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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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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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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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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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암살자는 외로워

DUMMY

 [패시브: 광대 걸음]

 [특유의 발걸음으로 은밀한 이동과 신속한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신속한 이동 시 조건에 따라 대상이 공포에 걸립니다.]


 나는 광대 걸음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면서 돌아다녔다.


 처음엔 특유의 발걸음이란 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번의 실험을 통해 팔자 다리로 통통 튀듯 다니면 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자연스레 허리를 굽히면 눈에 덜 띈다는 것도.


 도망친 두 사내로 인해 경비대가 돌아다니기 시작했을 땐 건물 위를 뛰어다녔다.


 “이야기는 도대체 언제 진행되는 거야.”


 이곳은 마치 현실 세계처럼 행동에 제약이 없었다. 그래서 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은 만큼 더 넓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었다.


 “꺄악! 도둑이야!”


 밤이 되어 쌀쌀해졌을 땐 노예를 데리고 다니는 귀부인의 털목도리를 들고 달아났다. 비록 반나절도 안 돼서 내 초상화가 그려진 현상수배지가 이곳저곳 붙여졌지만 부드럽고 따뜻해서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는 이제 대놓고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목숨을 헛되이 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모두 집에 들어갔고 가끔 주변을 순찰하는 경비들만 피하면 됐다.


 하지만 역시 무방비한 나의 주머니를 노리는 양아치들은 득실거렸다.


 터벅터벅


 누군가 나의 뒤를 밟았다. 일부러 같은 곳을 맴돌아도 사라지지 않는 발소리에 나를 노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네 발자국 정도 뒤에서 기합을 외치며 내게 달려든다. 나는 침착하게 뒤로 돌았고 그의 표정을 관찰했다.


 그는 일 센티도 박히지 않은 칼날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며 이마에 식은땀을 흘렸다.


 “왜 이래, 왜 이래 이거!”


 몇 번 더 찔러보는 그를 향해 나는 미소로 대답하고 그의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힘을 주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서서히 힘을 줄 때마다 그가 발버둥을 쳤다.


 으직!


 남자의 몸이 축 늘어졌다.


 “으, 으억··· 으으윽.”


 그 뒤부터 칼을 들고 달려오는 놈들은 그 칼로 얼굴에 ‘나 칼잽이요’라는 흔적을 남겨주었다. 주먹을 믿고 까부는 것들은 얼굴을 바닥에 꽂아 평평하게 만들어줬고 혼자 다니는 여인을 겁탈하는 것들은 미션을 위해 대충 공포만 걸리게 하고 천천히 죽였다.


 그렇게 밤낮이 두어 번 바뀌었다.


 낮이 되면 골목에 들어가 쓰러지듯 잠 들었고 어두워지면 일어나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 과정의 중간부터는 미션을 신경쓰지도 않았다. 첫날 도망친 두 사내가 말한 것처럼 피를 뒤집어쓴 악마 같은 모습이 되었기에 다가가기만 하면 지들끼리 난리를 쳤다.


 이 나라도 덕분에 치안이 좋아진 것을 체감했는지 현상수배지가 노골적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내가 넋을 잃고 낮까지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런 나를 경비대장으로 보이는 녀석이 발견했고 조용히 옆으로 다가왔다.


 “이봐, 저쪽으로 가면 우물이 있으니 좀 씻게. 그리고 선은 넘지 말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말을 듣고 피비린내 나는 목도리를 벗어 그의 얼굴에 던진 것 같다. 그러고 우물로 가서 씻었다.


 혹시 분장이 지워졌을까, 우물 안쪽에 고개를 넣어봤지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 옆에서 기다리던 농부가 있었다.


 고개를 들자 나의 얼굴을 본 농부가 흠칫 놀랐다.


 “혹시 내가 광대로 보입니까?”

 “히익! 그··· 그게 죄송하지만 그렇게 보이는데요···.”


 그의 대답을 듣고 잠시 멍때렸다.


 [분장 해제 불가.]

 [이야기를 진행하시오.]


 망할 시스템. 일찍 좀 말하지. 겁에 질린 농부가 양동이를 떨구고 도망갔다. 들고 따라가 봤지만 미션의 숫자가 올라가는 소리만 짓궂게 들릴 뿐이었다.


 “지겨워. 지겨워······.”


 나는 또 넋을 잃고 낮까지 걸었다. 나를 마주치고 뒷걸음질 치지 않는 이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 소식을 들은 경비병들이 두 번은 참을 수 없었는지 나를 앞뒤로 포위했다. 내가 빠져나갈 곳을 두리번거릴 때마다 포위망은 점점 좁혀졌다.


 나만 빼고 긴장감 넘치는 이 공간에서 전에 봤던 경비대장이 걸어 나왔고 단독으로 내 앞에 섰다.


 “내 분명 선을 넘지 말라고 했을 텐데.”


 경비대장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고상한 콧수염을 들썩거렸다.


 “목도리는 마샤 부인의 것이더군. 설마 그녀를 죽였나?”

 “······.”

 “다시 한번 묻지. 마샤 부인을 살해했나?”

 “죽이지 않았습니다.”


 존댓말을 들은 경비대장은 자신이 우위에 있는 듯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걸세. 혹여나 거짓말이라면···”

 “이제 내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지?”

 “왕의 성이 페리인가?”


 경비대장이 언짢은 기색을 참지 못했다.


 “지금 무슨···!”

 “첫째 왕자는 살아있나? 아니, 지금 살아있는 왕자는 몇 번 째지?”


 경비대장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자 포위하던 경비병 하나가 창을 내 쪽으로 향했다. 잇따라 모든 경비병이 경계하기 시작했지만 경비대장의 손짓으로 무마되었다.


 “어째서 이런 걸 묻는 거지? 무례하고 불순해. 혹시 이곳 사람이 아닌가?”

 “아니면 어쩌게. 대답이나 해.”


 울컥한 마음에 그의 멱살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이보게. 선을 넘지 말라니까?”


 경비대장이 여유롭게 말하면서 내 뒤로 눈을 흘겼다. 그 순간 바닥에서 미세한 진동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나는 경비대장을 밀치고 재빠르게 뒤로 돌아 몰래 다가오던 경비병의 목을 손톱으로 뚫었다. 그대로 울대뼈를 잡고 뜯자 경비병은 검을 놓치고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띠링! 띠리리링!


 털썩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을 보고 수십 명이 공포에 허우적대는 소리가 눈앞에 선명했다.


 나는 다시 쓰러진 경비대장을 바라봤다. 피 묻은 손을 그의 얼굴에 올렸다. 왕가에 원한을 품고 있는 자들을 알고 있는지 물었지만 그런 자들은 없다고 했다.


 또 울컥한다. 이야기라는 것에 진전이 없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우읍. 우웁!”


 경비대장은 발악했지만 내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위기를 느낀 그가 미끼를 던지듯 입을 열었다.


 “노, 노예! 귀족들에게 노예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네! 명목만 불법이지 빈민가로 가면 방치하고 있는 아주 큰···”

 “어느 방향이지?”


 경비대장이 눈알을 열심히 굴리더니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역시 목적이 있는 편이 훨씬 즐겁다.


 광대 걸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뛰어갔다.


 띠링! 띠링!


 경비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길을 텄다.


 살기 위해 부리던 노예의 목줄을 내게 던진 마샤 부인처럼.



 ***



 저녁이 될 때까지 경비대장이 가리킨 곳으로 향했다. 그러다 어느 건물을 기점으로 도시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집중하고 노력한 것에 비해 이곳은 너무 대놓고 빈민가였다. 말 그대로 방치라는 말이 어울렸다.


 나는 낡은 건물이 즐비한 곳으로 홀린 듯이 걸어갔다.


 바람이 헐렁한 창틈을 지나가며 내는 소리가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별로 무섭진 않다. 광대가 되니 두려움도 사라진 걸까?


 단서를 찾기 위해 주변을 자세히 관찰했다.


 불길하게 깨져 있는 유리. 아슬아슬하게 벽을 지탱하는 썩은 목재. 쥐에게 보금자리를 빼앗긴 사람들. 자세히 보니 그저 낡았다고 표현하기엔 사람이 살 수 없는 상태였다.


 댕그르르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술병이 자꾸만 발에 걸려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몇몇 있던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무언가에 취한 듯 눈이 풀렸거나 멍하니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픈 건지 슬픈 건지 알기 어려웠다.


 깊숙이 들어갈수록 술처럼 달큰한 냄새가 진동했다. 위태롭게 거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더욱 많아졌다. 하지만 아무도 나를 보고 놀라거나 시비 걸지 않았다.


 제일 수상한 건 아이와 손을 잡고 태연히 내 옆을 지나가는 저 여자다. 이곳과 어울리지 않게 한껏 꾸민 복장이었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되려 나를 째려봤다.


 “하···.”


 어이가 없단 듯이 한숨을 쉰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내 앞에 섰다.


 “으. 피 냄새. 맞았어? 지금 왜 여기 있어?”

 “······.”


 당연히 나를 안다는 듯한 말투였다.


 “왜 여기 있냐니까?”

 “······.”

 “말 못해? 너도 벙어리 새끼야?”


 짝!


 그녀가 갑자기 인상을 쓰고 쏘아붙이더니 팔을 쭉 뻗어 뺨을 때렸다. 아프진 않았지만 말 그대로 어안이 벙벙했다.


 “왜 여기 있냐고 묻잖아.”


 여자는 처음 보는 이를 거칠게 다루는 태도가 매우 자연스러웠다. 옆에 우물쭈물 서 있는 아이의 볼도 벌겋게 부어 있었다.


 “이 아이는 당신의 노예입니까?”

 “뭐? 그럼 시발 내 아들이게? 됐고 넌 따라와. 오늘 아주 죽어봐. 건방진 새끼.”


 여자는 휙 돌아서며 아이를 질질 끌고 갔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이에게 여자가 고함을 지른다.


 지금은 따라가겠지만 그곳에 도착하면 당신은 죽을 거야.


 멀어지는 여자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이빨을 갈고 있는 그때 누군가 아주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그리고 겁도 없이 나의 두 팔을 붙잡았다.


 “저기··· 관계자 맞으시죠?”


 멍하니 달을 바라보던 여인이었다. 미세하게 달콤한 냄새도 났다.


 그나저나 관계자라니. 노예를 파는 곳에 대해 알고 있는 걸까?


 내가 묻기도 전에 여인은 무릎을 꿇더니 왈칵 눈물을 쏟았다.


 “제, 제발 저희 딸 좀 돌려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저, 정신이 잠깐 나가는 바람에! 부탁드릴게요. 약값은 어떻게든 갚겠습니다···.”


 알 수 없는 말에 동공이 흔들렸다. 목숨 구걸이 아닌 자식 구걸은 처음이었다. 여인은 그런 내 표정을 싸늘하게 읽었는지 기겁하며 말을 이었다.


 “아, 아니. 몸을 팔아서라도 갚을게요! 약 근처엔 얼씬도 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딸 좀 돌려주세요···. 아아, 제발요···.”


 여인은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두 배로 갚겠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전 죽는 게 나아요. 근데 제 딸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전부 제, 제 잘못인데에···.”

 “그렇긴 한데 아줌마. 그 말 진짜야?”


 한순간 젊은 남자가 다가와 말했다. 그의 옷차림도 역시 이곳 사람들에 비해 고상한 편에 속했다.


 “네, 네? 무슨 말이요?”

 “두 배로 갚겠다는 말. 진짜냐고.”

 “그··· 그게.”

 “그럼 이것도 필요없겠네?”


 솨아아


 남자가 바닥에 하얀 가루를 쏟자 달콤한 냄새가 퍼졌다. 여인은 마치 보석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허겁지겁 기어갔다.


 “필요해? 필요하면 좀 줄까?”


 여인은 침을 꿀꺽 삼키고 바닥에 떨어진 가루와 남자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제 딸만 도, 돌려주시면··· 필요는 없을 것 같긴 한데···.”


 여인이 말끝을 흐렸다.


 “오 정말? 기특한데. 그럼 내가 특별히 딸 얼굴 보게 해줄게. 대신 약값 두 배로 갚는 거다? 자 약속.”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펼치자 여인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손가락을 걸었다. 그리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기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아줌마. 왼손 좀 펴볼래?”

 “네? 가,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남자의 표정이 순간 싸늘하게 변했다.


 “손 펴보라고. 개 같은 년아.”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자연스레 꽉 쥔 손도 풀렸고 하얀 가루가 흩날렸다.


 “죄, 죄송합,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여인은 곧 맞을 것처럼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한마디를 했다.


 “가자. 딸 보러.”


 그리고 곧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다시 친절한 표정이 되었다.


 “너도 가야지. 어릿광대잖아?”


 그것은 이곳에 와서 처음 느껴본 소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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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11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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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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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3 3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3 0 14쪽
2 2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3쪽
1 1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9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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