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 퀘스트2
유니콘은 작정한 듯, 레전드 게시판에 각 국가의 퀘스트 진행을 퍼센티지로 표시했다. 앞서가던 초인동맹과 역천도 3단계 80% 이후로 주춤했다. 가미카제는 70%에서 멈췄고 네크로는 무섭게 치고 올라갔다. 이틀 만에 가미카제를 따라잡을 기세였다.
"최 비서. 정보원들 다 벙어리 됐지?"
"네, 상무님. 미리 다른 길을 텄어야 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좋은 날은 다 갔다는 거야. 정부나 특정 세력과 연결되지 않은 놈 중에서 유일하게 밀어줄 만한 놈이라 선택받았는데, 든든한 돈줄 생기니까 끈을 자른 거야."
유니콘에서 정보를 쉽게 뽑아낸 건, 회사 차원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초반에는 이예지를 통해서 알아두면 좋은 정보를 얻었다. 모두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니콘이 정성스럽게 정리한 정보를 통해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었다.
그다음으론 유니콘 직원들에게 돈을 주고 정보를 샀다. 가끔 정말 알기 힘든 정보도 척척 알아내서 유니콘의 방조를 느낄 수 있었다.
유럽 부호들과 연결된 걸 안 들키려고 무척 애썼는데, 이번 신기 퀘스트에서 초인동맹이 매섭게 치고 올라오자 역천도 전력을 다했다. 그 과정에 유니콘에 들켜버렸다.
"그런데 네크로 쪽은 어떻게 이렇게 빨리 품목 모으는 거지?"
3단계는 신기를 만들 때 필요한 제단을 쌓을 재료 그리고 신기를 제작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았다. 거인 종족의 부활 퀘스트를 진행하며 모은 재료가 이번 퀘스트와 겹치는 게 많았다. 3단계 들어서자마자 빠르게 치고 올라와 반형운을 불안케 했다.
"드워프에게도 없는 금속이라. 도서관 업그레이드는 멀었어?"
바로 대도서관을 지은 네크로나 초인동맹과 달리 역천은 도서관을 여럿 짓고 대도서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을 취했다. 남은 20%에 가까운 재료는 도서관 사서로부터 행방을 알아낼 수 없었다. 대도서관으로의 업그레이드가 시급했다.
"기간을 줄이는 꼼수는 한 번만 쓰면 바로 막힙니다. 전문가들이 분석해서 찾아낸 꼼수는 이미 다 썼습니다. 노력하고 있지만, 더 좁히는 건 힘듭니다."
"차라리 이럴 땐 같이 망하는 게 좋지. 우르크를 건드려서 전쟁 일으킬 방법을 고민해. 대도서관이 완성되기 전엔 다른 세력들도 퀘스트에 집중 못 하게 방해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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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프리덤 그리고 가미카제가 갑자기 확장했다. 가미카제는 확장할 여지가 별로 없어서 도시 몇 개에 마을 십여 개 점령하고 다시 퀘스트에 몰두했다.
건국이 늦어서 확장할 여지가 큰 고구려와 프리덤이 확장하자 만리장성도 우르크 도시와 성을 점령했다. 어차피 고구려와 국경을 접할 거라면 도시나 마을을 하나라도 더 점령하는 게 이득이라고 여겨졌다.
"이해할 수 없어."
꾸준히 확장하던 네크로 세력은 오히려 확장을 멈췄다. 프리덤이 건국하며 유럽과 북미 서버 유저들을 끌어갔고 역천이 6서버 유저들을 흡수했다.
네크로 쪽으로 몰려온 세력 대부분이 돈줄이 부족했다. 아무리 네크로가 연소탄 가격과 세금으로 도움을 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최근은 큰 도시 지원 규모를 줄였다.
꿍꿍이를 품은 게 확실한 드레이크를 견제하지 않더라도 의도적으로 확장을 멈춰야 하는 시기다. 우르크와 싸우든 우르크를 해결하고 유저끼리 싸우든, 지금은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
함께 확장하면 상관없지만, 철혈팔기마저 확장을 멈추고 식량을 비축하는 시기에 식량을 소모해 국가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리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형, 그런 게 아닐까? 우르크 땅이 너무 적어지면 황제가 다시 전쟁 일으키는 거."
"아닐 거야."
"지금 초인동맹은 그래도 소수점 아래가 조금씩 변하는데 역천은 그대로야. 가미카제도 퀘스트 진전이 전혀 없는 것 같고."
프리덤은 아직도 2단계에 멈췄다. 1단계에서 주춤했던 만리장성은 2단계를 비교적 빠른 속도로 해결했다. 거의 철혈팔기랑 비슷하게 끝냈다. 진돗개는 역천이 다른 세력들 퀘스트를 방해하느라 확장한다고 여겼다.
"지금 신기 퀘스트는 신급이야. 역천이 퀘스트를 방해하면 어떻게든 피해를 받을 거야. 게임의 신을 그냥 NPC로 생각하면 안 돼."
네크로가 아는 역천이라면 절대 이런 멍청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네크로는 역천이 어마어마한 돈줄을 잡은 사실을 몰랐다. 덕분에 웅심이 무척 커졌고, 커진 욕심이 판단력을 흐리고 조심성을 갉아먹었음을 몰랐다.
역천은 우르크 수도를 함락한 후 철혈팔기를 해치울 시나리오를 짜는 데 몰두했다. 거기에 정신이 팔려 당장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진돗개의 우려대로 우르크의 점령 마을과 도시가 일정 비율로 줄어들자 우르크 황제가 수도의 성문을 활짝 열었다. 각각 백만 규모의 우르크가 네 문을 지나 철혈팔기의 대당성세와 역천의 고구려, 프리덤의 프리덤과 만리장성의 만리장성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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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낙엽.
가을바람에 희롱당하는 가랑잎처럼 네 국가는 사정없이 쓸려나갔다. 황제가 멀쩡한 우르크 군대의 전투력은 역천의 예상을 훨씬 벗어났다.
"빨리 우리 몫을 막아내고 프리덤을 도와야 하는데."
역천은 우르크 군대 규모를 백만에서 칠십만으로 줄였다. 철혈팔기는 초인동맹의 도움으로 이미 40만까지 줄였다.
가미카제는 5만 명 정예를 보내 프리덤을 도왔고 네크로는 역천을 도왔다. 철혈팔기나 만리장성을 돕기 싫어서 억지로 프리덤과 역천을 돕는 것이었다. 아무도 안 돕고 구경만 하면 명분을 준다. 어차피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이 가미카제를 공격하고 네크로를 공격할 것이지만, 침략에 명분을 주면 중립 유저들의 지원을 받기 힘들어진다. 네크로도 가미카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반성해야 해. 너무 쉽게 생각했어."
역천은 욕심에 눈이 멀어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렸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머리로 인정하는 것과 마음 깊이 새기는 건 달랐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했지만, 다신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대신 어떻게 실수를 수습하고 더 나은 결과를 얻어낼지만 고민했다.
"우르크 황제의 탈것이 문젭니다."
우르크 황제의 탈것은 이동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정령 거미였다. 바람의 거미줄이 닿는 곳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탈것으로, 드래곤을 잡고 얻은 전리품 중 하나였다.
우르크 수도 우르그르에 둥지를 튼 정령 거미는 이동 마법이 닿는 범위가 제한되었다. 대신 범위만 제한하고 이동 마법 사용 횟수는 제한 없었다.
우르그르를 중심으로 하는 일정 범위의 전장에 우르크 황제가 수시로 출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전장에만 투입되지만, 공격자 입장인 우르크는 공격 시간을 조절해 황제를 최대한 많은 전투에 참여시켰다.
"철혈팔기처럼 기마병이라도 많으면 참 좋을 텐데."
우르크 황제가 다른 전장에 출현했다는 정보만 얻으면 철혈팔기는 기마병을 내보냈다. 행진 혹은 주둔한 우르크 부대에 기마병 3만이 목숨을 돌보지 않고 덤볐다.
우르크 황제가 없으면 예전보다 조금 강해진 정도기에 꽤 많은 우르크를 없앴다.
문제는 황제가 정신을 차리며 보급선이 사라졌다. 보급 부대를 운영하지 않고 세라프를 통해 군량을 보충했다. 황제의 개인 창고에 수십 년 동안 쌓은 재물이 풀리면서 세라프 식량을 한계까지 구매했다.
우르크들은 딱히 정해진 목표가 없이 닥치는 대로 마을과 성을 공격했다. 예전처럼 보급선을 차단해 회군하게 하는 방법도 소용없었다.
"말벌 둥지를 쑤셨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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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덤 국가 소속 유저 톰과 톰슨 그리고 토마스.
성기사와 사냥꾼 그리고 전사의 훌륭한 조합이었다. 전사가 상대에 따라 탱커와 딜러 포지션을 번갈아 취하면서 웬만한 몹은 쉽게 처리했다.
가끔 마법에 약한 몹을 만나면 아이템 스킬로 해결했다.
우르크는 꼭 마법에 의지해야 하는 몹이 아니기에 평소엔 편했다. 그러나 우르크 황제의 버프를 받은 우르크는 전혀 편하지 않았다. 셋이 우르크 하나를 상대로 쩔쩔맸다.
"톰, 내가 마나 물약 세 개 정도 준비하자고 했잖아."
이유는 성기사 유저가 신성력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전사 유저가 함께 탱커 역할을 해주지만, 사냥꾼 유저는 공격 대신 도망에 열중했다. 어그로를 가장 많이 끈 사냥꾼이 주 타깃이 되었는데, 전사든 성기사든 우르크를 잡아두지 못했다.
성기사가 사냥꾼을 덮치는 우르크 앞을 가로막았다. 우르크의 체중이 실린 내려치기가 방패 위에 떨어졌다. 다행히 우르크가 공격할 때 전사가 발차기로 하체를 흔들었다. 그게 아니었으면 방패가 깨지거나 성기사 유저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컸다.
"다음엔 꼭 사자."
"전번 전투가 끝나고도 다음엔 마나 물약 꼭 사자고 했던 거 같은데."
매번 전투가 끝나면 다음엔 꼭 마나 물약 사두자고 다짐했지만, 공교롭게도 번번이 그 다짐을 이루지 못했다.
"미안. 어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어. 골드 환전해서 병원비 보탰단 말이야."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저 가슴이 갑갑해서 투정했던 것뿐이다. 지금 가장 갑갑한 건 톰일 것이다.
"오늘은 제발 유니크라도 하나 얻어서 다음엔 꼭 마나 물약 사자."
톰의 어머니가 아파서 환전하고, 톰슨의 차 엔진이 고장 나서 환전하고, 토마스의 딸 학비를 내야 해서 환전하고.
셋은 돈이 모일 틈이 없었다. 환전하지 않고 게임에 투자하면 좀 더 강한 유저로 거듭날 것 같은데, 공교롭게도 골드 여유가 생길 때마다 돈 쓸 일이 터졌다.
"우리 이거 세 번째 목숨이지?"
"젠장. 좀 더 오래 버텨서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공성전이든 수성전이든, 승리하든 패배하든. 참가 유저에겐 공헌에 따른 보상이 있었다. 대부분 유저는 전투에 투자한 것보다 훨씬 부족한 보상을 받는다.
훌륭한 합격술을 익힌 셋은 늘 괜찮은 보상을 받았다. 실력이 뛰어난 편이고 함께 싸우는 법을 알았다. 투자라곤 수리비와 빨간 물약밖에 없기에 적자를 내지 않았다. 결과가 확실치 않은 사냥보단 확실히 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수성전이 나았다.
"아저씨들, 도움 갑니다."
왜소한 체격을 보니 동양인 같았다. 가미카제에서 지원 온 유저라고 지레짐작했다. 덩치에 걸맞게 활도 크기가 작았다.
"삼연사."
덩치가 왜소한 사냥꾼 유저가 화살 세 발을 연속 발사했다.
"토마스, 저런 스킬도 있어?"
"없어. 저건 기술이야."
스킬이 아니라 유저가 컨트롤로 화살 세 개를 연속 쏜 거였다.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가 풀렸다. 여전히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새로 등장한 사냥꾼의 화살은 우르크를 사살했다.
"토마스."
"치명타야. 스킬이 아니라 컨트롤로 몹 약점에 화살 꽂은 거야."
"마나 물약 있어요?"
전투가 시작한 지 이미 3시간이 흘렀다. 생명력 회복은 물론 마나 회복도 무척 느려진 시점이었다. 유저는 스킬을 안 쓴 게 아니라 마나가 부족해 못 쓴 거였다.
"미안. 우리도 없어."
그때 유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외부로부터 전화가 걸려온 모양이었다. 잠깐 통화하던 유저가 화살 한 대 뽑아서 바닥에 글을 썼다.
"Help me?"
갑자기 유저의 통화가 셋에게 들렸다. 통화를 공개 모드로 바꾼 거였다.
"엄마. 나 지금 영어 스터디 하고 있어. 친구들이랑 영어 회화하는 거야."
화살이 바닥에 'Help me'를 한 번 더 적었다.
"하이, 톰. 너 학교생활이 어때?"
"선생님도 친절하고 학생들도 우수해. 토마스 넌 어때?"
"두 말이면 잔소리지. 학교생활이 정말 즐거워. 톰슨, 넌 아니야?"
"무슨 소릴. 난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할 때 가장 행복해."
"우리 세율이 좋은 친구들 사귀었구나. 엄마 친구 말로는 미국 본토 발음이래. 근데 숙제는 다 하고 과외활동하는 거야?"
"다 했어."
"거짓말 아니겠지?"
"저녁에 검사하면 들킬 거짓말을 왜 해. 내가 초딩도 아니고."
"그럼 친구들과 즐겁게 공부하고. 저녁에 엄마 불고기 해줄게."
"엄마, 사랑해요."
전화를 끊은 사냥꾼 유저가 허리를 숙여 꾸벅 인사하고 떠났다. 몇 걸음 안 걸었는데 토마스의 질문이 터졌다.
"헤이, 보이. 혹시 한국 사람?"
"맞아요."
셋은 건물에 숨어서 손수 만든 음식을 먹으며 피로도를 낮췄다. 마나 회복이 조금 빨라졌다.
"숙제 검사하는 거 보면 아직 학생인데."
"초등학생일 거야. 중학교부터 부모가 숙제 검사하고 그러진 않잖아."
"아냐. 한국은 대학생도 부모가 숙제 검사한다고 그랬어."
"북한이겠지.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야."
"내가 본 한국 드라마에선 대학 보내려고 수백만 달러 쓰던데."
"그 돈이면 대학 하나 짓고 말겠다."
"근데, 우리 이 게임 계속해도 괜찮을까?"
"갑자기 왜? 이 게임 아니면 난 버스 타고 다녀야 하고 토마스 딸은 학교 못 갈 거고 네 어머닌 중국인 이발사가 끓여주는 시커먼 물을 마셔야 해."
"방금 한국 초등학생 컨트롤 봤잖아. 컨트롤에서 뒤처졌는데 아이템에도 투자하지 못하고. 계속해봤자 패배자가 될 게 뻔하잖아. 차라리 지금 캡슐 비쌀 때 팔고 다른 일 찾아보는 건 어때?"
"뭐 할 거야? 우리 다 원래 하던 일에 실패하고 게임을 선택했잖아. 여유롭지 않지만, 그래도 필요한 돈은 늘 구했잖아. 아이템 드랍은 어차피 운이야. 레전드 아이템 하나만 얻어 봐. 우리 삶도 게임도 여유가 생길 거야."
"맞아. 그리고 어디에도 천재가 있어. 방금 그 한국 꼬마는 게임 천재야."
셋이 아름다운 미래를 다짐하는 사이, 세율은 파티로 복귀했다. 신경 손상 치료를 목적으로 게임 접속을 허락받은 세율은 다 나은 지금도 부모 몰래 게임을 했다. 많이 뛰어다녀야 해서 선택한 사냥꾼 캐릭터는 세율의 성격에 꼭 맞았다.
"세율아, 엄마한테 들킨 거야?"
"아니요. 미국 아저씨들 덕분에 잘 넘겼어요."
"너 딴 데 새지 말라니까. 컨트롤도 떨어지는 놈이 왜 자꾸 혼자 돌아다녀."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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