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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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최근연재일 :
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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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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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2화 은인 잡아라

DUMMY

 “이거 맛있네.”

 “그렇네.”


 달콤한 꼬리뱀의 꼬리였다.


 꼬리 안에 들어있는 꿀 같은 걸 손에 찍어 캔딜에게 줬다.


 캔딜이 입으로 덥석 물더니 오물오물거렸다.


 “으으음.”


 밝아지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더 줘.”

 “여기.”


 캔딜이 남은 걸 입에 모두 넣자 마나가 회복됐다.


 “이번엔 어디로 갈래.”

 “이거 더 없어?”

 “응.”


 캔딜은 아쉬운 듯 텅 빈 꼬리를 바라보다가 휙 던져버렸다.


 “여기에 있어. 잘 거야.”

 “그래.”


 나는 캔딜이 던진 꼬리를 줍고 인벤토리에 넣었다.


 캔딜은 랜턴으로 들어가지 않고 쭉 뻗은 내 다리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칙-


 아직은 차가운 맥주를 땄다.


 축축하게 맺힌 이슬이 캔딜에게 떨어질까 조심하며 원샷했다.


 “크하.”


 다 마신 캔을 찌그러트리고 강을 바라봤다.


 눈이 침침한 건지 어두워서 그런 건지 참 흐리게 보였다.


 “후아······.”


 술기운이 도니 가슴이 따뜻해진다. 피식, 하고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참으로 웃긴 인생이다.


 광대로 살다 죽고 다시 태어나 광대가 되는 코미디 같은 인생.


 조커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 한껏 비웃고는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이 있다며 명함을 휙 던질 것이다.


 나는 페르소나를 꺼내 저 멀리 던졌다.


 풍덩-


 물에 빠지는 소리와 함께 달빛을 반사하는 물결이 잔잔하게 퍼졌다.


 “···내가 전생에 광대라더라?”


 마지막으로 페르소나를 썼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온 기억이 말해줬다.


 그런 혼잣말을 캔딜이 들을까 걱정하면서도 삼켜낼 수가 없었다.


 시선을 내려 무릎에 누운 캔딜을 봤다.


 작은 몸을 두 손으로 조심히 들어 올렸다. 부드럽게 일렁였다.


 스르륵-


 손을 랜턴 쪽으로 기울이자 캔딜은 자연스럽게 들어가 평범한 불꽃이 되었다.


 나는 경사진 곳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페르소나를 던진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귀속 아이템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과연 기쁜 일인가.


 가면이 떨어진 곳은 훨씬 더 먼 곳이었지만 거기까지 들어가진 않고 근처에서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 가라앉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속이 보이지 않는 수면을 응시했다.


 반사된 얼굴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했다.


 아, 그렇구나. 나는 이제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는 거구나. 내가 되면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는 거구나.


 나는 광대가 되었다.


 그날 캔딜 혼자서 신나게 떠들어댄 이야기도 이젠 이해할 수가 있다.


 탑에서 너의 말동무가 되어 준 것과 용사 놈들을 신나게 괴롭힌 것까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던 이야기들이 갑작스레 옛날 기억이 되어버렸다.


 불쌍해.


 너무 너무 불쌍해.


 전생의 내가 광대가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참을 수 없이 불쌍해.


 나는 그 인간들을 증오해.


 “우우욱···!”


 방금 마신 맥주를 다 토해냈다. 아깝게.


 괜히 더 뜨거워진 속을 부여잡고 랜턴 옆으로 가 누웠다.


 오랜 친구를 꼭 껴안았다. 낡은 랜턴은 전혀 따뜻하지 않았다.


 슬며시 눈을 감았다. 쓴맛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대로 자면 감기에 걸릴 것 같은데.



 ***



 그래.


 맞아.


 모두가 날 가짜 페리라고 불렀어.


 진짜 페리에 대한 불만을 나에게 쏟아내기도 했지.


 왜냐면 난 버려졌으니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들의 눈에 띄면 안 됐어. 차라리 노예로 팔려나가는 게 좋았을지도 몰라.


 내 손만큼 작은 단검에 찔린 남자가 발밑에 쓰러져 있어.


 그 사실이 정말 아찔했지.


 멍하니 서 있다 아침이라는 걸 알았을 때는 한 병사가 기다란 창으로 입구의 천을 걷어냈을 때야.


 조금 멍청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마치 구원과도 같았어. 하지만 곧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으니까 걱정하지 마.


 병사는 질색하는 표정으로 코를 막더니 어디론가 소리쳤어.


 사람을 부르는 거겠지.


 역시 나의 등신 같은 예상이 맞았어.


 여러 사람이 서커스장에 들어오려는 시도를 했어. 왜 시도라는 단어를 썼냐면 다들 우웩 우웩 토를 하기 바빴거든.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다가 사람 하나가 들어왔어.


 그 사람은 분명 경비대장이었을 거야.


 잔뜩 화가 났는지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할 때마다 콧수염도 함께 들썩였어.


 그러다가 나랑 눈이 마주쳤지.


 경비대장은 시체 사이 빈틈을 밟으며 내게 걸어왔어.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라.


 거의 가까워졌을 땐 아예 대놓고 시체를 밟으면서 무대 위로 뛰어올랐어.


 그리고 둔탁한 소음이 서커스장을 메웠어.


 뻐억! 이었나, 푸학! 이었나? 아무튼 난 뺨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렸어.


 솔직히 많이 무서웠거든.


 그가 나를 밟으면 나는 나뭇가지처럼 부러져야 했고 두꺼운 손으로 머리통을 쥐면 터지기라도 할까 봐 용서를 구해야 했으니까.


 거의 주기도문 외우듯 중얼거렸지.


 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살려주세요제발.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내 두 눈을 파버리겠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작은 단검 있지? 그걸로 말이야.


 나는 소리쳤어. 아주 호기롭게.


 잘못했다고 씨발 새끼야!


 주먹도 내질렀어. 마음 같아선 박치기로 면상을 뭉개고 싶었지만 키가 아쉬웠지.


 정말 아쉬웠어.


 정말이야.


 정말로.


 그래.


 ······사실 거짓말이야. 그러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마.


 나는 그냥······ 발버둥 쳤어.


 버둥버둥


 이 짓이 끝나길 두 눈 빠지도록 기다렸지.


 푸하하.


 미안, 안 웃겼어?


 그래도 웃어. 이제부터 정말 재밌어지니까.


 병사가 흉측하다며 더러운 천으로 눈을 가리고 날 어딘가로 끌고 갔어.


 난 재판을 받아야 했어. 당연한 일이었지.


 그들은 모두 변태에 속했지만 나라의 꼭대기에도 속한다는 이유로 죽었으면 안 됐던 거야.


 ‘이 아이는 악마에게 유혹당했습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어린아이 혼자 그 모든 짓을 저지를 순 없었어.


 명분이 필요했던 거야. ‘초월적인’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거야!


 가령 악마라든지, 악마라든지, 악마라든지······.


 상상력이 좋진 않았나 봐.


 물론 어린아이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얼마 없었어.


 통나무에 밧줄로 돌돌 묶여서 떠올릴 수 있는 게 신 말고 더 있겠어?


 나는 살려달라고 말했어······.


 겁이 났어···!


 고통스러웠어! 패인 눈은 욱신거리지 팔다리는 부러진 채 너덜너덜거리지!


 산송장이나 다름없었어!


 죽음이 너무 가까워. 코앞에 있었다고! 씨발.


 어떤 개만도 못한 새끼가 던진 돌에 앞니가 부러졌어. 이래선 목숨 구걸도 제대로 못 하잖아 빌어먹을!


 ······.


 내 입에선 피가 줄줄 흐르고 군중들은 침을 질질 흘렸어.


 그리고 곧 더럽고 오만한 외침들이 나의 단말마를 대신하기 시작했어.


 작은 악마.


 불태워라.


 작은 악마.


 불태워라.


 음······.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야. 하지만 정확히 반만 맞았어.


 그들을 죽인 건 나였어.


 경비대장은 그 광대 놈을 상상하며 내 눈을 팠겠지만 결국 그것도 나였어. 분풀이가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지.


 악마에게 유혹당했다?


 유혹당한 것도 내가 아니라 악마였어.


 그녀는 나에게 달콤한 입맞춤과 눈을 선물했어. 가려진 천 뒤로 눈이 불쑥 튀어나오는 게 느껴졌어.


 매서운 돌팔매질에 몸을 속박하던 밧줄이 스르륵 풀리고 난 떨어졌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줄 알았어.


 고요함에 손을 벌벌 떨면서도 피 칠갑 된 천을 풀고 주변을 둘러봤어.


 그녀는 선물을 하나 더 남기고 간 거야.


 눈깔을 뒤집고 악마의 단죄를 외치던 군중들이 영혼을 잃고 쓰러져 있었어.


 그리고 그 사이로 사랑스러운 가족들이 보였어.


 아버지는 나에게 손가락질하며 당장 저것을 죽이라고 소리치고 있었고 어머니는 첫째 형님의 눈을 가리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나는 ‘가짜’가 아니었던 거야! 그들을 보자마자 알았어.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닮을 수가 없지.


 나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싶었지만 화살이 날아왔어. 칼이 날아왔어. 횃불이 날아왔어.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


 지금이라도 따뜻하게 안아주면 용서할 생각이었어. 근데 머리 위로 무언가 날아온다는 게 너무 무서워서 그냥 도망쳤어.


 울며불며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어.


 악마가 귀에 대고 속삭였어.


 작은 악마.


 복수해라.



 ***



 서린과 운보는 강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빗방울이 경사진 면에 기대어 자고 있는 강대의 얼굴에 툭 하고 떨어졌다.


 “···울고 있어.”


 적지 않은 비가 내렸지만 강대가 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감기 걸릴 텐데.”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는 서린이 걱정하는 말투로 말했다.


 운보는 그런 강대를 들쳐업었다. 듬직한 등에 뺨을 내어준 강대의 표정은 여전히 슬펐다.


 강대가 소중히 품에 안고 있던 푸른 랜턴도 잊지 않고 서린이 챙겼다.


 끼익, 끼익


 “이 사람이 맞겠지?”

 “아니면 다시 놓고 오게?”


 운보의 질문에 서린이 빈정대며 대답했다. 여러 번 확인한 만큼 이 남자가 분명했다.


 “아니··· 뭔가 헌터처럼 생기지 않았어. 무슨 말인지 알지? 유호 님 처음 봤을 때처럼.”

 “으음.”


 서린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외투를 벗어 강대에게 덮어주었다.


 “아직도 안 믿겨. 두 눈으로 봤는데도.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유호 님 복귀하는 거야?”


 운보가 생각에 잠긴 얼굴을 했다. 그렇게 울고도 또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울보야.”

 “울보라고 하지 마.”

 “그래.”


 웬일로 서린이 한발 물러섰다.


 분명 좋은 날이기 때문이었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모두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고 우리를 응원할 것이다. 그만큼 좋은 일이다.


 하지만 둘은 환호를 침묵 당하며 빗길을 걸었다.


 저 남자는 뭐가 그렇게 슬픈 걸까.


 은인일 수도 있는 저 남자가 구슬피 우는 게 괜시리 마음이 아팠다.


 사기꾼일지도 모르지만 그냥 아프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이 정말 저주를 풀었을까?”


 서린은 도저히 입밖에 내뱉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듯 물었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니면 두고 오게?”


 운보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킥킥거렸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겨우 D급이잖아. 심지어 힐러도 아니야. 너무너무 평범하다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는지 불만 아닌 불만을 쏟아냈다.


 “그리고 저주를 풀었단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데? 다시 저주를 걸기라도 할 거야?”

 “유호 님도 무언가 본 게 있으니까 그러시는 거겠지. 무재 님 말로는 전날 일도 기억하신다는데.”

 “끄응.”


 서린은 마음이 심란해질수록 랜턴을 앞뒤로 흔들었다.


 끼익, 끼익···


 “너 뭐야.”

 “······!”


 아주 가까이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린이 잽싸게 뒤를 돌았다.


 목이 꺾일 듯한 반동에 몸이 비틀어지면서 비에 젖은 바닥을 발로 주욱 쓸었다.


 “분명 목소리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서린이 그럴 리가 없다면서 운보를 봤다.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너도 들었구나.”


 서린이 등 뒤로 손을 뻗자 공간의 한 면이 파랗게 물들며 그 속에서 활이 나왔다.


 “너 뭐냐니까? 누군데 나랑 강대를······.”

 “에···?”


 하늘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던 서린은 잠깐 멍청해졌다.


 랜턴이 말을 한다.


 “뭐야 이거 시바알!!”


 파닥파닥, 후욱-


 놀란 서린이 팔을 휘두르면서 랜턴을 위로 확 던져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악! 죽는다 강대야!! 나 죽는다아아!!”


 캔딜이 줄 없는 번지점프를 하며 신나게 소리쳤다.


 그 소리에 강대가 눈을 떴다.


 운보의 등을 발로 차며 위로 튀어 올라 공중에 있는 캔딜을 품에 안았다, 서린은 분명 그랬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D급의 움직임 따위 자신이 못 봤을 리 없으니까.


 어느 순간 높이 떠오른 강대가 바닥에 착지하며 무릎을 사뿐히 구부렸다. 서린이 덮어준 외투도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랜턴을 안고 있는 강대의 두 팔은 소중했다.


 “누구야. 너희.”


 슬퍼하던 표정과는 달리 매우 단단한 목소리가 비를 뚫고 둘에게 도달했다.


 서린은 잠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는 랜턴과 D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위압적인 저 남자.


 ‘시발 사과할 뻔했다.’


 붕 뜬 서린이 아무 말도 못 하고 하늘을 향하던 활을 살짝 내렸다. 그 모양새가 강대를 견제하는 꼴이 되었다.


 위협을 느낀 강대가 칼을 빼 들려고 할 때.


 “자, 잠깐만요! 저희는 암살자 길드에서 왔습니다!”


 운보가 서린의 팔을 막으며 외쳤다.


 빗속에서 푸른 빛을 뿜던 강대의 눈이 다시 검은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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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잃어버린 기억 24.09.02 13 0 12쪽
16 16화 잃어버린 기억 24.08.30 15 0 12쪽
15 15화 대서특필 24.08.30 14 0 13쪽
14 14화 두 가지 조건 24.08.30 11 0 13쪽
13 13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4쪽
»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1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4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6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7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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