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얻은 폐급 작가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신재영
작품등록일 :
2020.02.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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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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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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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DUMMY

현우는 곧바로 쓰던 모니터를 뽑고서 철민의 모니터를 연결했다.

그러자 모니터에서는 평범하게 화면이 출력됐다.

쨍 한 화면의 질감이, 기존에 쓰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제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게 해 줬다.

‘혹시······ 이것도 뭔가가 있을까?’

오늘 쓴 편의 마지막 페이지를 띄우고 있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효과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그게 나타나는 거지?’

키보드는 손을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알아서 효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모니터는 만지는 게 아닌 만큼, 그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계속 바라보는 것도 방법은 아닌 거 같고.’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느낌도 오지 않았다.

결국 현우는 손을 뻗어서 모니터를 직접 만진 채로 나머지 한 손을 이용해서 키보드를 두드려 봤다.

그러나 여전히 감각에는 아무런 변화도 찾아오지 않았다.

‘이건 아무것도 아닌 건가?’

그러자 몸에서 긴장감이 쭈욱 하고 빠져나갔다.

“후우.”

현우는 모니터에서 손을 떼고서,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가 무의식중에 마우스를 손에 쥐고서, 스크롤을 휙 하고 위로 올렸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

현우는 모니터 위에 그어져 있는 빨간 줄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오타가 났을 때 그어지는 빨간색 줄과는 달랐다. 그것보다는 조금 더 진한, 마치 형광펜으로 그어진 것 같은 밑줄이 본문 일부에 그어져 있었다.

현우는 곧바로 마우스 스크롤을 더 당겨 봤다.

그러자 본문 곳곳에서 방금 전에 본 것과 같은 형광펜 밑줄이 발견됐다.

‘난 이런 거 본 적이 없는데······?’

현우의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현우가 마우스 휠을 계속해서 휙휙 굴렸다.

‘······설마.’

현우는 다급하게 모니터를 원래 쓰던 것으로 교체해 봤다.

“······없어.”

원래 쓰던 모니터에서 출력되는 화면에서는 형광펜처럼 보이던 밑줄이 발견되지 않았다.

현우가 모니터를 철민의 것으로 교체했다.

그러자 철민의 모니터에서는 빨간색 밑줄이 다시 나타났다.

“······하, 하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다시 한 번 일어나자 현우는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이건······.’

붉은색 밑줄의 정체는 무엇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밑줄이 쳐져 있는 본문마다 공통된 지점이 있었다.

바로 모두 그가 아리송해 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건 대사이기도 했고, 짧은 문장이기도 했으며, 심하게는 장면 단위가 통째로 붉게 물들어 있기도 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작가는 자기 글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볼 수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원고 검열을 해 주는 기능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 재미없는 글을 쓸 때마다 모니터가 칼같이 제지해 준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박이다.’

모니터도 키보드만큼, 아니 어쩌면 키보드보다 더 대단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현우는 순간 멍해졌다.

현우의 머릿속엔 꿈 속, 철민의 마지막 말만이 맴돌았다.

‘네가 남긴 거겠지······ 이건.’

현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아!”

그때 현우는 하나 더 남아 있는 철민의 유품이 떠올랐다.

현우는 어제 입고 온 패딩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주머니에서 빠져나온 현우의 손에는 USB가 쥐어져 있었다.

‘이건 뭘까······.’

키보드는 손을 빠르게 해 줬고, 모니터는 정확한 눈을 가져다줬다. 둘 다 물건의 용도와 연관된 능력들이었다.

그런데 USB는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어떤 능력이 있을지 조금도 유추되는 것이 없었다.

현우는 떨리는 심정으로 USB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

USB폴더가 모니터 화면에 떴다.


[성좌물 분석]

[레이드물 분석]

[게임 판타지 분석]

[재벌물 분석]

[스포츠물 분석]

[무협 분석]

[현우]


USB폴더 속에는 폴더가 여러 개 보였다.

그리고 가장 아래에 있는 현우라는 폴더가 현우의 눈에 띄었다.

그러나 현우는 그것을 클릭할 용기가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현우는 성좌물이라고 나와 있는 폴더를 먼저 클릭했다.

그리고 폴더가 열리는 순간 현우는 깜짝 놀랐다.

‘······미친놈.’

폴더 속에는 파일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다름 아닌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분석 자료들이었다.

현우는 폴더들을 훑다가 파일 하나를 켜 봤다.


[네크로맨서 플레이어 분석

캐릭터 분석

1. 작품의 주인공이 시원시원하고 호쾌한 성격이라는 점이 첫 번째 메리트.

2. 주인공이 남을 쉽게 믿지 않고 독불장군형 캐릭터라는 점이 두 번째 메리트(독자들에게 호감을 사기 쉽다)

······]


캐릭터 분석만이 아니었다. 이후에는 권 단위로 짤막하게 내용이 요약되어 있었고, 해당 내용들의 장단점들도 코멘트가 되어 있었다.

‘한 번만 한 게 아니야······.’


[3. 이 부분은 주인공이 고뇌를 하는 부분이기에 조금 위험한 내용이 아니었나 싶다.

3-1. 생각해 보니 이 파트는 독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다시금 의지를 다지는 내용이기에. 실제로 이 부분이 있었기에 이 이후로 주인공이 폭주를 하는 게 납득이 갔다. 재미있는 부분을 위한 밑거름 같은 파트.]


중간 중간에 다른 색으로 된 코멘트가 존재했다. 누가 봐도 두 번, 세 번 읽고 반복해서 분석한 글임이 티가 났다.

혹시 이 파일만 이렇게 자세한 것인가 싶어 현우는 다른 파일도 확인해 봤다.

그런데 다른 파일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다 세 달 간격으로 여덟 번이나 분석한 글까지 발견되었을 때에는, 현우가 헛웃음을 지어야 했다.

그렇게 삼십 분 넘도록 현우는 멍하니 USB 안의 다른 폴더들도 순서대로 열어 봤다.

세상에 연재됐거나, 현재 되고 있는 다양한 글들에 대한 분석 자료가, 폴더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대단하다, 정말······.’

현우는 철민의 노력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감상을 뒤로하고, 어느덧 USB에는 마지막 폴더 하나만이 남겨 두고 있었다.

현우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그 폴더를 클릭했다.

예상대로 그 폴더 안에는 그가 그동안 쓴 글들이 들어 있었다.

지난 팔 년 동안 출간한 다섯 종의 글들에 대한 분석 파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다섯 개의 파일에는 지금 연재 중인 전설의 기사가 살아남는 방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우의 손은 다른 파일보다는, 자연스럽게 그 파일로 향했다.


[캐릭터 분석

주인공 - 단호함이 강점인 초반부와는 달리, 중반부부터 그 특징이 희미해진다.

······

1편 분석 - 화끈한 도입부. 짧게 쳐 내지는 못했지만, 맛깔나고 재미있다.

2편 분석 - ······]


‘······뭐야.’

그의 글은 권 단위도 아니고, 아예 편 단위로 분석이 되어 있었다.


[아쉽다. 이 부분을 살렸으면 어땠을까.]

[괜찮았다. 이미 독자들이 떠난 상태라서 평가받지 못했지만, 이건 다음 작품에서도 사용해도 좋을 패턴인 것 같다.]


어떠한 대작 작품보다도 더 치밀하게 파헤쳐져 있는 분석을 보고 있자니, 현우는 마음속에서 울컥 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이 작품이 연재되는 기간은, 철민이 투병생활을 하는 기간과 겹친다.

그 말은 철민이 아픈 와중에도 이 작업을 해 줬다는 뜻이었다.

철민의 여동생은 철민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노트북을 끼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철민이 노트북으로 한 작업은 그의 유작 원고 작업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하아.”

그리고 그 분석이 끝나는 시기는, 80편 언저리였다.

현우는 직감했다.

‘이때부터였구나······.’

병원에서 입원해서도, 더 이상 노트북조차 쓸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순간이 이때라는 것을 현우는 직감했다.

그리고 82화의 분석 글을 끝으로, 83화의 분석 글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다른 글이 있었다.


[현우야.

힘닿는 데까지는 해 주고 싶었는데, 더 이상은 몸이 따라 주지를 않네. 미안하다. 분석은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아.

진부한 이야기지만, ‘네가 이 USB를 건네받았을 때엔 나는 이미······.’ ㅋㅋㅋㅋㅋ 웃기지?

이런 소설 속의 이야기 같은 일이 현실로 닥쳐 버렸네.

이걸 받았다는 건 내 장례식도 끝나고, 너는 수민이한테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뜻일 거니까, 내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할게.

다만, 정말 미안하다. 너한테 미리 말하지 못한 건 꼭 사과하고 싶어.

내 나름의 방식을, 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남길 수 있는 게 많지가 않네. 얼마 못 번 돈은 내 장례식 비용으로 다 써야 할 거 같아. 너한테 줄 수 있는 거라곤 수민이가 말해 주겠지만 키보드와 모니터, 그리고 USB가 전부야. 이거밖에 못 줘서 미안하다. 다만 네가 이건 꼭 가져가 줬으면 좋겠어.

USB 속에 든 것들은 너한테 쓸모가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예전부터 너한테 주고 싶었던 자료들인데, 혹시라도 내가 너를 가르치려고 든다고 느껴지면 네 자존심이 상할까 싶어서 차마 못 주고 망설였던, 내 나름대로의 공부들이야. 이 지경까지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그런 거 생각하지 말고 일단 주고 볼 걸 그랬다는 생각도 드네.

남겨 주는 게 많지도 않은 주제에 부담감 느낄 말을 해서 참 미안한데, 너만큼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너는 꼭 할 수 있을 거야.

눈이랑 손 관리 잘 하고, 건강관리 잘 해서, 꼭 멋있는 작가가 되어 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어.

이따금씩 우리 엄마랑 수민이, 잘 지내나 한 번씩만 들여다 봐 줄래?

너한테밖에 할 수가 없는 부탁이네.

부탁할게. 현우야.]


“······개새끼 ······마지막까지 멋있고 지랄이야.”

마지막에 남겨져 있는 내용은, 다름 아닌 편지였다.

편지를 다 읽은 현우의 눈에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이렇게 해 놓고 가 버리면······ 난······ 어떡하라고······.”

철민의 편지에는, USB에는 그가 현우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져 왔다.

현우는 그 마음을 감히 다 감당하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내가······ 어떻게······ 글을 그만둬······ 네가 이러면······ 어떻게······.”

누구보다 작가로서 대성하기를 바라는 철민의 마음이, 현우의 가슴을 후벼 팠다.


한참을 울고 난 뒤, 현우는 간신히 감정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한 차례 폭풍이 몰아친 현우의 마음속은 그 전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미안하다, 철민아.’

현우는 한 가지 사실이 철민에게 미안했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 철민이 그에게 어떤 시간을 보냈고, 얼마나 마음을 써 주는지도 모른 채 글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해 버린 사실 때문이었다.

현우는 굳게 다짐했다.

‘네가 바라는 대로, 다시 한 번 최선을 다해서 부딪쳐 볼게.’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하는, 그저 마음만을 앞세우는 결심은 아니었다.

‘이거라면······.’

현우가 철민이 남겨 준 세 가지 유품을 바라봤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현우의 눈빛이 굳어졌다.

‘해 볼 만해.’

철민이 남겨 준 물건들과 함께라면, 해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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