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 퀘스트1
삼각뿔 사슴은 드래곤 산맥에 서식했다. 타고난 사냥꾼인 구룩 부족의 도움을 받아 수염을 얻었다.
구룩 부족은 비록 투라칸 레이드 때에 아쿠라온스텐즈에게 모조리 죽었지만,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었기에 모조리 부활했다.
같은 드래곤이 죽어도 무관심한데 고작 문을 지키던 늑대가 죽었다고 개입한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그때 캐릭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면 네크로가 아무리 시간제한 퀘스트로 바쁘다 해도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WORLD는 세 번째로 1단계 퀘스트를 완성한 국가가 되었다. 네크로에 이어 2번째로 대도서관을 지은 초인동맹이 가장 먼저 끝냈고 2등은 역천이 했다. 네크로가 1단계를 끝내고 하루 뒤에 철혈팔기와 가미카제도 1단계에 성공했다.
"프리덤이야 유저도 적고 실력도 부족하다 쳐도, 만리장성은 뭔 꼴이야?"
"핵심 유저는 괜찮은데 변두리 유저들은 동요가 심한가 봐. 고작 도시 20개 정도밖에 안 되는 최약 국가니까."
세라프가 식량을 팔아주지 않는다면 철혈팔기 다음으로 강한 국가는 네크로의 WORLD다. 만리장성은 보유한 유저에 비교해 도시나 인구가 너무 부족했다. 긴 전쟁을 지탱할만한 저력이 아예 없는 국가였다.
만리장성은 웬만한 전투에는 정예 유저만 투입했다. 거기에 끼지 못한 유저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점점 세력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졌다. 그게 신기 퀘스트 1단계에서 드러났다. 재료 얻는 거야 정예만 움직여도 되지만,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데는 많은 유저가 함께 노력해야 했다.
"형, 드레이크 저대로 둘 거야?"
드레이크는 공공연히 2단계를 함께 할 유저를 모집한다고 외치며 다녔다.
"숫자가 많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유저 잔뜩 모아놓고 실패하면 어떻게 수습하려고."
네크로는 드레이크가 하는 짓에 전혀 관심 가지 않았다. 그저 드레이크의 배후가 누군지만 궁금했다.
네크로는 얼음섬에서 얻은 레어 등급 탈것 세 개를 드레이크에게 포상으로 내렸다. 드레이크는 얼음뿔 사슴을 차지하고 얼음꽃 게와 달그림자 곰은 자신 다음으로 강한 세력을 보유한 두 유저에게 줬다.
"바알드로의 힘이 닿은 흔적이라. 신의 흔적과는 다른 거겠지?"
"아이템일 거야. 너 아직도 쿨타임이 안 돌아왔어?"
"사흘 더 있어야 해."
네크로는 삼각뿔 사슴 수염 관련한 질문을 해서 쿨타임이 안 돌아왔다. 다행히 진돗개의 쿨타임이 곧 돌아와서 퀘스트 진행에 큰 지장은 없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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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블린은 드래곤 웜을 해치운 보답으로 보석함을 업그레이드해줬다. 외관은 그대로인데 보석을 얻을 확률이 조금 올라갔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네크로는 로그인해서 처음으로 중급 보석을 얻었다.
중급은 아이템으로 치면 레어 등급이다. 가격은 레어 아이템보다 훨씬 비쌌다. 대략 사십만 원에서 백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는 보석이었다.
유니크 등급은 육백만 원에서 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었다. 아이템과 달리 아직까지 희소성이 있기에 가격이 높은 편이었다.
"형. 사서가 모르겠다는데?"
네크로는 아차 싶었다. 사흘 내내 낚시하면서 편하게 지냈다. 사서가 신에 관련한 질문에 잘 대답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퀘스트라는 생각에 방심했다.
"그럼 이 네 재료에 관해 얻는 방법을 물어봐."
고블린, 푸레, 드워프 그리고 경매장을 통해서도 얻지 못한 재료에 관해 질문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사서는 답을 알았다.
"신이 대륙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정보를 모아. 현자나 대현자 NPC에게도 자료 수집을 시키고. 너는 나랑 동해랑 같이 레전드 게시판을 살피자."
게시판 살피는 데는 진돗개나 동해가 네크로보다 한 수 위였다. 셋은 게임에 접속해 게시판을 살폈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오래 보면 눈에 피로가 쌓이지만, 게임에 접속하면 그런 걱정은 아예 없었다.
하루가 지나서 게시판에서 실마리를 얻었다.
"형. 역천은 영원한 암흑 던전으로 갔다는데. 역천이 진입하고 나서 던전 입구가 막혔대. 고구려 유저만 들어갈 수 있어."
"가미카제는 부랑자의 성지로 갔어. 역시 가미카제가 진입하고 다른 국가 혹은 무소속 유저는 출입금지야."
"철혈팔기는 기연의 절벽이라는 곳에 갔어."
"형, 뭐 느낌 오는 거 없어?"
"에픽 퀘스트. 여덟 개 에픽 퀘스트에서 중요한 장소야."
"그럼 우린 어디지?"
"난 파열의 협곡이 가능성이 크다고 봐."
진돗개는 퀘스트 진행하며 두 번이나 들러야 했던 파열의 협곡이 가능성이 크다고 여겼다.
"밤의 결정으로 신의 모습을 조각했잖아. 게다가 황혼의 결정은 신전에서 통신구로 사용하고. 신의 흔적도 있었고 삼각뿔 사슴 수염도 그 근처에서 얻었잖아."
"만약 아니면 어떡하지? 가만히 있는 것보다 실패했을 때 데미지가 더 커."
드레이크가 갑자기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면 걱정 없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성공하는지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먼저 실패하는지도 중요했다.
"제길. 명성은 왜 NPC 상대로만 먹히는 거야."
지나가던 드래곤도 알은체할 정도로 명성이 높은 네크로가 불만을 토했다. 유저들 상대로 명성이 먹힌다면 드레이크를 걱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형. 다른 유저들은 다 확신하는데 왜 형만 이렇게 헷갈릴까?"
'내가 버그 유저라서 그래. 퀘스트가 이상하게 꼬였거든.'
이건 최고신과 둘이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이다.
"NPC 국왕인 나라는 그럼 어쩌란 거지?"
물론 지금 NPC를 국왕으로 한 국가는 없었다. 여인국과 대한제국이 NPC를 국왕으로 하면 얼마나 나라 키우기 힘든지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확실히 증명했다.
"잠깐. 형 빼고 하나 더 있어야 하잖아."
"유럽의 왕. 걘 인간이 아니잖아."
"형, 걔랑 친분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잠시만. 쪽지 보내고 있어."
네크로는 산투스에게 쪽지를 보냈다. 에픽 퀘스트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퀘스트와 진행 장소가 어디였는지 질문했다.
초면에 자기 약점까지 다 누설할 정도로 순수한 산투스는 네크로의 질문 의도를 묻지도 않고 대답했다.
"전사의 천국. 어딘지 알아?"
"내가 안다. 드래곤 산맥에 있다."
'에픽 퀘스트를 전부 드래곤 산맥에서 진행했으니 당연히 거기겠지.'
"나도 전사의 천국에 머문 적 있다. 진정한 전사들이 모여서 무구나 스킬 빼고 기술만 겨루는 곳이지. 거기에서 드래곤 산맥 최강의 전사라는 칭호를 얻었다. 적수가 없어서 거길 떠났다."
"우리끼리 가자."
네크로와 진돗개 그리고 동해 이렇게 셋이 움직였다. 철벽은 아이템과 스킬 덕분에 유저로선 꽤 강하지만, 싸움을 잘하는 건 아니었다. 현피는 닭 모가지도 못 비트는 나약한 서생이고.
"셋만 가서 실패하면 어떡해?"
"실패하면 끝 이런 건 아니겠지 뭐. 3단계도 있는데."
"해동청 소환."
네크로의 방패가 반짝이더니 머리와 눈동자 그리고 옷 색깔만 다르고 제이크와 판박이인 해동청이 나타났다. 한 달 수면이 끝나고 활동기가 되었다.
해동청이 수면에 들어도 방패는 늘 네크로를 따라다녔다. 불편한 점은 인벤토리로 들어가지 않아서 등에 지거나 손에 들고 다녀야 했다.
"다른 드래곤 영역을 침범하지만 않으면 돼. 나도 이젠 레어 있는 드래곤이란 말이야."
해동청이 제이크와 네크로를 태우고 날았다. 세 탈것과 세 유저 그리고 세 용병이 드래곤 산맥을 빠르게 관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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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래도 되는 걸까?"
"안 그럼 무슨 방법이 있어? 중간에 조각사 퀘스트를 역천에게 빼앗기는 바람에 억지로 퀘스트 완성했잖아."
퀘스트 진행을 도와준 애꿎은 역천이 덤터기를 썼다.
게륵이나 해동청이 나서면 쉽게 해결할 것 같은데, 퀘스트는 유저만 허락했다. 첫 타자로 동해가 나섰다. 셋 중에 맨손 싸움이 가장 약한 게 동해였다.
결투장에 들어가자 동해의 아이템이 모조리 사라졌다. 다행히 무복이 자동으로 입혀져서 속옷만 입고 싸우는 불상사는 없었다.
"패시브도 사라지고 내공도 사라져. 진짜 기술만 겨루는 곳이야."
"스탯은?"
"그건 주의하지 않았는데."
"바로 다시 도전할 수 있어?"
"3일, 그러니까 하루 뒤에 재도전할 수 있어."
진돗개가 나섰다. 진돗개의 첫 상대는 리자드 전사였다. 3분을 싸우고 진돗개도 패했다.
"제길. 꼬리 쓰는 건 반칙 아냐?"
리자드는 꼬리를 아꼈다가 필살기로 썼다. 싸우며 몰입하다 보니 리자드의 꼬리를 까맣게 잊은 진돗개는 절대 공격 타이밍이 아닌 순간에 들어온 꼬리에 맞아 균형을 잃었다.
쓰러지면 패배로 치는 싸움이어서 허망하게 패배했다.
"나도 도전해 봐야겠다. 싸워봐야 뭘 어떻게 연습해야 할지 감이 잡힐 것 같아."
그간 아이템에 많이 의존했던 네크로도 첫 상대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특히 스킬 숙련도를 모두 그랜드 마스터 100%까지 채운 네크로여서 갑자기 사라진 아이템과 스킬의 부재를 극복하기 더 힘들었다.
전사의 천국에서 아무리 맞아도 생명력이 변화하지 않는다. 여긴 피통을 바닥내는 거로 승부를 가리는 곳이 아니었다. 무조건 기술을 겨뤄 먼저 쓰러지는 자가 지는 곳이었다.
"해동청, 게륵이 우리 대련 상대가 돼줘."
아이템을 모두 벗고 속옷 차림이 된 셋이 해동청과 게륵과 싸우며 전투 감각을 익혔다.
'산투스가 패시브 없이도 잘 싸운다 했더니, 여기서 단련 받은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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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상대 다섯 남겨두고 패했다. 실력이 비슷한 상대인데 한순간 집중을 놓쳐 아쉽게 패했다.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야. 휴식도 없이 계속 싸워야 하는데, 아무리 게임이어서 몸이 안 힘들다고 해도 끝까지 집중하는 게 너무 힘들어.'
다행히 지금 2단계를 끝낸 국가는 없었다. 드레이크는 유저들을 데리고 드래곤 산맥에서 삽질했다. 나름대로 도서를 통해 단서를 잡은 것 같았는데, 이번 퀘스트는 레전드 고유 설정과 상관없이 에픽 퀘스트와 관련한 지역들을 이용해 급조했다.
네크로가 가야 할 곳은 파열의 협곡이 맞았지만, 좀 더 확실히 하려고 전사의 천국으로 왔다. 드레이크가 파열의 협곡을 찾거나 전사의 천국으로 오면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지만, 남은 여섯 지역은 문을 꽁꽁 닫고 같은 국가 유저만 받아들였다.
진돗개는 동해보다 더 형편없었다. 최근 타고난 전사와 세 개의 심장 스킬을 얻고 거기에 적응하느라 노력했는데, 그게 독이 되었다.
네크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원래부터 무기를 들지 않았던 동해만 선전했다. 그러나 패배한 네크로의 얼굴이 나쁘지 않았다.
"감 잡았어."
"형, 뭔데?"
"게임과 현실은 달라. 예전엔 게임이 현실 무술에 적응 못 해서 내가 쉽게 이겼어.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게임을 못 따라가는 거야. 게임의 무술을 배울 필요가 있어."
"그걸 어느 천년에 배워?"
"간단해. 한계를 알아야 해. 내 한계를 알고 각 종족 한계를 아는 거야. 어차피 막고 때리는 건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우리가 지금 가장 부족한 건 판단력이야. 상대 공격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니까 대응이 느릴 수밖에 없어."
"어떻게 극복해?"
"구경 많이 하고 많이 싸워. 해동청이랑 게륵이랑 싸울 때 다양한 시도를 하고."
해동청과 게륵을 제외하고도 대련에 기꺼이 응하는 전사가 많았다. 셋은 다급함을 버리고 다양한 NPC와 쉬지 않고 대련했다.
"형, 나 스킬 숙련도 올랐어."
스킬을 배제하고 싸웠는데 숙련도가 올랐다. 게임 시스템이 실력이 향상했음을 인정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싸우다 해동청이 사라지고 나서야 시간이 엄청나게 흘렀음을 자각했다.
"도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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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의 전사 칭호를 얻었습니다.
- 스킬 숙련도가 더욱더 빠르게 상승합니다.
- 힘과 체력 스탯이 더욱더 빠르게 상승합니다.
동해가 아쉽게 둘 남기고 실패하고 진돗개가 도전해 성공했다. 쉬지 않고 종족이 제각각이고 스타일도 제각각인 전사 NPC 스물을 해치웠다.
- 드래곤 산맥 최강의 전사에 도전하시겠습니까?
"아니요."
- 최초의 전사가 남긴 '최강의 일격'을 관람할 자격을 얻었습니다.
진돗개는 '전사의 문'을 지나 동굴에 들어갔다.
- 최강의 일격을 보고 영감을 얻었습니다.
- 참수 스킬의 위력을 강화합니다.
- 참수 스킬이 유니크 등급인 도룡참수가 되었습니다.
- 신의 흔적을 1/5 수습합니다.
밖으로 나온 진돗개가 파티 채널로 외쳤다.
"다섯이 통과해야 해."
황급히 싸울아비 길드장 '싸울할아비'와 부길드장 '싸울아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진돗개가 둘의 교관을 맡기로 하고 네크로가 도전했다.
팔이 네 개인 마지막 NPC 상대로 잠깐 시련이 있었지만, 네크로는 출중한 스탯 덕분에 쓰러지지 않고 버텨냈다.
- 패시브 스킬 신력이 유니크 등급 스킬 거력이 됩니다.
- 신의 흔적을 2/5 수습합니다.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는 말에 기쁘게 달려온 싸울할아비와 싸울아이는 먼저 진돗개와 네크로에게 피 터지게 얻어맞았다. 좀 버틸만하다고 느낄 때 게륵이 참교육을 해줬다.
- 스킬 투심권이 유니크 등급 스킬 십단금이 됩니다.
- 신의 흔적을 3/5 수습합니다.
싸울할아비와 싸울아이가 세 유저와 한 용병 손에서 강철 전사로 거듭날 때, 초인동맹과 역천 그리고 가미카제가 신의 흔적을 수습하고 3단계로 들어갔다.
3단계이자 마지막 단계는 재료 수집이었다. 수집해야 할 재료가 수천 종류나 되었다.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 정도로 흔한 재료도 있었고, 들어본 적은 물론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재료도 있었다. 단순한 전투력이 아니라 세력의 종합 실력도 확인하는 퀘스트였다.
진돗개 등의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은 '친절'한 가르침과 본인들의 노력으로 싸울할아비와 싸울아이도 최강의 전사 자격을 얻는 데 성공했다.
앞선 세 세력에 현실 시간으로 보름이나 뒤처진 네크로는 3단계 수집 퀘스트 공헌도 10위까지 레어 탈것을 보상으로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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