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드래곤 레이드1
"조심 좀 하지."
머리 하나만 남은 드래곤에게 동해가 죽었다. 스턴이 들어갔다는 메시지에 물러서지 않고 몇 대 더 때렸는데, 체력이 15인 드래곤은 스턴에서 바로 풀려났다.
안타깝게도 동해가 죽고 1분도 안 되어 드래곤을 잡았다. 네크로의 망치 덕분에 데미지가 잘 들어갔고 해동청의 육탄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소환 시간을 꽉 채우고 떠난 죽음의 군단도 피통을 많이 깎았다.
게다가 머리 두 개 잘린 탓에 생명력이 지속해서 하락했다. 옛날과 달리 떨어진 머리가 쉽게 붙지도 않았다.
"다음부턴 좀 더 신중해야겠다. 용아병을 예상 못 해서 죽음의 군단이 예상보단 데미지 덜 줬어."
짧은 기간에 용아병에게 죽은 죽음의 군단이 5백 넘었다. 비록 하급으로 치는 방패병과 장창병이지만, 게임 설정에 따라 병과 구성이 파괴되며 전체 위력도 하락했다.
시청자에게 인사하고 생방송을 종료했다. 생방송으로 무슨 아이템을 얻었는지 공개해서 좋은 일 없다. 다양한 아이템의 출현으로 이젠 외관만 보고 옵션을 알아맞히는 '템덕'이 생겼다. 현실의 감정사처럼 아이템 외관만 보고 옵션을 맞추는 거로 도박하는 게 요즘 템덕 유저 사이에서 유행하는 놀이다.
이름 : 사막의 수호자
분류 : 목걸이
등급 : 전설
능력 : 독 저항 상승
능력 : 저주 저항 상승
특별 : 파괴 불가
특별 : 스킬 '용아병' 사용 가능 - 쿨타임 30일
이름 : 용혈
분류 : 특수
등급 : 전설
드래곤의 피를 드랍했는데, 에르제베트의 말라비틀어진 심장보다 등급이 높았다. 그러나 말라비틀어진 심장은 피의 주술사로 전직한다고 용도가 분명했는데, 용혈은 아무 설명도 없었다.
"대도서관 사서에게 물으면 돼. 쿨타임이 벌써 돌아왔거든."
질문 내용에 따라 쿨타임이 정해진다. 게다가 네크로는 진왕 칭호가 있어 쿨타임이 귀족은 물론 다른 왕보다도 짧았다.
이름 : 사상누각
분류 : 갑옷
등급 : 전설
능력 : 체력 +2
능력 : 회피율 50% 증가
능력 : 관통 면역
특별 : 내구도 자동 회복
"안타깝네. 세 개만 건졌어."
제이크는 총 일곱 개를 뜯어냈는데 네 개가 증발했다.
"목걸이는 돗개가 써. 용혈은 일단 내가 보관할게. 용도를 알아내면 그때 분배하자. 갑옷은 내가 쓸게."
드래곤이 드랍한 갑옷은 진돗개나 철벽이 보유한 전설 갑옷과 비교해 아주 대단하진 않았다. 체력을 2 주는 옵션이 대단하긴 하지만, 진돗개 갑옷에 붙은 물리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철벽의 강철 보루 역시 체중 증가 옵션이 있어서 탱커에게 딱 맞았다. 체중이 높을수록 방패로 블록 했을 때 전달되는 데미지가 줄어든다.
"제이크, 게륵. 드래곤 레어 찾아."
말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용병은 자연 수명이 남아있으면 계속 부활한다. 단, 너무 자주 죽으면 자연 수명이 줄어들었다. 게륵은 원래 수명이 얼마 되지 않는 종족이었다. 그래도 원래는 내년에 죽을 예정이었는데, 예기치 못하게 마음의 준비도 없이 떠나보내니 가슴이 묵직했다.
"가자. 드래곤 레어에는 템이 잔뜩 하겠지?"
진돗개가 신나게 외쳤다. 드래곤 사체로 타이탄을 제작한 네크로가 가장 늦게 움직였다.
보물섬은 아름다웠다. 그리고 왜 보물섬이라고 불리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거 비싼 나무다."
"이거 귀한 돌이다."
"이거 연금술 재료로 쓰는 풀이다."
버릴 게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나무, 돌, 풀 모두 비쌌다. 그러나 채석이나 벌목 그리고 채집 스킬이 없는 일행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입맛을 다시며 한참 걸으니 드래곤 레어가 나왔다.
"여기 엘라투르사의 레어만큼 큰데?"
"부모가 물려준 거겠지."
레어엔 함정 따위가 없었다. 잡종 드래곤의 부모인 변이 드래곤의 부모인 드래곤이 만든 레어다. 레어를 만든 드래곤이 모종의 사고로 죽은 바람에 보살핌을 받지 못해 변이 드래곤으로 태어났고, 변이 드래곤은 사막 히드라와 교배하여 알을 낳은 후 여길 떠났거나 죽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길. 아무리 반쪽 드래곤이라지만, 너무한 거 아냐?"
레어의 보물창고에는 아이템이 얼마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물건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바다에 나는 진주가 많았고 보석과 금화 은화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일단 전설과 유니크 등급은 감정하자."
그때 길드 채널로부터 동해 목소리가 들렸다.
"형, 나 소금성이야."
드래곤에게 죽은 동해는 소금성에서 부활했다.
"네가 쓸만한 템은 없어. 자세한 얘기는 후에 들려줄게."
그런데 동해가 부활하자마자 그웩이 사라졌다. 시스템이 그웩을 동해 곁으로 보내버렸다.
"그럼 이것들은 돌아가서 감정하자."
- 초보자를 위한 팁.
- 전투에서 승리한 드래곤은 상대의 레어와 영지를 본인 소유로 할 수 있습니다.
- 드래곤은 보석과 금화 은화를 섭취해 성장합니다.
박하 향을 풍기는 시원함이 네크로의 등줄기를 타고 꼬리뼈를 저리게 했다.
"야, 다들 챙길 만큼 최대한 챙겨. 금고 꽉꽉 채우고 인벤토리도 채워."
"왜?"
"이 레어랑 보물섬을 해동청 소유로 할 수 있어. 바로 소유로 돌리면 자기 물건이라고 못 건드리게 할 거야. 그러니까 일단 먼저 챙기자. 보석이나 금화 은화는 남겨둬."
인벤토리에 안 들어가는 건 아공간에 넣었다. 셋의 은행 금고에 아공간에 인벤토리까지 다 채웠는데도 창고엔 많은 물건이 남았다.
아까는 양이 적어서 실망이었는데, 최대한 챙기고 보니까 남은 양이 너무 많아서 안타까웠다.
"해동청, 레어 네 거야."
해동청이 보물 창고를 나가 침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공터에 까치둥지를 방불케 하는, 돌과 나무로 지은 보금자리가 있었다. 해동청이 몸을 뉘자 둥지가 은은한 빛을 뿜었다.
- 해동청이 보물 창고의 재물을 흡수했습니다.
- 5단계로 진화합니다.
- 5단계 진화에 걸리는 시간은 현재 알 수 없습니다.
둥지의 나무와 돌이 자라서 고치가 되었다. 해동청을 감싼 고치가 점점 덩치를 불렸다.
"야, 나가자. 이러다 문이 막히겠다."
일행은 드래곤의 침실을 벗어났다. 다시 보물 창고를 방문하니 보석이나 금화 은화가 모조리 사라졌다.
"오빠. 5단계 된 다음에도 계속 보석이랑 골드 먹는 거 아닐까?"
일행은 아이템과 보물 상자 그리고 큰 보석만 챙겼다. 해동청이 성장케 하려고 일부러 금화 은화를 골드로 전환하지 않았다.
"그럴 거 같아. 안 그럼 보물 창고가 텅텅 빌 리 없겠지."
"오빠. 저기 뭐 있어."
보석이나 금화에 깊이 파묻혀 있었는지, 아깐 미처 보지 못했던 템이 있었다.
"게이트 생성석?"
보잘것없는 외관에 눈에 띄어도 무시했을 가능성이 컸다.
"포탈이랑 비슷한 건데, 포탈은 서로 다 통하고 게이트는 둘씩 통해."
"돗오빠 공부 이렇게 했으면 명문대 갔겠다."
"어릴 때부터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 머리는 좋은데 공부 안 해서 성적 안 나온다고."
"게이트 설치."
- 드래곤 레어 안에는 게이트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일행은 밖으로 나와서 게이트를 설치할 곳을 찾았다. 철벽과 진돗개가 탈것을 타고 날아서 쭉 살핀 결과, 바위산과 숲의 경계가 나뉘는 곳에 있는 작은 공터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게이트 설치."
게이트 생성석 하나가 부서지면서 넓이 5미터에 높이 5미터인 게이트가 생겼다. 그러나 게이트를 타고 편하게 돌아가려던 꿈은 산산이 부서졌다.
- 남은 게이트 생성석은 최소 50킬로미터 밖에서 사용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게이트 생성석을 허리띠 슬롯에 넣고 배 타러 갔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안 되어 밤이 되었다. 네크로와 제이크는 낚시했고 진돗개와 철벽은 로그아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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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26억의 사나이 네크로, 유저 최초 드래곤 레이드에 성공
[속보] 네 명이 드래곤 레이드에 성공한 비결, 결국 밝혀져
[속보] 네크로가 강한 거냐 드래곤이 약한 거냐, 인터넷에서 치열한 설전 벌어져
"진격 속도를 높이자. 빨리 일본 해치우고 네크로를 공격하자."
네크로의 예상대로 드래곤 레이드는 철혈팔기의 간부 그리고 정예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자신보다 관심받는 유저를 향한 질투. 어쩌면 자신보다 강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개인 자격으로 보유한 광산과 탄광을 향한 탐욕. 옵션이 속 시원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드러낸 부분만으로도 탐나는 아이템들.
"우리 마음이 일치하군."
가미카제의 성을 80% 정도 점령하면 철혈팔기는 전장에서 빠져 네크로를 공격하러 간다. 만리장성이 가미카제를 묶어두고 초인동맹은 이번 사태에 절대적 중립을 지킬 것을 약속했다.
역천이나 북미 길드가 귀찮게 하면 기마병을 보내 똑같이 귀찮게 해주면 된다. 네크로 길드가 직접 점령한 마을과 도시만 공격할 계획이기에 기마병을 대동하지 않아도 괜찮다.
"공성 병기는 전부 최전선 도시로 옮겨갔지?"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그럼 유저들에게 통보해. 날이 밝는 대로 출발한다."
밤이면 시야가 불편한 NPC 때문에 행군은 보통 낮에 해야 했다.
3시간 정도 흐르고 게임에서 날이 밝았다. 첫 공성전과 달리 유저 참여율이 그렇게 높지 않아서 NPC까지 합쳐도 90만 정도였다. 가미카제도 마찬가지로 유저가 줄었기에 연합군의 우위는 여전히 명확했다.
다음 목표인 오사카까지 반 정도 걸었을 때, 길드 채널로 급보가 올라왔다.
"수도가 공격받았습니다."
"상대가 얼만데?"
"유저 40만 정도 됩니다."
철혈팔기 길드장이 다급히 명령을 내렸다.
"가미카제가 어떻게 40만이나 되는 유저를 수도로 보냈는지 확인해."
곧 간부들이 모여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30만 명만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유저 30만으로 수도를 지키고 남은 유저와 NPC는 이대로 오사카를 공격한다.
"그러다 수도 함락하면 큰일이다."
수도가 함락하면 철혈팔기와 만리장성이 맺은 동맹이 깨진다. 동맹석은 가격도 비싸지만 구하는 게 너무 어렵다. 경로가 다양하지만, 확실히 동맹석을 얻는 방법은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게다가 동맹이 깨지고 다시 동맹 맺으려면 쿨타임이 필요하다. 굳이 두 세력이 단번에 4개월짜리 동맹을 맺은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무인과 기마병 유저는 NPC와 함께 전진한다. 남은 유저들은 수도로 돌아가 수비한다. 상대 임시 신전을 함락해 전투를 빨리 끝낸 다음 바로 오사카 공성전에 참가한다."
수도를 반드시 지켜낸다는 전제가 필요했다.
"지도 가져와."
지도를 펼쳐 확인했다. 수도를 공격한 가미카제 유저들은 공성에 실패하면 가장 가까운 가미카제의 마을 혹은 도시로 이동한다. 공성전에 실패한 가미카제가 어디로 가는지에 따라 전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잠깐. 방금 소식이 들어왔다. 가미카제가 마을 하나 점령했다."
가미카제가 점령한 마을 위치를 확인했다.
"수도 점령에 실패하면 이곳에서 부활하겠군."
새로 점령한 마을은 만리장성과 철혈팔기의 국경에 있었다. 그곳에서 부활하면 철혈팔기의 도시를 공격해도 되고 만리장성 도시를 공격해도 된다.
"정보 들어왔습니다. 가미카제가 배 한 척에 유저를 태운 후 모두 로그아웃하게 하고, 그 배에 새로 유저를 태운 후 로그아웃하게 하는 방식으로, 40만을 배 한 척에 태워서 강으로 이동해 수도에 접근했습니다."
"제길. 눈 뜨고 코 베였구나."
가미카제가 써먹었기에 유니콘이 곧 막아버릴 것이다. 중앙섬에서 배를 타고 대륙 북부로 갈 때 이미 경험했던 일이다. 그러나 자신을 강자로 생각한 철혈팔기는 이러한 꼼수를 사용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승부처다. 수도를 막아내고 도시 함락까지 성공하면 우리 승리다."
철혈팔기의 간부가 침을 튀겼다.
"아니다. 오늘 공격은 포기한다. 가미카제가 점령한 마을을 탈환하고 수도를 지킨다."
마찬가지로 철혈팔기 간부가 신중론을 펼쳤다.
"자. 수도를 지켜내면 40만 유저가 방금 점령한 마을로 간다. 저들은 고립되었다. 포탈이 없어서 복귀조차 못 한다. 우린 40만 유저가 빠진 틈을 타서 가미카제의 도시와 마을을 점령하면 된다."
만리장성 간부가 이상론을 펼쳤다.
"가미카제가 아무 생각도 없이 40만이나 뗐을까? 전투 도중에 다른 마을을 점령해서 남쪽으로 복귀할 수도 있다."
철혈팔기 간부가 이상론에 반박했다. 가미카제가 멍청이도 아니니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유저 일부가 돌아가서 수도를 지키고, 남은 유저와 NPC는 이대로 전진한다. 공성전 30분 뒤면 새로운 유저를 투입하지 못한다. 수성전과 공성전 둘 다 이기면 계획보다 빠르게 이번 전쟁을 끝내고 일본을 함락할 수 있다."
과격파는 수도 수비와 도시 공격을 동시에 하자고 했다. 신중론자들은 이대로 돌아가서 수도 수비에만 전념하자고 했다. 이상론자는 수도를 수비해서 가미카제 40만 유저를 북부로 보내버린 후 가미카제의 도시를 쉽게 점령하자고 했다.
이상론을 완성하려면 가미카제가 40만 유저를 복귀시키는 걸 막아야 한다. 말로는 쉬우나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차분하게 고민하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연합군에게 가혹했다. 공성전이 펼쳐지고 30분이 흐르면 새로운 유저를 전투에 투입하지 못한다. 이들에겐 냉정히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네크로의 드래곤 레이드 소식 때문에 다들 마음이 평온치 않았다. 최대한 냉정해지려 했지만, 사람 마음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수도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건 다들 동감할 거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 3만 무인과 일부 유저를 남겨두자. 당장 전진하지는 말고 여기에 주둔하다가 수도 수비 상황을 보고 전진 혹은 후퇴를 결정하자. 저쪽이 쭉정이 40만을 보내 우릴 기만하는 걸 수도 있으니까."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벌어질 때면 꼭 이유나 목적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연합군 수뇌부는 시간이 부족해 왜 가미카제가 이런 위험한 선택을 했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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