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광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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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해다찬
작품등록일 :
2023.07.3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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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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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3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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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은인 잡아라

DUMMY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치부가 있는가.


 보여줄 바에 죽고 싶고 밝히려는 자는 죽이고 싶은 그런 치부가.


 나에겐 있다.


 그것이 가슴 속 깊이 박혀 살아간다. 역겹게 꿈틀거리며.


 그것은 평소에 눈을 감고 있다. 하지만 내가 특정한 감정을 느낄 때마다 어김없이 눈을 떠 제멋대로 감정을 선별하는 오만하기 짝이 없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만약 선별에 통과하지 못하는 감정이 있노라면 그것은 눈을 감고 나는 눈을 뜬다.


 붉은 달이 뜨듯,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안구에 피가 튄 것처럼 주위가 서서히 핏빛으로 물든다.


 그러고 나면 가슴 속에 박혀 있던 그것은 사라진 채 주위 모든 것이 되어 있었다.


 가슴에 생긴 빈자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공허함을 느끼기도 한다.


 고개를 치켜들었다.


 오늘은 하늘을 밝히는 달이 되었구나.


 그물처럼 빼곡히 뒤엉킨 나뭇잎 사이로 희미한 동공이 보였다.


 나는 헛구역질이 나올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당장이라도 저것을 바닥에 처박은 뒤 잘근잘근 즈려밟고 싶었다.


 그럼 넌 비명을 지르겠지.


 오직 눈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너는 무슨 비명을 지를까?


 으깨지는 소리든 뭐든 어떠한 형태의 비명을 느끼다 보면 내 발은 지면과 가까워지고 마침내 툭, 터져버리고 말겠지.


 그럼 그땐 발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무참히 발길질할 것이다.


 축제에 신이 난 아이처럼 너의 위를 뛰어다닐 것이다.


 주룩 흘러나온 싱싱하고 맑은 피는 흙과 뒤섞여 탁해질 것이다.


 그러니 기다려라.


 굳어버린 피눈물이 진정 맑은 눈물로 씻겨질 때 눈을 뜨고 너를 찾아갈 것이다.


 다짐하고 다짐했다.


 머릿속을 썩어빠진 증오로만 가득 채워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보지 못할 바에 죽고 싶고 보지 못하게 하려는 자는 죽이고 싶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을 다시 보게 해준 이가 있다.


 나는 타인에 의해 눈을 뜨고 나서야 맑은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푸른 눈을 가진 채라는 그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진정 네가 아니란 걸 알아도 이곳에 평생 남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증오를 버렸으니 미련을 버리는 법도 알았다.


 맑은 바다를 부유하며 떠오르는 공기 방울의 과거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너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 별을 뿌려놓은 듯한 눈이 매력적이었으니까.



 ***



 “우와아악!”


 [깜짝이야아아!!]


 침대에서 허우적거리며 일어났다.


 놀란 캔딜이 잔뜩 욕을 한다.


 강대는 입을 살짝 벌리고 허공을 바라봤다.


 다시 눕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드는 보드라운 침대 시트를 만지며 인상을 썼다.


 [야, 김강대. 왜 말이 없어. 왜 소리 질렀냐고오! 너 때문에 심지가 쪼그라드는 줄 알았···]


 “닥쳐.”


 [뭐, 어···?]


 “좀 닥치라고. 시끄러우니까.”


 강대가 타오르는 불꽃을 확 꺼버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화륵, 화르르륵


 [너 지금···.]


 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가 고조된 분위기를 깼고 곧 세련된 문이 활짝 열렸다.


 목에 깁스를 한 무재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들어왔다.


 “소리가 들려 와 봤는데 깨어나셨군요. 어디 아프신 곳은 없습니까?”

 “······네.”


 강대가 눈을 맞추지 않고 한숨 같은 대답을 했다.


 마치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아 무재는 머금은 미소를 그대로 삼켜내는 수밖에 없었다.


 무재가 강대 앞으로 다가가 두 손을 모았다.


 “유호 헌터님을 아시죠?”

 “네.”

 “전 유호 헌터님의 경호원 윤무재라고 합니다.”

 “제가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하게 이름으로 부르셔도 됩니다.”

 “그럼, 무재 씨. 제가 좀 쉬고 싶어서요.”


 강대가 대화를 미리 끊어냈다.


 다리 부근으로 들어오는 따사롭다 못해 뜨거운 햇볕을 손으로 어루만졌다.


 “네···. 일단 알겠습니다.”


 무재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강대의 피로감이 주는 압박감에 발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입원비는 당연히 저희 길드에서 책임지니 아무쪼록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


 그 말을 뒤로 문이 닫혔다.


 고요한 방.


 강대에게만은 너무나 시끄러운 방.


 캔딜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얼마나 서운했는지 심지 타오르는 소리가 성가시게 들려왔다.


 강대는 여전히 병든 환자처럼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인벤토리에서 울고 있는 캔딜을 꺼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의자에 놓았다.


 “사과해···.”


 작아진 캔딜이 유리에 기댄 채 말했다.


 대답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강대는 힘없는 팔을 들어 올려 랜턴 뚜껑을 열었다.


 “사과하라고···.”


 캔딜의 눈가에선 불똥이 자꾸만 흘러나왔다.


 “미안.”


 캔딜은 강대가 사과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또 닥치라는 말을 들을 것만 같아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더욱 울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과해···!”

 “미안해, 캔딜. 미안해. 근데 있잖아. 내가 정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정말······.”


 말을 잇지 못하는 강대가 이상했던 캔딜은 울음을 그치고 랜턴을 나왔다.


 강대가 고개 숙여 흐느끼기에 그 밑으로 타오르는 손을 집어넣었다.


 “앗.”


 떨어진 눈물이 캔딜의 손에 닿아 증발했다.


 캔딜이 얼굴을 들이밀자 강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타오르는 불을 확 꺼버릴 만한 얼굴이었다.


 강대의 얼굴은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무참히 흐르는 눈물에 몸을 던지고 싶을 정도로 차가워져 있었다.


 “캔딜. 내가 정말 그 광대인 거야?”


 빙판이 갈라지듯 강대의 입술에서 한기 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캔딜은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말했다. 자꾸만 아픈 소리를 내면서도 강대의 축축한 얼굴에 손을 갖다 댔다.


 “그럼···. 마녀가 그 사람을 데려간 것도 나 때문이겠네.”


 끼익··· 끼익···


 당황한 캔딜은 습관적으로 녹슨 소리를 내었다. 사실은 습관 때문이라기보단 광대가 맞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대답한 게 부끄러웠다.


 다시 랜턴 안으로 들어가 작은 불이 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커다란 화염이 되어 강대를 감싸 안았다.


 아파하는 그가 차라리 마나 소모로 탈진해 쓰러지길 바라며 강대의 마나를 태워댔다.



 ***



 유호가 병상에서 눈을 떴다.


 왼쪽에선 목에 깁스를 한 무재가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게 보였다.


 유호는 나름 상쾌한 기분 덕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었지만 단단한 구속구 때문에 고개만 까딱거렸다.


 “아. 일어나셨습니까.”


 무재가 깁스에 닿을 뻔한 침을 허겁지겁 닦으며 물었다.


 “응. 이것 좀 풀어줘.”

 “잠시만요.”


 태연하게 부탁하는 말에 무재가 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에, 안 되죠! 뭐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당황하며 열쇠를 놓치는 무재를 보고 유호가 웃었다.


 무재도 아픈 목에 손을 얹고 바닥에 떨어진 열쇠를 조심히 주우며 피식거렸다.


 “오늘은 일찍 일어나셨네요.”

 “얼마나 지났는데?”

 “하루요. 겨우 하루 만에···.”


 무재가 말끝을 흐렸다.


 “어제는 어땠는지 아십니까?”

 “어땠는데?”


 유호가 옛날이야기를 듣는 어린아이처럼 흥미로운 표정을 했다.


 “대뜸 저를 밀치시고는 구해주겠다고 하는 거 있죠. 심지어 제 이름까지 부르면서요.”

 “정말?”


 고개를 끄덕이는 무재의 모습은 굳이 진실을 강조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늘은 누가 얼마나 다쳤냐는 말을 안 하시네요.”


 유호가 대답하지 않고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기적이에요···. 아무도 안 다친 게.”

 “그래. 기적이네 정말.”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담담히 수긍하는 유호를 보고 무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놀라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분들은 어딨어? 우리랑 같이 있던 남자랑 여자 말이야.”

 “그분들은 지금 각자 다른 병실에···.”


 벌떡


 말 그대로 무재가 벌떡 일어났다.


 “엇, 어떻게 아셨습니까?”


 무재는 유호가 어떻게 그 두 사람을 기억하고 있는지 의문이었다.


 정신을 잃은 유호는 그동안의 전투를 단 한 번도 기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유호가 다 안다는 듯이 웃는다.


 마치 여름에 눈이 내리고 겨울에 봄꽃이 피는 것 같았다.


 “이것 좀 풀어줄래?”


 무재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구속구를 풀었고 유호는 얌전히 일어났다.


 “당연하겠지만, 이건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런 이야기를 무재는 가만히 서서 들었다.


 창밖에서 눈이 내릴 것만 같다.



 ***



 “그러니까 그 분이 유호 님의 저주를 풀어줬단 말이죠?”

 “응.”

 “D급이요?”

 “응.”

 “그것도 암살자가요?”

 “으응.”


 무재는 S급 힐러가 빨리 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목에 깁스를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뇌진탕이 분명하다. 어딘가 잘못된 게 분명해. 아니면 간악한 저주가 유호 님의 몸을 차지하고 날뛰려는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했고 유호의 부탁에 김강대라는 헌터의 병실을 다녀와서도 그 생각은 변함없었다.


 “갔다 왔어?”

 “네.”

 “어때 보였어?”

 “기운이 많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렇구나.”


 이해한다는 말투였고 그 남자가 저주를 풀었다 굳게 믿는 분위기였다.


 무재는 차라리 속 시원하게 묻고 싶었다.


 정말 저주가 풀렸다면 그 상의를 한번 벗어보라고. 입이 달싹거렸다.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움켜쥔 주먹 그대로 자신의 얼굴을 흠씬 두들겨 패고 싶었다.


 그의 가슴에 있는 저주가 그에게 얼마나 고통인지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 게 죄스러웠다.


 “무재야.”


 유호가 작게 불렀다.


 “고개 들어봐.”


 그 말에 무재는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시야에 들어온 유호의 가슴팍엔 저주가 남아있던 흔적만 선명했다.


 무재는 눈이 내리나 싶어 창밖을 바라봤다.


 두 눈을 문지르고 또 한 번 바라봤다.


 다시 봐도 그곳엔 눈이 없었다.


 창밖에도, 유호의 가슴팍에도 눈은 없었다.



 ***



 놀란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무재가 병실을 뛰쳐나왔다.


 넘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병원 복도를 달렸다.


 거추장스러운 깁스도 벗어 던지며 강대가 있는 병실로 향했다.


 무재는 문 앞에서 호흡과 함께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굳은살이 박인 중지로 문을 두드렸다.


 똑똑


 역시나 정갈한 노크였다.


 “흐흠. 헌터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무재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조금 더 크게 두드렸다.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전보단 경건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그러자 강한 바람이 불며 무재의 짧은 앞머리를 흔들었다.


 “강대 헌터님···?”


 침대 주변을 두르고 있는 커튼이 휘날렸다.


 만약 사람이 있다면 발이 보여야 할 위치임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태양 빛에 반사된 침대만 하얬다.


 촤악


 무재가 짧게 뛰어 커튼을 확 젖혔다.


 강한 바람을 들여오는 창문과 텅 비어있는 침대.


 “으, 은인이 도망쳤다!”


 방을 잘못 찾아왔나 같은 의심은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외침은 병원을 뒤흔들기 충분했다.


 며칠 뒤.


 저주에 걸린 유호 대신 임시로 길드장을 맡고 있던 부회장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튼 내일까지 제 앞에 데려오세요.”

 “부회장님. 이건 아무래도 말이···”


 쿵!


 “말이 되고 안 되고는 제가 판단합니다.”


 부회장이 책상을 내리치며 날카롭게 말했다.


 “후우······. 그리고 이건 유호 님 부탁입니다. 최대한 조용히. 쥐도 새도 모르게. 그분한테 아무 피해 가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찾는 데 두 명이면 충분하죠?”

 “네. 충분합니다.”


 괜히 꾸중을 들은 남자도 방을 나와 한숨을 쉬었다.


 말도 안 되는 요구였지만 유호의 저주가 풀린 게 더 말도 안 됐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D급 던전에서 그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둘에게 사람 한 명을 찾아오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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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두 가지 조건 24.08.30 11 0 13쪽
13 13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4쪽
12 12화 은인 잡아라 24.08.30 10 0 13쪽
» 11화 은인 잡아라 24.08.30 11 0 12쪽
10 10화 페르소나 24.08.30 12 0 12쪽
9 9화 페르소나 24.08.30 10 0 13쪽
8 8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2쪽
7 7화 페르소나 24.08.30 15 0 13쪽
6 6화 페르소나 24.08.30 17 0 12쪽
5 5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4 4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18 0 12쪽
3 3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4쪽
2 2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24 0 13쪽
1 1화 암살자는 외로워 24.08.30 30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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