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
휴가 4일차 오토는 밀리나와 한 카페에서 만나서 포옹을 했다. 오토는 이따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생각에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이 순간을 꿈꿨던 것 이다.
'드...드디어!!!'
매음굴에서의 의미없는 쾌락하고는 비교가 안될 것이 분명했다. 밀리나가 입을 열었다.
"나 오늘 입대해."
"뭐라고?"
오토는 밀리나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 입대하는데? 해군? 공군? 전차병으로 들어오면 내가 전차 타는 법 가르쳐줄게."
"해군."
"해군 좋지! 어릴때부터 운동 잘했으니까 해군 가서도 잘 할거야. 어뢰로 전부 날려버리라고."
"난 당연히 전투 병과는 아니고...기동훈련 워게임하는 여군 부대 들어가게 될 것 같아. 일단 훈련을 통과해야겠지만..."
"진짜 입대하는거야?"
해군에서 기동훈련을 하는 부대 중에는 여군으로 구성된 부대가 있었다. 이 여군 부대는 호송대나 함선, 잠수함 등이 공격받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할지 계산하는 일을 했다. 커다란 칠판에 항로, 각도, 적 함대까지의 거리, 각 시간별 위치를 빼곡히 기록한다. 그리고 엄청나게 커다란 지도에는 각 함선의 이름이 적혀 있다.
여기서 여군들은 커다란 리놀륨 바닥에서 전함 가상훈련을 할 것 이다. 분필, 각도기, 자를 이용해서 항로를 표시하고 모든 가능한 경로를 계산하여 최적의 배치를 찾는 것이 이 부대가 해야하는 일이다.
해군은 이 기동훈련 결과를 토대로 실전 훈련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실전 전투가 벌어져도 이러한 실시간 기동훈련이 이루어지고 결과는 즉시 무선으로 보고된다. 이런 기동훈련은 정말로 중요한 임무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오토가 말했다.
"멋있다! 잘 해봐!"
밀리나가 싱긋 웃었다.
"고마워."
"오늘 몇 시에 입대하는데?"
오토는 시간을 확인했다. 현재 시간은 아침 9시 15분이었다. 밀리나가 말했다.
"11시 50분에 짐 싸고 가야 해."
"그렇구나."
긴 정적이 흐르다가 밀리나가 입을 열었다.
"오토, 우리 결혼하자."
"지금?"
"응. 여기서 10분 거리에 구청 가서 신고하면 될거야."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난 돌아가서 죽을 수도 있는데 밀리나는 전혀 현실을 모르는군...'
"밀리나, 난 조금 있으면 다시 전선으로 돌아가야 해."
밀리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지만 오토가 말을 이었다.
"조금 있으면 전쟁 끝날테니까 결혼은 그 때 하는게 어때?"
절대로 단기간에 전쟁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오토는 알고 있었다. 밀리나가 말했다.
"우리 도망갈까?"
"너 입대해야지."
밀리나가 덜덜 떨면서 말을 이었다.
"난...국가 사회주의가 뭔지 모르겠어...전쟁으로 개혁도 다 미뤄졌고...근데 전쟁하면서 돈이 엄청나게 들었잖아. 그러면 전쟁 끝나도 대공황 다시 오는거 아냐?"
"너희 아버지가 잘 하시겠지."
"호...혹시 소련이랑 다시 화해하고 휴전할 일도 없겠지?"
"그건 힘들어."
"우리가 전쟁하지 말았어야 하는거 아닐까?"
"소련은 어차피 몇 년 안에 유럽을 침공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아직 대숙청 여파가 있을때 우리가 유럽의 안보를 위하여 선제 침공하는게 유일한 방법이야. 어차피 전쟁은 일어났을거야."
그 말에 밀리나가 안심하며 말했다.
"다행이다..."
잠시 뒤 오토는 밀리나와 길거리에서 포옹했고 총리 관저로 돌아갔다. 오토는 짐을 뺀 다음 베를린역 근처에 호텔에 묶었다.
'뭐 하지?'
그런데 팬티 속이 근지럽기 시작했다. 확인해보니 울긋불긋하게 부어 있었다.
'이런 시발!!!'
오토는 근처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외쳤다.
"대기실에서 기다리세요!"
병원 대기실은 상당히 좁았다. 그런데 맞은 편에 앉은 60대 정도 노인네가 계속 거슬리게 다리를 달달 떨었다. 오토는 그 꼴을 보고 신경이 과민해지기 시작했다.
'망할 노인네 시발...'
오토는 다리를 떠는 꼴을 보기 싫어서 눈을 감았다.
'...'
온갖 자질구레한 소음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접수를 받는 간호사가 신경질적으로 종이를 넘겼다. 어떤 꼬맹이가 계속 잔기침을 했다.
"켁...켁...켁..."
오토는 눈을 뜨고 꼬맹이에게 좀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헛기침을 했다.
"크흠!"
하지만 그 좆같은 꼬맹이 새끼는 계속 잔기침을 했다.
"켁...켁...켁..."
'저 시발 놈의 꼬맹이가!!!'
오토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이 망할 의사 새끼는 언제 끝나는거야!!!'
한 시간 같은 십분이 지나고 간호사가 호명했다.
"오토 파이퍼!"
오토는 들어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약을 처방해주고 말했다.
"약만 꼬박꼬박 바르십시오!"
"치...치료가 오래 걸립니까?"
휴가 끝나고 복귀했을때도 감염되어있다면 이를 보고해야 할 것 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집행유예 부대 형벌이 끝났는데 성병 감염으로 추가 징계를 받아 임금이 감봉되는 것은 싫었다. 오토는 휴가 첫 날에 짐을 모두 반납하고 온 몸을 소독하고 짐까지도 모두 싸그리 소독을 받던 날을 떠올렸다. 그 날 병사들이 있던 곳에는 성병을 조심하라는 포스터가 도배되어 있었다.
[부비 트랩을 주의하라!(섹시한 여자가 그려진 포스터에)]
[그녀는 깨끗해보인다! 하지만! (역시 여자가 그려진 포스터)]
[스나이퍼!]
[성병 장전 완료! (총을 들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포스터)]
[매독! 임질! (소련군의 포에서 성병 바이러스가 발사되는 포스터)]
오토는 식은 땀이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아무리 성병 조심하라고 누누히 강조하고 포스터를 이용해서 병사들에게 경고했지만 그래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의사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 정도면 별거 아니니 휴가 끝날때까지만 성관계 하지 마시오!"
오토는 호텔로 돌아와서 멍하니 있었다. 지루하고 심심해서 죽을 것 같았다. 겜블장도 이젠 심드렁했다.
'뭐 하지?'
빨리 전차 타서 빨갱이 새끼들 대가리 박살내고 싶었다. 오토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린 아이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걸어다니고 있었다. 오토는 가방 속에서 권총을 꺼낸 다음 방아쇠울에 손가락을 넣었다.
'민간인 죽여보면 어떨까?'
오토는 창 밖을 바라보며 어디서 사격을 하는게 가장 인명 피해를 늘릴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폭탄을 만들어서 학교에 설치하고 경찰이 진입할 수 있는 통로에 발목 지뢰를 설치하고...차량 진입 가능한 도로에는 지뢰와 용치 설치한다... 저격수 배치 가능성 있는 건물 창문에도 부비 트랩 설치해놓고...퇴출로는...'
엄청나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오토는 창 밖을 바라보며 커튼 뒤에서 권총을 들고 서 있었다. 사람들은 세상 모르고 길거리를 바쁘게 걸어다니고 있었다. 오토는 권총으로 사람들의 대갈통을 날리는 상상을 했다.
'붐! 붐! 붐!'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납치해서 권총 개머리판으로 두개골을 으스러뜨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오토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사람을 죽이면 다시는 전차를 못 탈 테니까 휴가 때까지는 사고를 치지 않기로 했다.
한편, 한스 파이퍼는 최전선에 자신의 4군에 소속된 43군단 134 보병사단 사령부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134 보병사단장이 현재 상황을 보고했는데, 부관이 들어와서는 소련군 포로를 몇 잡았다고 보고했다. 한스 파이퍼가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소련에 비해서 첩보망이 부족하니 심문이 중요하다...'
"포로들의 계급은?"
"3명은 병사, 1명은 부사관이라고 하지만 확인 중 입니다."
원래 장교도 포로로 잡히면 무조건 병사나 부사관이라고 잡아땐다. 한스가 심문에 흥미를 보이자, 134 보병사단장이 말했다.
"이러한 심문에 아주 능한 장교가 있으니 모든 정보를 알아낼 수 있을 것 입니다."
"심문하는데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는가?"
"카우프만 대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카우프만 대위가 와서는 한스에게 경례를 했다. 잠시 뒤, 카우프만 대위는 이번에 포로로 잡힌 4명의 소련군을 한스에게 보여주었다. 다들 계급장은 때놓고 수첩도 없었기에 신원은 알 수 없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냥 협박해서 심문하면 되는거 아닌가?'
한스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카우프만 대위가 자신의 심문 기술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심문에는 매우 고난이도의 심리적인 기술이 필요합니다. 단순히 협박만 한다고 포로들이 사실을 털어놓는 것은 아닙니다. 저 포로들을 보십시오."
한스는 네 명의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 맨 왼쪽에 가장 어린 포로는 벌벌 떨고 있었고, 맨 오른쪽에 포로는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오른쪽 포로에게 처음부터 돌직구로 협박을 한다면 입을 더 굳게 다물기 마련입니다. 저런 녀석은 관등성명도 대지 않고 탈출을 시도할 수 있으니 주시해야 합니다."
"그럼 왼쪽 녀석부터 심문해야 하나?"
"훌륭합니다!"
"저런 녀석은 어떤 수법이 좋나?"
"당근과 채찍 수법이 좋습니다. 혹시 해보시겠습니까?"
카우프만 대위는 가장 어리고 겁에 질린 포로를 데리고 나왔다. 다른 포로들은 카우프만 대위를 노려보았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 녀석부터 데리고 가서 심문을 하면, 다른 포로들 입장에서는 저 어린 녀석이 다 불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겠군...우리가 얼마나 알고 있을지도 전혀 모르겠지...'
카우프만 대위는 그 어린 포로를 데리고 방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에 카우프만 대위가 엄격하게 목소리를 높이고 통역사가 이를 통역해주는 소리가 들렸다.
"관등성명을 대시오!"
"으허엉!! 으허윽!! 난 아무 것도 모릅니다!! 흐어엉!!!"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겁 많은 녀석이로군! 저 녀석한테선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카우프만 대위는 3분 정도만 심문을 하고 방 밖으로 나온 다음 한스에게 심문하는 팁을 알려주었다.
"당근과 채찍 수법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녀석에게 저는 매우 엄격하고 무서운 심문관입니다. 지금 겁에 질려있죠! 하지만 각하께서는 녀석에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접근하시는 겁니다."
"녀석이 안심하고 신뢰하도록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소한 농담도 괜찮습니다!"
잠시 뒤, 한스 파이퍼가 통역사를 대동하고 심문하기 위해 들어갔다. 그 소련군 포로는 한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흐억!!"
한스 파이퍼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강철 사냥꾼이오. 생각보다 키가 작지?"
통역사가 한스의 말을 번역해주었다. 한스가 포로에게 맥주를 건네며 말했다.
"독일산 맥주요."
그 어린 소련군 포로는 의심스러운 얼굴로 맥주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웃으며 맥주 컵을 바꾸었다.
"독일 제국은 제네바 협정을 준수합니다. 약물을 이용한 심문은 하지 않으니 안심하시오."
소련군 포로는 한스가 맥주를 삼키는 것을 확인한 다음 허겁지겁 맥주를 먹었다.
"꿀꺽꿀꺽"
소련군 포로는 맥주를 먹어치운 다음 슬쩍 한스를 보고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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