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합류1
'도발 정말 좋은 스킬이구나.'
네크로는 자폭 한 번 쓸 각오를 했다. 자폭을 대비해 수련자 세트도 미리 준비해뒀다. 그런데 철벽의 도발 스킬에 걸린 여왕개미가 출산을 포기하고 몸을 꿈틀거리기만 했다. 새끼 낳는 것마저 멈출 정도로 화가 난 모습이었다.
어느덧 네크로의 소환수도 500가량 줄었다. 약한 상대로는 오라 스킬과 기혈 덕분에 잘 안 죽지만, 약한 놈들이 죽고 강한 놈들만 남으니 기혈이 무용지물 되면서 30렙 강화 좀비와 해골 마법사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조짐이 보이기 시작할 때, 네크로는 철퇴를 꺼내 든 철벽과 함께 여왕 개미에게 다가갔다. 어린진도 그런 둘을 중심으로 위치를 옮겼다.
"제이크, 얼음 폭탄 사용."
제이크가 희망의 등대 마법사들이 만든 얼음 폭탄을 꺼냈다. 얼음 사과 안에 숱처럼 빨간 작은 덩이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 하면서 보는 사람의 수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여왕개미 꽁무니 근처에 얼음 사과를 내려놓은 제이크는, 사과 꼭지를 비튼 후 잽싸게 뒤로 굴렀다.
"폭탄은 무슨."
귀를 막았던 손을 내려놓으면서 철벽이 툴툴거렸다. 축구공이나 배구공이 김 샐 때 내는 픽 소리와 함께 얼음 사과에서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연기가 여왕개미를 꽁꽁 얼려버렸다.
"철퇴로 언 부분을 부숴. 난 안 언 부분을 공략할 거야."
철벽이 레어 철퇴로 여왕개미의 다이어트 프로젝트를 도왔다면, 네크로는 감각이 살아있는 부분을 몽둥이로 찜질해 상태이상을 유발했다. 거기에 레어 양손 검으로 무장한 돌쇠가 강한 일격을 일정 간격으로 퍼부었고, 40렙 리치와 듀라한들도 자기 공격력을 마음껏 뽐냈다.
"와, 유니크."
"레벨은?"
개인 정보를 불러다 확인한 철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빠. 59렙이야. 그새 두 개나 올랐어."
"원래 여기 경험치 많이 줘. 내일 정도면 60레벨 될 거야. 다 쉬었으면 돌아다니며 개미 사냥하자."
"잠시만, 오빠. 저기 신전 들어가 보면 안 될까?"
"여왕개미 잡을 때마다 들어가 봤어. 그리고 우리뿐 아니라 다른 길드들도 문턱이 닳을 정도로 드나들었을걸."
"그래도. 나 스샷 하나 찍어서 여왕개미 레이드 기념하고 싶단 말이야."
"그럼 아까 여왕 개미 시체 남았을 때 찍지 그랬냐?"
"그땐 무슨 템이 나올지 궁금해서 미처 생각 못 했지."
내친김에 네크로도 함께 들어갔다. 세월을 이겨내지 못했는지 개미들이 망가뜨렸는지, 밑동만 겨우 남은 잊힌 신의 조각상이 덩그러니 있었다. 섬에서 희망의 등대로 옮긴 게 유일한 신의 조각상이라고 했으니, 저 밑동만 남은 돌덩이는 아무 가치도 없는 셈이다.
"저기 보이지? 덩굴이 가득한 저기. 저기서 유니크 아이템 하나 찾아냈어."
"오빠, 저기 글 있어요."
게임이어서 거리랑 상관없이 읽을 자격이 되면 텍스트 띄워주는 건데, 철벽은 굳이 가까이 다가갔다.
"가면에 걸어둔 마법이 발동되어 제국에서 고위 인사를 중앙섬으로 보낼 것이다. 그자를 처단한 후 위장하여 제국의 심장에 침투하라."
네크로는 뒤늦게야 유니크 가면 아이템의 진정한 용도를 알아차렸다. 물론, 모로 가는 바람에 잊힌 신의 신전을 더 일찍 발견했다.
"침투에 실패할 시, 이곳에 다시 방문해라. 그리고 이 주문을 외워라."
철벽의 입에서 네크로는 못 알아들을 이상한 말이 흘러나왔다.
"뭐야?"
"한국말로 읽었는데 이상한 말이 나와."
- 퀘스트가 갱신되었습니다.
- 제국 침투에 실패한 당신, 하지만 위대한 신은 자신의 성기사에게 단 하나의 길만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 대륙 서부 최대 항구, 대륙에선 7번째 크기의 항구였던 오아시스를 대륙으로 옮기십시오. 대륙으로 이전하는 순간, 오아시스의 크기는 수백 배로 확장합니다.
"오빠, 나 엄청난 퀘스트 받았어."
"어, 나도. 일단 다른 데 글씨 더 없나 찾아봐."
어차피 성기사 문자를 읽지 못하는 네크로는 생각에 골몰히 잠겼다.
'다른 성기사들은 저 글을 못 읽었거나, 읽었어도 퀘스트 당사자인 나랑 파티가 아니어서 주문을 외워봤자 소용없었던 거겠지? 그런데 신의 저주로 여기 버려진 도시를 어떻게 대륙으로 옮기지?'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둘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소환수를 역소환한 네크로는 철벽을 앞세우고 개미굴을 부지런히 돌았다. 공동 주변에는 일개미나 불개미보다 병정개미나 장군 개미가 많아서 전투 훈련도 되고 경험치도 잘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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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뱀파이어의 심장
분류 : 목걸이
등급 : 유일
능력 : 출혈 성공 시 생명력 흡수
특별 : 다른 생명력 회복 수단이 먹히지 않음
"이건 동해한테 주자. 대신 동해가 얻은 유니크 무기를 너한테 줄게."
네크로는 물론 현피도 생명력이 자동으로 회복했다. 대주교의 축복 덕분인데, 현피는 마나 회복도 빨라졌다. 진돗개는 아이템 덕분에 생명력 회복이 장난 아니었다.
혈도 터뜨리기를 통한 출혈, 내부 타격을 통한 내부 출혈 유발이 주공격 수단인 동해에게 꼭 알맞은 아이템이었다.
이름 : 분노의 철퇴
분류 : 무기
등급 : 유일
능력 : 높은 확률로 스턴 유발
특별 : 데미지를 많이 입힌 적 상대로 공격력 상승
동해가 먹은 유니크 무기는 비싼 값에 팔기도 어렵고, 누군가 쓰려 해도 다들 더 좋은 무기가 있어서 계륵이었다.
이틀 개미굴에서 구르면서 철벽은 60레벨을 순조롭게 찍었다. 중간에 부주의로 3번 죽은 걸 제외하면 순탄하고도 신나는 레벨업 코스였다. 소환수 없이 네크로와 둘이서만 장군 개미 무리를 상대할 때 죽었다.
"천벌, 도발."
둘은 지금 중심 도시의 수련장이다. 파티를 깨고 네크로의 이젠 300 정도 남은 언데드를 상대로 광역 공격 스킬 천벌과 도발을 수련했다.
미리 대기 명령을 내렸기에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와, 오빠. 숙련도 되게 올랐어."
네크로의 패시브 스킬 '편제'. 언데드 소환수가 개인 어그로에 끌리지 않고 진을 이뤄 전투하도록 만드는 패시브였다. 반면 도발은 모든 걸 무시하고 도발 시전자에게 덤비게 만드는 스킬. 편제와 도발은 이런 부분에서 정면으로 대치하는 상극의 스킬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철벽의 천벌과 도발 스킬은 물론 네크로의 편제 스킬 숙련도도 무럭무럭 성장했다.
노말 지팡이를 든 네크로가 철벽의 몸 여기저기를 흠씬 두드렸다. 방패로 막고 무기로 쳐내고 몸을 비틀어 충격을 줄이면서도 철벽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뿌리 내리기 : 이동을 포기한 대신 방어력 대폭 상승.
방패 전문가 : 방패를 이용한 공격과 수비 보정.
보호소 : 갑옷을 이용한 수비 보정, 상태이상에 걸릴 확률 감소.
남은 2개 패시브는 네크로도 익힌 '신력'과 '이 악물어'다. 아직 전문 랭크까지 조금 부족하여 신력과 이 악물어는 장착하지 않았다. 전투 상태에서만 숙련도가 오르는 위 세 스킬보다 알아서 숙련도가 오르는 두 스킬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이교도 심판."
성기사의 속박 기술. 물리적으로 묶어두는 도둑이나 전사와 달리 이 스킬은 신성 마법에 포함된다.
"사악한 네크로맨서야, 사랑과 정의의 철퇴를 받아랏."
네크로가 수련자 세트를 착용하고 대부분 템을 벗었음에도 정의의 빛 스킬로 오른 저항이 어마어마해 5번에 1번 정도만 걸렸다. 그런데 그 1번에 숙련도 바가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였다.
"쿨타임 돌아왔을 텐데?"
"미안, 수련장에서 쿨타임 짧아진 거 적응 못 하겠어."
수련장은 기운이 빨리 회복하고 쿨타임도 감소했다. 수련 첫날이어서 아직 적응 못 한 철벽은 늘 네크로가 알려주고 나서야 스킬 쿨타임이 돌아온 것을 알아챘다.
"오빠, 랭크 올라가면 어느 스킬 올려야 해?"
"패시브는 신력. 액티브는 수련 효과 어떤지 확인하고 빨리 오르는 거로 해."
신의 분노 : 적의 저항을 떨어뜨리는 광역기.
성화 : 무기와 방패 그리고 갑옷에 신성한 불이 깃들게 함.
마나를 주동적으로 소모하는 스킬이 강타밖에 없는 관계로, 네크로는 두꺼운 갑옷과 무거운 방패를 든 철벽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상태이상."
철벽이 외치지 않아도 상태이상 유발 당사자인 네크로도 잘 알았다.
상태이상으로 저항과 방어력이 떨어진 철벽을 배려하여, 네크로는 타격이 덜 가는 곳만 골라서 두드렸다.
힘 7
민첩 5
체력 9
친화력 6
여기서 주목할 점은, 친화력 6이 비룡의 투구를 벗고 수련자 세트 투구를 쓰고 나온 수치라는 거다. 비룡의 투구를 써도 여전히 6인 걸 보면, 아직 스탯 6 초입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마나를 끊임없이 소모하고 계속 회복한다. 그렇다면 내 친화력이 6보다 더 높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5에 머물렀던 걸 보면, 짧은 기간에 많은 마나를 소모해야 효과가 있는 듯하다.'
네크로는 강타 스킬에 최대한도의 마나를 실어서 공격했다. 전투에서는 마나 관리 때문에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일이다.
'해보고 효과 있으면 애들도 수련장에서 친화력 올리라고 해야지. 언제든 유니콘에서 버그라고 막아버릴 수 있어.'
그간 데인 게 좀 있어서 별것이 다 조심스러운 네크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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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레전드 게임 골드 환전, 3월부터 별도의 세금 정책 적용.
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해 레전드 골드를 환전한 돈은 낮은 수준의 수수료만 물리도록 했다. 정식 시행은 3월 1일부터고, 여야 만장일치로 순식간에 통과한 드문 법안이었다.
"반 전무, 자네 생각이 궁금해."
반 전무는 아들이 준비한 보고서를 열 번도 더 읽었다.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부족한 관계로 그대로 외우진 못했지만, 큰 뼈대는 이미 이해했기에 대답에 막힘이 없었다.
"회장님, 아마 많은 사람이 예전 온라인 게임 시대의 작업장을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거기에 뛰어들면 곧 망할 겁니다."
"왜지? 전문가도 그렇고 댓글도 그렇고. 모두 합법 작업장의 전성시대가 올 거라고 하는데."
"온라인 게임은 규모가 작았습니다. 수백억 수천억 이런 식으로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냈지만, 사실 작업장에서 머니 사들이고 다시 파는 과정에 최소 2배는 뻥튀기된 금액입니다. 특히 큰 작업장이 작은 작업장들을 통해 게임 머니를 모으는 과정에 거래가 수차례 발생하였고, 기자들이 여러 목적으로 수치를 부풀리기도 했습니다."
안색이 불과 몇 달 전과 비교해도 무척 어두워진 반 회장은 잠자코 듣기만 했다. 큰 손주인 반형운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주려면, 큰아들이 회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갑질 논란으로 사장 자리를 내놓았다.
이젠 주변 반대를 무릅쓰고서라도 반형운에게 회장 자리를 바로 넘겨야 한다. 그래서 작업장을 반대하는 반 전무의 행태가 심기에 무척이나 거슬렸다.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만, 골드 가격을 이후 레전드 경제 상황에 따라 변동하게 유니콘에서 놔버릴 거라고 들었습니다. 이미 유럽과 미국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관련 논문을 작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얘기해주게."
"레전드 게임은 현재까지 크게 대륙과 중앙섬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만약 대륙에 큰 자연재해가 터져 농사를 망친다면, 레전드 골드 가격이 큰 폭으로 변화합니다."
"그럼 작업장이 오히려 전도유망한 사업 아닌가? 크게 망할 수 있는 사업일수록, 성공했을 때 돌아오는 게 크다네."
반 전무는 숨이 턱 막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신이 아닌 반형운이 한 말이었다면 잘 판단했다고 칭찬했을 게 뻔하다. 배만 다르게 태어났지 같은 핏줄인데, 어떻게 편애가 저토록 심할 수 있는지 치가 떨렸다.
"금융 규모를 보면, 미국이 세계 금융의 절반 정도 규모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레전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레전드가 정교한 세상이어서 함부로 규모를 불리거나 하진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정교한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반 전무. 관뚜껑 반 닫은 이 늙은이보다도 못한 패기로 어떻게 가업을 이어받겠는가?"
반형운이 하는 일에 태클 걸려면 작업장을 반대해야 한다. 반형운이 똥으로 메주 쓴다고 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반 회장이라, 어느 정도 질책은 각오했다. 하지만, 이 정도 말까지 들을 줄 몰랐다.
"레젠드는 게임이야. 현실의 금융 시스템도 구멍이 숭숭한데, 레전드라고 완벽할까?"
이 부분은 전혀 준비 못 한 반 전무는 그저 듣기만 했다.
"유저들로 세력을 이룬 후 사고를 쳐. 그럼 골드 가격이 내려갈 거 아냐. 그때 골드를 사. 사고가 수습되면 가격이 회복되겠지? 그럼 그때 팔아. 다 팔고 또 사고를 쳐. 골드 가격 내려가면 사고 오르면 팔아."
'이건 아버지 머리에서 나올 아이디어가 아니다. 반형운 이 개자식이 뒤에서 충동질했구나.'
"현실과 달리 무력의 행사가 훨씬 쉬운 게임 아닌가? 현재 레전드 최고의 무력이 우리 고려신문에 있는데 뭘 망설이냔 말이야."
밖으로 나온 반 전무는 아들을 탓했다.
"네 말 그대로 믿고 따랐다가 나만 욕봤다."
"괜찮아요. 제게도 방법이 있습니다."
"방법이 있으면 미리 내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반경운은 애처럼 떼만 쓰는 아버지가 짜증 났지만, 말 그대로 아버지가 회장이 되어야 자신에게 기회라도 온다.
"지금 반형운이 데리고 있는 길드 연합에 손을 썼어요. 운 좋으면 일부를 우리 세력으로 편입할 수 있고, 그게 어렵다 해도 저쪽 전력 30% 정도는 없앨 수 있어요."
"그것만 가지고 되겠냐? 시간이 흐르면 오랜 유저랑 신규 유저의 차이가 점점 줄어든다면서?"
"일단 반형운 다음 계획을 알아내고 그걸 방해하는 겁니다. 쓸만한 카드 하나 알고 있으니, 아버진 비상금 좀 더 풀어보세요. 반형운이 이미 백억 쏟아부은 일이에요. 실패하면 아무리 회장님이라도 강하게 밀어붙이진 못할 겁니다."
반형운의 마지막 경고를 어긴 이상, 이젠 반경운에겐 돌아갈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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