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쎄이 실전 훈련
표도르 일행은 그렇게 군용트럭에 실려서 소련군 부대로 끌려갔다. 한 장교가 의심쩍은 눈으로 표도르 일행을 보며 물었다.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다고?"
드미트리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우릴 의심하고 있다!!'
'망했다!'
표도르가 외쳤다.
"포로로 잡혔다가 며칠동안 먹지도 못하고 죽어라 걸어서 탈출했습니다!"
"신분증"
"독일군에게 전부 뺏겼습니다!"
"탈영병이군."
표도르의 머리 속에 여태까지 죽어라 고생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표도르는 여태까지 단 한번도 상관한테 대든 적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간 죽을 고생을 했는데 탈영병으로 몰리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어차피 처형당하느니 네 놈부터 죽인다!!!'
그 때,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던 안토노프 정치장교가 말했다.
"그들은 전부 탈영병이 아니오. 내가 보증하오."
안토노프는 며칠간 못 먹고 고생한 탓에 뒤룩뒤룩하던 살이 엄청나게 빠진 상태였다.
"내 부대에서 가장 용감히 싸우던 에이스 전차병들이오. 조국은 이들을 필요로 하오."
표도르는 탈출하면서도 안토노프에게도 빵을 챙겨주었던 것이다. 덩치 큰 안토노프가 중간에 더는 못 가겠다고 지랄을 할때 다들 주먹을 날리고 싶은 것을 참고 어떻게든 같이 탈출한 보람이 있었다. 안토노프의 말에 표도르를 심문하던 소련군 장교의 표정이 변했다.
잠시 뒤, 표도르 일행은 군용 트럭에 태워져서 후방에 전차 공장으로 보내졌다. 한 장교가 외쳤다.
"모든 전차는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최전선에서는 많은 전차가 정비되지 못하고 헛되이 버려지고 있다! 전차는 잘 정비해서 오랫동안 성능을 유지해야 한다. 앞으로 제군들은 전차의 기초적인 정비에 대한 훈련을 받는다!"
그렇게 표도르 일행은 T-34, BT 경전차, T-60 등 여러 전차를 정비하는 방법을 배웠다. 생각보다 정비는 간편했다. 드미트니가 외쳤다.
"이렇게 쉬울줄 알았다면 전선에 그 많은 전차 안 버리고 오는건데 말입니다!"
공장에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전차의 포탑이 보였다.
"저건 뭘까요?"
"어마어마합니다!"
"모스크바에 저 전차도 오겠죠?"
전차 정비 속성 훈련을 마치고 표도르 일행에게는 다른 훈련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수많은 소련군 전차병들은 연병장에서 다음 훈련 코스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 훈련장은 실전을 위한 것이 분명했다. 실제 소련 땅의 농가를 그대로 흉내내어 만든 이 훈련장에는 매복하기 좋은 초가집, 짚더미, 바위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파벨이 말했다.
"우리도 제법 엘리트로 거듭나는 느낌입니다!"
표도르가 중얼거렸다.
"진작 이런 훈련을 받았어야하는데..."
글리에르가 말했다.
"그래도 놈들이 모스크바 코 앞까지 왔는데 단기간에 훈련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요? 악!"
"자네는 너무 부정적이네!"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소련군 장교, 근츄디미르가 걸어왔고 표도르 일행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맨 앞에 있는 전차병을 지목했다.
"아쎄이! 자네는 T-34 전차로 이 마을을 방어해야한다! 어디에 매복할텐가!"
그 아쎄이는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악! 저 마구간에 매복하겠습니다!"
"그게 끝인가?"
"유선으로 파시스트의 전차가 오는 방향을 전달받고 그 쪽으로 포탑을..."
"새끼...기열!"
그 기열 아쎄이는 앞으로 나가서 대가리를 박았다. 근츄디미르는 다음 아쎄이에게 가서 물었다.
"자네라면 파시스트의 전차 부대로부터 이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어떤 전술을 이용하겠나!"
"그...그것이..."
"새끼...기열!"
잠시 뒤 소련군 전차병 아쎄이 30명이 모조리 대가리를 박았다. 근츄디미르는 이제 표도르에게 걸어왔다.
"아쎄이!"
표도르가 식은 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악! 이 마을에서 매복할만한 곳은 헛간, 마구간, 짚더미, 2시 방향 도랑 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파시스트가 5시 방향에서 접근한다면 5시 방향 짚더미에 매복해서 초탄을 발사하고 후퇴해서 헛간으로 유인합니다. 그리고 파시스트 전차가 진입했을때 영점사격으로 측면을 격파합니다!"
"새끼..."
파벨, 드미트리, 글리에르가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합!"
대가리를 박고 있던 아쎄이들도 모두 자리에 돌아왔다. 근츄디미르가 외쳤다.
"매복할 장소는 한군데만 있는게 아니다! 적에게 들키지않고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모두 머리 속에서 계산해두어야한다!"
그렇게 표도르 일행과 수많은 아쎄이들은 지옥의 전차전 실전 훈련을 받았다. 파벨이 수근거렸다.
"근츄디미르 대위님은 진짜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저런 분의 지휘를 받는다면 파시스트 놈들의 전차도 무찌를 수 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계속 교관으로서 여기 남는다고 하더군."
"저런 분이 대대를 이끌어야하는데 왜 교관으로?"
근츄디미르 대위는 짧은 속성 훈련을 마치고는 연설을 했다.
"아쎄이들! 자네들은 더 이상 기열 찐빠가 아니다! 저 기열 파시스트 놈들을!"
그 때 하늘에서 참새가 날라왔다. 근츄디미르 대위는 이걸 본 즉시 땅에 대가리를 박았다.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뭐...뭐지?'
기절한 근츄디미르 대위가 위생병들에게 실려갔다. 한 전차병이 말했다.
"파시스트 놈들 폭격기에 당한 다음부터 새만 보면 도망간다더군."
짧은 훈련을 끝내고 이들은 모스크바로 향하는 열차에 탑승했다.
한편 독일 제국의 육군 최고 사령관 한스 파이퍼는 러시아 제국 백군과 루마니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지역의 치안을 유지할 것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또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협상을 시행할 것이라는 보고 또한 받았다. 이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는 모스크바로 향하는 아군 기갑부대의 진격속도가 점점 늦춰지고 있는 것 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차전 보고서를 읽어본 결과 소련군의 매복 전술은 점점 발전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키예프 점령으로 진격이 늦어졌는데...'
70만에 가까운 소련군을 키예프에서 포위하고 섬멸했지만 소련군은 두 달이면 150만을 징집할 수 있었다.
'극동군을 일본이 잡아주려면...'
최근에 한스는 일본에 의도적으로 몇 가지 정보를 흘리도록 했다. 소련은 그 정보를 즉각적으로 입수하고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분명히 일본의 정보는 실시간으로 소련에 세어나가고 있었다. 한스는 머리를 굴렸다. 현재 독일은 레이다 설계도를 일본에 제공하고 다른 것을 얻기로 거래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가 일본 측에 판터와 티거 설계도를 제공한다는 허위 정보를 퍼트린다면 소련측에서는 일본의 침공을 염두에 둘 것 이다.'
물론 일본에 판터와 티거 설계도를 실제로 내어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보를 간접적으로 흘린다면? 소련은 과연 이 정보를 믿고 일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하여 극동군을 그대로 둘 것인가? 아니면 극동군을 모스크바로 가져올 것 인가?
잠시 뒤, 크라우제가 한스의 집무실을 방문했다. 크라우제는 중요한 정보를 얻을 생각에 들떠있었다. 여태 한스는 이 밉살맞은 크라우제에게 정보를 흘렸다. 한스는 크라우제 이 녀석이 일본 기자와 정보를 교류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스가 크라우제를 통해서 정보를 몇 번 흘린 덕분에, 모 일본 언론지에서는 군에서나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 이를테면 최근 키예프 전투에서의 전차의 제식명 같은 것이 정확하게 나왔다. 일본에 있는 소련군 스파이들은 이 언론지에 분명히 주목하고 있을 터였다.
한스가 크라우제에게 말했다.
"지금 독일군 전차들 중에 최강의 성능을 갖고 있는 티거, 판터의 설계도를 일본측에 제공하고 우리쪽에서는 @&♤♧☆를 받을♤♧&☆"
크라우제는 싱글벙글 웃으며 집무실을 떠났다. 이건 한스의 독단적인 계획이었다. 독일군 내부에서도 누가 스파이일지 한스로서는 알 수 없었기에 신중을 기해야했다.
모형 지도를 보며 고민하는 한스에게 부관이 문을 두드렸다.
"무슨 일인가?"
"그...별 일은 아니고 프랑스 주재무관이..."
부관은 얼마전에 프랑스 주재무관 엘랑 에거가 앙뚜완에게 달려들었던 작은 소란을 보고했다. 한스의 이마에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프랑스?설마?'
20년도 더 전에 자신이 저지른 추악한 일이 떠올랐다.
세 시간 뒤, 한스는 한창 장교 훈련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병영을 방문했다. 미하엘 비트만과 오토 카리우스는 기대감에 찬 눈으로 한스 파이퍼를 바라보았다.
'강철 사냥꾼!'
하지만 앙뚜완은 한스를 쳐다보지 않았다. 잠시 뒤, 한스는 비트만과 카리우스도 격려했다.
"제군들이 독일 기갑군단의 미래일세!"
한스는 앙뚜완의 표정이 좋지 않아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예전에 앙뚜완은 늘 한스를 존경과 감사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앙뚜완은 아예 한스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서...설마 아는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닐거다! 아니다! 그럴리 없다!'
한스는 앙뚜완도 격려했다.
"독일 제국은 자네를 필요로 하네!"
2초 정도 정적이 흘렀다. 앙뚜완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한스는 차량을 타고는 돌아갔다. 입이 바싹바싹 말랐다.
'도...도대체 어디까지 아는 거지? 엘랑 에거 이 자는?'
한스는 집무실에 돌아와서 프랑스군 엘랑 에거 대령에 대해 알아보라고 시켰다. 그는 이미 베트남으로 떠난 상태였다.
'그래! 베트남에서 죽어라!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런 새끼때문에!'
한스가 이렇게 전전긍긍하고 있을때, 앙뚜완은 얼마 전 엘랑 에거로부터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붉게 충혈된 눈의 엘랑 에거가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한스 파이퍼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네 놈은 모르겠지...더러운 씨앗으로 역겨운 생명이 태어났구나. 네 놈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며칠 뒤, 앙뚜완은 외출 허가를 받고는 수녀원으로 향했다. 앙뚜완은 자신이 모은 봉급을 모조리 수녀원에 계속 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차피 조금 있으면 앙뚜완은 동부전선으로 가야했다. 동료들은 술과 담배, 마약에 의존하며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애써 잊으려했다. 녀석들은 자신이 죽는 것보다 가족을 걱정했다. 병영에서 안 자고 질질짜는 녀석들도 간혹 있었다. 이들은 어떤 병과가 가장 꿀 빠는지에 대해서 논의했다.
"보병들은 부상으로 전역하지만 전차병은 그게 아니야. 전차 피격 당하면 뒤지는 거지."
한 녀석이 자신의 아내와 어린 아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래도 내가 죽으면 아내에게 연금이 나올걸세. 부상당하느니 전사하는게 낫지."
아직 결혼하지 않은 병사가 말했다.
"그 연금으로 다른 놈팽이와 결혼할텐데? 나는 엄마가 연금을 수령해서 다행이야!"
"니 녀석도 자식이 있으면 생각이 바뀔거다."
앙뚜완은 이걸 보면서 자신은 죽었을때 슬퍼할 가족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피크는 어떻게 되는거지?'
수녀원도 후원을 받지 못하면 피크가 계속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앙뚜완이 가족 사진을 보여주었던 동료에게 물었다.
"서류 상으로 결혼만 되어 있으면 아내가 연금을 받을 수 있나?"
"법률 상으로는 그렇겠지?"
그리고 앙뚜완은 수녀원장에게 참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서류 상으로 혼인만 되면 피크는 연금으로 이 곳에서 계속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거다.'
물론 제대로 결혼을 하거나 함께 하는 것은 앙뚜완도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때 오토와 동기들은 강제로 앙뚜완으로 하여금 피크를 범하도록 한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조용히 수녀원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피크가 보였다.
'!!'
피크는 여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그네만 타고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배가 점점 나오고 있던 것 이었다. 앙뚜완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오토와 그 패거리에 대한 증오심이 끓었다.
'그 새끼들 죽였어야!'
죽을 각오로 싸웠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한심하게도 장교 여럿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앙뚜완은 분노를 억누르고는 건물 뒤편으로 서둘러 걸어갔다. 피크에게 절대 들키면 안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앙뚜완은 조심조심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바스락 바스락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앙뚜완은 천천히 뒤를 바라보았다. 피크가 멍한 눈으로 앙뚜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뒤, 수녀들이 깜짝 놀라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쉿! 조용히 해!"
"저 불쌍한 애가!"
피크는 앙뚜완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앙뚜완은 피크의 등을 천천히 안아 보았다. 피크의 쎅쎅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피크는 앙뚜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었다.
앙뚜완의 눈에서는 생전 처음으로 굵은 눈물이 흘렀다.
'미안해!!!'
한편, 슐레프 중대는 오렐로 향하고 있었다. 아주 드넓은 벌판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문제는 연료 보급이 제때 안되고 있었고 그로 인한 진격속도가 늦어지고 있었다. 오토는 해치 위로 상체를 내밀고는 쌍안경으로 넓은 대지를 바라보았다.
'최근 이반 새끼들의 매복으로 인한 전차 피해가 보고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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