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엔필드 소총
이 때, 바그너는 한스가 남겨 둔 전차전 전술에 관한 종이를 읽어보고 있었다. 그 종이에는 각각의 상황에 대한 전투 대응법 등이 모두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바그너는 전차병들과 함께 이 전술을 연습해보기로 하였다. 바닥에 크게 지도를 그리고, 돌맹이에 전차 표시를 해두고 하는 일종의 워게임, 전술 시뮬레이션이었다. 6호 전차 나스호른의 전차장 마르코가 제일 기뻐했다.
‘그 동안 명령대로만 싸웠는데 이제야 전술이 조금 이해가 가는데?’
요나스가 말했다.
“한스는 왜 진작 이런거 말 안 해줬을까?”
니클라스가 말했다.
“그 녀석은 우리가 전술을 전부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봐.”
마르코가 돌을 옮기며 말했다.
“푸마, 레오파드가 이렇게 앞으로 가면, 제 나스호른이 뒤에서 따라가면서 적 보병들을 견제해줄 수 있습니다!”
그 때 베르너 대위와 호프만 중위가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았다. 호프만 중위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얼간이 새끼들 뭔 짓거리 하는 거야?’
베르너 대위가 이 광경을 보고 물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바그너가 차렷 자세로 대답했다.
“조만간 있을 공세에 대비해서 전투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호프만이 바그너를 보고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래! 열심히 해야지! 언젠가 바그너 자네도 소대장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호프만의 말에 바그너가 당황했다.
‘저 야비한 새끼가 무슨 소리 하는 거지?’
베르너는 땅바닥에 그려진 지도와 돌맹이, 바그너가 들고 있는 종이를 보았다.
“그 종이는 무엇인가?”
바그너가 무심코 대답했다.
“파이퍼 소위님이 저에게 연습하라고 남겨주신 전차 전술에 관한 정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바그너는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이 멍청한 자식! 그걸 그냥 말해?’
베르너가 유심히 그 종이 뭉치를 바라보았다.
“그거 이리 주게.”
바그너가 머뭇거렸다.
“그..이따 돌려드려야..”
베르너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금방 보고 자네에게 돌려줄 걸세!”
결국 바그너는 베르너 대위에게 종이 뭉치를 뺏기고 말았다. 베르너 대위와 호프만 중위가 저만치 떠나자 니클라스도 분개하였다.
“저 새끼들은 정말 참을 수 없습니다!”
요나스가 중얼거렸다.
“슐츠가 그리워지네..”
그 때, 같이 워게임을 하기로 했던 슈테켄 상사와 제프 디트리히와 A7V 전차병들이 뒤늦게 나타났다. 슈테켄 상사가 말했다.
“여어! 바그너 중사! 이미 다들 하고 있나?”
제프 디트리히도 술병을 들고 나타났다. 바그너가 상황을 이야기하고 슈테켄 상사도 분통을 터트렸다.
“그 비열한 자식들!”
한편 베르너는 한스의 메모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있었다. 호프만이 말했다.
“바그너 중사를 소대장 자리에 넣으면 별 문제는 없을 걸세! 나이가 있으니 눈치도 있을 거고 파이퍼 그 새끼처럼 깝치지는 못하겠지!”
베르너는 대꾸하지 않고 한스의 메모를 다른 종이에 베껴 쓰기 시작했다. 호프만이 물었다.
“자네 뭐 하는 건가?”
베르너가 중얼거렸다.
“아주 쓸모 있는 것을 얻었네..”
한편 영국 병사 네빈슨과 프레디는 안개로 꽉 찬 숲 속을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프레디는 동공이 커지고 심장이 미친듯이 쿵쾅거렸고 등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전투 경험이 거의 없었던 프레디이지만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상해..일부러 보란 듯이 음식 흘린 것 아냐?’
하지만 네빈슨은 계속해서 앞으로 가고 있었고 프레디도 뒤쳐지지 않기 위해 네빈슨을 따라가야 했다. 프레디는 네빈슨을 쫓아가면서도 뒤 쪽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없는지 고개를 돌리며 살폈다.
‘제..제발 이 쪽에는 없었으면..’
그 순간, 숲 속에서 리엔필드 소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타앙!
소리는 쩌렁쩌렁 메아리치며 나무 사이 사이로 퍼져 나갔다. 앞서 가던 네빈슨이 풀썩 쓰러졌다. 프레디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어윽..윽...”
네빈슨이 신음 소리를 냈지만 프레디는 그 쪽으로 갈 수 없었다. 프레디는 사방을 살폈지만 적은 보이지 않았다. 바지에 똥오줌을 지린 프레디는 꼼짝도 하지 않은 채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 어디야..어디서 쏜 거야..’
바닥에 바짝 엎드린 프레디는 혹시나 다시 총알이 날라 올 까봐 머리를 양 팔로 가리고 있었다. 새하얗게 머리가 굳어 버렸지만 프레디는 어렴풋이 이상함을 느꼈다.
‘왜 리엔필드 소총 소리가..’
앞에서는 네빈슨이 피가 목 속에서 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신음하고 있었다.
“으..으..”
그 때,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의 소총 소리가 들렸다.
타앙!
잠시 뒤, 또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독일군의 소총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탕!
‘독일 놈들이 멀리 달아났군..다행이다..’
프레디는 네빈슨에게로 천천히 기어갔다. 네빈슨은 희번덕 뜬 눈을 굴리고 있었다. 프레디는 주변을 살피고 귀를 기울였지만 적이 이 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도,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프레디는 네빈슨을 조금 끌어당겨 나무 뒤로 엄폐하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여기서 기다리면 소위님이 올 거야! 이 나무 뒤에 엄폐하고 있으면 놈들은 이 쪽을 맞출 수 없다..’
그 때, 네빈슨이 입을 열었다.
“위..위···”
프레디는 네빈슨을 쳐다 보았다.
‘무..무슨 말이지?’
네빈슨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무..위..”
순간 찰칵, 장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레디가 소리쳤다.
“시발 어디야!!”
프레디는 하늘로 뻗은 나무를 올려다 보았다. 그 순간, 다시 리엔필드 소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들렸다.
탕!
하지만 이번에는 총알이 빗나갔다. 프레디는 나무 위에서 자신을 향해 소총을 쏜 한스와 눈이 마주치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으아악!!”
프레디가 허둥대며 자신의 소총을 들어올리는 순간, 한스는 착검된 리엔필드 소총을 들고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우당탕!!
한스는 프레디 위에서 리엔필드 소총으로 서로 힘겨루기를 했다. 프레디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죽을 힘을 다해서 자신의 소총으로 한스의 소총을 밀어내고 있었다.
“으아악!! 아악!!!”
한스는 여태껏 이 정도로 공포에 질린 인간의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한스는 프레디 위에서 자신의 상체 무게까지 모조리 쏟아주어서 소총으로 눌러대고 있었지만, 독일군에게 잡혀서 물고문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프레디는 초인적인 힘으로 한스를 밀어냈다.
한스가 소리쳤다.
“에밋!!에밋!!”
한스가 부르자 그 때서야 에밋도 벌벌 떨며 다른 나무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한스가 프레디에게 외쳤다.
“항복해! 항복하라!”
에밋도 프레디에게 MP18을 들이댄 채로 벌벌 떨며 외쳤다.
“항복해! 항복해!”
한스는 초조해졌다.
‘빌어먹을! 거너와 헤이든이 총 소리를 내주었지만 이 쪽으로 나머지 영국 놈들이 올 가능성도 있는데..이 놈을 빨리 제압해야 한다!’
한편, 그린 소위와 헨리는 먼 곳에서 들리는 총소리를 듣고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린 소위가 생각했다.
‘반대 편으로 가서 보슈놈들을 포위해야 한다!’
그렇게 그린 소위는 독일군의 소총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질주했다. 헨리도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며 그린 소위를 따라갔다. 그 때, 영국군의 소총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타앙!
그린 소위는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었다. 뒤 따라오던 헨리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린 소위를 바라보았다.
‘왜 멈춘 거지?’
그린 소위는 방향을 바꾸어 영국군의 소총 소리가 난 것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헨리는 그린 소위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굳이 지금 합류한다고?’
그린 소위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독일군의 소총 소리가 난 곳과 우리 쪽 소리가 난 곳은 거리가 너무 멀다..안개 속에서 그 정도 거리에서 교전을 할 리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까부터 뭔가..’
그린 소위는 영국군의 소총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계속해서 달려갔다. 헨리가 뒤따라오자 그린 소위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10m 정도 뒤떨어져서 오게!”
그렇게 그린 소위는 헨리를 뒤에 따라오게 한 상태로 달려갔다. 안개가 워낙 심했기에 자칫하다간 나무에 부딪칠 것 같았다.
‘대충 이쯤에서 소리가 들렸을텐데..’
그린 소위는 이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린 소위는 자신의 권총을 양 손으로 단단히 쥔 채로 천천히 주변을 살폈다.
‘네빈슨 녀석이 오인 사격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안개 속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아군일 수도 있었다. 그러면 아군한테 총을 쏘지 말아야겠지만 역으로 아군한테 총을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린 소위는 입으로 벌레 소리를 냈다.
“브르르..브르르르···”
그린 소위는 나무에 몸을 가린 상태로 고개를 내밀어 안개 속에서 무언가가 갑자기 튀어나오지는 않는지 살펴보았다. 그린 소위는 계속해서 벌레 소리를 내었다.
“브르르..브르르르···”
‘네빈슨 녀석 이 근처에 없는 건가..보슈놈의 총 소리는 멀리서 들렸으니 총에 맞지는 않았을텐데..네빈슨이라면 근접전에서 지지는 않는다..’
헨리는 그린 소위보다 10m 쯤 뒤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 때, 헨리 눈에는 땅에 인위적으로 흙이 쓸린 자국이 보였다.
‘이..이게 뭐지?’
그 쓸린 자국은 그린 소위가 있는 방향으로 계속되어 있었다. 헨리는 조심스럽게 그 자국을 따라가 보았다. 그리고 헨리가 그린 소위를 부르려던 순간
츠킁 츠킁 츠킁!
에밋이 그린 소위를 향해 MP18을 발사했고, 그린 소위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헨리는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으아악!!’
헨리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치며 도망갈 준비를 했다. 그 때, 한스가 그린 소위가 들고 있는 권총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에밋은 그린 소위의 머리를 향해 MP18을 겨냥했다. 하지만 한스가 기다리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혼자 여기 왔을 리 없어..놈의 잔당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멍청한 에밋이 한스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소위님, 어떻게 합니까?”
한스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조용히 하라고 했다.
‘멍청한 새끼!’
헨리는 독일어를 잘 하지는 못했지만 에밋이 소위님이라고 묻는 소리는 얼핏 알아들을 수 있었다.
‘한 녀석은 장교인가?’
헨리는 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허리춤에 있는 자신의 수류탄 두 개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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