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비우고 쓰는 외전) 두 조종사 이야기 2
한편, 비행장에 있는 일본군들은 패전 소식이 전해진 이후 모든 기밀 서류를 드럼통에 넣고 태울 준비를 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기름 가져와!! 빨리!!"
병수가 타려고 했던 Ki-84 하야테는 정비사가 점검한 결과 배기 터빈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
"이건 아무래도 안되겠습니다!!"
"이런 젠장!!!"
한 정비사가 달려와서 외쳤다.
"Ki-87이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전파 탐지기 장비가 있는 최신예 Ki-87에 병수는 잽싸게 탑승했다. 정비사가 외쳤다.
"아직 정비가 완료되지 않았는데 괜찮겠습니까!!!"
병수는 이틀 뒤부터 Ki-87에 탑승하여 미군의 전략 폭격기, B-29를 격추시키는 임무를 할 예정이었다. 가장 실력이 좋은 히로토 녀석이랑 번갈아서 이 임무를 수행하기로 계획이 잡혀있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일찍 종전이 되었던 것 이다. 병수는 엔진을 켰다.
트드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배기터빈 잘 돌아갑니다!!!"
병수는 수도 없이 출전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총알을 맞고 콕핏 유리에 피가 뻘겋게 된 상태로 착륙하고 급하게 정비사들이 달려와서 콕핏에서 빼내어질때, 다시는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줄 알았다.
우측 랜딩 기어가 작살이 나서 활주로에서 우측으로 미끌어지고, 활주로에 있던 정비사들은 허겁지겁 달아났을때, 병수는 그들이 프로펠러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만 다행히도 정비사들이 잘 도망쳐서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병수는 그 때 처음으로 비행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는 동체 하부에 불이 붙은 채로 착륙한 적이 있었다. 정비병들이 소화기를 들고 급하게 달려왔고, 병수는 엔진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간신히 도움을 받아 콕핏에서 탈출하였다.
병수는 이것이 마지막 비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Ki-87이 비행장 활주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트드드드등
활주로 저 멀리 보이는 다른 정비사들 또한 병수를 향해 모자를 흔들고 있었다. 부대 조종사들이 병수를 향해 경례를 했다. 병수는 자신의 부대 조종사들이 특공 작전에 투입되는 것에 대하여 할복까지 하겠다며 반대했었다. 병수 또한 이들에게 경례를 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그렇게 패망한 일본 제국의 회심의 역작, Ki-87의 랜딩 기어가 조금씩 활주로에서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비행을 했음에도 랜딩 기어가 활주로에서 올라갈때마다 발바닥이 간지러우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병수는 벌써부터 Ki-87 이 기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히로토 녀석 도대체 왜 이걸 타고 가지 않은거지?'
히로토 녀석은 자신의 Ki-84 하야테를 애지중지하면서 "이미 이 기체는 나와 한 몸이다" 라고 헛소리를 하고는 했다. 병수가 속으로 생각했다.
'망할 정신나간 새끼...'
병수는 혹시나 소련군에게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최대한 고도를 올렸다. 점점 추워졌고, 병수는 산소마스크를 썼다.
"상공 8000미터!!"
이 멋진 신형 Ki-87로는 80km내에 있는 대형 항공기도 탐지 가능하다. 그리고 병수는 마침내 히로토 새끼가 가고 있는 방향을 전파 탐지 장치로 알아냈다.
'이 새끼가...'
병수는 무전을 보냈다.
"이봐!! 히로토!!! 들리냐!!!"
병수가 욕설을 퍼부었다.
"기껏 끝난 전쟁을 다시 발발하게 할 셈이냐!! 이럴수록 본토에서 더 많은 피해가 생긴다!!!"
하지만 히로토의 응답은 들리지 않았다. 만약 히로토 새끼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반도 쪽에서 어떤 피해가 커질지 알 수 없었다. 병수는 가능한 최고 속도로 Ki-87를 조종했다.
트트트트트 트트트트 트트트트트
시뻘건 태양을 등지고 Ki-87이 비행하기 시작했다.
'하 시발...'
병수는 조종사로서 히로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놈은 일본 제국을 위한 충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단지 마지막으로 자신의 애기(아끼는 전투기)를 타고 출격하여 대미를 장식하고 싶었던 것 이다. 병수는 고개를 돌려서 시퍼렇게 쨍한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상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항복 선언에 통곡하고 있을테지만 하늘은 지독하게도 아름다웠다.
한편, 히로토는 천천히 고도를 낮추며 Ho-5 기관포를 소련군 점령 지역에 발사했다.
탕! 탕! 탕! 탕! 탕! 탕!
건물 옥상 위에서 소련군 대공포병들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양쪽 날개에 시뻘건 일장기가 그려져 있는 저 빌어먹을 전투기를 향해 대공포를 발사했다.
펑! 펑! 펑! 펑! 펑!
위이잉 위이이이이 위이이이잉
시커먼 대공포 포연을 뚫고 Ki-84가 고도를 낮추더니 정확하게 기관포를 옥상을 향해 발사했다.
펑! 펑! 펑!
대공포병들은 기관포를 맞고는 사지가 찢겨나가며 완전히 아작이 났다. 그리고 Ki-84는 급격하게 고도를 올렸다.
위이이이이이잉
Ki-84는 건물 옥상과 고작 7m 차이가 나는 고도에서 위로 상승했다. 민간인들까지 다들 길거리에서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난리도 아니었다.
"꺄아아악!!!!"
지붕 위에서 소련군이 히로토의 기체를 향해 모신나강을 발사했다.
탕! 탕! 탕!!
히로토는 원을 그리며 더욱 높이 고도를 상승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고도를 낮추며 지상을 향해 기관포를 퍼부었다.
탕! 탕! 탕! 탕! 탕! 탕!
기관포탄에 소련 병사들의 팔다리가 산산조각났고 건물 외벽이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히로토는 다시 잽싸게 고도를 올렸다. 몸이 뒤로 젖혀지며 엄청난 중력이 느껴졌다.
위이이이이잉
그리고 히로토는 지그재그를 그리며 상공을 날아다녔다. 벌써 소련군 전투기 편대가 이 쪽으로 비행해오고 있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서 집 안에 숨어서 창문으로 이 공중전을 바라보았다. 소련군의 Yak-7 전투기 한 대가 격추당하여 날개 한 쪽이 날아간 채로 지상을 향해 회전하며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안돼!!!!'
건물 안에 숨어있던 사람들은 Yak-7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소리에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꺄아아아아악!!!"
트으으으으으응 트으으으으으으으응
길거리에 서 있던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는 Yak-7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골목으로 질주했다. 하지만 Yak-7의 프로펠러는 류드밀라 파블리첸코를 고기분쇄기처럼 갈았다.
트트트트 트트트트트트
쾅!!!
Yak-7은 마침내 건물에 들이박고는 프로펠러가 멈추었다. 콕핏이랑 이미 사망한 조종사 둘 다 피를 뒤집어 쓴 상태였다. 그리고 히로토 새끼는 치열한 공중전으로 두 번째 Yak-7를 격추시켰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Yak-7이 빠른 속도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쿠과과광!!! 쿠구궁!!!
그렇게 병수는 비행장으로 귀환했다. 그렇게 히로토는 5기의 Yak-7기를 격추시켰다. 히로토의 Ki-84 하야테 또한 랜딩 기어가 박살나고 한쪽 날개가 망가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히로토는 가까스로 기체를 180도 돌려서 위아래가 뒤집힌 배면 비행을 하며 작살난 지상을 바라보았다. 총 5곳에서 시커먼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고, 건물들이 아작이 난 것이 보였다.
그 때, 무전기에서 병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히로토!!! 그만 두고 돌아와!!!"
히로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이 만든 걸작을 마지막으로 감상했다. 병수가 분노를 억누르며 히로토를 계속해서 설득했다.
"그만 돌아오게! 이제 다 끝났어!!"
히로토가 다시 자신의 기체를 180도 롤회전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와 하늘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더니, 다시 하늘이 지평선 위로 올라왔다. 히로토가 무전으로 병수에게 말했다.
"마지막 비행을 즐기라고!!"
병수가 무전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죄없는 민간인들을 죽일 셈이냐!!!"
히로토가 말했다.
"비행 없는 내 삶은 의미가 없네! 이보게 병수!!!"
히로토는 대공포를 피하여 회피 기동을 하며 무전으로 물었다.
"나, 자네, 누가 최고의 파일럿이지?"
병수가 욕설을 퍼부었다.
"이 시발 좆같은 쪽바리 새끼가!!!"
히로토는 낄낄거리며 얼마 남지 않은 연료를 확인하고는 자신의 애기(아끼는 전투기)에게 말했다.
"네 녀석도 나와 같이 야스쿠니에 가자!!"
히로토는 Ki-84 하야테의 고도를 높이고는 초보 조종사 시절 즐겨하던 배럴 롤 기동을 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잉
이미 저편에서는 소련군 비행대대가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병수는 만약 히로토를 제지하기 위하여 간다면 소련군 비행대대와 교전을 벌여야 할 것 이었다. 병수는 어떻게 할지 순간 갈등했다. 그 때, 1시 방향에서 히로토의 Ki-84 하야테가 연기를 남기며 배럴 롤 기동을 하는 것이 보였다.
'저...저거!!!'
하야테는 콕핏을 날려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하늘을 헤집으며 배럴 롤 기동을 한 Ki-84 하야테는 도심지에 가장 인구가 밀집된 곳을 향해 빠르게 비행하기 시작했다. 하야테는 바람이 자신의 얼굴을 거세게 스치는 것을 느끼며 지상을 향해 외쳤다.
"와라!!!!!"
쿠과광!!!! 콰과광!! 쿠구궁!!!!!
병수는 멀리서 이 난장판을 목격했다. 이미 좆된 상황이었고 병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병수가 울분을 터트렸다.
"이런!!! 시발!!!! 으아악!!!!"
병수가 본부로 무전을 보냈다.
"귀환하겠다!!"
위이잉 위이잉 위이이이잉
그렇게 병수는 비행장으로 귀환했다. 그리고 1940년 가을, 하야테보다 더 또라이 같은 녀석이 독일에 있었다. 클라분데는 어린 시절부터 붉은 남작을 보며 조종사가 되기를 꿈꾸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 환경에, 클라분데는 조종사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클라분데는 비행기와 가까운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정비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클라분데는 자신이 정비한 매서슈미트를 타고 가는 조종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잉
클라분데의 정비 실력은 워낙 뛰어났기에 에이스 조종사들 또한 클라분데를 상당히 신뢰하는 편이었다. 그 날, 클라분데가 정비한 매서슈미트를 탄 에이스 조종사가 총 3대의 전투기를 격추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는 매서슈미트에서 내린 다음 동료들과 정비사들의 행가래를 받았다.
"우워워!!"
그 날 밤, 클라분데는 숙소에서 손전등을 키고는 예전에 훔친 조종법 관련 책을 읽었다. 하도 반복해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을 모조리 외울 지경이었다. 모든 기종의 항공기들의 조종법을 눈에 감고도 외울 정도로 익숙했다.
클라분데는 몰래 손전등을 갖고는 숙소 밖으로 빠져나간 다음, 자신이 늘상 정비하던 매서슈미트의 조종석 안으로 들어갔다.
"읏차!!"
상당히 비좁은 매서슈미트 조종석 안에서 클라분데는 다리 사이에 있는 조종간을 좌우로 움직여보았다. 눈을 감고 배럴 롤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정말 끝내주는군!'
Comment '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