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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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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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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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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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페르소나

DUMMY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분장이 해제됩니다.]

 [확인하지 않은 보상과 전리품, 끝마친 공연이 있습니다.]


 나는 갑자기 낮아진 시선에 적응하지 못하고 털썩 쓰러졌다.


 “우웁, 우웨엑!”


 위장이 뒤집어질 것 같이 힘겨운 헛구역질에 눈물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불타는 무대, 쓰러진 귀족들, 피와 비명. 모두 없다.


 아침이 된 현실 세상, 나의 집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뭘 하고 있었지.


 사람 죽인 기억만 손끝에서 선명하게 피어나 다른 기억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눈물을 닦고 찝찝한 손을 씻으러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손을 받치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휴···.”


 정상적인 나의 얼굴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고 다른 감각들이 천천히 돌아오는 걸 느꼈다.


 지저분한 옷차림과 땀으로 흠뻑 젖은 몸, 한재석에게 두들겨 맞다가 옷에 밴 피 냄새. 당장 어제의 일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옷은 전부 쓰레기통에 버린 뒤 뜨거운 물을 틀어 온몸을 적셨다.


 쏴아아


 좁은 화장실은 날 벌 받는 아이처럼 서 있게 했다. 그러면 난 고개를 숙여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듯 조금 전의 일을 회상했다. 생각하기 싫은 기억마저.


 첫 살인은 누구였더라. 마샤 부인? 근데 그걸 살인이라 불러야 할까?


 그들이 마샤 부인이라 부르던 여인의 노예는 나에게 던져진 채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괴물 앞 재물로 바쳐진 기분은 도대체. 이성이 끊긴 건 이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노예가 내 앞에서 생을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죽음에 태연한 노예를 무시하고 마샤 부인을 뒤쫓았다.


 ‘뭐해! 저 미친놈 좀 막아 봐!’


 경호원이 나의 앞길을 막았다. 소용은 없었다.


 나는 차근차근 걸어갔고 그녀는 겁에 질려 주저앉았다.


 ‘뭐, 뭐를 원해? 돈? 다 줄게! 하지만 나를 건드리면 너도 무사하지 못할 거야!’


 그녀는 돈과 권력을 내세웠다. 역시 소용없었다.


 ‘아···! 용서해줘, 오지 마! 잘못했어. 왜 그러는 건데. 이렇게 빌게!’


 사람을 수단으로 다루던 그녀가 드디어 본인을 수단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얀! 날 도와주면 노예에서 해방해주마! 나를 도와다오! 내가 널 얼마나 예뻐했는지 알지? 아가··· 널 정말 사랑했단다. 진심이야. 아까는 무서워서 그랬단다. 얀! 이리 오라고! 죽여버릴 테야!’


 노예는 꿈쩍하지 않았다. 도망가지도 않았다. 그저 나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진정 자신을 해방해 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아, 이게 아니지.


 착!


 나는 머리를 훌훌 털고 두 뺨을 때렸다.


 중요한 건 머리에 랜턴을 맞고 쓰러진 아이. 달려오는 남자를 찌르고 날 부르던 그 아이.


 아이라고 불러야 할까 광대라고 불러야 할까?


 뭐가 됐든 마지막에 왜 날 부른 거지?


 나에게 죄책감을 들게 한 그 어린 광대에게 괜히 미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원인인 광대 가면도.


 여전히 찝찝한 기분으로 화장실에서 나와 옷을 입었다. 인벤토리에 축축한 손을 넣어 가면을 꺼냈다. 왜인지 이질감이 들었다.


 치직-


 평범한 물건을 들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각. 가면의 눈과 입에서 흘러나온 푸른 연기가 어느새 문자 형태를 이루었다.


 역시나.


 실수로 저주 아이템을 건드렸을 때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 크게 고생한 덕분에 문자가 완성되기까지 나의 심장이 요동쳤다.


 무슨 저주일까?


 사람을 살인귀로 만드는 저주? 감정을 거세하는 저주?


 [아이템: 페르소나(귀속)]

 [당신의 또 다른 인격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탁- 으직!


 나는 가면을 바닥에 던진 뒤 발로 밟았다. 시원하게 반으로 갈라진 가면은 곧 푸른 연기가 되더니 다시 인벤토리로 돌아왔다.


 저주가 아닌 귀속 아이템인 건 확실했지만 기분이 여전히 더러웠다. 아이템의 설명 문구 때문이었다.


 말 같지도 않은 나의 인격이란 것이 부숴도 고스란히 되돌아오니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가면을 쓴 난 다른 사람이 된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사람을 죽일 리 없으니까, 그건 정당한 처사였으니까.


 [보상과 전리품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아니라는 듯 시스템이 발광한다. 네가 한 짓 맞으니까 빨리 받으라고 재촉하는 소매넣기범 같다.


 또 기분 잡치게 하는 걸 주진 않겠지.


 계속 난리 피우는 시스템을 평생 무시하며 살 순 없기에 확인해 보기로 했다.


 “보상 확인.”


 뿌우우우우! 치잉- 치잉-


 [미션 보상]

 [스킬: 단독 공연]

 [공포에 걸린 대상의 정신세계로 들어갑니다. 대상과 본인의 정신력에 따라 발휘할 수 있는 힘이 달라집니다.]

 [‘정신력’ 스탯이 추가됩니다.]


 [스킬: 소품 상자]

 [마나를 소모해 원하는 인형을 마음껏 만드십시오.]


 촌스러운 나팔 소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악기가 귀를 자극하며 단독 공연이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그리고 추가된 스탯. 순간 혹했지만 노예를 팔던 서커스장이 생각나 금세 인상을 찌푸리게 됐다.


 [추가 전리품]

 [아이템: 오래된 랜턴]

 [900년 동안 마녀의 탑을 지킨 마력 랜턴입니다. 어둠 속에서 침입자를 물리치며 모든 인간의 두려움을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랜턴이 말합니다···.]


 화아아악!


 아이템의 설명이 끝나자 시퍼런 불이 오른손을 감싸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


 시각적으론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실제론 뜨겁지 않아서 비명을 지르다 말았다. 오묘한 기분에 손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손을 감싸고 있던 불은 서서히 끝으로 모이더니 순식간에 푸른 불을 담고 있는 랜턴이 되었다. 모습만 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듯 상당히 무겁기도 했다.


 “끼익··· 끼익···.”


 랜턴은 외관상으론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녹이 슬었는지 손잡이가 흔들릴 때마다 쇳소리가 났다. 책상에 내려놓자 푸른 불꽃이 일렁였다.


 마력 랜턴이라 파란색인 걸까?


 구석구석 살펴봤지만 따뜻하지 않다는 것 외에 특이한 점은 없었다.


 어떻게 침입자를 물리치고 두려움을 깨달았다는 건지. 시스템이 일반 장신구에 허풍만 늘어놓는 게 아닌지 의심됐다.


 틱


 방의 불을 끄니 파란 불빛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장신구로서의 본분은 다하는 걸 확인하고 다시 불을 켰다.


 “화륵, 화르르륵.”


 [끝마친 공연: 245번]

 [대상이 공포에 걸리면 공연을 끝마칩니다. 끝마친 공연으로 스킬과 패시브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대상마다 한 번만 끝마칠 수 있습니다.]


 불꽃이 더욱 세게 일렁였지만 눈앞의 시스템 창이 더 눈길을 끌었다.


 광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레벨과 등급이 사라지는 대신 공연을 끝마친다는 문구가 얼핏 기억이 났다. 중요한 문제였지만 이상한 곳으로 가게 되는 바람에 까먹고 있었다.


 “상태창.”


 [이름: 김강대]

 [레벨: 없음]

 [직업: 광대]

 [패시브: 광대 걸음]

 [스킬: 단독 공연, 소품 상자]

 [정신력: 10]

 [끝마친 공연: 245번]


 “어, 시발.”


 무언가 많이 초라해진 상태창. 레벨과 등급이 사라지면서 정신력을 제외한 모든 스탯과 스킬들이 사라져버렸다.


 그 감히 상상도 못할 막대한 손해 앞에서 나의 현실감은 미친 듯이 되살아났다.


 2년 동안 중견 길드에 들어가기 위해 갈고닦고 정도 붙인 쓰레기 암살자 스킬들. 그리고 아나르에서 똥꼬 빠지게 던전 돌아서 올린 내 레벨과 스탯. 도합 4년.


 그런데 뭐? 광대 걸음? 단독 공연? 소품 상자? 


 아아, 이건 무대 관리자란 것이다. 무대를 관리하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럴 거면 경험치북에서 경험치는 왜 줬는데.


 “끼익··· 끼익···.”


 다리에 힘이 풀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페리 왕의 침소에서도 칼에 맞고 쓰러졌지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진 않았다.


 주마등이 스치듯 그간의 노고가 머릿속을 쓸었다.


 뒷산에서 나무 타다가 신고 먹은 기억. 헬스장에서 런닝머신 고장 내고 벤 당한 기억. 하급 던전에서 일부러 어렵게 싸우고 뒤질 뻔한 기억. 동선에 방해된다고 급조한 팀에서 퇴출당한 기억. 심지어 그게 소문이 나서 질질 짠 기억까지.


 “화르륵.”


 마음이 울컥하며 불타오르듯 뜨거워졌다. 광대 걸음과 단독 공연은 그렇다 쳐도 소품 상자는 정말 죽여버리고 싶었다.


 인형 뽑기 가게라도 차리라는 건가? 등급이 높으면 위안이라도 될 텐데 등급마저 없다.


 엄마가 보고 싶다. 섣불리 각성했을 때의 잔소리가 그립다.


 엄마의 잔소리가···.


 “강화를 해 등신아.”

 “?”

 “아까부터 소리 냈는데 이 악물고 안 보네. 무시하냐?”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 위를 바라봤다.


 푸른색이었던 랜턴 속 불꽃이 화가 난 듯 벌게져 있었다.



 ***



 “그러니까 낡아서 소리 난 게 아니라 입으로 낸 거라고요?”

 “그래, 이눔시키야.”

 “···그렇게 해명하고 싶으셨으면 진작에 말씀하시지 참, 왜 사람을 놀래켜요.”

 “강대야. 아이템도 순정이란 게 있다. 명색이 마녀의 탑에 있는 아이템인데 그냥 등장하고 싶겠니?”

 “아이템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요.”

 “원래 내가! 어? 너 놀래키면서 나타나야 했는데! 넌 무서워하는 것도 없고! 어!”

 “제가 왜 무서워하는 게 없어요? 엄청 많은데.”

 “푸훕.”


 실소가 터진 것처럼 랜턴 속 불꽃이 휘청거렸다.


 “그럼 너 지금 무서운 게 뭔지 말해봐. 없을걸?”

 “음, 벌레?”

 “정확히 뭐가 무서운데.”

 “닿는 것도 싫고 보는 것도 싫어요.”

 “그건 혐오지.”

 “아.”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머리 짜내지 마. 내 눈은 못 속여.”

 “몬스터, 엄청 강한 몬스터는 무서울 수밖에 없죠?”

 “흠. 넌 아닌데···.”

 “우기지 마요 진짜.”

 “아니 진짜로.”


 불꽃이 작게 움츠러들었다. 마치 방금 전의 나처럼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자연스레 페리 왕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 무서웠는데. 하경 씨가 진작에 달려와서 다행이지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렇게 무덤덤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놀라울 지경이다.


 “그치!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니지?”

 “어? 불이 눈도 뜰 수 있어요?”

 “그럼 뭐로 보는데··· 가 아니라, 지금 그게 중요해?”

 “중요하죠. 불이 눈을 떴는데.”

 “······.”

 “근데 제 생각은 어떻게 읽었어요?”

 “내 불꽃은 너의 마력으로 존재하니까···”


 [이렇게 말을 걸 수 있는 거지.]


 그의 목소리가 머리에 직접 울렸다.


 “오오. 그럼 다른 능력은 뭐예요? 900년 동안 탑을 지켰다면서요.”


 나는 드디어 본론을 꺼냈다.


 “후후. 나의 능력이 궁금한가 보구나. 위에 있는 뚜껑 좀 열어주겠니?”


 좀 멋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말대로 랜턴 위 뚜껑을 열어주었다.


 화륵, 화아아아악!


 그러자 나의 마나가 급격하게 소모되기 시작했고 불꽃은 솟구쳐오르더니 여인의 상반신 형태를 띠었다.


 [내 이름은 캔딜. 모든 인간의 두려움을 알 수 있다.]


 캔딜이 화염을 휘두르며 기세등등하게 말했다.


 “그리고요?”


 [······뭐가.]


 “그건 설명에 나와 있잖아요. 설마 끝은 아니죠?”


 [끝인데?]


 “······.”


 나는 분무기를 집어들었다.


 [응? 뭐하려고?]


 칙! 칙!


 [아! 아파! 아파앗!]


 내 마나가 더욱 빨리 닳았다. 그러나 손을 멈출 수가 없다.


 불꽃이 랜턴 속으로 기어들어 가고 나서 나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 인생은 쓰레기야···.”

 “무슨 소리! 강화가 남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싱크대에 처박기 전에 닥쳐요.”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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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2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3쪽
» 6화 페르소나 24.08.30 17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3 3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4쪽
2 2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3쪽
1 1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3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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