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
슐레프 중대는 3시간 뒤에 있을 전투를 준비했다. 오렐-튤라 사이에 현재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는 한 작은 농가를 공격해야하는 중요한 임무였다. 소련군 전차 부대와 포병대는 점점 독일 전차 부대를 능숙하게 상대하고 있었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오토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소대 전차들을 점검했다. 연료, 냉각수 모두 체크 완료했고, 연료는 충분했지만 탄약이 언제 보급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탄약은 아껴야했다. 특히 현재 경심철갑탄의 수량이 부족했다. 얼마 전까진 식량 보급은 못 받아도 어떻게던 연료와 탄약 보급만은 해주었지만, 점점 보급 상황이 나빠지는 만큼 연료와 탄약도 보급이 늦어지고 있었던 것 이다.
한편, 기갑 척탄병의 파울은 전차 격파 금장을 받은 하이에를 보며 감탄했다.
'나...나도 전차 격파장을 받으면 고향에 돌아가서 영웅 대접을 받겠지?'
파울은 지난 번에 마을에서 전차를 격파하려다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 다음으로는 비교적 얌전히 있었다. 하지만 자신도 전공을 세우고 싶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커지기 시작했다. 그 때, 소대장이 파울을 지목했다.
"이보게!! 자네! 이걸로 소련군의 전차를 격파하게!"
소대장은 파울에게 판저 파우스트를 내밀었다.
'이..이걸 내가?'
소대장은 파울에게 간단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할때 뒷부분을 가슴팍에 향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네 놈 가슴팍에 구멍이 뚫리고 싶은게 아니라면 말이다!!"
판저 파우스트는 발사했을때 뒷부분으로 엄청난 후폭풍이 생기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판저 파우스트의 뒷부분이 발사하는 사람의 가슴쪽을 향했다가는 발사하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것 이다.
"발사하기 전에 뒤에 벽이나 나무, 바위 있는지 확인해라! 이거 발사될때 후폭풍이 어마어마하다!!"
"야볼!!"
파울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판저 파우스트를 받았다.
'좋았어!! 판저 파우스트만 있으면 전차 격파도 쉽지!!'
파울은 벌써부터 팔에 전차 격파장을 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번에 격파에 성공하면 부대에서는 계속해서 파울에게 판저 파우스트를 맡길 것이 분명했다. 그러면 파울은 여러 대의 전차를 격파해서 전차 격파 금장까지 받을 수 있을 것 이었다.
잠시 뒤, 전차 부대는 뿌연 먼지를 뒤로 남기며 롤반을 따라 앞으로 전진했다. 이미 공병 녀석들이 대전차 지뢰를 다 제거해두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가급적 후속 전차들은 앞에 있는 다른 전차가 전진하면서 남긴 궤도 자국을 따라 전진했다.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어제 정찰조에 의하면 롤반 근처에는 소련군 대전차포 매복이 없었다고 했지만 이 또한 확실하지는 않았다. 소련군은 야간 사이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대전차포 진지를 구축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오토는 해치 위로 머리를 내민 상태로 360도 모든 방향을 빠르게 살폈다. 놈들의 라체 밤(발사음보다 명중음이 먼저 들린다는 소련군의 대전차포를 지칭하는 용어)이 대전차포 속에 매복해있다가 400~500m도 되지 않는 근거리에서 티거를 향해 철갑탄을 발사할지 알 수 없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오토는 흙먼지 속에서 쌍안경을 이용해서 계속해서 사방을 살폈다. 다행히 롤반 주위에는 매복한 대전차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슐레프 중대가 점령해야 할 마을 쪽에서 붉은 조명탄이 쏘아올려졌다.
퍼엉!!
마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소련군이 독일군 전차 부대를 목격하고는 조명탄을 쏘아올린 것 이었다.
'놈들이 눈치챘다!!'
"차간 간격 늘려!!"
전차 부대는 차간 간격을 더 넓게 늘려서 앞으로 전진했고, 보병들 또한 전차 뒤에서 허리를 숙여서 몸을 엄폐한채로 전차를 따라갔다. 오토는 딱봐도 놈들이 대전차포를 숨겼을 것 으로 추정되는 헛간으로 고폭탄을 발사하라고 했다.
"2시 방향 커다란 나무 우측 헛간, 고폭탄 발사!"
"고폭탄 장전!!"
"발사!!"
퍼엉!!
쉬이잇!!
그 헛간은 티거의 고폭탄에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하지만 대전차포는 그 안에 엄폐되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오토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오두막에서 놈들의 대전차포가 불꽃을 뿜었다.
퍼엉!!
오토 소대의 판터가 앞으로 전진하는 와중에 티거는 정지한 상태로 소련군이 대전차포를 엄폐해둔 오두막을 향해서 고폭탄을 발사했다.
퍼엉!!
포탄은 정확히 명중했고, 소련군의 대전차포가 엄폐되어있던 오두막은 폭발했다.
쿠과광!! 콰광!!!
마을 여기저기서 독일군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했다.
드륵 드르륵 드륵
이런 기관총은 티거와 판터가 처리해야할 주요 목표가 아니었다. 대신에 티거와 판터 뒤에서 따라오는 4호 전차가 소련군의 기관총을 향해 불을 뿜었다. 그리고 티거와 판터는 계속해서 마을에 매복하고 있을 소련군의 전차와 대전차포를 찾았다.
"전방에 적 전차!!"
소련군의 T-34 전차가 마을 가장자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뒤, 그 T-34 전차는 오토의 티거에 의해 격파되어 포탑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쿠궁!! 쿠과광!!
하지만 진짜 전투는 이제부터였다. 오토의 부대가 마을로 진입하면, 이미 유리한 위치에 자리를 잡아놓은 녀석들이 전차, 대전차포로 공격을 할 것 이었다. 오토 부대 전차들은 주포와 두 정의 기관총에서 모두 불꽃을 뿜으며 소련군의 마을에 접근했다.
티잉!! 드르륵 드륵 티잉! 드르륵
이 마을 곳곳에는 작은 오두막과 헛간, 마구간들이 있었고 좁은 골목길이 구불구불하게 연결되어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다. 전차 부대를 따라가며 물결처럼 움직이는 보병들 또한 어디서 기관총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주의깊게 움직였다. 파울도 판저 파우스트를 든 채로 벌벌 떨며 부대를 따라갔다.
오토의 티거 또한 마을 주위를 빙빙 돌며 소련군의 야포와 전차를 찾았다. 그 때, 한 헛간이 눈에 띄었다.
'저..저건?'
오토는 관측창을 통해 헛간의 창문들을 살펴보았다. 그 때, 헛간에서 바닥이랑 가까운 낮은 위치에 있는 작은 구멍에서 대전차포가 불꽃을 뿜었다.
퍼엉!!
대전차포가 발사한 탄이 티거로부터 고작 10m 옆에서 폭발했다.
쿠과광!!
소련군은 헛간 내부 바닥을 파놓은 다음에 그 안쪽에 대전차포를 매복시켜두었다. 그리고 헛간 벽 아래쪽에 구멍을 뚫어놓고, 대전차포를 발사한 것 이었다. 오토가 외쳤다.
"고폭탄 3연속 장전!!! 자유 사격!!"
퍼엉!! 쿠과광!! 콰광!!!
잠시 뒤, 마을에 여러 초가집과 헛간은 시뻘건 불꽃을 내뿜으며 불타올랐고, 엄청난 연기가 병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파울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판저 파우스트를 들고는 자신의 소대장을 따라갔다. 지크프리트 4인조의 크리스티안이 저쪽 모퉁이에 소련군의 전차가 있다고 수신호를 보내주었다.
파울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드디어!!!'
소련군 전차의 궤도와 엔진소리가 대전차포, 기관총 소리와 뒤섞여서 들려왔다.
트드등 트드드등
파울은 작은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마구간은 여러 개의 널빤지를 이어붙여서 얼기설기하게 만들어졌다. 파울은 널빤지 사이 틈에 눈을 붙이고는 소련군의 전차가 이 쪽으로 오기를 기다렸다.
'가까이만 와봐라!!'
T-34가 이 쪽으로 올 때 마구간에 있는 창문으로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면 손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 이었다. 그 때, 파울은 마구간 반대편에서 벌벌 떨고 있는 할머니와 꼬맹이를 발견했다.
"으어어...흐어어어..."
할머니는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마구간 안을 왔다갔다했다. 파울이 외쳤다.
"아무 짓거리 안할테니 얌전히 있으쇼!!"
파울은 식은 땀을 흘리며 널빤지 사이 틈으로 소련군의 전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트드등 트드등 트으응
소련군의 T-34 전차가 천천히 마구간 옆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울은 마구간 바닥을 기어간 다음 창문 밑에서 T-34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등
파울은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T-34를 향해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했다.
퍼엉! 콰과광!!
판저 파우스트는 앞뒤로 엄청난 연기를 뿜어냈고, T-34는 시뻘건 불꽃을 사방으로 뿜더니 정지했다. 이윽고 T-34의 포탑에서는 시뻘건 화염이 하늘로 솟구쳤다. 파울이 외쳤다.
"해냈어!!"
파울은 자리를 이동하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 때 파울은 자신의 등 뒤에서 판저 파우스트의 후방쪽 후폭풍을 맞고 할머니가 쓰러져있는 것을 발견했다.
"으아악!! 하..할머니!! 이봐!!"
파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꼬마 아이는 바지에 오줌을 지린 상태로 멍하니 파울을 보고 있었다.
"시...실수야!!"
파울이 다가서자 꼬맹이가 헛간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그 때, 한 소련 병사가 꼬맹이를 향해 따발총을 긁었다.
따다당 따다당
꼬맹이는 소련군의 따발총을 맞고는 엎어졌다. 소련 병사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알고는 입을 크게 벌렸다.
"으아아!!!"
그 틈을 타서 파울은 소련 병사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타앙!!
그렇게 전차 한 대를 격파하고 소련 병사를 사살한 파울은 소총을 들고는 마구간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내 잘못이 아니야!!'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포탄이 폭발하였다. 소련군 전차 부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매복술을 자랑했고, 오토의 소대 전차들은 소련군의 전차가 엄폐할 수 있는 곳에는 모조리 고폭탄을 발사했다.
"저기 오두막에 고폭탄 발사해!!"
퍼엉!!
썩은 건초로 만들어진 지붕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오두막의 기둥들은 폭삭 주저앉았다. 잠시 뒤 마을은 슐레프 중대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온 몸에 먼지를 뒤집어 쓴 상태로 전차에서 하차했다.
"으아아!!"
"물!! 물!!"
전차병들은 급하게 두레박으로 우물에서 물을 떴다. 하지만 두레박으로 뜬 우물 물에는 온갖 먼지와 포탄 파편이 둥둥 떠다니고 있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에밀은 욕설을 퍼부으며 두레박을 내팽개쳤다.
"이런 젠장!!"
티거의 장갑에도 여기저기 적 전차나 대전차포 철갑탄이 도탄되면서 생긴 움푹 파인 자국이 있었다. 오토는 그 움푹 파인 자국을 만져보았다.
'새로 받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
오토는 티거의 묻은 먼지들을 손으로 닦아내보았다. 시커먼 검댕이 손가락에 묻어나왔다. 여전히 마을 초가집과 마구간에 붙은 붙은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고, 오토와 전차병들은 연기 때문에 눈에서 줄줄 눈물을 흘렸다. 마을 곳곳에는 전차들의 궤도자국이 깊게 파여 있었다. 초가집과 마구간이 타닥타닥 불타는 소리가 들렸다.
한편 3소대의 마르틴은 마을을 돌아다니다가 꼬맹이의 시신을 보고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이럴 수가...'
전차병들은 꼬맹이의 시신을 신경쓰지 않고, 바쁘게 제 갈길을 가며 먹을 것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이미 마을 사람들은 대다수가 피난을 간 상황이었다. 그나마 말들에게 먹일 수 있는 건초가 전부였다. 오토 또한 혹시 먹을만한 것은 없는지 찾아보았다.
'거위나 닭 한 마리만 있으면 땡잡는건데!!'
하지만 오토와 전차병들은 그 어떠한 수확도 건지지 못했고, 결국 1인당 300g의 빵으로 때워야했다. 오늘 전투는 아무 피해 없이 승리했지만 내일도 계속해서 튤라로 진격해야할 것 이었다. 그렇게 슐레프 중대의 하루는 천천히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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