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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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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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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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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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암살자는 외로워

DUMMY

 “아줌마. 조용히 좀 해. 딸 보러 가게 해준다잖아.”


 여인은 느린 걸음으로 한참을 훌쩍거렸다.


 “하···.”


 남자의 한숨 소리에 여자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무래도 늦을 것 같은데 얘기나 할까. 자네는 어디 출신이야?”

 “······.”

 “아니. 말하지 마. 내가 맞춰볼게.”


 남자가 나의 몸을 스캔하듯 훑어보더니 자신 있게 입을 열었다.


 “북쪽 사람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너처럼 큰 키는 흔하지 않거든. 그나저나 분장은 누가 해준 거야?”

 “······.”

 “혹시 유라인가. 도착하면 다시 해야겠는걸.”


 나는 동조하듯 끄덕였다.


 “푸핫. 너도 분장이 마음에 들진 않는구나. 본인 화장도 서툰 아이거든. 같이 오지 않은 것도 이것 때문인가?”

 “······.”

 “음. 유라는 귀여운 면이 있긴 하지만 툭하면 화를 내고 아이들을 때려서 문제야. 상품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 말을 해도 버릇을 못 고치니···. 아무튼 길은 다 외웠나?”

 “······.”

 “헤매는 것 같던데 어서 외우는 게 좋아. 또 유라가 버리고 갈지도 모르잖아.”


 이 남자 뭐지. 지 할 말만 한다. 여인도 어느 순간부터 체념한 듯 조용해졌다.


 “다 왔네. 얘기하면 금방이라니까.”


 정돈되지 않은 길을 지나 풀숲을 헤쳐왔을 때. 눈앞에 커다란 서커스장이 보였다.


 “아아···! 싫어! 싫다고!”


 여인은 서커스장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발이 걸려 넘어졌다.


 “얼씨구. 쇼하고 있네.”


 남자는 울며불며 어떻게든 도망가려는 여인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여인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왔다. 그것은 분명한 기만이었다.


 “아악! 놔! 놓으라고! 개자식아!”


 여인이 남자의 손을 마구 할퀴었다. 그리고 여인에게 이어지는 발길질. 덩달아 씩씩대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


 “왜, 왜 그러는 건데? 왜 자꾸 사람 성질을 건드려! 딸 보게 해, 해준댔잖아! 도대체 왜, 왜! 왜! 왜!”

 “제발 놔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그냥 돌아가게만 해주세요······.”


 여인이 머리를 부여잡고 빌었다. 그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다.


 덩치 큰 남자와 내 뺨을 때린 유라라는 여자도. 소리에 이끌려 온 가면 쓴 귀족들과 그들의 경호원들도.


 남자는 눈이 돌아간 것처럼 주변 분위기도 신경쓰지 않고 뒷문으로 여인을 끌고 갔다.


 “크흠!”


 그러자 덩치 큰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주의를 끌었다.


 “제 부하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군요.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하하. 괜찮네 마커스.”

 “나도 마찬가지일세.”

 “가끔은 이런 날 것의 상황이 재밌는 법이지.”


 몇몇 귀족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마커스란 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혹시 맞고 있던 여인은 노예인가? 가능하다면 거금을 들여서라도 갖고 싶은데···.”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여인이지만 고객님들께서 원하신다면 반드시 경매에 내놓겠습니다.”

 “역시 마커스야. 다른 것들도 기대하고 있겠네.”

 “감사합니다.”


 상황이 정리되자 다시 앞문으로 돌아가는 귀족들을 향해 마커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뒤 둘의 시선은 나를 향했다.


 “근데 자네는 누구지?”


 마커스의 질문에 놀란 사람은 내가 아닌 유라였고 대답한 사람도 유라였다.


 “네? 왜 모르세요? 새로 뽑은 어릿광대 아니에요?”

 “음. 아니. 난 그런 적 없는데. 아무래도 이곳이 진짜 서커스장인 줄 알고 일하러 온 것 같군. 원래 이렇게 사람을 구하진 않지만 구경이라도 시켜주지.”


 마커스는 음흉하게 웃었고 그 말을 들은 유라는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유라.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 유감인데.”

 “뭐? 너 내 이름을 어떻게 안 거야.”

 “그러게. 마커스가 알려줬나?”


 유라가 마커스를 쳐다봤다. 마커스는 당연히 고개를 젓겠지.


 “뭐야. 둘이 장난하는 거예요? 마커스! 뭔데요 지금.”

 “뭐긴 뭐야 미친년아. 곧 죽으니까 오락가락하는 거지.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뒷주머니에서 단검 하나를 꺼냈다. 고작 그랬을 뿐인데.


 띠링!


 너무나도 빠르게 울린 소리 때문에 조금은 화가 났다.



 ***



 무대 위에서 우스꽝스러운 분장을 한 광대가 고개를 숙이고 퇴장했다. 평소 같았으면 들을 수 없을 귀족들의 천박한 웃음소리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그동안 사회자는 무대를 정리하고 만족한 표정을 한 채 관객석을 바라봤다.


 “자, 귀빈 여러분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리는 분들이 눈에 보이는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이번 상품들은 가히 역대 최고라고 저 한스가 보장하니까 말이죠.”


 한스의 말에 귀족들은 가면 뒤로 추잡한 얼굴을 숨기며 입가에 묻은 와인을 할짝거렸다.


 “어서 시작하라고!”

 “돈은 충분히 가지고 왔으니까!”


 귀족들의 힘찬 성원에도 사회자는 여유롭게 웃었다.


 “하하하. 역시 좋은 상품을 차지하기 위해선 많은 돈이 필요하겠죠. 다른 분들은 충분히 가지고 오셨나요? 제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말씀드렸지만 오늘 상품은 역대 최고입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안타깝지만 저희는 경매를 진행할 수가 없죠.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여러분들, 돈은 충분히 가지고 오셨나요?”


 와인에 흠뻑 취한 귀족들이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웃었다. 자신들에게 돈은 많이 가져왔냐고 묻다니. 하찮은 질문 때문에 경매를 미루고 있다는 게 아주 괘씸했다.


 “받아라 한스!”

 “아주 건방지구만! 크하하!”


 툭 투둑


 무대 위로 금화가 몇 개씩 떨어지더니 곧이어 엄청나게 많은 금화가 비처럼 쏟아졌다.


 후두두두둑!


 한스의 말재간에 넘어간 남자 귀족들은 있는 힘을 다해 금화를 던졌고 대부분의 여자 귀족들은 자신의 경호원에게 금화를 던지도록 했다.


 한스는 두 팔을 벌려 날아오는 금화에 몸을 적셨다.


 “하하! 좋습니다. 제가 귀빈 여러분들을 얕봤군요! 어리석은 한스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이제 정말로 경매를 시작해볼까요? 자, 첫 번째 상품은······.”


 한스가 손으로 옆을 가리키다 말았다.


 관객석에서 본 적 없는 광대가 귀족들 사이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왜 이제서야 눈치챈 걸까? 저렇게 건방진 자세를.


 한스는 애써 무시하고 말을 이었지만 왜인지 마커스가 올라오지 않았다. 사회자 경험이 풍부한 한스는 이대로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다고 판단해 무대 관리자에게 신호를 주어 커튼을 내렸다.


 그리고 한스의 판단은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상품이 나오길래!’


 귀족들은 설레다 못해 야한 기분에 사로잡혀 부족한 와인을 주문하고 빨간 커튼이 올라가길 기다렸다.


 한편 한스는 대기실에 있는 상품들에게 다가갔다.


 “야. 여기 덩치 큰 남자 어디 갔어.”


 철창에 갇힌 아이들은 그저 두려움에 떨면서 고개를 저었다.


 “에이씨!”


 한스는 마커스의 이름을 연신 외치며 무대 준비실로 달려갔다.


 “마커스 어딨어? 시발 왜 아무도 없는 거야! 유라! 존! 아무나 나와봐! 일하는 새끼들은 또 어디 간 거야!”


 한스가 무대 준비실의 문 앞까지 왔을 때.


 쿵!


 한 여인이 문을 열고 뛰쳐나오다 한스와 부딪혔다. 여인은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달리기 바빴다. 무슨 저런 게 다 있는지. 한스는 여인의 뒷모습을 째려보며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하지만 역시 이곳도 텅텅 비어 있었다.


 소품 박스가 부자연스럽게 튀어나와 있었지만 더 이상 자리를 비우는 건 위험했다. 아까부터 들려오는 귀족들의 비명 같은 아우성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


 “너 이리 와.”


 원래라면 마지막 경매에 나왔어야 할 파란 눈과 빨간 코를 가진 상품을 데리고 무대에 올랐다.


 “후우.”


 땀에 젖은 머리를 정돈한 뒤 직접 커튼 레버를 올렸다.


 천천히 올라가는 새빨간 커튼.


 이상하다. 커튼은 분명 올라갔는데 왜 아직도 눈앞이 빨간 걸까.


 비릿하고 달콤한 냄새가 한스의 코를 찔렀다.


 비릿한 건 피였고 달콤한 건 와인이었다. 얼토당토않는 귀족 학살범은 아까 그 건방진 광대였다.



 ***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개새끼야아아!”


 한스는 두려움에 떨었다.


 “돈을 원하는 거야? 다 줄게! 여기 있는 걸 다··· 전부 준다고! 그러니까 오지 마···!”


 휙 휙


 맨손으로 수십 명을 죽인 놈에게 작은 나이프를 휘두르는 건 얼마나 우스운 짓인가. 한스는 그만큼 살고 싶었고 상품을 인질로 삼을 만큼 정신이 나가버렸다.


 한스가 나이프 쥔 손을 덜덜 떠는 바람에 인질로 잡은 아이의 볼에 자꾸만 상처가 났다.


 푸른 눈과 빨간 코. 볼에는 깊은 칼자국. 강대는 자신이 넷째 왕자가 되었을 때를 기억했다. 이 놈이 누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한스의 이마에 단검을 던지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이름이 뭐니.”

 “······페리. 다, 다들 날··· 가짜 페리라고 부, 불러요···.”

 “왜?”

 “버려, 버려졌대요···. 부, 불길하다고.”

 “내가 무서워?”

 “워, 원래··· 말을 더, 더듬어요.”

 “그렇구나.”


 강대가 아이의 볼에 흐른 피를 닦아주었다. 하지만 강대의 손에 묻은 피가 오히려 아이의 볼을 더럽혔다.


 휙, 툭


 강대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금화를 하나를 주워 무대 구석으로 던졌다.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그러자 자신의 딸을 안고 기웃거리던 여인이 눈치를 보며 바닥에 떨어진 금화를 줍기 시작했다.


 “저기··· 발 좀 들어주실래요? 목걸이가 있어서···.”

 “아, 응.”


 정말 많이 주워갔다.


 “이거 쓸래?”


 여인이 강대가 건넨 금화 주머니를 냉큼 받았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여인은 연신 허리를 숙이다가 바닥을 깔끔히 청소한 뒤 귀족들의 시체를 부여 밟으며 밖으로 나갔다. 아이는 그런 여인의 뒷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 그때,


 쨍그랑!


 어디선가 날아온 랜턴이 아이의 이마에 부딪혀 이곳저곳 불똥을 튀기며 깨졌다.


 “하아··· 하아···.”


 강대가 가쁜 숨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곳엔 소품 상자 안에서 죽었어야 할 남자가 칼을 들고 간신히 서 있었다.


 “쿨럭! 흐으···. 그 년 어디 갔어? 내 몸 이렇게 만든 년 어디 갔냐고!”

 “딸 데리고 갔어. 근데 네 몸은 내가 그렇게 만든 건데. 기억 안 나?”

 “뭐? 이 미친 새끼가아!”


 남자가 부러진 팔로 칼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피로 물든 관객석을 미처 보지 못해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푸욱!


 하지만 강대도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다. 자신이 단검을 뺏길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것이 어린아이일 거라는 생각은 더더욱 하지 못했다.


 남자는 단검에 배를 찔려 힘없이 쓰러졌다. 고작 상품 따위에게 당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눈을 뜨고 죽었다.


 아이가 한없이 깊은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하지만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돌아온 내 방에서 입을 뻐끔거릴 뿐이었다.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정산 중입니다.]


 ·

 ·

 ·


 [상태 이상 공포 (245/50)]

 [미션 초과 달성]

 [보상과 추가 전리품을 지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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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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