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냄새
전쟁의 냄새라 하면 코 속을 찌르는 총의 화약 냄새, 전차나 차량이 활활 타오르면서 나는 냄새가 대표적일 것 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여름 전쟁의 냄새가 제일 특별했던 것이, 죽은지 몇 시간만 지나도 시체가 부패되면서 풍기는 냄새가 더운 대기 속을 떠다녔기 때문이다.
어제 독일군 진지를 공격해온 소련군의 시체는 전투가 끝난지 몇 시간 되지 않았는데도 벌써 엄청난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시체에는 온갖 구더기와 모기가 꼬여있었다. 한 여름에 시체는 며칠만 지나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다. 오토는 잠망경을 이용해서 무인지대에 있는 한 소련군의 시신을 보았다.
'윽!!!'
자빠져있는 소련군의 시신은 놀랍게도 쾌락을 느끼는 듯 눈은 반쯤만 뜨고 있었고 입에 엷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오토는 그 표정을 보면서 등줄기에 식은 땀이 흘렀다.
'시..시발...'
그 때, 소련군의 시신이 뭉쳐있는 곳에서 도와달라는 신음소리가 났다.
"으으...으어어..."
그렇게 독일군 참호와 소련군 참호에 가운데 있는 무인지대 쪽에서는 계속해서 듣기 싫은 신음소리가 났다. 하지만 아무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그 쪽으로 가지는 않았다.
마르틴이 사색이 된 얼굴로 외쳤다.
"도...도와줘야하는거 아닙니까?"
3소대장 게오르크가 엄한 얼굴로 외쳤다.
"절대 안되네! 놈들은 부상당한척 잔꾀를 쓰는걸세!"
오토 또한 마르틴을 만류했다.
"맞아! 도와주려고 갔다가 당할 수 있네! 도와달라고 하면서 우리한테 수류탄을 던질 기회만 노리고 있을걸세!"
계속해서 러시아어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어...죽여줘..."
마르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하...하지만 저건..."
비르타넨 녀석이 그 소리를 듣고는 씨익 웃고는 수류탄을 들고 교통호를 건너 최전선에 참호 쪽으로 허리를 숙이고 걸어갔다. 보초를 서는 녀석이 말했다.
"여기 저격수 있으니 고개 숙이게!"
비르타넨은 엎드린 상태로 참호 바깥으로 기어나간 다음 신음소리가 나는 썩은 구덩이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쿠광!! 쿠구궁!!
그 다음 비르타넨은 잽싸게 참호로 돌아왔다. 소련군 진지 쪽에서 기관총 소리가 들렸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륵
비르타넨이 낄낄거렸다.
"우헤헤!! 저 멍청한 로스케들!!!"
오토와 게오르크 또한 이 광경을 보고 폭소를 터트렸다.
"비르타넨 자네는 소련군에게도 친절하군!!"
마르틴은 이 광경을 보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어딘가로 걸어갔다. 지금 병사들의 신경은 잔뜩 곤두서있었던 것이, 며칠 째 빵 보급을 전혀 못 받고 있었던 것 이었다. 지금 독일군은 효과적인 반격을 위하여 전투 지휘소를 이동시키고 있었다. 통신병 녀석들은 기껏 설치해놓은 통신선을 다시 방차통에 감아서 회수하고 있었다.
오토와 전차병들 또한 후방쪽에 있는 중대 지휘소로 이동했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항공 보급이다!!"
"여기야!! 여기!!"
위이잉 위이이이잉
다들 항공 보급기에 양손을 흔들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기열 루프트바페 녀석들이 떨군 공중 보급품은 중대 지휘소 근처에 있는 관목림에 키가 아주 큰 침엽수들 꼭대기에 우수수 떨어졌다.
"이런 젠장!!!"
오토와 전차병들은 거대한 침엽수의 기둥을 흔들어서 어떻게던 침엽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보급품을 떨어트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교회 첨탑만큼 키가 큰 이 침엽수들을 아무리 흔들어도 보급품들은 떨어지지 않았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좆같은 기분으로 터덜터덜 지휘소로 돌아왔다. 참고로 오토의 통조림은 지난번에 동료들한테 들키는 바람에 모두 다같이 나눠먹었다. 오토는 라우리, 아리베르트, 클라우스 켈러를 떠올렸다. 그 엿 같은 군사학교 선배 녀석들은 후방에서 행정 장교로 꿀을 빨고 있었다.
'누군 뒤져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 망할 놈들은!!'
후방에서 행정 장교로 있는 그 선배 새끼들은 군인 극장에서 영화도 보고 아주 평화로운 일상을 즐길 것이 분명했다. 그걸 생각하니 오토는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임시 포로 수용소에 갇혀있는 소련군 포로들이 손을 내밀고 식량을 달라고 외쳤다.
"빵 한 조각만 주시오!!"
오토는 포로 수용소에 갇힌 포로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 새끼들은 더는 안 싸워도 되겠지...난 내일도 또 싸워야할텐데...'
오토는 질투심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포로들을 바라보았다.
한 소련군 장교 포로가 외쳤다.
"이렇게 굶기는건 제네바 협정 위반이오!! 내 부하들에게 식량을 주시오!! 하다못해 물이라도 주시오!!"
지금 소련군 포로들은 식량 뿐만 아니라 물도 마시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가 외쳤다.
"우리도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있소!!"
근처에 있는 연못과 우물에 포탄이 떨어져서 물이 오염되었기에 식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이다. 인근 하천에 가면 물을 구할 수 있을테지만 문제는 그 하천에는 파르티잔들이 출몰하고 있었다.
소련군 포로가 외쳤다.
"이럴거면 풀어주던지!!"
"맞아!! 풀어달라고!!"
"배고파 뒤지겠다!!"
오토는 아까부터 밥 달라고 하던 한 장교 녀석한테 외쳤다.
"밥 먹고 싶으면 나랑 싸워서 이기던지!"
잠시 뒤, 오토와 그 소련군 장교는 포로 수용소 앞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포로들은 물론이고 독일군들도 다들 몰려와서 이 광경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 소련군 장교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셌다. 녀석은 오토의 뒤에서 우측팔로 오토의 목을 휘감고 조르기 시작했다. 오토는 팔꿈치로 그 소련군 장교의 갈비뼈를 강타했다.
퍼억!
"윽!!"
그 틈을 타서 오토는 소련군의 좌측 다리를 집어올렸다. 소련군 장교는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으악!!"
이 틈을 타서 오토는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그 소련군 장교의 사타구니를 발로 가격하려고 했다. 헬무트가 외쳤다.
"그 새끼 알을 까버려!!"
그 때,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고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으아악!!!"
슐레프 중대장이 이 상황을 벌인 오토를 보며 분노를 억눌렀다.
'장교로서 모범을 보여야하거늘!!'
잠시 뒤, 오토는 슐레프 중대장에게 혼난 다음에 자신의 소대 전차들 앞에 주저앉아서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맨날 나만 혼내고 지랄이야...'
지금 오토 소대의 기동 가능한 전차는 판터와 4호 전차 한 대 뿐이었다. 이 두 대의 전차에는 위장용 녹색 천막이 덮여져 있었다. 오토바이병 닐스 녀석도 자신의 오토바이 옆에서 모기 마스크를 쓰고는 자빠져서 자고 있었다. 닐스의 오토바이는 타이어가 찢어졌지만 교체할 타이어가 없어서 수리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저 쪽에는 하이에와 그 소대원들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하이에의 군복에는 소련군의 피가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 때, 등짐을 매고 있는 보급부대 녀석들이 오고 있었다.
"우와와!!!"
그 보급부대 녀석들은 진지 사이에 연결로가 아닌, 늪지대를 건너서 와야 했기 때문에 온몸이 진흙으로 범벅이 된 상태였다. 녀석들은 식량을 나른 다음 기진맥진해서 쓰러졌다.
"파르티잔들이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네!!"
"연결로에 놈들이 지뢰를 깔아두었네! 침엽수에 저격수까지 배치해두었네!"
"아까 늪지대로 우회해서 오는데도 놈들의 총알이 옆을 스쳐지나갔네!"
독일은 나름 민심을 관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서는 파르티잔들이 워낙 기승을 부리고 있었던 것 이다. 그 때, 하늘에 작은 뭔가가 떠다녔다.
"저..저건 뭐지?"
그것은 소련군이 일부러 하늘에 띄운 연이었다. 잠시 뒤, 그 연에서 수 많은 삐라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삐라에는 항복을 권유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비르타넨이 그 삐라를 구기며 중얼거렸다.
"지랄하네 망할 새끼들..."
그 때, 슐레프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전 장교들 회의실로 집합!!"
오토와 동기들은 모두 오두막에 임시로 지어진 중대 임시 지휘소로 향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엄숙한 표정으로 외쳤다.
"최근 파르티잔들이 철도에 지속적인 테러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철로는 신속하게 복구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놈들은 분명 다시 공격을 할 것 이다! 철로 복구 작업이 완료되기 위해서 이 47확인점 인근 철로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는다!"
파르티잔들의 철도 테러가 하도 기승이었기 때문에 최근 군용 열차들의 선두칸에는 파르티잔으로부터 열차를 보호하기 위하여 병사들이 소총, 기관총 등으로 매복하고 있었다. 파르티잔들의 철도 테러는 안 그래도 보급이 취약한 독일군에게 엄청난 골칫거리가 되고 있었다. 오토와 동기들은 파르티잔을 향한 증오심을 느꼈다.
'망할 놈의 파르티잔들...'
슐레프 중대장이 외쳤다.
"파르티잔 중에는 여자나 어린 아이도 있다! 가급적 포탄은 아끼고 기관총으로 여자와 어린 아이부터 먼저 사격한다! 사살할 필요는 없고 가능하면 부상만 입히는 것이 좋다!"
이런 방식의 전투는 잔인하지만 상당한 이점이 있었던 것이, 파르티잔들은 여성들이나 어린 아이들과도 같이 전투를 하고는 했다. 그리고 이 파르티잔들은 신출귀몰하게 자신들의 진지를 이동했는데, 부상자가 많을수록 이들은 이동에 제한을 받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슐레프 중대는 현재 독일군이 복구 작업을 하고 있는 철로 쪽으로 방어 전투를 하기 위하여 이동했다.
현재 철로 근처에는 나무 바리케이트들이 빽빽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과 동전이 들어있는 깡통들 또한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었다. 야간에 파르티잔들이 이 철로로 접근한다면 깡통을 건드려서 소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봐도 아무리 행동이 빠른 파르티잔이라도 이 수 많은 장애물을 뚫고 철로에 폭약을 설치할 수 있을거 같지는 않았다. 포수 에밀 녀석이 말했다.
"이 정도면 쥐새끼도 접근 못 할 것 같은데..."
오토가 말했다.
"놈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잠입해서 폭약을 설치한다!! 파르티잔들은 철로 뿐만 아니라 연료 탱크, 탄약 보급차, 그리고 전차를 최우선 목표로 노린다!! 각 전차는 경계를 철저히 한다!! 모르는 인물의 접근은 절대 불허한다!!"
그렇게 슐레프 중대원들은 철로 인근에서 파르티잔으로부터 방어에 전념하고 있었다. 다들 배가 고파 뒤질 지경이었다. 그래도 이 인근에는 물을 끌어올 수 있는 하천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다들 물로 배를 채우고 있는데, 하이에 소대 녀석들이 사람 팔뚝만한 커다란 잉어를 잡아오는 것을 전차병들이 발견했다.
"우와! 저것 좀 봐!!"
오토 또한 이 잉어를 바라보았다.
'저..저 녀석!!'
하이에 소대 녀석들이 자랑했다.
"소대장님이 잡아주셨습니다!"
오토가 하이에에게 물었다.
"낚시대도 없는데 어떻게 잡은건가!!"
"그냥 손으로 잡으면 쉽네!"
오토는 소대원들과 함께 하천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 하천 인근에는 아군 진지가 있었기 때문에 파르티잔들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했다. 그 하천에는 사람 팔뚝만한 잉어들이 엄청나게 몰려다니고 있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잉어를 잡으려고 했지만 잉어들은 잽싸게 도망쳤다.
"이 녀석들!! 으익!!"
오토는 그만 하천에서 철퍼덕 미끄러져서 군복이 다 젖어버렸다.
"이런 젠장!!"
'하이에 그 녀석은 쉽게 잡던데!!!'
잠시 뒤, 오토의 소대원들은 전차를 위장할 때 위에 덮어두는 그물을 가져와서 설치했다. 그런데 잉어들은 용캐도 이 그물에 걸려들지 않았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배가 고픈데 잉어가 잡히지 않아서 잔뜩 약이 오른 상태였다.
'꼭 잡고 말테다!!'
한편 하이에와 소대원들은 노릇노릇 맛있는 잉어를 구워먹고는 하천으로 다시 와서는 오토와 소대원들의 이 한심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오토가 말했다.
"녀석들이 빨라서 손으로는 절대 못 잡네!!"
그러자 하이에가 잠시 하천에 손을 넣더니 굵은 잉어를 잡았다.
"이렇게 하면 되네!!"
전차병들이 이 광경을 보고 모두 탄성을 내질렀다.
"우오오!!"
"대단해!!"
오토는 질투심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도 잉어를 잡아보려고 애썼다.
'저 재수없는 놈!!!'
잠시 뒤 오토의 소대원들도 하이에가 잡아준 잉어들을 구워서 대충 배를 때웠다. 어느 새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한편 한스 파이퍼는 악몽을 꾸고 있었다. 프리드리히 대왕, 비스마르크, 힌덴부르크가 한스를 책망하고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외쳤다.
"보헤미안 상병과 브레멘 이등병이 아주 일을 제대로 망쳐놨군!!"
키 198cm에 박쥐 날개 모양의 콧수염을 하고 있는 힌덴부르크가 한스를 내려다보며 외쳤다.
"자네는 이 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네!!"
한스는 1차대전에 이등병들이 입던 군복을 입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꼴사나운 피켈하우베를 쓰고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한스의 군복에 달린 수 많은 훈장을 하나씩 때냈다. 한스는 애써 변명했다.
"소..소련과 전쟁을 하는 것은 독일 제국의 안보를 위해서..."
프리드리히 대왕이 외쳤다.
"저 얼빠진 이등병 녀석이 내 제국을 망쳐놓고 있네!!"
힌덴부르크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한스를 독수리 같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한스의 원수봉까지 뺏으려고 했다. 한스는 어떻게던 그 원수봉만은 뺏기지 않으려고 했다.
"이것만은!!!"
힌덴부르크는 한스의 원수봉을 빼앗고는 중얼거렸다.
"이런 한심한 놈!!"
퍽!!
한스는 머리에 엄청난 충격을 느끼며 깨어났다.
"윽!!"
일어나보니 부관 프란츠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한스를 보고 있었다.
"괘...괜찮으십니까!!!"
한스는 독일 본토로 돌아와서 독일의 최신 제트기 시범 비행을 보러 왔다가 악몽을 꾼 상황이었다. 한스가 이마를 만지며 말했다.
"괘...괜찮네..."
한스는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가 될 독일의 'Me 262'를 바라보았다. 한스는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제..제트 전투기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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