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투르게네프의 생가
만토이펠 기갑 대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오렐 비행장을 탈환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비행장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한 소련군의 항공기들이 전차 포탄을 맞고 망가진 상태로 널부러져 있었다. 전차 부대를 공포에 빠지게 했던 IL-2 또한 한쪽 날개가 박살난 상태로 비행장에 있었다. 포수 에밀이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고는 외쳤다.
"하하!!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별거 아니네요!!"
탄약수 알프레트가 외쳤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우리 티거부터 보라고!"
오토의 티거는 탄약이 모두 떨어지고 궤도가 퍼지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마티아스가 외쳤다.
"냉각수 온도가 계속 상승하고 있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정비소까지 잘 끌고 갈 수 있겠나?"
"아무래도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측 궤도가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고 바퀴들은 덜덜거렸다. 거의 퍼지기 진전의 티거는 오렐에 긴급하게 마련된 정비소로 향했다. 오토가 중대 본부에 무선을 쳤다.
"1소대다! 티거 궤도 손상으로 기동 불가 직전! 구난 전차 지원 요청한다!"
이 당시 독일 기갑 부대는 포탑이 손상된 전차가 있으면 포탑을 때어내고 구난 용으로 쓰고 있었다.
"폭격으로 구난 전차 손상! 자력으로 와라!"
"젠장!!"
오토의 티거는 덜거덕거리며 오렐 후방에 있는 정비소로 전진했다. 그리고 우측 궤도가 마침내 퍼져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모르고 티거가 계속 전진하다가 우측 궤도는 벗겨져버렸다. 상부 해치로 상체를 내밀고 있던 오토는 이걸 보고 머리를 쥐어 뜯었다.
"젠장!!"
잠시 뒤, 3소대 게오르크의 티거가 와서 오토의 티거 견인을 도와주었다. 견인 케이블 두 개를 X자로 연결한 상태로 게오르크의 티거가 오토의 티거를 견인해주었다.
트으으 트드드 트드드드
이건 3소대 게오르크의 티거에도 무리가 되기 때문에 가능하면 조심해야 했다. 그 때, 대대 본부에서 연락을 받고 다행히 Sd.Kfz.9 트럭이 두 대가 와서 대신 오토의 티거를 견인해주었다. 오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잠시 뒤 티거는 정비소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정비소에서는 수리용 크레인 장비를 바쁘게 설치하고 있었다. 티거를 정비하려면 이 수리용 크레인 장비를 이용해서 포탑을 드러내야 한다. 40분 쯤 기다리니 크레인 설치가 완료되었고, 정비병들은 크레인을 이용해서 티거의 포탑을 드러내고 엔진 정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제대로 된 정비 과정을 거치고 티거는 다시 따끈따끈한 상태가 되었다. 비록 여기저기 소련군 전차의 철갑탄이 도탄된 흔적이 남아있긴 했지만 말이다. 오토는 시동이 걸리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다행이군!!'
그 때, 한스 파이퍼가 사병 복장을 하고는 구데리안, 발터 모델과 다른 참모들과 함께 걸어왔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각잡힌 자세로 경례를 했다. 한스가 말했다.
"쉬게."
전차병들은 모두 엄청나게 긴장했다.
'육군 최고 사령관이 여긴 왜 온거야!!!'
오토 소대 전차병들은 모두 전차 내부에 있는 자폭용 폭탄을 빼내고 그 자리에 술병을 넣어두었다. 이건 엄연히 군법에 위배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전차에는 이런 저런 낙서를 해두었고 이는 전차병들을 무척이나 쫄리게 만들었다.
'이따가 우린 좆됐다!!'
전차병들은 훈련병 시절에 빡센 차량 점호를 통과해야 했다. 참고로 이 차량 점호에서는 제대로 먼지나 진흙이 제대로 닦여있지 않으면 일주일간 감자깎기 벌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금 오토 소대의 전차들이 차량 점호를 받는다면 한달간 감자깎기에 변소 청소까지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육군 최고 사령관 한스 파이퍼는 각 차량들을 살펴 보며 말했다.
"그렇게 다들 각 잡힌 자세로 있으면 소련군 잔여 병력이 내 정체를 눈치채겠군! 이러면 내가 굳이 사병용 복장을 입은 보람이 없지 않겠나? 편히 있게."
한스는 티거와 전차들에 쓰여있는 낙서는 신경쓰지 않고 궤도, 구동 계통 등을 직접 확인했다. 그리고 한스는 3소대장 게오르크에게 물었다.
"연료 보급은 문제 없나?"
"무...문제 없습니다!!!"
당연히 연료와 탄약 보급 문제가 심각했지만 게오르크는 이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한스가 물었다.
"티거와 판터, 4호 전차의 성능은 어떤가? 개선 사항이 있다면 말해보게."
'!!!'
다들 굳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때 오토가 말했다.
"파..판터의 포방패가 무..문제가 있습니다!!"
한스가 오토에게 물었다.
"어떤 문제가 있는가?"
지금 한스 파이퍼 뿐만 아니라 구데리안, 발터 모델 등이 오토를 주목하고 있었다. 오토가 말을 이었다.
"판터는 전면 장갑에 있어서 티거보다 강합니다! 하..하지만 처...철갑탄이 판터의 기와형 포방패에 튕겨져나오면 탄이 아래로 미끄러져내리면서 차체의 얇은 천장을 뚫을 수 있습니다! 파..판터의 포..포방패에 턱을 설치하면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또한 판터는 엔진이 과열되면 자동 소화 장치가 작동하는데 오작동이 종종 일어납니다!"
오토는 이러한 판터의 장점을 보고서에도 적었지만 아무래도 지금 말해두는게 군부에서 더 빠르게 반영할거라 생각하고 용기를 냈던 것 이다. 게오르크가 이 광경을 보고 생각했다.
'저..저런 멍청이!!'
'그렇게 대놓고 까면 어떡하냐!!'
'머저리 같은 놈!!'
슐레프 중대장도 식은 땀을 흘렸다. 만토히펠 대대장은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한심한 놈!! 그걸 이런 자리에서 대놓고 말하다니!!'
한스가 판터의 기와형 포방패를 보며 말했다.
"타당한 지적이군. 소련군은 아군의 전차에 대해 연구하고 티거, 판터, 4호 전차 등을 격파할 방법을 연구하며 이를 책자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교부하고 있다. 조만간 놈들도 이 포방패가 약점이라는 것을 눈치채겠지."
한스의 말에 오토와 전차병들은 모두 안도했다. 한스는 비행장을 살펴본 다음 부관을 시켜서 오토를 불렀다. 오토가 어리둥절했다.
'무..무슨 일이지?'
오토는 오렐 비행장에 임시 사령부로 쓰이는 건물로 한스를 찾아갔다. 한스가 오토에게 고급 샴페인을 권하며 말했다.
"연료와 탄약 보급은 어떤가?"
오토는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보급 상태는 최악입니다. 현재 기갑 부대가 기동 가능한지 여부는 각 전차의 정비 상태가 아닌 연료 보급에 달려 있습니다. 또한 연료와 탄약 보급 뿐 아니라 식량 보급 사정도 좋지 않습니다."
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그렇군."
오토 녀석은 얼굴에도 시커먼 검뎅이 묻었고 예전보다 야위어 있었다. 한스도 전쟁을 경험해본 터라 최전선에서 전투를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는 알고 있었다.
한스는 오토에게 고급 통조림을 꺼내서 슬쩍 주었다.
"동료들이나 부하들에게 다 내주지는 말고 네 녀석이 많이 먹어라."
오토는 통조림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조만간 이 통조림은 하나도 빠짐없이 오토가 먹을 것 이었다. 최근 한스는 후방 쪽에서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헤롤트 특임대가 그 민간인 학살을 저지르고 있었고, 독일은 이에 대해 나름 수사를 하고 있었지만 헤롤트 특임대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한스가 생각했다.
'오토 이 녀석이야 그런 일은 절대 안하겠지만 장교라는 자리는 부대원들의 잘못에도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지...'
한스가 말했다.
"부대원들이 문화재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군기를 잡아야 한다. 그리고 파르티잔이 있으니 항상 무기를 소지해야 하고, 부대원들이 혼자서 이동하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또 여성 민간인과는 철저하기 부대원들을 분리해야 한다. 애초에 일이 터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예방해야 한다. 여성 민간인이 있는 곳에서는 군기를 아무리 빡세게 잡아도 부족하다. 알아들었나?"
"네!"
오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지만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서...설마 아는건 아니겠지?'
한스는 사실 스테판이 부상당했다는 소식에 걱정을 했고 야전 병원을 찾아가고 싶었지만 찾아갈 면목이 없었다. 한스는 자신이 아버지로서 자격 미달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한스는 고작 자신의 아들 뿐 아니라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였다. 이들도 모두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이고 남편이고 가족일 것 이었다. 한스는 이번 전쟁에서 꼭 승리하는 것이 결국 독일의 미래와 젊은 세대를 위한 것 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토는 건물 밖으로 나왔다. 혹시 피크 사건을 한스가 아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 속이 뒤틀릴 것 같았다.
'모..모를거다!!'
오토는 한스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진작 말해주지 않은거야!! 이건 다 아버지 잘못이다!!'
잠시 뒤, 오토의 소대는 소대원들이 휴식을 취할만한 건물을 찾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야외나 농가에서 숙영을 할 때 병사들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숙영할때는 변소를 만드는 것 또한 엄청난 골칫거리였다. 변소라고 해봤자 농가 가장자리에 있는 오두막 벽 옆에 높이 30센치 정도로 길게 벽돌을 쌓아두고 거기서 여러 명이 같이 앉아서 똥을 싸야 했다. 이런 지붕도 없는 화장실은 그야말로 엿 같았다.
세면장을 만드는 것도 고무관을 이용해서 하천의 물을 끌어오는 등 복잡한 작업이 필요했는데, 빠른 속도로 진격해야 하는 기갑 부대의 특성상 마을에서 이렇게 제대로 막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조만간 제대로 된 집에서 오랜만에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올랐다.
'드디어 실내에서 잔다!!'
그 때 상당히 멋드러진 작은 별장이 보였다. 오토가 그 별장의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하지만 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토와 소대원들은 신이 나서 그 별장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오토가 외쳤다.
"너무 더럽게 쓰지는 마라!!"
오토 소대의 핀란드 출신 포수 비르타넨은 대놓고 푹신한 소파에 드러누웠다. 여태까지 짚더미를 전차 옆에 쌓아두고 그걸 침대 삼아 자야했다. 병사들은 이 작고 예쁜 별장에 침대에 군화도 벗지 않고 세 명씩 드러누웠다. 오토가 외쳤다.
"군화는 벗어라!!"
병사들은 군화를 벗고는 별장의 커튼을 때어서 그걸 이불로 이용했다. 이 별장에는 책들도 아주 많고, 멋진 그림도 있었다. 어떤 녀석들은 휴지로 쓰려고 책장을 찢었다.
부욱!
오토는 별장에 러시아어로 적힌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이반 투르게네프의 생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누군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다면 현재 누군가 거주하는 별장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오토는 안심하고는 자신도 침대에 드러누워서 군화를 벗고 편히 쉬기 시작했다.
조만간 또 튤라로 가게 되면 힘겨운 전투를 치뤄야 할 것 이었다. 전차병들은 모처럼의 휴식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별장에는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멋진 그림도 있었다. 핀란드 출신의 비르타넨은 숙녀가 그려진 그림에 야시꾸리한 뭔가를 그려넣었다. 에밀이 외쳤다.
"야! 문화재 파괴하면 안된다니까!"
소련을 증오하는 비르타넨은 에밀의 말을 듣자 더 억하심정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림에 이것저것 야리꾸리한걸 그려넣고는 낄낄댔다. 그 때, 게오르크가 자신의 소대원들을 이끌고 별장에 들어갔다.
"우리도 여기서 쉬어도 되냐?"
별장이 상당히 컸기에 두 소대가 모두 여기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오토가 대답했다.
"들어오게!!"
마르틴 히틀러가 그 때 별장의 간판을 보았다.
"여...여긴 이반 투르게네프의 생가입니다!"
게오르크가 말했다.
"이반 투르게네프? 그게 누군데?"
오토가 말했다.
"나도 몰라! 거주하던 사람도 없으니 안심하고 들어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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