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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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최근연재일 :
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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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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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화 페르소나

DUMMY

 “괜찮으시겠습니까?”

 “알잖아. 너 빼고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그러니까 부탁 좀 할게.”


 무재는 자신을 믿는 유호 헌터에게 고마워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고민했다.


 “모두 돌아가도 됩니다!”


 무재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러자 은신해 있던 암살자 길드의 헌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아···.”


 특 대형몬스터 전용 밧줄을 들고 나무에서 내려온 거구가 4명,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가오는 힐러와 마법사가 각각 2명씩.


 “무재 님,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두꺼운 밧줄을 만지작거리는 남자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사실 유호 헌터님의 말이 맞습니다. 의미가 없죠. 다만 몇 명은 차원문 앞에서 대기해주시기 바랍니다. 5분이 지나도 저희가 오지 않는다면 던전 속 헌터 분들을 통제해주시고 최대한 많은 사람을 모아주시길 바랍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다른 헌터 분들의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탐탁치 않은 표정을 하며 돌아가자 무재는 누군가와 연락을 취했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 던전 입장 인원을 최소 2명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대부분이 유호 헌터의 사정을 알고 있는 만큼 임의로 규정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제발 그렇게 해달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유호 헌터는 이렇게 쉽게 허가가 내려오는 게 그동안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인 것 같아 주눅이 들었다.


 으직!


 “나무뿌리가 함정이군요.”

 “아, 그렇네.”


 무재가 서서히 다가오는 나무뿌리를 발견하고 발로 짓뭉갰다.


 “주변에 있는 모든 나무가 몬스터인 걸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


 유호 헌터가 마력을 온몸으로 느끼듯 주변을 둘러보며 숨을 깊게 쉬었다.


 아까보다 차분해진 게 예전처럼 믿음직스러운 모습이었다.


 나무뿌리가 유호 헌터의 트라우마를 자극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 정도 숫자는 되지 못했다.


 오히려 뿌리를 하나하나 베면서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무재는 이성적으로 적절히 절제되고 있는 유호 헌터의 공격을 볼 때마다 속이 통쾌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엔 원망에 찌들어버린 공격만을 막으며 함께 슬퍼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무재는 부디 유호 헌터가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바랐다.


 그렇다면 암살자 길드의 명성 또한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다.


 “유호 헌터님.”

 “응.”

 “이런 적은 정말 처음이네요.”


 무재는 가슴이 벅차다 못해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저도 감히 느낌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 대화를 나눈다는 건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걱정 마, 무재야. 금방 구해줄게.”


 유호 헌터는 무재가 안심하길 바라며 싱긋 웃었다.


 “제 이름까지 기억하시네요.”

 “그럼. 물론이지.”

 “커헉! 그럼 칼도 좀 내려놔 주시죠···.”

 “금방 구해줄게···.”


 유호 헌터가 붉게 물든 눈으로 투명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앞에 있는 사람이 겁이라도 먹을까 여전히 웃고 있는 표정이었다.



 ***



 멍청하게 기뻐하느라 그저 죽어가는 나무로 착각하고 지나친 것이 화근이었다.


 숲의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몬스터를 만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디론가 황급히 도망가는 지네 떼와 누군가 전투 중에 내는 커다란 굉음에 겁을 먹은 몬스터를 자주 만났다.


 그럴 때마다 유호 헌터님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듯 보였다.


 눈 깜짝할 새 적의 급소를 노리고 무력해진 몬스터로 우리가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자상함.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곳이 무협이었다면 주군이 돌아왔다며 감개가 무량해 손발이 주륵주륵 흐르고 눈물이 덜덜 떨렸을 것이다.


 경계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럴지도 몰랐는데.


 무재가 썩은 나무 앞을 지나갈 때였다.


 촤아악!


 갑자기 하늘에서 거칠지만 매우 유연하게 움직이는 나뭇가지가 내려와 무재의 팔과 다리를 붙잡았다.


 그리고 두꺼운 나무 몸통은 세로로 갈라지더니 흉악한 이빨을 드러냈다.


 무재는 팔다리가 묶인 채 나무 괴물의 입속으로 조금씩 끌려갔다.


 속수무책으로 먹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적어도 유호 헌터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무재가 힘을 주어 팔을 휘두른 뒤 나머지 나뭇가지들을 떼어내려고 했을 때, 유호 헌터가 무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차!’


 “괘, 괜찮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유호 헌터님! 진정하세요 제발!”


 당황한 무재는 차라리 소리를 지르지 말 걸 후회했다.


 “하, 하아···. 흐으으···!”

 “천천히 숨 쉬는 겁니다. 유호 님. 천천히, 천천히···!”


 유호 헌터가 입으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 불안전한 모습에 무재도 덩달아 천천히 호흡하며 조심스럽게 나뭇가지들을 떼어냈다.


 “좋습니다···. 흥분하지 말고. 고개를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응.”


 유호 헌터가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눈은 이미 붉게 물들어 있는 상태였다.


 [광란 상태가 됩니다.]


 ‘아, 이런.’


 콰앙!


 유호 헌터가 흉악하게 입 벌린 나무 괴물 쪽으로 무재를 밀치고 긴 검을 꺼냈다.


 “걱정 마, 무재야. 금방 구해줄게.”


 유호 헌터가 무재를 붙잡은 채 검을 가로로 휘둘렀다.


 콰앙-!


 거대한 나무가 베어지며 폭발과도 같은 소리를 내었다.


 [패시브: 절감(A)]

 [무방비 상태에서 받은 공격의 피해를 절반으로 줄여줍니다. 줄어든 절반의 피해는 자동으로 발산됩니다.]


 “크아악···!”


 무재가 배를 움켜쥐었다. 아무리 피해가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해도 말 그대로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아플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저 나무 괴물처럼 두 동강 나지 않은 게 어딘가.


 유호 헌터는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무재의 멱살을 잡고 끌어올렸다.


 무재는 마침내 자신의 멱살을 쥐고 있는 손을 붙잡았다.


 이전까진 대화가 통했지만 이제는 정신을 잃은 유호 헌터가 한 가지 말만 중얼거렸기 때문이었다.


 무재가 정장이 터질 것처럼 힘을 주면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몇 분만 더 버티면 지원이 올 거다.’


 시계를 확인할 틈도 없이 감각에 의존하며 유호 헌터와 힘 싸움을 계속했다.


 푸욱


 “으윽!”


 양손을 붙잡힌 유호 헌터가 검을 떨구고 발로 차 무재의 허벅지에 깊게 찔러넣었다.


 그리고 무재가 주춤하는 사이 무릎으로 턱을 가격하고 검을 뽑아 뒤로 물러났다.


 분명 좋은 대처였다.


 전이었다면 S급의 신체 능력으로 무식하게 싸웠을 텐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행동에 논리가 존재한다.


 이러다 스킬까지 사용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유호 님···.”


 순간 겁을 먹은 무재가 애써 유호의 이름을 불렀다.


 턱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유호 헌터가 태연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느낌이 안 좋아.’


 유호는 뒤로 물러난 그 자리에서 가만히 무재를 응시하고 있었다.


 ‘날 어떻게 죽일지 생각하는 건가?’


 나무가 무성한 이곳은 암살자에게 너무나 좋은 조건이다.


 게다가 사사건건 등 뒤를 노리는 나무뿌리에 자잘한 함정들, 작고 큰 모든 변수가 암살자의 편이다.


 하지만 전쟁터에선 총알을 피하는 것이 아닌 총알이 비껴가길 바라야 하는 것!


 ···물론 상대가 몬스터일 때나 가능한 소리였다.


 무재는 유호가 스킬을 사용해 진심으로 자신을 죽이려 한다면 자기는 진심으로 서운해할 준비가 되었다.


 S급 암살자 계열 헌터를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그것도 일대 일로.


 무재가 절망하며 천천히 일어섰다.


 어찌할 방법이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하던 대로. 배우고 또 배운 대로 유호에게 달려들었다.


 유호는 무재가 자신의 바로 앞까지 왔을 때 순식간에 단검으로 무재의 옆구리를 노렸다.


 그리고 이것이 무재가 빈틈이 많고 멍청해 보이는 돌진을 한 이유였다.


 패시브 절감.


 무재가 눈치채지 못한 기습 공격은 무방비 상태로 받아들여지고 피해는 반으로 줄어든다.


 상처 또한 남지 않는다.


 발산된 피해로 옆에 있던 바위에 작살난 건 섬뜩했지만 무재는 금방 다시 유호에게 집중했다.


 공격이 통하지 않자 위로 도망가려는 유호의 발목을 잡고 바닥에 꽂았다.


 쾅!


 다시 옆에 있는 나무로 휘둘렀다.


 쾅!


 유호와 부딪힌 나무가 뿌리를 흔들며 발광했다.


 “쿠오! 쿠오오!”

 “지랄맞네 진짜···!”


 무재는 눈을 감고 쓰러져 있는 유호를 지켜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젠 연기도 하시네.’


 이참에 숨을 돌리려는 무재가 유호를 경계하는 척 자세를 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근처로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무재는 순식간에 나무에 오른 뒤 인벤토리에서 포션을 꺼내 마셨다.


 동시에 유호도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을 쳐다봤다.


 머쓱해 보이는 건 기분 탓인가?


 스르륵


 [아이템: 무지의 베일(B)]

 [마나의 흐름이 적을수록 은신 효과가 강해집니다.]


 무재는 자리에 털썩 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그러곤 유호가 알려준 대로 낮게 호흡하며 마나를 진정시켰다.


 무지의 베일은 마나가 아예 없는 일반인이 사용하면 S급 못지않은 은신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때문에 사용자가 마나를 얼마나 잘 숨기느냐에 따라 등급이 천차만별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지금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은 무재는 아이템의 효과를 거의 최대로 뽑아내고 있다.


 땀은 차게 식은지 오래고 주변을 지나다니는 벌레와 새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막혀 당황하곤 했다.


 심지어 때로는 명상에 깊이 빠지면 생각이 멈추곤 했었는데······.


 부스럭


 부스럭부스럭


 ‘이제 막 5분이 넘었을 텐데?’


 황급히 베일을 벗어 던진 무재가 소리 나는 쪽을 확인했다.


 다가오는 남자 한 명과 뒤에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여자 한 명.


 팡-


 무재가 있는 힘을 다해 유호를 막으려 뛰었다.


 “도망치세요!!”



 ***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나무를 쓰러트린 게 누군지.


 몬스터라면 강하다는 증거고 그만큼 더 좋은 보상을 얻을 수 있단 소리였다.


 물론 헌터들끼리의 싸움이라 해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생각은 더욱 없었다.


 뭐가 되었든 최대 B급.


 여차하면 광대가 되어서 싸우면 그만이다.


 하경 씨에겐 잘 둘러대야 하겠지만.


 쓰러진 나무를 나침반 삼아 근원지로 다가갔다.


 혹시 모를 위험 때문에 하경 씨에겐 거리를 유지하라고 일러두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전투 소리가 줄어든다.


 잠시 후 싸움의 여파로 난장판이 된 곳에 도착했고 나는 자리에 우뚝 섰다.


 나무를 쓰러트린 것처럼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매력적인 흰색 머리, 차가운 무표정에 슬림한 몸.


 “유호 헌터···?”


 그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내뱉었다. 몰라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의 우상인걸.


 나는 각성하고 암살자에 대한 모든 것을 찾아봤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유호 헌터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내 1위를 다투는 암살자 길드를 홀로 세운 대단한 사람. 그리고 1년 전 아내를 잃은 사람.


 그런데 뭐라고? 도망치라고?


 키가 2미터는 돼 보이는 남자가 뒤에서 유호 헌터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유호 헌터의 경호원인 무재를 알아봤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소리칠 뻔 했다.


 상황을 보니 던전 출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사실인 것 같았다.


 “도망치라고 이 새끼야아앍···!”


 텁


 유호 헌터가 팔꿈치로 무재의 갈비뼈를 찌르고 숨을 고르는 사이 두 손으로 목을 졸랐다.


 “끄르륵···.”


 [대상은 광란 상태입니다.]


 나는 시스템 창을 보자마자 인벤토리에서 독주머니와 독니를 꺼냈다.


 “하경 씨! 신호하면 힐 해줘요! 다가오진 말고요!”

 “네, 네? 일단 알겠어요···!”


 무재 씨가 한 말처럼 도망치는 게 맞겠지.


 생각과 달리 내 팔은 유호 헌터의 얼굴을 향해 독주머니를 던지고 바로 독니를 던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독니가 주머니를 가볍게 찢었고 들어있던 독이 흩날렸다. 유호 헌터가 독 따위는 문제없단 듯이 눈을 감은 채 날아온 독니를 한 손으로 잡아냈다.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퍼진 독안개 사이로 남은 독니를 하나 더 던지자 유호 헌터가 남은 손으로 독니를 잡았다.


 털썩


 마침내 두 손을 다 놓았고 기절한 무재가 쓰러졌다.


 이젠 정말. 정말로 도망쳐야 하는데 나는 왜 달리고 있을까.


 “하경 씨 지금이요!”

 “루멘토!”


 정밀하게 모인 일직선의 빛이 유호 헌터의 얼굴에 닿았다. 회복되는 감각에에 눈을 뜬 유호 헌터가 사라지지 않은 독안개에 주춤하는 사이 그의 위로 뛰어올랐다.


 단검으로 공격하는 척을 하면 유호 헌터는 막거나 역으로 공격해 올 것이다.


 분명 그래야 하는데, 시발 지금 어디 보는 거지?


 유호 헌터의 붉게 충혈된 눈이 어느 한 곳에 고정돼 있다.


 일직선의 빛. 그 근원지. 하경 씨가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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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두 가지 조건 24.08.30 11 0 13쪽
13 13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4쪽
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2 0 12쪽
»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7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3 3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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