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요건 버그 아님2
"안녕하세요. 여러분. 레전드 존망에 관련한 중요한 회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AI와 자주 대면하는 문철수를 제외하면 모두 인공지능의 능글능글한 말투에 적응하지 못했다. 마당에 풀어놓고 막 키우던 개와 겸상하는 느낌에 거북함이 몰려왔다.
"우선, 제가 보여드리는 영상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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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로 백작, 20만 골드에 노예 20만은 너무한 가격이다."
"레아울 자작. 노예 먹여 살릴 음식도 없는 거 다 안다. 안 팔면 다른 곳 찾아가겠다."
레아울 자작은 송곳니가 짧았다. 아래 송곳니가 콧구멍보다 높아야 비로소 현명함을 갖추는 우르크다.
네크로는 첫 거래에선 30만 노예를 80만 골드에 샀고 두 번째 거래에선 20만 노예를 55만 골드에 샀다. 그러나 송곳니가 짧은 레아울 자작 상대로는 20만 노예에 20만 골드를 불렀다.
"좋다. 거래한다."
돈주머니와 노예 문서가 교환되었다. 실상은 반투명한 거래창이 나타나고 거래 물품을 양쪽에 올린 후 확인을 누르는 거지만, 영상에선 직접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거로 표현되었다.
"자작. 적군이 쳐들어왔다. 6만 정도 된다."
"죽음의 군단."
시청에 갑자기 천으로 구성한 죽음의 군단이 나타났다. 네크로는 가만히 있고 죽음의 군단이 우르크를 학살했다.
신의 은총 : 생명력 회복, 저항 상승, 공격 속도 상승, 피해 분담.
피해 분담은 네크로 및 네크로와 연결된 모든 존재, 예를 들면 용병이나 소환수 그리고 파티원 등이 공격을 받았을 때 데미지의 50%를 남은 자들이 분담하는 방식이다.
소환수가 공격받으면 네크로와 모든 소환수가 그 피해를 분담하고, 파티원인 진돗개가 공격받으면 50% 데미지를 모든 파티원이 나눠 받는다.
불패의 지휘관 : 소환수의 모든 능력치 상승.
단순히 스탯이 아니라 반응 속도나 전투 지능 그리고 협동 능력 등에도 큰 도움이 된다.
신의 축복 : 생명력 및 방어력 증가.
이 스킬은 파티원이나 용병에게 먹히지 않는다. 오로지 본인과 소환수에게만 적용.
수호자 : 상태이상 및 치명타에 피해 볼 확률 감소.
이 스킬 역시 본인과 소환수에게만 먹힌다.
광명 : 신성 계열 직업의 모든 능력치 상승.
이 스킬은 현재 네크로 본인과 철벽 그리고 세인트 드래곤인 해동청에게만 작용했다. 동해의 용병인 성직자 그웩에겐 먹히지 않았다.
문제는, 죽음의 군단이 소환수로 분류된다는 것이었다. 비룡의 투구로 불러낸 비룡 역시 소환수로 취급받았다.
신의 은총, 불패의 지휘관, 신의 축복, 수호자 등 스킬 덕분에 죽음의 군단이 상상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레아울 자작을 구하러 들어오는 우르크들은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사체로 변했다.
"형, 이제 들어가도 돼?"
"조금만 더 기다려. 죽음의 군단 아직 안 사라졌어."
잠시 후 네크로의 부름을 받은 진돗개가 안으로 들어왔다.
"노예 소환."
구매한 20만 노예를 소환한 후 바로 평민으로 전환했다. 검은 언덕은 순식간에 인구 20만8천의 도시가 되었다.
진돗개가 도시를 점령했다. 미처 돈 쓸 틈도 주지 않아서 20만 골드와 도시가 원래부터 보유했던 자금이 고스란히 즐기자 길드 자금으로 전환됐다.
검은 언덕 인구가 3배 되었다. 도시는 넷밖에 없지만, 귀순 마을까지 합쳐 인구 6백만이 넘는 어마어마한 국가로 급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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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버그가 아님을 확실하게 알려드립니다."
"왜 버그가 아니지? 인간인 유저가 우르크와 거래하는 것도 웃기잖아. 게다가 뭐? 네크로 백작?"
AI는 예전에 네크로가 우크로로 변해 우륵하이 무투장에서 백작 작위를 따내던 영상을 띄웠다. 대부분 유니콘 관계자는 네크로의 싸움 실력에 놀라움을 표했다.
"요즘 NPC 중 저 정도 실력을 갖춘 자들이 늘고 있습니다. 유저가 아주 기상천외한 짓을 벌이면 반응이 느려질 수 있지만, 대부분 NPC가 확실한 승리를 따냅니다."
데이터가 충분히 쌓여 네크로와 대등한 싸움을 벌이거나 네크로를 압도할 NPC들이 꽤 많아졌다.
"저건 이벤트 아이템을 이용해서 얻은 작위잖아. 왜 인정받지?"
"우르크 제국이 해체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작위를 관리하는 우르크 제국이 해체되었기에 네크로 유저의 백작 작위를 누구도 없애지 못합니다."
제국이 건재한 상황에서 네크로의 백작 작위가 제국 황실에 인지되면, 인간인 네크로의 우르크 제국 백작 작위를 당연히 없앤다. 그런데 하필이면 제국이 해체되어 누구도 네크로의 백작 작위에 태클을 걸지 못했다.
"근데 이게 왜 레전드의 존망에 관련한 문제지?"
"당분간 우르크 제국의 귀족은 서로 못 싸웁니다. 네크로의 국가는 우르크의 침략을 받지 않습니다. 반면, 네크로는 죽음의 군단 쿨타임이 돌아오는 대로 가까운 우르크 도시를 찾아가 노예를 구매한 후 바로 공격하여 자금도 회수하고 노예도 공짜로 얻습니다."
"우르크 귀족끼리 서로 공격하지 못한다면서? 그럼 네크로도 우르크 도시를 공격할 수 없어야 하는 거 아닌가?"
"문제는 거기 있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네크로는 우르크를 전혀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의 군단으로 불러온 소환수만 전투에 참여했죠. 죽음의 군단은 피아구분 없이 소환자를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죽인다는 설정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의 군단 스킬 덕분에 네크로는 상대를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지?"
인간은 이미 명확해진 문제도 이런 식으로 확인함을 아는 AI는 예전처럼 무의미한 대화에 스트레스받지 않았다.
"정확한 이해입니다."
"유저가 견제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네크로는 어느 정도로 확장할 수 있지?"
"우르크끼리 싸우는 기준은 50% 이상의 영토를 잃었을 때입니다. 지금 이대로라면 40개 성까지 안정적으로 확장합니다. 인구의 1%를 직업 군인으로 전환할 수 있기에, 지금 방식대로 확장하는 네크로 유저를 막을 존재가 없습니다."
"이게 유저들에게 알려지면 큰 반발이 일어날 게 분명하군."
"유저가 크게 줄거나 하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회사 이미지엔 큰 타격이 될 거고 회사 신용도 많이 하락할 겁니다. 가상세계를 만들어서 새로운 금융 시장이 되려는 목표는 끝장이라고 봐야죠."
금융시장의 황금 투자 같은 걸 보면, 실제로 황금이 없어도 중개소를 열어도 된다. 어차피 다들 돈을 목적으로 황금을 사고팔았다.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고. 실제로 황금이 거래되는 게 아니고 그저 서버의 DB에 몇 개 숫자가 변할 뿐이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를 통해 가상 금융의 거대한 가능성을 확인한 유니콘은 레전드라는 가상의 세상을 만들고 게임 형식을 빌려 유저를 확보한 후 새로운 금융 시장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기존 금융 시장과도 일정 연결을 유지하면서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 금융시장을 가상 세계를 통해 확장하려 했다.
더구나 충분한 유저를 확보하면 은행이 하는 국제 송금 업무를 전면 대체할 수 있다. 여전히 해킹 위험이 있는 은행 시스템과 달리, 레전드는 블록체인 유사 기술과 완전 새로운 프로토콜 그리고 인간 해커의 뇌나 해킹 프로그램으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사고 속도를 갖춘 인공지능이 있어 100% 보안을 장담할 수 있다.
또한, 유니콘은 전화기 단말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었다. 높은 사양이 필요치 않은 인공지능을 탑재한 전화기 단말 개발 중이다. 이 단말이 널리 보급되면, 슈퍼나 편의점 및 영화관에서 레전드 골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그렇게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의 연결을 점점 긴밀하게 만들어 현실의 금융 시스템을 삼켜버리는 게 유니콘의 최종 목적. 물론 완전히 현실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지는 전문가들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저 유저의 접속을 막아버리거나 계정을 삭제할 수는 없는가?"
"원칙이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집니다."
AI의 따끔한 지적에 섣불리 말을 꺼냈던 방 전무의 얼굴이 지지벌겋게 달아올랐다.
"이건 특별한 상황이니 한 번만 예외를 둘 수 없을까?"
평소 방 전무와 친하게 지내던 전 상무가 편들었다.
"인과율이라는 게 있습니다. 레전드는 모든 게 프로그램으로 짜인 세상이 아닙니다. 학습 능력이라는 게 있습니다. 만약 네크로 유저의 접속을 막는다면, NPC들에게 유저의 접속을 제한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계정을 삭제한다면, 거주지를 떠난 NPC처럼 유저에게도 영원한 죽음이 내려질 수 있습니다. 유니콘 직원인 여러분이 레전드에 관한 이해도가 이토록 낮다는 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방 전무가 개쪽을 당하자 홧김에 나섰던 전 상무는 조용히 찌그러졌다.
"네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말해 봐."
"협상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협상할 생각이지?"
"패왕의 반지는 유니크 등급입니다. 그걸 레전드 등급으로 올려주고 더 강하게 만드는 대신, 죽음의 군단을 피아구분 가능하게 수정하고 쿨타임을 줄여줄 생각입니다."
"고작 그걸로 만족할까?"
"현재 네크로 유저는 신화 등급의 목걸이와 무기가 있습니다. 슬롯에 장착할 물건이 여섯 개나 됩니다. 여섯 물건을 찾는 퀘스트를 만들어서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줄 생각입니다."
"인과율에 어긋나지 않는 조치인가?"
"이 방식으로 진행하면 아이템 강화 시 등급이 오를 수 있는 확률이 생깁니다. 그리고 NPC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유저를 위한 퀘스트를 생성할 겁니다. 이런 부분은 오히려 게임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좋은 변화라고 여겨집니다."
"네크로가 독주하면 다른 유저들이 견제하지 않을까?"
"현재 WORLD의 국가 구성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네크로의 왕국은 네 개 도시와 20개가 넘는 마을로 구성되었다. 마을마다 점령한 길드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마을마다 다른 이름이었다.
"네크로 유저는 마을을 점령한 길드들을 모두 국가 소속으로 받아줬습니다. 마을이 국가 소속이 되면 일단 인구가 1.6배 됩니다. 네크로 유저는 마을로부터 받는 세금을 최저로 정했습니다. 게다가 마을 발전 정도를 높여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세금도 넉넉히 할당했습니다. 200인 길드로 가정해도 4만 유저를 세력화했습니다."
"세금이 그렇게 넉넉한가?"
"인구 100만 겨우 넘은 고구려보다 인구 600만에 도시만 네 개인 WORLD의 세금이 당연히 훨씬 많습니다. 게다가 네크로 유저는 탄광을 보유했습니다. 가장 돈이 많이 나가는 에너지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죠. 국가 소속 마을에는 연소탄을 다른 곳보다 싼 가격으로 판매합니다."
"어디서 저런 놈이 기어 나왔지?"
사장의 탄식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변했다.
"혹시 요구하는 게 더 있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인과율 때문에 더 건드리는 건 안 됩니다. 부족한 부분은 '지구'에서 채워줘야 할 것 같습니다. 레전드 세상이 완벽해지려면 유저에게 저 이상으로 양보 못 합니다."
"이 일이 본사까지 가면 우리만 무능하게 보이겠지. 묻어두겠다는 건 아니고, 다 처리한 후 좋은 결과와 함께 문제점을 보고하자는 거지. 어차피 그 정도 권한은 있으니까. 다들 머리 맞대고 좋은 방안을 짜내. 게임 안에서도 가볍게 접촉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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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은 이미 50% 이상 점령 포인트 쌓은 길드가 있어. 딴 데 가자."
지라드 늪지에서 네크로가 주술사 목을 졸라 잡아둔 장면을 보고 감탄했던, 네크로의 전설 게임방 VIP 회원인 유저들은 열심히 게임 해서 80레벨을 넘겼다. 물론 수련장에 많은 골드를 투자하지 못해 그랜드 마스터 랭크는 이루지 못했다.
어차피 레전드 템 얻어도 수리비 때문에 사용이 힘들다는 현실을 깨닫고 그랜드 마스터 랭크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길드를 열심히 운영해 200명을 꽉 채웠다.
선발대로 나선 일행은 마을 외곽에서 현황 메뉴를 클릭했다. 이미 어떤 길드가 마을을 찜해서 53%의 점령 포인트를 쌓았다.
우르크 마을은 도시와 달리 한 번 점령한다고 해서 소유권을 바로 넘기지 않았다. 대신 점령 포인트가 쌓이는데, 100% 달성하면 마을 지배 길드가 됐다.
네크로는 한 길드 당 마을 하나씩 받아준다고 발표했다. 어차피 마을 점령해봤자 국가 소속 아니면 이득은커녕 손해만 볼 것이다. 대형 마을이나 소도시로 키워놓으면 수익이 생길 수 있지만, 국가 도움 없이 마을을 발전시키는 건 금수저나 가능했다.
"야, 점령 포인트 0인 마을 발견했대."
"위치. 위치 어딘데?"
다른 선발대가 어떤 길드도 건드리지 않은 마을을 발견했다. 그러나 위치를 보니 애매하게 느껴졌다.
"사냥터랑 거리도 있고 주변에 벌판밖에 없어."
"우리 네크로 게임방 VIP야. 네크로 님한테 잘 얘기해서 도움받아 마을을 도시로 키우자."
"미친, 도시로 키우려면 어마어마한 퀘스트를 완성해야 해. 우리 길드 실력으론 무리라고."
"대형 마을 될 즈음이면 길드도 천 명으로 확장할 수 있을 거야. 우리 길드가 언더에선 어느 정도 명성이 있다고. 지금 200명 꽉 채웠는데도 가입 문의가 맨날 들어와."
"너무 재다간 마을 점령해 국가 소속되는 것도 힘들어져. 일단 마을 점령하자. 도둑 유저한테 주변 지도 좀 제작하라 그러고 우린 일단 마을이나 공격하자. 사냥터 없으면 점령석 없어도 영역 늘릴 수 있잖아. 얼마나 좋아."
길드 채널에서 대화가 활발하게 오갔다. 점령 포인트 0인 마을로 달려가면서 이들은 최근 업데이트된 서브 직업을 상의했다.
"너흰 서브 직업 뭐로 할 건데?"
"네크로 님은 낚시꾼으로 했다던데."
"생각할 게 뭐 있어. 광부 아니면 낚시꾼이지. 광부면 탄광에서 돈 벌 수 있고, 낚시꾼은 진주 고기 낚으면 대박 치는 거고."
"난 농부도 괜찮을 거 같아. 우르크 제국이 해체한 게 먹을 게 부족해서래. 그렇다면 곡물 가격이 점점 오르지 않을까?"
"난 목수. 새집 지으면 마을 발전 경험치가 올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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