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성명
한스는 그 어린 소련군 포로에게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독일 제국 측에서는 제네바 협정에 의거하여 포로들의 신원을 파악하여 가족과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있소. 이 서류에 서명하시오. 그 빈칸만 채워놓으면 되오."
그 소련군 포로는 서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펴보고 한스를 쳐다보았다. 한스가 너털 웃음을 지었다.
"원래 포로로 잡혀도 관등성명까지는 대도 아무 문제가 없소! 이름이랑 군번 같은 기초적인 정보로는 할 수 있는게 없소."
소련군 포로가 뭐라고 중얼거렸고 통역사가 이를 번역해주었다.
"글을 모른다고 합니다."
한스는 슬슬 이 어린 소련군 포로에게 인내심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글을 모른다고? 관등성명 대면 대신 서류를 작성해주겠다고 하게."
통역사가 말했다.
"아무 것도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
한스는 이 포로를 두들겨 패고 싶은 것을 애써 참았다.
"서류를 작성해야 가족에게 편지를 전달해줄 수 있다고 하게."
통역사가 말했다.
"아버지와 형이 있었는데 둘 다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합니다."
'...'
한스가 말했다.
"그것 참 유감이오. 내 아버지와 형도 전쟁에서 전사했소."
통역사는 한스의 거짓말 패드립에 당황해서 통역을 하지 않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한스가 말했다.
"빨리 통역하게."
통역사가 이를 통역하였다.
"유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기 가족을 죽인건 독일군이니 자신도 독일군을 증오한다고 합니다."
한스는 책상을 내리쳤다.
쾅!!!
한스를 보고 그 어린 포로가 겁에 질려서 질질 짜기 시작했다.
"으허엉...흐어엉..."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일단 정보 알아낼때까지만 참자!!!'
"사과한다고 전해. 어차피 아무것도 모르는 병졸인 것 같은데 그냥 관등성명만 말하면 된다고 해."
'이 녀석의 이름을 알아야 다른 포로들에게서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다!!!'
가장 계급이 낮은 포로를 가장 먼저 심문하고, 다른 포로들로 하여금 이미 정보를 다 실토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고급 정보를 쉽게 빼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좆같은 어린 포로 새끼는 자신의 이름조차 말하지 않고 있었다.
한스가 그 어린 포로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독일 제국 군법에서도 포로로 잡히면 관등성명까지 대는 것은 허용한다고 전해! 미군이건 프랑스군이건 영국군이건 관등성명까지는 댄다고 해!"
통역사가 식은 땀을 흘리며 통역해줬지만 그 어린 포로는 질질짜면서 징징거렸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이 시발놈이 관등성명도 안 댈거면서 내 시간을 빼앗아!!!'
한스는 그 어린 포로의 멱살을 쥐고는 흔들기 시작했다. 포로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었다.
"으허엉!! 흐어어엉!!!"
카우프만 대위와 부관 프란츠가 황급히 들어와서 한스를 말렸고 그 어린 포로는 밖으로 끌려갔다.
"으허엉!! 흐어엉!!!"
카우프만 대위가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각하! 그러시면 안됩니다! 이건 오히려 놈들 페이스에 휘말리는 꼴입니다!"
한스가 멋쩍게 말했다.
"어차피 저 녀석은 병졸이라 아무것도 모르는것 같았소!"
카우프만 대위는 포로가 있던 곳으로 와서 두 번째 포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은 어떻게 보이십니까?"
"뺀질해보이는군!"
그 두번째 포로는 눈알을 굴리며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런 놈은 자신한테 이득될게 있으면 쉽게 국가를 배신할 것 같기도?'
한스가 말했다.
"저런 녀석은 자신의 이득에 따라 행동할 것 같군."
'아무래도 내가 직접 심문하는게 좋겠지?'
카우프만 대위가 말했다.
"포로를 심문할 때는 적당히 띄워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독일 병사들이 그 뺀질한 포로를 심문실에 데려와서 앉혔고, 한스 파이퍼는 일부러 원수봉을 가지고 심문실에 들어왔다. 그 뺀질한 녀석이 한스의 원수봉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한테 다 털어놓는게 네 놈 신상에 유리할거다!'
한스가 말했다.
"현재 독일 제국은 황제 폐하의 명에 의하여 포로들에게 최선의 대우를 해주고 있소. 스탈린은 뭐 우리가 포로들의 노동을 착취한다지만 그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을 복원하는 일을 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식량을 더 배급하오."
한스는 서류를 내밀었다.
"이 서류에 빈칸만 채우고 서명하면 내가 좋은 자리로 보내주겠소."
그 뺀질한 포로가 뭐라뭐라 말했고 통역사가 이를 통역해주었다.
"노동은 꼭 해야 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독일 제국은 강제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소. 자발적으로 원하는 자에 한해서만 일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소."
통역사가 이를 전달해주었다.
"뭐라고 하나?"
"일 안해도 되면 하기 싫다고 합니다."
"뭐 그렇다면."
한스는 애써 화를 억누르며 서류를 치웠다. 뺀질한 포로가 눈알을 굴리다가 말했다.
"데니스 녀석은 어디까지 말했습니까?"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 어리버리한 녀석의 이름이 데니스로군!!! 좋았어!! 걸려들었다!!'
"데니스 녀석은 모든 것을 실토했소!"
한스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 덕분에 데니스는 좋은 포로수용소에 가게 되었소. 가족하고 편지도 주고 받을 수 있을거요."
뺀질한 포로가 뭐라 말했고 통역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뭐라는가?"
"그 녀석의 이름은 데니스가 아니랍니다."
"!!!"
"아무것도 못 알아낸 모양이군 이라고 하는데요?"
한스가 억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상당히 똑똑하시군. 전달하게."
통역사가 이를 통역했고 뺀질한 포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스를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똑똑한게 아니라 니가 멍청한거지.'
한스가 말했다.
"상당히 머리가 잘 돌아가는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필요한 정보를 이야기하면 편안한 포로 수용소에 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맛있는 식사를 하다가 집에 돌아갈 수 있을 것 이오."
통역사가 이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었다. 뺀질한 포로는 무언가를 계산하는 듯한 표정으로 한스를 바라보았다. 한스가 말을 이었다.
"당신 동료들은 걱정하지 마시오. 어차피 누가 실토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소. 동료들한테는 다른 녀석이 실토했다고 하면 그만이오! 그리고 어차피 다른 수용소로 가게 될 것 이오. 뭐 조국을 배신하지 않고 싶다면 맘대로 하시오. 우리는 억지로 심문하지 않소. 어차피 포로는 많소."
하지만 그 뺀질한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한스는 강요하지 않는다는 모션을 취하며 기다렸다. 그렇게 1분 정도 정적이 흘렀다.
"애국심이 대단하군! 그러면 이 서류만 채워넣으시오."
한스가 한 서류를 내밀었다. 빈칸에는 이름, 직급, 부대 이름과 소속, 군번을 적으라고 적혀 있었다.
"독일 제국이 제네바 협정을 준수한다는 것에 대한 서약이오."
뺀질한 포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서류를 읽어보고 말했다.
"왜 독일 제국이 제네바 협정 준수하는데 내 부대 정보가 필요합니까?"
"이건 기본적인 정보입니다. 포로로 잡혔을때 관등성명까지는 말해도 괜찮다는 것은 당신도 알지 않소? 미군도 포로로 잡혔을때 이름, 직급, 군번까지만 말하라고 교육시키오. 그 이상은 안 써도 되요. 어차피 그걸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소. 그냥 단순한 절차일 뿐이오."
뺀질한 포로가 말했다.
"하지만 부대 이름과 소속으로는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지 않소?"
한스가 억지 웃음을 짓고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어쨋거나 기본적인 포로 복지를 받으려면 이 서류를 작성해야 하고 이 서류에 서명해야 식량을 배급해줄 수 있다고 하시오."
그 뺀질한 포로가 통역사에게 수근거렸고 통역사가 말했다.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결국 그 소련군 포로는 소시지와 슈니첼까지 대접받고는 뭐라고 중얼거렸다. 한스가 물었다.
"뭐라고 하는가?"
"소련 음식보다 맛이 없고 고기가 딱딱하다고 합니다."
한스는 그 뺀질한 소련군 포로가 음식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식사가 다 끝나고 한스가 물었다.
"자, 이제 관등성명을 대라고 하게."
뺀질한 포로가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통역사가 당황하며 말했다.
"말 안 한답니다."
"음식까지 줬잖아! 도대체 왜!"
"말했다간 포로 중에 덩치 크고 수염 투성이인 그 자가 자기 엉덩이를 걷어찰거라고 합니다."
'이 시발 새끼가...'
한스는 그 뺀질한 소련군 포로를 두들겨패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한스가 외쳤다.
"관등성명도 못 대냐!!!"
뺀질한 소련군 포로가 맞으면서 외쳤다.
"제네바 협정 위반이다!! 이거 서방 쪽에 다 알릴거야!!"
"내가 무섭냐 니 상관이 무섭냐!!!"
퍽!! 퍽!! 퍼억!!
카우프만 대위와 부관 프란츠가 달려와서 한스를 간신히 말렸다. 카우프만 대위가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나...나머지 심문은 전부 제가 하겠습니다!"
한스는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머지 포로도 내가 전부 심문한다!!!"
이제 남은 포로는 총 두 명이었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한 포로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고,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다른 포로는 수염투성이에 덩치가 컸고 눈빛에 굳은 의지와 분노가 보였다. 한스가 수염 투성이 포로를 보며 말했다.
"저 녀석이 장교 같은데..."
한스는 지쳐보이는 포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부터 심문하는게 좋겠군."
아무래도 수염투성이 포로 녀석에게서는 정보를 알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때 카우프만 대위가 말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다르다고?"
"놈들의 소지품에서는 계급장도 수첩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걸 보십시오."
카우프만 대위는 러시아어가 적힌 구깃구깃한 편지를 꺼내어 한스에게 보여주었다. 한스가 통역사한테 이 편지를 통역하라고 했다.
'???'
한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잠시 뒤, 수염투성이 포로가 끌려왔고, 카우프만 대위는 이 자를 심문하기 시작했다.
"물 드시겠소?"
수염투성이 포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카우프만 대위가 갖고 있던 서류를 책상에 세게 내려놓았다.
쾅!!
"아무래도 네놈에게는 뭘 해봤자 시간낭비일 것 같군!"
카우프만 대위가 심문실에 있는 테이블을 뒤엎었다.
우당탕!!!
밖에서 보고 있던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런 녀석은 초반에 기를 꺾어놓을 필요가 있군!'
카우프만 대위가 수염투성이 포로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제네바 협정이고 나발이고 네까짓 놈 하나 죽이고 파묻는건 일도 아니지."
카우프만 대위가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통역사가 이를 말리는 시늉을 했다.
"그러지 마십시오!!"
그리고 때맞춰 한스 파이퍼가 들어왔다.
"워워!! 이보게! 진정하게!! 내가 직접 심문하겠네."
카우프만 대위가 한스에게 경례를 하고 나갔고, 한스의 부관이 테이블을 원래 위치로 놓았다. 한스가 말했다.
"포로로 잡히기 전까지 끝까지 저항했다고 들었소. 대단한 군인 정신이군."
그 수염투성이 포로는 한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강철 사냥꾼?'
한스가 마호르카 담배를 수염투성이 포로에게 권했다. 수염투성이 포로가 의심스러워하자 한스는 자신이 직접 마호르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담배는 확실히 소련제가 맛있구려."
그러자 수염투성이 포로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한스가 말했다.
"포로수용소에 갈때까지 탈출을 시도하겠지?"
수염투성이 포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한스가 웃으며 말했다.
"모든 군인은 포로로 잡혔을때도 끝까지 탈출을 시도하고 자신의 조국에 충성하는 것이 의무요. 나라고 그랬을 것 이오!"
한스는 계속해서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독일 제국군이 최전방에서 제네바 협정을 준수하는지 확인하라는 특명을 내게 내리셨소. 나는 이를 확인하러 왔을 뿐이오."
한스는 그 수염투성이 포로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 서명만 하시오. 그러면 귀하의 부대의 대한 모든 절차는 끝날 것 이오."
수염투성이 포로가 빈칸을 확인하고는 말했다.
"포로 부대에 관한 정보가 왜 필요한거요?"
"하하하! 어차피 다 알고 있으니 너무 긴장할 필요 없소. 그저 형식적인 절차일 뿐이오.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부대 관련 정보는 안 써도 되요."
수염투성이 포로가 험악하게 눈을 뜨고 말했다.
"알고 있다고?"
"당연한거 아니오! 우리 독일 제국군의 정보력을 너무 물로 보는군!"
한스는 허세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내가 모르는걸 눈치채지는 않겠지?'
수염투성이 포로가 말했다.
"거짓말하는군...내 부하들이 그럴리 없소!"
한스는 담배를 피우는척 입을 가리며 씨익 웃었다.
'자기가 장교라는 것을 실토했군...의외로 이런 녀석이 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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