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얻은 폐급 작가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신재영
작품등록일 :
2020.02.1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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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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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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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DUMMY

20화



현우가 고등학생일 시절.

그는 노블 큐브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었다.

그곳은 독자도 존재했지만, 현우와 같은 작가 지망생들 또한 즐비한 곳이었다.

현우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글 쓰는 것 못지않게 즐거웠었다.

그렇게 처음 글을 쓸 시기에는, 그들과 밤새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다.

그때 만나게 된 게 바로 철민이었다.

그리고 당시, 현우가 철민과 함께 친해진 사람이 또 한 명 더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이대훈이었다.

우연히도 현우와 철민, 대훈은 모두 동갑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유행하던 채팅 프로그램으로 서로의 글을 봐주면서 급속도로 친해졌다.

세 사람은 그렇게 어린 시절을 함께하면서 꿈을 키워 나갔고, 하나의 약속을 나눴다.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 주면서, 함께 성장하고, 성공하자는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공염불이 되었다.

세 사람 중 가장 먼저 성공하게 된 이대훈이, 갑자기 일방적으로 현우, 철민과 연락을 끊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연락이 끊어질 때, 대훈이 현우와 철민에게 했던 말은 두 사람에게 비수가 되어서 꽂혔다.


‘니들이 쓴 글, 구려. 니들이 가진 생각도 구려. 그래서 같이 대화 섞다 보면 나한테까지 구린 게 옮는 거 같아. 이제 그만 연락하는 게 맞는 거 같다. 그리고 니들은 글이 안 맞는 거 같으니까 작가 때려치워라. 이게 내 마지막 조언이다.’


“알바 하면서 지내나보네? 완결 난 지 몇 달 안 된 모양이던데.”

현우는 대훈이 몇 달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그가 말하는 완결작이라는 게 자신이 과거 에이스 미디어에서 냈었던 작품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얘는 내가 철민이 필명을 이어받은 걸 알 리가 없지.’

대훈의 물음에 현우가 덤덤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렇지, 뭐. 너도 완결 난 지 얼마 안 됐더라.”

“어. 후딱 쳐버렸지 뭐.”

두 사람의 대화에 대훈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대훈에게 물었다.

“이 분도 작가셔?”

“작가?”

대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뭐. 오빠 아는 사람이야. 아. 현우야,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테이크 아웃.”

대훈이 손가락 사이에 삐딱하게 카드를 끼운 채 현우에게 내밀었다.

“······그래.”

현우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카드를 받아서 결제를 한 뒤, 카드를 돌려줬다.

그런데 대훈은 굳이 좌석에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카운터 바 앞에 섰다.

“완결 치고 나서 좀 시간 지났는데, 차기작 준비는 하고 있냐?”

“응, 그럭저럭.”

“잘 안 되는 거면, 공모전이라도 나가 보지 그래? 난 이번에 수상 노리고 나가 보려고 하는데.”

대훈이 뭐가 웃긴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굳이 수상을 노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하위권들한테도 자기 글 많은 사람들한테 노출시킬 수 있는 기회일 거니까 한 번 도전해 봐.”

마치 현우가 수상을 노릴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듯한 말투였다.

대훈은 이어서도 바를 계속 서성이며 현우의 속을 살살 긁어 댔다.

대훈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현우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성적이 시원찮긴 하더니, 알바를 해야 할 정도였나 보네.”

“아니, 그 정도는 아닌데 이건 그냥 내가 카페 일을 좋아해서 하는 거야.”

“그래?”

현우의 대답에 이대훈이 비릿한 미소를 짓더니 그에게 말했다.

“인마. 나도 딱 보면 아는데, 네 글 랭킹이랑 댓글 달리는 거 보면 얼마 벌리는지 뻔히 다 알아. 나한테까지 거짓말할 필요는 없지 않냐?”

못 파는 작가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려는 듯한 말투였다. 대훈의 말이 거기까지 가자, 음료를 만들던 현우의 손이 멈춰 섰다.

현우가 고개를 들고서 대훈을 바라봤다.

“넌 어떻게 변한 게 하나도 없냐.”

“······무슨 소리야?”

“됐다. 더 말 섞고 싶지 않다.”

현우가 잠시 후 바에 아메리카노 두 잔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조심해서 가라.”

현우의 행동에 이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넌 네가 왜 아직도 바닥에서 기는지 모르겠냐?”

‘바닥을 기긴 개뿔이.’

현우가 듣기에는 헛웃음이 나올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우는 자신이 철민이라는 것을 굳이 대훈에게 밝히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는 아예 아무것도 알려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바로 대훈이었다.

‘그냥 똥개한테 물렸다 치자.’

일진 사나운 날, 더럽게 걸렸다 생각하기로 하며, 현우는 대훈의 말을 무시하고 넘기기로 했다.

현우가 성공했다는 것을 알 턱이 없는 이대훈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을 이어 갔다.

“네가 계속 그 모양 그 꼴인 이유는 남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그 태도 때문이야.”

“시끄럽고. 테이크아웃 고객은 매장 내에서 계실 수 없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현우가 그렇게 말하고서 대훈을 무시하려 들자, 이대훈의 표정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때 여자가 이대훈을 재촉했다.

“오빠. 그냥 가자······.”

여자의 부탁에 이대훈이 마지못해 커피를 붙잡았다.

그때 이대훈이 커피를 집어 들며 말했다.

“아, 참. 철민이, 죽었더라?”

그 순간, 대훈의 말을 무시하고 있던 현우의 몸이 덜컥 멈춰 섰다.

“걔도 참 팔자 사나워. 바닥만 빌빌 기다가 그렇게 요절하는 팔자도 다 있구나 싶더라. 그런데 걔 필명은 또 누가 날름 집어 먹어서 돈을 갈퀴로 쓸어 담고 있더라? 아, 그거 보면 걔는 이름에는 문제가 없는 거 같네. 그냥 지가 노력을 안 하는 건가?”

현우가 몸을 돌려서 대훈을 바라봤다.

그 순간 대훈이 움찔 놀랐다.

현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날이 선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나한테 지랄하는 건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는데, 철민이에 대해서 막말한 건 사과하고 가라. 우리 고인모욕까지는 가지 말자.”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대훈의 옆에 서 있던 여자가 대훈을 붙잡고서 말했다.

“그, 그래. 오빠······ 그건 좀······.”

“넌 지금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그러나 그건 오히려 대훈의 성질을 더 긁는 결과를 내버렸다.

대훈이 인상을 찌푸리며 현우에게 말했다.

“야. 내가 멍청하게 살다 뒈진 놈 더러 그렇다고 말한 게 뭐가 문젠데? 죽었다고 우상화라도 해야 하냐, 그럼?”

이대훈의 막말에 현우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왜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냐? 혹시 너 아직도 철민이한테 열등감 가지고 있냐?”

“······뭐?”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 너 잘되기 전까지만 해도 철민이한테 열등감 심했잖아.”

“이게 무슨 돼도 않는 소리야!”

“그럼 철민이가 죽은 건 어떻게 안 건데? 알아봤으니까 안 거 아냐? 왜 알아본 건데? 철민이 필명이 대박 터지고 나서, 거슬리니까 알아보려고 한 거 아냐? 그럼 왜 거슬린 걸까? 그거야 당연히 의식을 하니까지.”

“헛소리 하지 마, 이 새끼야!”

“이 새끼고 저 새끼고 간에, 그렇게 잘나가게 됐으면 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고 살아. 뭐 그렇게 누가 치고 올라오는 걸 걱정하고 난리냐?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 있다는 인식이 없으면 쫄리기라도 하냐?”

카페 내의 공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대훈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넌 아무리 그렇게 지껄여 봤자. 네가 나보다 한참 아래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 병신아. 그건 너나 철민이나 마찬가지야.”

대훈의 막말에 현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계속 그렇게 말실수 하다가는, 언젠가 크게 벌 받는다, 너.”

“글쎄. 지금껏 이렇게 살아왔지만, 지금의 너랑 나랑, 살고 있는 모습을 봐라. 과연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게 맞기는 하냐? 네가 그렇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니고?”

이대훈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현우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게 현실이야. 글로 먹고살기 힘들어서 알바나 해야 하는 너랑, 잘 먹고 잘 사는 나랑.”

이대훈이 몸을 돌려서 가게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대훈의 뒤통수에 대고, 현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앞으로는 긴장하고 살아야 할 거다.”

“······뭐?”

“몇 달이 걸릴지, 몇 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최선을 다 해서 네 앞길을 막아 줄 거니까 말야.”

현우의 말에 대훈이 다시 돌아서서 현우를 바라봤다.

대훈이 코웃음 치며 물었다.

“지금의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바닥을 기는 네가 무슨 수로?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러니까 말했잖아. 몇 달이 걸리든, 몇 년이 걸리든. 아득바득 해내고야 말겠다고. 기다리고 있어라.”

그 순간, 대훈은 무언가 찝찝함을 느꼈다.

‘뭐지?’

저런 말을 덤덤히 하는 현우의 기세가, 왠지 모르게 차분했다. 그 차분함이 대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대훈은 애써 그걸 신경 쓰려고 하지 않으며 다시 몸을 돌렸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그게 가능했으면 넌 진즉에 성공했겠지만.”

대훈이 카페를 떠나고, 대훈의 옆에 있던 여자 또한 현우에게 목례를 살짝 하더니 대훈의 뒤를 따라 나갔다.

그러자 카페 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이 다시 찾아왔다.


대훈이 떠나고 나자, 현우가 이를 으득 깨물며 대훈이 나간 문 쪽을 바라봤다.

‘너한테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어.’

“그런데 이건 아니지.”

과거 대훈이 매몰차게 연을 끊을 때, 그에게 서운하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터였다.

그러나 이미 현우는 그 서운함을 털어 낸지 오래였다.

대훈으로 인해 비틀어져 버린 과거의 기억이었지만, 현우는 그 또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현우는 대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악감정이 모조리 되살아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에 앞서, 그것보다 훨씬 더 강렬할 적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양심이 있었으면 철민이는 건드리지 말아야지.’

현우는 지금 이 순간, 자연스럽게 결심이 섰다.

‘공모전, 나온다고 했지.’


*


‘내 앞길을 막겠다고?’

“하!”

대훈이 코웃음을 쳤다.

그는 절대로 현우에게 자신이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웃기고 있네!’

대훈은 이미 지금도 현우와 그의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작업실 형들의 조언을 받으며 갈고닦고 있는 작품으로 공모전에서 인정받으면 그 간극을 더 커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열등감? 열등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부아앙!

“꺄악! 오빠!”

대훈은 그런 감정과는 결별한 지 오래라고 스스로 되뇌며, 엑셀을 세게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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