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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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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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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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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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화 암살자는 외로워

DUMMY

 김강대.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름. 그렇다고 이상하지도 않다. 어쩌면 나름 강해 보이기도 했다.


 강대. 강대. 김강대.


 이 이름이 싫어진 건 세상에 던전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 여파로 어마어마한 지진이 일어난 바로 그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던전에선 간헐적으로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나왔다. 따라서 각 나라는 모두 상시 전투 준비 태세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해 원인을 연구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마나.


 연구원들의 말에 따르면 마나는 새로 생겨난 물질이 아닌 이전에도 존재하던 게 어떠한 여파로 관측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에 따라 평소에는 마나에 무감각했던 우리 몸이 마나를 인식할 수 있게 되면서 소수의 경우 신체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근데 나는 시발 그딴 이유가 아니라 지진이 일어났을 때 떨어진 피부과 간판에 부딪혀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다.


 얼마나 허무한가. 나는 이제 병원 근처에 차원문이 생기면 빼도박도 못하고 먹이 신세다.


 심지어 그 어마어마했던 지진은 사실 규모가 좆만했던지라 정부 지원금도 좆만해서 재활 치료는 힘들었다. 하물며 재활 치료를 한다고 해도 보조기를 찬 채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건 똑같이 불가능할 것이다.


 저 먹이는 신기하게 달린다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난 차츰차츰 피폐해져 갔다. 앞에선 애써 밝은 척을 하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강대야. 강대야.’


 부모님이 나를 부를 때마다 김강대라는 이름은 한없이 약해진다. 그리고 내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약해지면 부모님은 자신들을 약해지게 만들었다.


 능력 없는 부모를 만난 죄라며 나와 같이 작아진다. 


 그럼 나는 소설로 달아난다. 작다 못해 없어져버린 나를 그곳에서 찾는다. 그런 이유로 처음부터 잘난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에는 악플을 달기도 했다.


 -감 다 뒤졌노.

 -찐따 망상글.


 이러고 살다 보면 소설 같은 세상은 바라지도 않으니 멸망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하지만 멸망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내 안의 인격일 뿐이란 걸 깨달았다.


 죽어야겠지, 라는 충동이 들었을 때.


 각성자가 등장했다.


 던전과 무시무시한 괴물, 시스템과 한계를 뛰어넘은 헌터, 그리고 압도적인 부와 명예. 무엇보다도 각성 시 기적적인 신체 회복!


 그리고 난 이것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죽지 않는다. 아니. 죽어도 각성하고 죽는다.


 빠르게 밖으로 나갔다. 정확히는 휠체어를 쌔빠지게 돌리며 인근 산책로로 갔다.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기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각성의 조건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딴 몸으로는 될 것도 안 된다.


 그저 일어서길 반복하고 넘어지며 무감각한 다리에 소리쳤다.


 나는 아득한 희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 죽을 노력으로 스스로를 살려냈다.


 의사는 다리에 신경이 돌아온 건 아마 마나의 영향이 컸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2년 후.


 [각성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시퍼런 배경에 무미건조한 글자 몇 개가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


 정말 울 뻔했다. 아니 사실은 존나 울었다. 얼마나 울었냐면 부모님이 말하길 직감적으로 내가 자살 실패하고 우는 줄 알았다고 그랬다.


 아무튼 우당탕 달려온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아빠···. 나 드디어···!”


 당연한 얘기겠지만 헌터는 돈도 잘 벌었다. 무리하지 않고 분수에 맞게, 등급에 맞게 살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 심지어 A급 이상부터는 그의 가족까지 거의 귀족 대우를 받는다.


 폐인처럼 지내며 부모님의 가슴을 후벼 판 시간을 보상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가 입을 막으며 눈을 크게 떴다.


 근데 영 기뻐 보이진 않는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강대야. 헌터가 될 거니?”

 “네? 당연하죠!”


 아빠의 알 수 없는 질문에 눈물 콧물 범벅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혹시 돈 때문에 그러는 거니? 돈 때문이라면 그러지 말렴. 우리 강대는 힘든 시기를 여러 번 이겨냈으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살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부터 각성자입니다.]


 “?”

“아.”



 ***



 물론 각성자가 된다고 무조건 던전에 들어가 괴물을 잡아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다면 일상생활에서 많은 불편함을 겪게 된다.


 헌터가 아닌 각성자는 뭔 일을 해도 법에 걸린다든지, 보험 같은 혜택이 적용 안 된다든지, 각성하고도 괴물을 잡지 않는 이에 대한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실상 반강제였다.


 그리고 이게 바로 엄마가 소리치는 이유다.


 “너어는 애가 어떻게 된 게 걱정하는 부모 마음은 생각을 안 하니! 그냥 네 맘대로 띡 누르면 끝이야? 어! 그리고 헌터는 아무나 한대니? 매일 매일 뉴스에 나오는 게 헌터 사망 소식이야. 정부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죽어 나가는 게 헌터들이라고!”


 엄마는 어느새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아빠가 안쓰럽게 바라봤다. 나의 안일한 행동이 나은 결과였다.


 물론 내 선택은 언제나 똑같겠지만 조금 더 얘기를 하고 부모님이 마음의 준비를 하길 기다릴 걸 그랬다.


 나는 점잖은 목소리로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이 순간을 애타게 기다려왔고 그 덕에 살아있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



 [직업: 암살자(D)]

 [빛이 있는 곳엔 그림자가 따라오는 법입니다. 어디든 생명이 존재한다면 당신도 존재합니다.]


 쓸데없이 멋지기나 한 설명 문구. 그래봤자 D등급이면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C등급만 나와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물론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이런 흔해빠진 직업은 소설 덕후로서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불평만 한다고 바뀌는 건 없다.


 판타지 같은 세상이라지만 현실은 늘 존재하고 그런 나에겐 각성 이후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죽어도 던전에서 죽는 것?


 부모님 억장 무너진다.


 그렇다면 어마어마한 부를 이루는 것?


 “D.”


 나의 새로운 목표는 각성자로서 누릴 건 다 누리고 오래오래 사는 것.


 그러기 위해선 길드에 들어가야 한다. 들어가서 단물만 빨아먹어야 한다. 암살자는 협동이 힘들다는 편견을 깨부수고 최소한 무시당하지 않을 중견 길드에 들어간다.


 그렇게 나는 2년 동안 암살자가 팀에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차근차근 실력을 쌓은 덕분에 아나르라는 길드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 인정. 다시는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는······.


 사실 내가 받은 인정은 말 잘 듣는 개새끼 자격이 아니었을까?


 업신여기는 눈빛들과 은근한 무시. 예전이랑 똑같다.


 안정적인 삶을 위해 애써 부정해온 것들이 내게 현실이라 소리친다.


 하경 씨의 보석 목걸이가 이제 빛을 잃은 듯했다. 효과가 사라지며 고통이 몰려온다.


 “우욱!”


 입안에서 목걸이를 꺼내자 피가 주욱 늘어났다.


 혀로 헐어버린 볼을 건드렸다. 너무나 부은 볼은 뒤섞인 침과 피를 뱉어낼 수조차 없어 그저 흐르게 놔두었다. 마찬가지로 부은 눈으로 눈물을 흘리는 것도 고통스럽다.


 하지만 지금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건 고통 따위가 아니었다.


 ‘아. 이거 가격 꽤 될 텐데.’


 금이 간 보석이 얼마일지를 고민하는 처지가 죽고 싶을 만큼 부끄럽다.


 자존심도 없이 금화 주머니와 경험치 북을 주섬주섬 챙겨온 나를. 어기적 어기적 기어가 바닥에 흘린 포션이나 핥아먹은 나를 정말 죽이고 싶다.


 이 꼴로 집에 들어갈 수 있을까?


 엄마가 많이 울겠지. 아빠도 울 거고.


 고통이 멎으면 모텔에 가기로 하고 가로등 밑에 털썩 앉았다. 쥐어 터진 모습을 놀리기라도 하듯 가로등 불빛이 탁하고 켜졌다.


 꺼내 본 경험치 북은 전형적인 옛날 책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페리 왕의 일기(EX)]

 [페리 왕의 인생이 담긴 일기입니다. 경우에 따라 100에서부터 최대 1,000의 경험치를 부여합니다.]

 [암살자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대 1,000의 경험치를 부여하는 책.


 그런데도 최창운이 이걸 내게 준 이유는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렇지.’


 최소 경험치 100이면 레벨 업도 하면서 일부 회복이 되니 굳이 모텔에 가지 않아도 됐다.


 경우에 따라서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모텔값이 굳었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경험치 북을 펼쳤다.


 경험치 북은 펼치자마자 촛불이 꺼지듯 연기가 피어오르며 사라졌다. 가로등도 지직 소리를 내며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얼굴도 욱신거렸다.


 피가 멎길 바라며 옷을 찢어 입안에 쑤셔 넣었다. 버려진 소주병을 주워 얼굴을 비추고 눈가의 피를 닦았다.


 가로등 불빛이 완전히 꺼졌을 땐 사무치게 외로워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


 어쩔 방법이 없던 나는 그저 경험치가 들어오길 기다렸다.


 레벨 업을 하고 나면 조금은 눈을 붙일 수 있겠지.


 조금만 자자. 아주 조금만···.


 ·

 ·

 ·


 [조건 달성! 암살자는 외로워.]

 [1,000의 경험치를 부여합니다.]

 [페리 왕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



 주구장창 비가 내린 날. 첫째 왕자는 식탁에 코를 박고 쓰러졌다.


 어째서 중립국의 왕자가 독살을 당한 것일까? 그것도 아무런 징조도 없이.


 왕국의 경비는 삼엄해졌고 백성들은 엄습해오는 불안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왕위 계승권에 눈이 먼 둘째 왕자의 소행이 아니었을까 의심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그런 의심도 금세 사그라들었다.


 첫째 왕자가 죽은 지 얼마 안 되어 둘째 왕자가 단단히 미쳐버렸고 결국 죽은 채로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왕은 죽은 둘째 왕자의 목구멍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내 조심스럽게 펼쳤다.


 내용은 이러했다.


 [아버지. 잠을 자고 싶습니다. 저 웃음소리를 그만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눕기만 하면 손이 올라오는 침대 밑을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저 바닥에 앉아 그것이 제 모습을 드러내길 기다리며 눈을 부릅뜨고 있습니다. 반드시 죽이고 말 겁니다. 아니면 제가 죽겠지요. 아버지. 잠이 옵니다. 잠이란 죽음과도 같지만 절대 경비병을 부르진 마십시오. 그것이 도망갑니다. 기괴한 자세로 저를 희롱하며 도망가는 모습을 다시는 볼 자신이 없습니다. 그럴 바에 죽겠어!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오지 마십시오. 이렇게 빕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어서 오지 않고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설마 저만 빼고 가족들끼리 파티를 즐기시는 겁니까? 아니라면 왜 제 앞에 광대가 있는 것입니까? 웃기지도 않는 이 광대를 당장 죽여버리는 건 어떻습니까? 아버지, 아버지, 정말 죽여버리고만 싶습니다. 그러니 이 편지를 보신다면 당장 어머니를 불러오십시오. 제가 봤습니다. 혹시 두려우십니까? 죽이지 않을 테니 당장 어머니를 데리고 와. 그리고 내가 봤다고 전해라. 난 봤다. 분명히 봤어, 아······ 난 봤ㅇ]


 왕은 통곡했다.


 마지막엔 거의 알아보기도 힘든 글씨에 단서라도 있을까 곱씹어 읽으며 몸을 떨었다.


 누가 감히 평화를 위해 힘쓰는 페리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이유가 있을까? 도저히, 도저히 모르겠다.


 그때 뒤에서 둘째 아들이 느꼈을 희롱의 소리가 들려왔다. 왕은 분노에 차 뒤를 돌아봤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던 이곳. 안타깝게도 제일 먼저 왕의 눈에 띈 건 셋째 왕자의 경비병이었다.


 “모두가 한패구나.”


 셋째 왕자는 겨우 열세 살이었지만 아마 그때부터다. 왕마저 미쳐버리고 피의 숙청이 시작된 건.


 셋째 형님이 허무하게 죽자 왕국의 관심은 넷째 왕자인 나에게로 쏠렸다.


 그 관심이란 것은 보통 나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단 셋째 왕자가 죽음으로써 이 미친 행위가 끝날지 같은 의문이었다.


 아, 그럴 리가 없지.


 몇 년 후 그것이 나에게도 왔다. 첫 만남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것은 아무런 징조도 없이 그저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인기척에 깬 것은 그 녀석의 고약한 악취미일 것이다.


 그것은 활짝 웃고 있었다. 비열하게 다리를 구부린 채 얇디얇은 팔을 등 뒤에 숨기며.


 이러한 모습을 언젠가 본 적이 있다. 이것은 흔히 광대라 불리는 것이었다.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하고 사람들을 웃기는 것으로 삶을 이어가는 광대.


 하지만 난 두려움을 느낀다. 왜지. 왜일까. 왜 우습지 않은 거야.


 감춘 손에 칼이라도 있을까 봐? 둘째 형님처럼 미쳐버린 내가 헛것을 보는 걸까 봐?


 아니. 아니다. 저것의 눈이 너무나 파랗기에 나는 두렵다. 달빛에 선명하게 드러난 눈알이 마치 내 것을 빼다 박은 것처럼 온전하다.


 둘째 형님이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유일하게 페리 가문만이 가질 수 있는 저 시퍼런 눈동자를 보고 차라리 미치는 게 나았겠지.


 어린 나의 바짓가랑이는 이미 축축해져 있었고 해가 뜰 때까지 그놈이 있던 허공을 응시했다. 언제 다가왔는지 침대 위엔 헤진 곰인형이 올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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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2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7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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