면서 투라칸이 마을을 공격할 시간임에도 어항 다시 채우느라 강에서 미적거렸다. 생방송 초보들의 기획 실수였다.
"마을의 전투는 레전드 최초 전투 마법사인 현피 님의 시각으로 여러분에게 보여드릴 겁니다. 저희는 함정을 파고 투라칸을 유인해 처리할 예정인데요, 각자 취향에 따라 전투를 관람하셔도 되고 함정 제작 과정을 관람하셔도 됩니다."
어느새 마을에 도착한 현피가 생방송 화면에 본인 시야를 추가했다. 대부분 시청자는 순식간에 그쪽으로 빠졌다.
"거품 사라졌다."
황급히 어항을 꺼낸 네크로가 '밀봉'을 외쳤다. 밀봉된 어항을 인벤토리에 넣은 후 넷은 꽁지에 불 달린 닭처럼 부랴부랴 달렸다. 비룡을 소환해 안전하게 마을로 들어간 넷은 곧바로 함정 설치에 몰두했다.
"명심해야 해. 도발을 범위가 아닌 단일로 펼쳐야 한다고. 드래곤과 신의 사이가 몹시 나쁘다는 설정을 이용해야 하니까 도발 전에 꼭 다른 스킬을 모두 사용해서 투라칸의 화를 최대한 돋워야 해."
투라칸은 드래곤 레어를 지키던 존재고 드래곤 아쿠라온스텐즈를 존경하는 놈이다. 단순히 도발 스킬에만 의지하는 것보다 신성 스킬로 화나게 만드는 게 훨씬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셋이 순서를 잘 외워둬. 철벽의 도발이 먼저고, 도발에 걸리면 동해가 궁극기 쓰는 거야. 진돗개는 동해의 결과에 상관없이 광전사를 쓰고 투라칸을 잡아둬야 해."
투라칸 레이드의 시청자가 6백만을 돌파했다. 게임 하랴 일도 하랴 바쁜 반형운도 만사 제치고 생방송을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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