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비우고 쓰는 외전) 두 조종사 이야기
1940년 가을, 조선인 출신으로 육군 항공사관학교를 졸업한 한병수는 Ki-27 을형을 타고 세 번째 전투를 하러 나가게 되었다. 병수는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단 한 대도 격추시키지 못했고, 소대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소대장에게 두들겨 맞았다.
'절대로 소대에 피해를 끼치면 안된다...'
비행장에서 정비사들을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모자를 빙빙 돌리며 환호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수의 Ki-27 을형 전투기가 활주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트트트 트트트트트 트트트트트
잠시 뒤, Ki-27 을형 전투기가 활주로를 따라 이륙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본군 육군 항공대의 전투기들은 비행 대대를 이루고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전투기들이 프로펠러를 거세게 돌리며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구오오오오 구오오오오오오오
동쪽에서는 시뻘건 해가 떠오르면서 여명을 밝히고 있었다. 병수는 심장이 쿵쿵거리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병수는 우측 앞에 있는 소대장의 기체를 바라보았다. 일본군의 전투기 소대는 총 3기로 이루어진다. 병수보다 더 우측 뒤에 있는 전투기에 탑승한 조종사 또한 나름 베테랑이었다. 일본군 육군 항공대에서는 신참 조종사들이 교전 경험을 쌓는 동안 죽지 말라고, 이렇게 신참 조종사의 기체 뒤에 고참을 배치하고는 했다.
다른 소대에는 병수와 육군항공사관학교 동기이자 전체 수석이었던 히로토가 있었다. 놀랍게도 히로토 녀석은 두 번째 출전에서 소련군 항공기를 격추하는 전공을 세웠다. 병수는 히로토처럼 되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이번 전투에 죽지 않고 소대에 짐이 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병수는 좁은 콕핏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양 날개에 시뻘건 일장기가 그려진 전투기들이 보였다. 지상에는 도로를 따라서 여기저기 길게 선이 그어져 있었다.
잠시 뒤, 두 소대씩 항공기들이 나뉘어 가면서 목표를 찾기 시작했다. 6기의 항공기들이 단체로 좌측 날개를 기울이며 롤링을 하고는 이탈하였다. 항공기들이 구름 속에서 롤링을 하며 나선형 궤적을 따라 하나씩 선회하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위이이이이 위이이이이
그렇게 다른 부대에 6개의 항공기들이 하나씩 롤링을 하며 2시 방향으로 이탈했다. 잠시 뒤, 병수는 총 6기의 전투기와 같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트트트 트트트 트트트트트
병수가 속한 부대 또한 한 대씩 롤링을 하며 11시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병수 또한 롤링을 했다. 흰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 회전하더니 지평선이 대각선으로 보였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렇게 11시 방향으로 가다가, 소대장 기가 롤링을 하며 고도를 높이더니, 하늘 위에서 자신의 기체를 180도 뒤집어 완전히 뒤집힌 상태로 배면 비행을 하며 지상을 살폈다. 그렇게 확인을 마치고 소대장 기가 다시 180도 롤링하고 제자리로 내려왔다. 아직까지 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병수는 왠지 교전을 하지 않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안 싸우고 그냥 돌아갈수도?'
그 때, 2시 방향 하늘에서 소련군의 항공기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
소대장이 흔들거리며 롤링을 하고 수신호를 보냈다.
"전투 대형으로!!!"
잠시 뒤, 일본군 전투기들과 소련군 전투기들이 모여서 치열한 공중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소대는 다 흩어지고 그냥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난잡한 공중전이 벌어졌다. 아군 항공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적 항공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높은 주파수로 뒤 섞였다.
위이이이이~~~~ 위이이이이이!!!!
여기저기서 항공기들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면서 프로펠러 소리의 주파수 또한 높아졌다 낮아졌다.
위이이이 위이이이이 위이이
병수는 급하게 고도를 높이며 방향을 뒤트는 소련군의 꼬리를 물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조금만 더 기수를 빨리 올리면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
하지만 소련군의 기체는 배럴 롤을 하며 벗어났고, 어느덧 한 소련군의 기체가 병수의 기체를 향해 기관총을 긁었다.
드드득!
"으익!!"
병수는 잽싸게 회피 기동을 했다. 한편, 소련군 에이스 조종사는 일본군 소대장 전투기와 함께 서로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트트트 트트트트트 트트트
소대장기가 소련군 전투기의 꼬리를 잡고는 기관총을 발사했다.
드득 드드득 드득
그 때, 소련군 에이스 전투기가 원을 그리며 돌더니, 순식간에 소대장 전투기 뒤로 날아왔다. 그리고 기관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뒤에 있던 병수가 소련군 에이스 전투기를 향해 기관총을 짧게 끊어 발사했다.
드득 드드득 드득
소련군 전투기 날개에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회전하며 지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쿠과광!!
그렇게 병수는 처음으로 적 항공기를 격추하는 것에 성공했다. 교전이 끝나고 병수는 소대장 기를 따라 비행장에 착륙했다. 정비사들이 정비를 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병수는 의기양양하게 내렸는데, 먼저 내린 히로토가 동료들의 헹가래를 받고 있었다. 정비사들이 외쳤다.
"오늘 두 대나 추가로 격추했다더군!!!"
그 이후 병수는 한 달 동안 총 23대의 전투기를 격추하게 된다. 히로토 녀석은 총 25대의 전투기를 격추하였다. 부대원들은 화투를 치면서 병수와 히로토 과연 누가 에이스가 될지에 대해 토론하였다.
"내 생각엔 단연 히로토가 에이스일세!"
"병수 녀석도 만만치않아!"
"둘이 전술이 너무 달라!"
"그나저나 우리는 왜 계속 3기 1편대 전술을 쓰는거야? 독일 놈들처럼 전술을 바꿔보는 것도..."
"아 시발!!! 판돈 올려!"
조종사들은 세 달치 월급을 판돈으로 걸고 다시 화투패를 섞었다. 한 녀석이 말했다.
"이거 말고 누가 에이스 될지로 내기하는거 어때?"
"쉿!!"
그 때, 히로토가 걸어왔다. 히로토는 그야말로 전투에 광적인 녀석이었고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었다. 히로토는 군도술에 뛰어났고, 녀석은 걸핏하면 자기는 하늘에서 죽을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물론 조종사들 중에서 허세로 이런 말을 하는 녀석들이 있었지만 히로토 녀석이라면 진심일 것 이라고 모두들 생각했다. 히로토가 말했다.
"왜 갑자기 조용하냐?"
부대 내에 가장 눈치 없는 녀석이 말했다.
"히로토 너랑 병수 중에 누가 먼저 에이스 될지 내기할까 이야기하고 있었어."
'저 새끼!!'
순간 조용해졌다. 히로토가 별 생각없이 껄껄 웃으면서 화투패를 섞으며 말했다.
"군도술 말하는거냐?"
한편, 병수는 허겁지겁 찹쌀떡을 먹었다.
"우물우물"
그래도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나서 음식은 잘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병 녀석들은 이런 찹쌀떡을 거의 구경하지 못할 것 이다. 그 때, 히로토 녀석이 병수에게 걸어와서 말했다.
"이보게!"
"???"
"얼마 전에 소련군 편대장 기를 격추시켰다며?"
"운이 좋았지."
병수는 계속해서 찹쌀떡을 먹었다. 이 맛을 음미하고 싶은데 히로토 녀석이 귀찮게 구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그 때, 히로토가 말했다.
"나와 모의 공중전을 해보겠나?"
모의 공중전이란, 실탄을 발사하지 않고 조종사들끼리 서로의 꼬리를 잡는 훈련을 하는 것 이었다. 하지만 병수는 귀찮은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거절한다."
"왜지?"
"찹쌀떡을 먹어야 하네. 우물우물"
순간 히로토의 관자놀이 쪽에 핏대가 올랐다.
'이 새끼가...'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고, 일본군은 태평양 전투에서 패배하게 되었다. 병수와 동료들은 라디오를 통해 천황에 무조건 항복 선언을 들었다. 어떤 정비사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다음 흐느꼈다.
"으흐억...으허윽!!!"
병수 또한 다리가 휘청거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끝났다...'
병수는 1년 전부터 이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출격해야 했던 것 이다.
'이제 더 이상 출격 안해도 된다...'
이제 더 이상 목숨걸고 말도 안되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비행하는 일은 없을 것 이다. 좆같은 군인 칙유 따위 잊어도 될 것 이다. 병수는 자신의 군복을 내려다보았다.
'이 좆같은 군복도 이제 끝이다!!!'
한편, 히로토 녀석은 군도를 들고는 자신의 Ki-84 하야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히로토는 붉은색 일장기가 동체와 두 날개에 그려진 초록색의 얼룩덜룩한 자신의 기체를 손으로 쓸어본 다음, 정비사에게 물었다.
"연료는 채워져 있나?"
"아...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채우게."
"하...하지만..."
히로토가 정비사를 권총으로 겨누었다.
"으히익!!!"
정비사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리며 Ki-84 하야테에 연료를 채워넣었다. 그 때, 반대편에서 병수를 포함한 조종사들이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정비사가 외쳤다.
"도와줘!! 총을 겨눴어!!! 으익!!!"
탕!!!
히로토는 정비사에게 총을 쏘고는 자신의 Ki-84 하야테의 콕핏에 올라탔다. 병수와 동료들이 이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무슨 일이야!!!"
"멈춰!!!"
히로토는 식은 땀을 흘리며 서둘러 Ki-84 하야테의 엔진을 켰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거센 엔진 소리와 함께 프로펠러가 거세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트트트 트트트 트트트트트
병수와 동료들은 권총을 두고 온 상황이었다. 결국 병수는 군도를 꺼내들고는 히로토를 향해 달려갔다.
"이게 무슨 짓이냐!!!"
히로토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듯한 짜릿한 표정으로 활주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히로토는 씨익 웃으며 병수와 동료들에게 경례를 했다.
"그만 둬!!!"
그렇게 히로토의 비행기는 활주로를 따라 질주하기 시작했다. 비행장 전체에 사이렌이 울렸고, 병수는 허겁지겁 다른 Ki-84 하야테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연료가 없기에 연료부터 채워넣어야 했다.
"이런 젠장!!!"
뒤늦게 위생병들이 달려와서 총을 맞은 정비사에게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다른 정비사들이 달려와서 뒤늦게 연료를 채워넣기 시작했다. 다른 조종사가 와서 외쳤다.
"히로토 이 새끼 어디 간거야?"
"그 새끼 맨날 하늘 위에서 죽는가도 나불댔잖아!!"
병수가 하얗게 빌린 표정으로 말했다.
"기껏 종전했는데...이러다가 다시 전쟁이 발발하면!!"
한편, 히로토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을 비행했다.
트트트트트 트트트트트
위이잉 위이이이잉
여태까지 수도 없이 비행을 했지만 평상시 출격때는 정해진 코스로만 비행해야 했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지금, 이보다 기분이 짜릿할 수는 없었다. 히로토는 콕핏을 열어둔 상태로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했다. 히로토는 항공기를 조종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잉
소련군 점령하에 있는 지역에 눈에 들어왔다. 민간인들과 소련 군인들 모두 히로토의 Ki-84 하야테를 바라보았다. 소련군은 시뻘건 일장기가 그려져있는 Ki-84 하야테를 바라보고 수군거렸다.
"저...저거 뭐냐!!"
"혼자 오는데?"
"뭐지?"
옥상에 있던 대공포 사수들은 사격을 할지 말지 고민했다.
"사격합니까?"
그리고 히로토의 Ki-84 하야테는 급격히 고도를 낮추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소련군 대공포 사수들은 현재 상황을 알아차렸다.
"사격해!! 빨리!!!!"
"가미카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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